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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서울] 아흔아홉 번의 친절과 한 번의 상처?)
조회수 | 2,328
작성일 | 09.09.17
아흔아홉 번의 친절과 한 번의 상처가 있다면 어떤 것이 더 크게 보일까요? 아흔아홉 번의 친절이 더 크게 보일 것 같지만, 사실은 단 한 번의 상처가 훨씬 더 크게 보입니다. 그 한 번의 상처로 인해서 지금까지 행했던 모든 친절이 가려지는 경우가 얼마나 많던 지요? “내가 저 사람만큼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어.”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을 종종 봅니다.

그리고는 제게 그 이유를 세세하게 설명합니다. 이렇게 듣다보면 이 분이 화를 내는 이유에 공감이 갑니다. 하지만 계속 들으면서는 이런 의문의 생각이 들어요.

“정말로 이분이 잘한 것은 하나도 없고 상처만 주었을까? 이 분은 이제까지 단 한 번의 친절함을 행하지 않았을까?”

며칠 전, 서울 신학교 동기 모임에 갔습니다. 오랜만의 만남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교구가 다르기 때문에 만나는 것이 쉽지 않거든요. 아무튼 오랜만에 만나서 옛날의 추억도 떠올리고, 지금 동기들의 근황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참석하지 않은 어떤 동기 신부에 대해서 이야기하다보니, 계속해서 부정적인 이야기만 나누게 됩니다. 저 역시 그 신부의 긍정적인 모습은 전혀 생각나지 않고 오로지 부정적인 모습만 생각되더군요. 바로 그 순간, 한 신부가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도 난 그 친구가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전에 내가 본당의 어려운 학생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때 곧바로 도와주더라고.”

그 순간 저 역시 신학생 때 그 친구에게 도움 받은 기억이 떠올려졌습니다. 처음에는 분명히 부정적인 모습만 기억되었는데, 사실은 긍정적인 모습이 더 많았던 것이지요. 맞습니다. 상처를 비롯한 부정적인 모습은 항상 커보였습니다. 이에 비해 친절과 같은 긍정적인 모습은 항상 작아보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달리 부정적인 모습보다는 긍정적인 모습에 항상 의미를 두시는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이 점을 찾을 수가 있지요.

어떤 고을에 죄인인 여자가 있었습니다. 이 여인에 대해서 누구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예수님께 나아와서 눈물로 발을 적시고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은 뒤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 바릅니다. 이에 사람들은 예수님의 신적 능력까지 의심하여 말하지요.

“저 사람이 예언자라면, 자기에게 손을 대는 여자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 곧 죄인인줄 알 터인데…….”

이렇게 모든 이가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여인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긍정적인 모습을 골라내십니다. 진정으로 회개하는 모습, 그래서 하느님 아버지께 자신의 모든 것을 봉헌하려는 마음들……. 그리고는 말씀하십니다.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예수님을 닮고자 한다면, 그래서 예수님을 따르고 있다면, 우리 역시 내가 만나는 사람들의 긍정적인 모습들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때 나 역시 예수님으로부터 긍정적인 모습을 보이게 되어 이러한 말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상대방의 부정적인 생각보다는 긍정적인 모습을 찾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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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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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고등학교 때의 일입니다. 시험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에 조금 힘들어하고 있을 때였지요. 제 친구는 인상을 쓰고 있는 제가 안 되어 보였는지 장난을 걸어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기분이 너무나 좋지 않았기 때문에 그 장난을 장난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화를 냈지요. 그 친구도 갑작스러운 저의 반응에 무척 기분이 안 좋아졌나 봅니다. 그리고 우리 둘은 냉랭한 사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전까지는 그렇게 가까운 사이였는데 말이지요.

생각해보니 내 자신에게 더 큰 잘못이 있음이 분명합니다. 평소에 저는 더 심한 장난도 그 친구에게 했었으니까요. 하지만 먼저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청한다는 것이 왜 이렇게 힘든지요. 아무튼 고해성사를 본 뒤, 그 친구에게 가서 사과를 했습니다. 그 당시의 기분이 그렇게 좋지 않아서 그러한 행동을 한 것 같다고 용서해 달라고 했습니다. 바로 그 순간, 그 친구는 싸늘한 표정을 지으면서 “됐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당연히 용서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예전과 같은 좋은 관계를 계속 유지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저의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지요. 그리고 이 친구와는 졸업할 때까지 이야기하지 않고 서로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때 저는 느꼈습니다. 용서받지 못한다는 것이 얼마나 견디기 힘든 것인지를……. 하지만 용서하지 못했던 그 친구 역시 무척 힘들었을 것입니다. 결국 용서는 무조건 해야 하는 것이며, 무조건 용서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편하게 이 세상을 살 수 있습니다. 여기에 어떤 조건도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끊임없이 조건을 답니다. 저 사람에게 진심이 보여야 용서할 수 있다고 말하며, 나에게 어떤 이득을 주어야만 용서하겠다는 말도 합니다. 그러나 용서는 이러한 것이 아니라, 무조건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죄 많은 여인을 용서해주십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용서해주신 이 여인의 죄는 그 누구도 용서하지 않았던 죄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초대한 바리사이는 ‘저 사람이 예언자라면, 자기에게 손을 대는 여자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 곧 죄인인 줄 알 터인데.’하고 속으로 말합니다. 바로 용서할 수 없는 여인이라는 것이지요.

이 여인은 깨닫습니다. 이 분은 내가 이렇게 어마어마한 죄를 가지고 있다 해도 용서해주신다는 것을. 그리고 이런 믿음을 갖고서 눈물을 흘리며 최고의 사랑을 예수님께 표현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예수님으로부터 이런 말을 듣게 되지요.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주님께서는 무조건적인 용서를 해주십니다. 그렇다면 그 용서를 받고 있는 나는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나요? 또한 받은 용서를 기억하면서 나 역시 다른 사람을 모조건 용서하고 있나요?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용서는 무조건 이루어져야하는 것입니다.

변하지 않는 사랑은 고귀한 것이다. 일생동안 사랑을 지키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은 없다.(발타자르 그라시안)

조명연 신부
  |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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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우리는 흔히 외모를 보고 판단한다.

오늘 복음[루카 7:36-50]의 사건은 바리세이인 시몬의 집 뜰 안에서 된 일이다.

당시에 유대인들의 부자집은 정방형의 마당을 한 가운데 두고 사방으로 건물을 세워 지었다. 그리고 마당에는 화원과 우물이 있고, 따뜻한 날에는 그 마당에서 식사를 했다. 이러한 환경에 어떤 귀한 손님을 초대했을 경우에는 그들의 풍속에서 의례이 세 가지 일이 행해졌었다.

1) 주인이 나와 손님 어깨에 손을 얹고 평화를 기원하는 입맞춤을 했고,
2) 길에 먼지로 더러워진 발에 물을 부어 씻겨주는 것.
3) 그리고 약간의 향로를 분향하든가, 장미향 한방울을 손님 머리위에 부어 바르는 것이었다.

그런데 바리세이인 시몬은 예수를 초대해 놓고도 그런 예의를 갖추지 않은 것은, 예수를 반은 호의로, 반은 멸시하는 태도를 가졌었다는 표였다. 그러나 사람들 틈에 그 집에 들어와 예수를 찾는 죄 많은 여인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는 눈물로 예수의 발을 씻었고, 발에 입을 맞추었고, 머리카락으로 닦았으며, 유대여인들이 으례이 목에 걸고 다니던 값비싼 향유를 예수께 발라 드렸던 것이다. 그러한 태도를 본 시몬은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던 것이다. "저런 죄녀가!" 또 "사람들에게 그토록 명성 높은 예수가 저런 여자가 누구인줄도 모르다니!"하고 중얼거렸던 것이다.

이렇게 바리세이인 시몬처럼 우리도 다른 이를 잘못 판단하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는 흔히 외모를 보고 판단하거나, 어느 사람의 과거에 집착해서 현실을 용서 못하고 하느님 앞에 그의 참다운 진실한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하지만, 아버지이신 하느님은 우리를 그렇게 대하시지 않으신다는 점이다. 돌아온 탕자를 대하실 때도 재산을 가지고 나가서 그것을 어디에 어떻게 쓰며 무슨 짓을 했으며, 무슨 염치로 돌아 왔느냐? 고 따지거나 다시는 안그러겠다는 약속을 받으시고 받아들이시는 것도 아니며, 오직 "아버지를 찾아 돌아왔다는" 그것만을 가지고 기뻐하시는 하느님이시었다. 오늘 복음에서도 죄 많은 여인이 눈물로 통회하는 것만을 보시고 모든 죄를 용서하신다.

그런데 시몬은 그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고,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하느님과 사람 앞에서 "자신은 선한 사람이다"라고 스스로 떳떳했기에 눈물을 흘릴 필요성은 커녕 예수와 자비의 용서가 아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내가 남을 용서 못한다"는 것은 자신이 그 만큼 용서를 받아 본 적이 없다는 것이며, 용서 받아본 적이 없으니, 용서가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용서가 무엇인지 모르니, 자기도 하느님 앞에 용서 못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남을 진실히 용서하는 바로 그 자리에 하느님의 사랑이 드러나고 용서하는 그 행위에서 하느님을 따르는 표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사람을 하느님과 갈라놓고 단절시키는 것은 바로 "자기 만족"이라는 점이다. 그러기에 타인에게도 아쉬운 것을 모르고, 하느님께 대해서도 아쉬운 것을 모르니, 자기 만족으로 차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거기에는 죄의 용서에 대한 진정한 고마움을 모르기에 하느님께 대한 진정한 사랑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살펴 자기를 용서하라. 자기를 용서 못하는 것은 교만이고, 하느님께 머리를 숙이고 마음을 열 줄 모르는 것이다. 자기를 용서했으니 타인을 용서하라. 집, 직장, 친구, 이웃 등을 용서하라. 용서함으로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고 화해하라. 그럴 때 평화가 있고, 새로이 무엇인가를 의욕있게 할 수 있다.

<서울대교구 김웅태 신부>
  |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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