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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주님 사랑하기
조회수 | 2,285
작성일 | 09.09.17
고해성사 중에 주일미사 빠진 것을 고백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가끔 그럴 때 물어봅니다. 왜 주일미사를 빠지는 것이 죄가 될까요 하고 말입니다. 많은 분들이 대답을 못하시거나, 그렇게 배웠기 때문에 고백한다고 하십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초등학생 아이에게 들었습니다.

‘내가 주일을 빠지면 예수님이 아파해요’ 하고 말입니다.

너무나도 단순한 말이지만 너무나도 중요한 말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자처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주님께 다가가지 않는다면 주님을 아프게 하는 것이지요. 죄라는 말보다 주님을 아프게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건 바로 사랑에서 어긋나는 삶이겠지요.

주님을 믿고 산다는 건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며 산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저 다른 이들이 보기에 성당 다니는 천주교 신자로 믿고 사는 게 아니라, 주님 사랑의 사람으로 살아가고 주님을 품는 사람이 우리들일 것입니다. 오늘 주님을 너무나도 사랑한 죄 많은 여인이 행복해보입니다. 주님을 더 많이 사랑한 사람은 더 용서받고, 주님을 더 많이 사랑한 사람은 더 평화롭고, 주님을 더 많이 사랑한 사람은 더 많이 행복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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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교구 김인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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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용서의 등식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피리를 불어도 곡을 하여도 호응하지 않는 장터놀이의 아이들로 치부(置簿)된 가운데, 그들 중의 하나인 시몬(40절)이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초대하였다. 예수께서는 기꺼이 초대에 응하여 그의 집에 들어 초대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시게 된다.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자리하여 먹고 마시며 어울리는 하느님 지혜는 오직 그 지혜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통해서 드러나게 됨(35절)을 예수께서 몸소 보여주시려는 것이다. 그분은 어떤 모양의 놀이든 기꺼이 응해주시고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시는 분이시다. 마태오, 마르코, 요한복음이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을 처음부터 예수님의 적대자로 등장시키는 반면, 루가는 그들에게도 예수님의 손길이 닿게 한다.

루가복음에 등장하는 그들은 예수를 감찰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에서 갈릴래아로 왔으며(루가 5,17), 갈릴래아 지방의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합세하여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에 반감을 가지고, 사사건건 트집을 잡으며, 시비를 걸고, 고발할 기회를 찾으면서 예수의 일행을 따라다니고 있었다.(루가 5,21.30.33; 6,2.7.11) 비록 그들이 세례자 요한의 설교를 무시하고 세례를 거부함으로써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였으나, 루가복음의 예수님은 그들에게 끝까지 기회를 주시는 분이시다. 예수께서 그들의 반감에도 불구하고 기회를 주시는 이유는 거듭 말하지만 “하느님의 지혜가 옳다는 것이 그 지혜를 받아들인 사람들에 의해 자연히 드러날 것”(35절 참조)이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은 바로 이 하느님의 지혜가 죄 많은 여인의 회개와 용서를 통하여 여실히 드러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바리사이파 사람 시몬이 예수님을 존경했거나 그분을 모셔다가 따로 말씀을 듣기 위해 자기 집에 초대한 것은 분명히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예수를 고발할 또 다른 빌미를 얻으려 했던 것이다. 그것은 시몬이 손님을 초대해놓고 해야 할 세 가지 관습을 행하지 않았던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당시 관습에 의하면 주인은 손님을 마중하여 어깨에 손을 얹고 평화를 기원하는 입맞춤을 하고, 먼지로 더러워진 발에 물을 부어 씻겨주어야 하며, 약간의 향료를 분향 하든가 향유 한 방울을 손님의 머리 위에 발라주어야 했다. 그런데 시몬은 이 모든 관습적 의례를 행하지 않았고, 반면에 갑자기, 그러나 의도적으로 나타난 ‘행실이 나쁜 죄 많은 여자’가 이를 대신 해버린 것이다.(44-46절)

죄 많은 여인이 예수께 한 행위는 사랑의 행위였다. 여인이 보여준 사랑의 행위에 예수께서는 죄의 용서를 선언하셨다.(48절) 이 땅에서 죄를 용서할 수 있는 권한은 분명 하느님께 속한다. 예수께서는 물론이고 그분과 같은 식탁에 자리하고 있던 사람들도 이 사실을 알고 있다.(49절) 그래서 예수께서는 여인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50절) 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는 “네가 보인 사랑이 너의 죄를 용서하였다.”(47절 참조)는 말과도 같다. 결국 죄를 용서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신 예수이시지만, 죄를 용서받은 사람이 용서받았음을 확신할 수 있는 것은 그가 행한 사랑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극진한 사랑을 보인 사람은 그만큼 많은 죄를 용서받은 것이고, 적게 용서받은 자는 적게 사랑한 것’이라는 공식이 성립되는 것이다.

우리 중에는 스스로를 의인이라 생각하는 죄인이 있는가하면, 죄인이라 생각하는 의인도 있다. 예수께서 인간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는 사실에 직면하여, 의인으로 자처하는 사람은 예수가 자기를 위해 별로 한 것이 없다고 생각할 것이고, 죄인이라 자처하는 사람은 예수의 죽음이 완전히 자기 때문이라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엄밀히 따지자면 스스로를 의인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죄인이고, 죄인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죄인이다. 따라서 예수님은 우리 죄인들을 위해 돌아가신 것이다. 이로 인해 우리는 죄를 용서받았고, 동시에 예수께 엄청난 빚을 졌다. 우리 중에 이 빚을 갚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는 아무도 없다. 그러데 이 빚마저 그분께서 다 탕감해 주신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능력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하는 일이다. 결국 사랑하는 것은 용서받는 것이며, 사랑하는 만큼 그 만큼의 용서를 받는 것이다.

박상대 신부
  |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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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사촌이나 친척들이 잘된다는 것은 더불어 기뻐할 일이어야 하는데 도리어 내 배가 아프다는 표현을 보면 우리들의 못된 심보를 꼬집는 말일 것입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저의 삶을 되돌아보아도 그런 못난 심보가 가득한 것을 깨닫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참으로 딱한 일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씨는 다 그렇고 그렇다는 것을 먼저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우리의 삶의 변화가 시작되는 것이라는 믿음으로 오늘 강론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주님 없이는 형제 자매가 잘되는 꼴조차 보지 못하는 못나고 모자란 우리인 것을 인정하고, 자신의 주제와 처지를 올바로 알 때에만 그분의 도우심을 청할 수 있는 완전한 의탁이 가능할테니까요. 인간은 내 자신의 힘만 가지고는 이기적인 마음, 혼란스러운 욕망을 우리 마음으로부터 뽑아버릴 수 없습니다. 우리 내면에 거룩한 생명이 태어나도록 할 수 없습니다. 오로지 예수님만이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으십니다.

이렇게 내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할 때에 비로소 오늘 복음의 여인처럼 예수님의 발을 눈물로 씻고 머리카락으로 닦아드리고 입맞춤을 해 드릴 수 있는 겸손과 용기를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의 도우심으로 변화된 우리의 모습입니다. 구원받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하시는 주님께서는 당신이 베푸신 놀라운 기적의 공로를 언제나 치유받은 자가 지녔던 믿음의 덕으로 돌려 주셨습니다. 믿음은 이렇게 좋은 것이고 엄청난 것입니다.

성서를 보면 온갖 어려움과 삶에 결핍된 요소들이 예수님께 의탁하는 "믿음" 하나로 완전히 축복으로 변화를 받게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의 겨자씨만한 믿음만으로도 우리 기도에 대한 흔쾌한 응답을 주십니다. 믿음이 우리를 살리고 믿음이 우리를 구원하고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습니다. 말 그대로 믿음으로 능치 못할 일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믿는 하느님은 믿음으로 구하는 자 앞에서는 마음이 약해지십니다. 한 마디로 믿음으로 기도하는 우리들에게 하느님은 꼼짝 못하시는 분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아주 큰 약점이시지요.

우리들이 예수님을 진정 믿는 사람들이라면 형제 자매를 위해서 기도하는데 망설일 수가 없습니다. 우리 형제 자매들이 구원받지 못하는 것은 바로 내 믿음이 부족한 탓이요. 내 기도가 부족한 탓인 것을 고백합시다. 믿음의 기도는 우리가 가진 가장 강력한 도구이고 무기입니다.

초대 공동체에서는 그리스도교를 길의 종교라고도 하였습니다. 길의 종교라는 말의 뜻은 주님과 함께, 모든 이가 구원으로 향하여 걸어가는 종교임을 밝힌 것이라 하겠습니다. 내 형제 자매와 더불어 가지 않는 길은 천국을 향한 길이 아닙니다. 내 형제 자매가 없는 나 홀로 천국은 있을 수 없습니다.

모든 이가 구원되리라는 믿음이야말로 우리 모두를 다 함께 살릴 것입니다. 나에게 뿐 아니라 모든 이웃들에게 구원의 문은 활짝 열려 있습니다

장재봉 신부
  |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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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지는 모습

복음이 전하는 여인의 죄가 무엇이었는지
성경은 알려주지 않습니다.
이웃들의 냉랭한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따돌림을 당하고 내침을 받을 게 뻔한 그 자리에
굳이 끼어들어
예수님께 향유를 부어 드릴 생각을 했던 까닭도 밝히지 않습니다.
다만 그녀의 ‘죄’는 온 동네에 소문이 났던 걸 짐작하게 하네요.
그날 그 자리에서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는 주님의 말씀에
제일 놀란 사람은 바로 그 여인이었으리라 싶습니다.
여인은 결코
주님께로부터 뭔가를 얻어낼 마음이 아니었으니까요.

주님의 말씀을 달게 들으며
감동하던 군중 가운데 한 사람이었는지
혹은
자신의 소중한 이가 주님께 고침을 받은 특은을 얻었던 것인지
분명치 않지만
견딜 수 없는 감사의 마음을 정성을 다해 표현하며
눈물로 고백해 드리는 모습이 감동적입니다.
고개도 들지 못하고
감히 바라볼 염도 못한 탓에
눈물이 주님의 발을 적셨던 것이겠지요.
너무나 송구해서 선뜻 주님의 발에 입을 댔던 것이겠지요.

아름다운 일을 하는 일을
아름답게 보는 시선을 잃은 세상입니다.
다른 사람이 아름다운 마음과 정성마저
가십거리로 삼고
전혀 이해하려 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분의 제자들이 모인 교회 안에서도
같은 교우들 사이에서도 비일비재합니다.
때문에 오늘 저는
말을 골라 사용하고
생각을 단속할 것을 강권해 드립니다.
생각을 단속하는 일은
내 판단이 아니라
주님의 판단이 어떠할 지를 먼저
기억하는 일입니다.
나와 주님의 평가가 다를 수 있다는 사실에 깨어있는 일입니다.
내 판단은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일입니다.

주님의 평가만이 중요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일이 제일입니다.
사랑하면 그 사람이 좋아할 일을 합니다.
사랑은 상대의 취향에 자신을 맞춥니다.
내가 좋은 대로 내 생각대로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주님에 대한 사랑이 깊어지면
주님이 좋아하실 일에만 마음을 쓰기에
여건도
조건도
넘어섭니다. 전혀 구애받지 않습니다.
주님께 좋은 일이 내게 좋고
주님께서 기쁘시면 나도 기쁜 까닭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에게
당신을 향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분을 향한 큰 사랑이
그 여인의 삶을 변화시키는 힘이라는 걸
선언하신 것이라 싶습니다.
이제는
“더욱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며 살아가라는 이르심이라 싶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은
주님께서 좋아하실 일이 무엇인지 찾고 또 구하는 사람입니다.
하여
더 큰 사랑으로 그분을 온통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결코 자기 마음에 드는 일만 구하지 않는
큰 사랑을 살아내는 사람입니다.
이 사랑이 우리를 구원합니다.

“이렇게 하면 그대는 그대뿐만 아니라
그대의 말을 듣는 이들도 구원할 것입니다.” 아멘

장재봉 신부
  |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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