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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회] 하느님을 안다는 것
조회수 | 3,140
작성일 | 09.07.15
신상기록부를 쓸 때 다들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입니다. 이름, 성별, 주소, 생년월일 등을 술술 적어나갑니다. 그러다가 취미나 특기를 적는 칸 앞에서 움찔합니다. 저도 ‘어, 내 취미와 특기가 뭐지’ 하고 생각하면서 내가 나를 참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설문지에 답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생각이 무언지를 묻고 있는데 제 생각을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생각 없이 사는 사람도 아닌데 말입니다. 이것저것 많이 읽어 많은 정보를 얻지만 정작 자신을 모르는 모양새가 참 우습습니다.

우리는 자신에 관해서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자기 자신은 잘 모릅니다. 하느님에 관해서는 잘, 많이 압니다. 그런데 하느님을 정말 아느냐는 질문 앞에서는 늘 자신이 없습니다. 아기가 부모를 전적으로 신뢰하여 온전히 매달리듯이, 그렇게 하느님께 다가가야 합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하느님을 안다고 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머릿속뿐 아니라 마음에도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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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레시오회 장동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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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오 11,25-27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단순함 안에 깃든 독특한 맛

유명세를 타고 있는 한 ‘거리의 사회자’가 있습니다. 대단한 ‘말빨’로 인해 여기저기서 섭외가 쇄도한답니다. 그분이 강조하는 연설의 비법은 이렇습니다.

“듣는 사람을 존중하십시오. 그러면 쉬운 말을 하게 될 뿐만 아니라, 잘 들리는 말이 됩니다.”

한 글쓰기의 달인은 글 잘 쓰는 비법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글을 잘 쓰려면 미사여구, 유식한 단어를 써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쉬운 단어로도 얼마든지 좋은 책을 쓸 수 있습니다. 독자가 쉽게 이해하도록 글을 쓰려면 세 가지 요소가 중요합니다. 적절한 예제, 딱 맞는 비유, 핵심을 꿰뚫는 인용.”

간결함, 작음, 소박함, 편안함...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표현들입니다. 간결함, 군더더기가 없음, 요즘 아이들 표현에 따르면 ‘쌈빡함’ 그 안에 삶의 독특한 맛이 담겨져 있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얼마나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선호하셨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삶이 행복해지려면 너무 복잡하게 살지 말아야 합니다. 단순하게 생각하고, 때로 철없는 사람처럼 행동해야 합니다. 그래야 삶이 편안해지고 기쁨이 찾아옵니다.

기쁨은 고통을 치유하는 힘입니다. 기쁨은 슬픔에서 벗어나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기쁘게 사는 것은 가장 좋은 복음 선포입니다. 기쁜 얼굴은 하느님의 은총을 드러내는 가장 탁월한 표지입니다.

작고 단순한 삶의 대가(大家)가 있습니다. 소화 데레사 성녀입니다. 그녀의 평생에 걸친 소원은 작고 소박한 사람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내 성화의 도구는 바로 기쁨과 미소입니다. 나는 내가 전혀 납득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날 때에도 미소 지으며 감사드립니다. 많은 일들이 나를 억압할 때, 어렵고 불쾌한 일들이 내게 닥칠 때, 나는 조금도 슬픈 얼굴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모든 어려움에 미소로써 답합니다.”

사도 바오로 역시 아주 단순하셨습니다. 그러나 그의 단순함 안에는 하느님께서 거하셨습니다. 당시의 이교도 설교가들은 해박한 지식, 철학적 고찰에 근거한 현란한 설교를 시도했지만, 바오로 사도의 설교는 늘 직설적이었고 단순했습니다.

사람이 위대한 것은 그가 비록 병들고, 늙고, 가난하더라도 그의 얼굴이 기쁨으로 빛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배경에는 다른 무엇에 앞서 단순함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신부
  |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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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비빌 언덕도, 배경도 없던 철부지들

성경에 의인(義人)이란 말이 가끔씩 등장합니다. 의인이란 어떤 사람일까요? 우선 떠오르는 이미지는 불의에 당당하게 맞서는 사람, 저항의 선봉에 선 투쟁가 등, 강성 이미지입니다.

그러나 보다 본질적인 뜻은 다른 데 있습니다. 한자 옳을 의(義)를 분석해볼까요? 양(羊)자와 아(我)가 결합되어 있네요. 그러고 보니 의인이란 ‘내 안에 양(羊)있는 사람’입니다. 양이란 동물은 고분고분, 순종, 순수, 순결함, 순박함의 대명사입니다.

결국 의인이란 진리 앞에 자신을 활짝 개방시킬 여유가 있는 열린 사람, 예수님이란 새로운 가치관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관대한 사람, 부드러운 사람, 다시 말해서 마음이 순수하고 깨끗한 철부지들을 말합니다.

어제 예수님께서 신랄한 독설을 인정사정없이 퍼부으셨던 도시 코라진과 베사이다, 그 도시들에는 다른 도시들에 비해 율법학교, 회당들이 많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 도시들은 당시 잘 나가던 율법학자들의 집결지였습니다. 가방끈 긴 사람들이 잔뜩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니던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들이 지니고 있던 지식은 산 지식에 아니라 죽은 지식이었습니다. 지도자요 학자로서 가장 중요한, 미래를 향한 열린 마음과 겸손함이 결여된 그들이었기에, 교만과 아집으로 눈이 먼 그들이었기에, 예수님을 통한 하느님 아버지의 초대를 결정적으로 거절하는 큰 실수를 범하게 됩니다.

너무나 불행하게도 그들은 한평생 목숨 걸고 하느님을 연구했지만, 따뜻하고 열린 가슴이 없었기에, 교만과 불손으로 눈이 가려져 있었기에, 손에 잡히지 않는 신기루 같은 하느님만 찾아 헤맸습니다. 평생에 걸친 그들의 공부는 공염불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묘하게도 당대 내놓으라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가난한 철부지들 앞에 더욱 자신을 더욱 뚜렷하게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가난한 철부지들, 이 세상 그 어디 가도 믿을 구석 한 군데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비빌 언덕도, 밀어줄 배경조차도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저 황량한 들판에 홀로 서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보다 자연스럽게, 보다 쉽게 하느님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워낙 가진 것이 없다보니, 워낙 삶이 절박하다보니, 하느님의 도우심이, 하느님의 사랑이 더 간절했던 것입니다.

지혜롭다는 자들이 아니라 철부지들에게 드러내시는 하느님은 오늘 우리에게 크나큰 위로로 다가오십니다.

시련의 크기가 큰 만큼 오래지 않아 다가올 그분 사랑도 클 것입니다. 고통의 깊이가 깊은 만큼 하느님 은총과 축복도 커져만 갈 것입니다.

가난한 철부지인 우리들이 조금만 더 노력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 눈이 조금만 더 맑게 트인다면, 우리 영혼이 조금만 더 순수성을 회복한다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크신 상급이 클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우리의 하루하루가 고통의 연속이라 할지라도 하느님께서는 고통 그 한가운데 현존하심을 알게 해주실 것입니다. 삶의 모든 순간들이 지루함의 연속이 아니라 신비와 경이로움으로 가득 찬 천국의 한 조각임을 알게 해주실 것입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신부
  |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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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 놀이

예수님께서 “아버지”, 그리고 즉시 “하늘과 땅의 주님”이라고 부르신다. 이는 하느님이 세상 창조주라는 말씀이다. 모든 예술은 창작의 즐거움이요, 창조주와 나누어 가지는 기쁨이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귀엽고, 아기도 자기 똥을 가지고 논다고 한다. 자기 작품인 것이다. 어느 의미로 창조요 주인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삯꾼이 아니고 착한 목자가 되는 이유도 여기 있겠다. 집나간 탕자를 아버지는 가여워하지만, 형은 같은 젖 먹고 자랐으면서도 제 아우를 거부했다. 아버지와 형의 차이인 것 같다. 하느님께 이 온 우주가 얼마나 끔찍하시겠나. 죄로 더럽히는 것은 인간뿐이어서 하느님의 육화는 일어났는지 모른다.

어버이날 “우리 부모님”이라는 주제의 글쓰기에 어느 어린이가 이렇게 썼다. “우리 부모님이 참 고맙다. 우리 부모님이 안 계셨더라면 나는 고아로 태어날 뻔했다.” 아버지를 모르는 유복자라면 생각만 해도 서럽다. 우리가 하느님, 지존하신 그분의 자녀임을 알려주신 예수님, 그분 아니었으면 아빠도 모르는 유복자녀들이었겠다. 아버지께 대한 지극한 사랑을 복음서 곳곳에 드러내시는 아드님 예수님한테서 아버지께 대한 사랑을 배운다.

하늘과 땅의 주님께서 7월에도 많은 꽃들을 선물하셨다. 든든하게 여름을 지켜주는 무궁화·능소화·배롱나무와 자귀, 어느 거리엔 모감주도 꽃을 피웠으리라. 토끼풀·닭의장풀·며느리밑씻개 널려 피고, 짚신나물이 꽃대를 다듬으며, 대문 없는 집 주인의 뜰에는 나팔꽃·한련화·봉숭아·분꽃·백일홍·채송화가 잔잔하여 나비들이 나풀나풀 찾아오고, 붕어들이 노니는 못에 크고 작은 연꽃이 피는 이 때, 어린이 철부지들이 어울려서, 바삐 사는 어른들 몫까지 창조주 아버지 하느님 찬미 놀이를 하고, 이를 보시며 그분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오늘 하루, 중세의 철학자이며 사상가인 성 보나벤투라와 함께 아버지 하느님을 어디서나 뵙고 싶다

임원지 수녀
  |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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