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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 연중 제15주간 수요일 독서와 복음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다.)
조회수 | 1,886
작성일 | 09.07.15
주님의 천사가 떨기나무 한가운데로부터 솟아오르는 불꽃 속에서 그에게 나타났다.
탈출기 3,1-6.9-12

그 무렵 1 모세는 미디안의 사제인 장인 이트로의 양 떼를 치고 있었다. 그는 양 떼를 몰고 광야를 지나 하느님의 산 호렙으로 갔다. 2 주님의 천사가 떨기나무 한가운데로부터 솟아오르는 불꽃 속에서 그에게 나타났다.
그가 보니 떨기가 불에 타는데도, 그 떨기는 타서 없어지지 않았다. 3 모세는 ‘내가 가서 이 놀라운 광경을 보아야겠다. 저 떨기가 왜 타 버리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였다. 4 모세가 보러 오는 것을 주님께서 보시고, 떨기 한가운데에서 “모세야, 모세야!” 하고 그를 부르셨다. 그가 “예,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5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리 가까이 오지 마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6 그분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나는 네 아버지의 하느님, 곧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 그러자 모세는 하느님을 뵙기가 두려워 얼굴을 가렸다. 9 “이제 이스라엘 자손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나에게 다다랐다. 나는 이집트인들이 그들을 억누르는 모습도 보았다. 10 내가 이제 너를 파라오에게 보낼 터이니,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어라.”
11 그러자 모세가 하느님께 아뢰었다. “제가 무엇이라고 감히 파라오에게 가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낼 수 있겠습니까?” 12 하느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이것이 내가 너를 보냈다는 표징이 될 것이다. 네가 이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면, 너희는 이 산 위에서 하느님을 예배할 것이다.”
  
지혜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마태오 11,25-27

25 그때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26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27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묵상  

자연이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동물도 사람 대하는 것이 다르고 나무와 풀도 ‘옛날 모습’이 아니라고 합니다. 모두 인간의 자업자득입니다. 사료를 먹이며 가두어 키운 동물이 고운 눈빛으로 사람을 대할 리 없습니다. 비료와 농약에 시달리는 식물이 순한 느낌으로 다가올 리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변화를 위해 노력합니다. 주님께서 주신 본래 모습을 되찾으려 애쓰며 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예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우리를 대해 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변해도 주님께서는 변하지 않으십니다. 사람에 대한 그분의 애정은 바뀌지 않는 것이지요. 우리는 이것을 믿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당신의 ‘한결같으심’을 믿고 있는 이들을 ‘철부지’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소유가 많으면 달리 대접받고 싶은 것이 인간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똑같이 대해 주십니다. 학식이 많아도 지위가 높아도 재물이 많거나 적어도 똑같이 대해 주십니다. 이 사실을 깨닫는 이들이 진정 지혜로운 자들입니다. 우리는 ‘슬기로운 철부지’가 되어야 합니다.  

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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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오늘 복음의 이 말씀에서 철부지는 철없는 어린아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을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사실 그들은 철이 없었습니다. 스승님께서 수난과 죽음을 말씀하시는데 ‘그날이 되면’ 오른쪽과 왼쪽에 앉게 해 달라고 청합니다. 결코 당신을 배반하지 않겠다고 하면서도 세 번이나 모른다고 합니다.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은돈 서른 닢에 스승님을 팔아넘깁니다. 이 모두가 철부지의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믿으셨습니다. 그러기에 당신의 속마음을 드러내시고 아버지의 소명을 맡기셨습니다. 예수님의 넓디넓은 마음입니다.

철부지는 단순히 어린아이만이 아니라 ‘철없는 어린아이 같은 사람’이기도 합니다. 세상눈에는 그렇게 보여도 주님 눈에는 아닐 수 있습니다. 세상은 그렇게 판단해도 예수님의 판단은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요? 권력에 기대거나 인맥을 찾거나 재물에 의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그런 배경이 있어야 조직이 잘 돌아가고 탈이 없을 것이라 믿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그렇다면 주님 앞에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철부지의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주님 앞에서는 철부지가 아닐는지요?

매일미사
  |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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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들은 자식들을 누구나 다 사랑하지만 특히 장애나 어려움을 지닌 자녀들을 더 사랑합니다. 측은한 마음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소개해 주시는 아버지 하느님 역시 그런 측은한 마음을 지닌 분이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철부지와 작은 이들, 곧 보잘것없는 사람을 더욱 좋아하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카인 대신 아벨을, 에사우 대신 야곱을 선택하십니다. 다윗의 여러 형제들 가운데 보잘것없는 다윗을 선택하십니다. 예수님께서도 똑똑한 율법 학자나 바리사이들, 또는 사두가이들을 뽑지 않으시고, 세리나 어부 출신의 제자들을 선택하셨습니다.
  |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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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여기서 말하는 철부지들이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요?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특별히 오늘 복음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과 그 제자들이 철부지입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철부지이십니다. 오천 명을 먹이셨을 때에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임금으로 모시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철없게도 거부하셨고, 오히려 ‘내가 곧 살아 있는 빵이다. 나를 먹어라.’ 하는 이상한 말씀으로 그 많은 사람을 떠나게 하셨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분께서는 죄를 짓지 않으셨으면서도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십자가에서 뛰어내리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시면서도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셨습니다. 이 얼마나 바보 같고 철없는 행동입니까?

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업 수단인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프란치스코 성인도 한평생 거지처럼 살았고,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도 외국어와 서양 학문의 출중한 지식으로 출세하는 대신 젊은 생명을 바쳤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많은 젊은이가 가정을 뒤로한 채 수도원으로, 신학교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이는 세상의 눈으로 볼 때 참으로 철없는 행동을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신비는 철없는 행동에서 드러납니다. 그리고 이 철없는 행동의 기준은 세상의 지혜가 아니라 복음의 진리를 따르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느님의 신비를 알게 하는 열쇠입니다.

<매일미사 2013년 7월>
  |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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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에서 주님의 천사는 떨기나무 한가운데서 불꽃 모습으로 모세에게 나타납니다. 여기서 떨기나무는 히브리어로 ‘서네’입니다. 이 낱말은 잡초, 가시덤불, 덤불을 의미하는데, 금세 타고 없어질 듯한 존재라는 다소 부정적인 느낌을 줍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런 서네 한가운데로부터 솟아오르는 불꽃 속에서 모세에게 나타나시는데, 떨기가 불에 타는데도, 그 떨기가 타서 없어지지 않습니다.

이 상징 속에서 한 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금세 타고 없어질 잡초, 덤불 같은 존재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머무시면서 그들을 태워 없애 버리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일까요? 하느님께서는 표징을 달라고 청하는 모세에게 한 가지 표징을 주십니다. 바로,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는 약속입니다.

우리 모두는 ‘임마누엘’,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이름을 가지신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복음이 이야기하듯이 세상 속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같은 존재, 곧 제1독서가 이야기하던 ‘서네’ 같은 존재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런 ‘서네’ 같은 우리 안에 머무르십니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계시며 당신을 알게 해 주십니다. 자신이 ‘서네’임을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 지혜롭다 여기며 하느님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이들은 결코 하느님 아버지를 알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아버지를 알려 주시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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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철호 요한 신부 : 매일미사 2019년 7월 17일
  |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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