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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회] 꽃잎에도 상처가 있습니다
조회수 | 2,376
작성일 | 09.09.17
우리는 저마다 이 한 세상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상처를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 보편적인 모습인 듯 합니다. 존경하는 정호승 시인의 말씀처럼 "상처 없는 아름다움은 없습니다. 진주도 상처가 있고, 꽃잎에도 상처가 있습니다. 장미꽃이 아름다운 것은 바로 그 상처 때문입니다."

우리는 상처를 입을 때 마다 흔히 많은 것을 잃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상처를 입어본 사람만이 상처받은 사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깊은 상처를 겪은 사람만이 삶의 진리를 터득하게 됩니다. 결국 좀 더 넓게 생각한다면 상처는 수치가 아니라 은총입니다.

지난 우리 삶 안에서 마치도 상흔처럼, 문신처럼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상처야말로 결국 우리를 거만하지 않게 만듭니다. 겸손하게 만들고 결국 우리를 하느님과의 만남에로 인도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오랜 세월 깊은 상처를 입고 살아온 한 가련한 여인, 상처로 인해 늘 아파하고 갈등하고 한 평생 주눅 들어 살아온 한 여인이 예수님으로 인해 너무도 당당하게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행실이 나빴던 여인으로 지칭되는 그 여인은 오랜 방황과 악순환의 세월을 접어보겠다고 그토록 노력했었지만 항상 그때뿐이었습니다. 마음뿐이었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몸은 어느새 과거의 비참함에로 떨어지기를 수도 없이 반복해왔습니다.

여인의 머릿속에 늘 잠재되어 있던 큰 걱정거리는 이것이었습니다. "과연 죽기 전에 내가 변화될 수 있으려나? 죽을 때 까지 계속 이렇게 살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었습니다.

그토록 불가능해보이던 여인의 회개는 결국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 오랜 고통의 세월을 견뎌온 여인에게 예수님은 새 삶을 부여하십니다. 그녀의 쓰라린 상처를 당신 자비로 아물게 하십니다. 결국 여인은 예수님과의 인격적 만남으로 인해 지난 세월의 모든 상처를 완전히 치유 받습니다.

자신을 죽음의 사슬에서 풀어주신 예수님이 너무도 고마웠던 여인은 집으로 달려갑니다. 그리고 자신이 지니고 있던 물건 가운데 가장 값진 것이 무엇인지 살펴봅니다. 예수님께 드릴 가장 좋은 선물이 어떤 것인지 찾아봅니다.

향유가 든 옥합이었습니다. 당시 꽤 값나가던 물건이었습니다. 아마도 여인에게 있어 전 재산과 다름없는 물건이었습니다.

그 향유를 가져온 여인은 회개의 표시로 예수님 발치에 서서 울기 시작합니다. 그녀의 회개가 얼마나 절실했으면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눈물로 다 적셨습니다. 그 눈물을 자기 머리카락으로 닦아냅니다. 정성껏 예수님의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드렸습니다.

하나 하나의 행동을 눈여겨보십시오. 예수님을 향한 여인의 마음은 지상 최고의 봉헌이었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여인의 봉사는 더 이상 극진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여인의 사랑은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진실한 사랑이었으며 용감한 사랑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본 사람은 이렇게 행동양식이 달라집니다. 사고방식이 달라집니다. 모든 것이 예수님 위주로, 이타적으로 변화됩니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도 않습니다. 오직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일만이 지상 최대의 과제가 됩니다.

오늘 완전히 새사람으로 변화된 여인을 바라보면서 저 역시 다시 한번 희망을 가져봅니다. 우리 역시 누구나 여인 못지않은 "변화와 새 출발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음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이 아무리 비참해 보일지라도 언젠가 반드시 주님의 은총에 힘입어 이토록 비참한 국면을 결정적으로 반전시킬 전환기가 찾아오리라고 확신하면서 열심히 하루를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비록 우리가 아무리 매일 망가지고 깨져도 주님께서 도와주시면 다시 새 인생을 살수 있으리라는 희망에 기뻐하는 오늘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오늘 하루 우리에게 주어지는 상황이 때로 고달프고 때로 열악하기에 고통고 많고 좌절도 많겠지만 다시 한번 "지금이 바로 또 다른 내 인생의 출발점"이라 여기며 힘차게 새 출발할 수 있는 용기를 지니시길 빕니다.

"혹시라도 우리 삶에 아름다움이 있다면, 그건 우리 자신에 의해서 형성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는 그분에 의해서 형성된 것입니다"(정호승, 연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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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레시오회 양승국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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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많은 여자

22년 전 종신서원 수련을 위해 로마의 국제수련소에 있을 때 모든 수련자가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을 다녀왔다. 작품도 작품이지만 미술관 건물 자체뿐 아니라 도시 전체가 아름다워 시간 가는 것이 안타깝게만 느껴졌다. 그 많은 작품 중 대부분은 기억에서 없어지고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 한 작품이 있다.

처음 그 피골이 상접한 모습의 나무조각상을 무심코 봤을 때 나는 ‘세례자 요한’인 줄 알았다. 많은 화려한 조각상 속에서 갈색의 목각상은 얼핏 보기에도 너덜너덜한 누더기를 허리띠로 두르고, 가느다란 팔과 다리, 부스스하고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늘어뜨리고 얼굴에 핏기 하나 없어 보였다. 낙타 털옷도 오래 입으면 누더기가 되는구나 생각했다. 목각상인데도 세세한 모습이 살아나 온몸으로 말을 건네는 듯했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요한은 낙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둘렀으며, 메뚜기와 들꿀을 먹고 살았다.”(마르 1,?3.?6)는 말씀을 떠올린 채 조각상 앞에 멈췄는데, 실상 그 목각상이 내게 보내는 메시지는 달랐다. 그래도 세례자 요한이려니 하고 목각상과 ‘동문서답’을 하고 있는 중에 제목을 보았다. 세상에, ‘마리아 막달레나’였다.

나는 놀라 다시 목각상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어디에도 그 화려했다는 막달라 여자 마리아의 모습은 없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구분이 되지 않도록 몸은 마르고, 아무런 장식을 걸지도 두르지도 않은 비쩍 마른 맨발뿐이었다. 그 시기에 나는 종신서원을 준비하는 수련을 받고 있기에 180도 달라진 마리아 막달레나의 모습은 내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체험하면 저렇게 될 수 있는가? 나는 성심수녀회를 통해 종신토록 예수 성심께 나를 봉헌하겠다는 서원을 곧 하게 되는데 그때까지 마리아 막달레나처럼 예수님을 온전히 체험할 수 있을까? 내게도 마리아 막달레나와 같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는 회개와 삶의 전환이 은혜로 주어질까? 나의 결단은 어떤가, 그렇게 살고 싶은가? 수없는 물음과 부러움이 올라왔다.

바리사이들은 그 여자가 ‘죄 많은 큰 죄인’인 드러나는 현재의 모습만 보고 있다. 그리고 예수님을 향해 ‘저 사람이 예언자라면….’ 하고 판단하면서 결국 예수님마저 자기들 수준으로 바라본다. 그런데 실상은 바리사이들의 판단은 맞았다. ‘저 사람이 예언자라면….’ 하는 가정적인 판단은 옳아서 예수님은 ‘죄인’인 여인에 대한 죄 사함과 그 이후의 여인의 삶에 대해 ‘보이는 것 너머’를 내다보고 계셨다. 바리사이처럼 ‘눈 앞의 죄’의 현상을 바라보시지 않고, ‘네 믿음이 너를 구할 것’을 보고 계셨고 ‘더 큰 용서를 받은 자가 더 많이 사랑할 것’을 알고 계셨다.

그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고 그래서 자신의 생애를 바쳐 예수님께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었다

김정미 수녀
  |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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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사함을 받으려면

나이가 들어갈수록
또 영성생활을 하면 할수록
점점 더 또렷해지는 것이 있다.
그것은
젊을 때는 멋 모르고 행했던 일들이
얼마나 죄스런 일들인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살아갈수록 더 <죄인>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사는 게 죄지요!> 하는 말씀을 이해할 수 있을 것같다.
예수님도 <간음하다 잡힌 여인> 기사에서
<너희 중에 죄없는 사람부터 이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 하셨고
<나이 많은 사람부터 하나씩 떠나갔다!>는 진술도
이러한 면을 시사하고 있는 것같다.

그렇다면
이 죄를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어찌 이 죄를 보속하고 기워갚는단 말인가?
그 최선의 방법을 주님께선 오늘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다.
답은 <더 많이 사랑하는 것>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잘 들어 두어라. 이 여자는 이토록 극진한 사랑을 보였으니
그만큼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사실 베드로를 위시한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론적으로는 사랑이 무엇인지를 잘 배워 알고 있었고
또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주로 머리로만 이었다.
그러나
이 <행실이 좋지 않다>고 평이 나 있던 여인은
예수님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몸으로 보여주고
가진 것 중 가장 고귀한 것을 예수님을 위해 내어 놓았다.
예수님은 바로 이 점을 지적하신다.
사랑이란 이론이 아니라 실천이라는 점을...
다른 사람들이 머리를 굴리며
이 값비싼 향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들을 얼마나 도와 줄 수 있을까 등을
궁리하고 있던 때에
이 여인은 예수님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 놓는다.

수재의연금을 내면
과연 이것이 수재민들에게 잘 전달은 될 수 있을까?
또 아무렇게나 집행되어
수재민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배불리게 만들지는 않을까?
이러한 생각으로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고
수재민들을 화면으로만 보면서 안되었구나 하며
나는 불쌍한 사람들을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머리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번 수재에서
우리 정동 수도원 공동체는
재정상태가 열악함에도 불구하고(사실 마이너스 재정이다...)
선뜻 기금을 내어놓고
월 12만원 용돈에서 형제들이 또 떼어내며
강릉지역 수재민들을 위해
작은 부분을 내어 놓았다.
회관 직원들과 며칠간 수해복구를 위해 간다기에
회관 직원들은 몸으로 만이 아니라
성금을 기꺼운 마음으로 갹출하였고
주위의 사람들 마저도
기꺼이 동참해 주어
수재민들에게 전달해 주었다.

사랑은 이렇게 실천하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의 죄가 크다고 느끼면 느낄수록
우리가 해야하는 유일한 것은 더 많이 사랑하는 것뿐이다.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랑...

작은 형제회 오상선 신부
  |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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