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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서울]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조회수 | 2,384
작성일 | 11.01.07
[인천]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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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펭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펭귄들은 바다에 뛰어들기 전에 서로 눈치를 보면서 한참 동안 머뭇거립니다. 그러다가 한 펭귄이 바다에 뛰어들면 비로소 그 뒤를 수백 수천 마리가 바다로 다이빙을 하는 장관이 연출되는 것이지요.

펭귄들이 주저하는 까닭은 천적 때문이라고 합니다. 섣불리 바다에 들어갔다가는 바다표범이나 물개에 잡아먹힐 수도 있습니다. 배가 고플 때에는 한시라도 빨리 바다에 들어가 먹이를 잡고 싶지만, 물속에 있는 천적들에 대한 걱정으로 감히 뛰어들지 못하고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안전히 확인되기 전까지는 눈치 보기가 계속해서 이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 마리가 과감하게 바다에 뛰어들 때, 이때다 싶어 모든 펭귄이 바다로 함께 뛰어든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렇게 바다에 과감하게 뛰어드는 펭귄이 없으면, 그들은 한참동안을 굶주리게 됩니다.

이렇게 모든 펭귄들이 바다로 들어가게끔 만드는 가장 먼저 바다로 뛰어 든 첫 번째 펭귄처럼, 불확실하고 위험한 상황에서 용기를 도전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용어로 ‘첫 번째 펭귄’이라는 말을 씁니다. 그렇다면 내 자신은 과연 ‘첫 번째 펭귄’처럼 살고 있을까요?

사실 우리의 인생도 이 펭귄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우리 역시 펭귄처럼 불확실성의 세계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남들의 눈치를 볼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누군가가 먼저 해야 그때 가서야 행하고, 마땅히 해야 할 일도 남들도 하지 않는다면서 하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다에 뛰어 들어가지 않음으로 인해 굶주릴 수밖에 없는 펭귄처럼, 내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음으로 인해 얻을 수 있고 또한 마땅히 얻어야 할 것들을 얻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한 나병 환자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이렇게 청합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라고 말씀하시면서 그의 나병을 치유해 주시지요. 그런데 여기에는 나병 환자의 커다란 용기가 숨어있습니다. 당시 나병은 그 누구도 고칠 수 없는 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늘로부터 벌을 받은 가장 부정한 사람으로 취급되었지요. 이런 나병 환자가 과연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에서 함께 살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우리나라도 과거에 그랬듯이, 나병 환자가 나타나면 돌을 던져서 쫓아내었습니다. 그들은 결국 사람들을 벗어나 척박한 땅에서 나병 환자들과 함께 어울려 살 수밖에 없었지요.

따라서 예수님을 찾아온 나병 환자가 얼마나 큰 용기를 가지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기도 전에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굳게 믿었습니다. 예수님이라면 이 지긋지긋한 나병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그래서 용기 내어 예수님 앞에 나아갔던 것입니다.

우리 역시 용기를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이 용기가 주님의 마음을 움직여서 내가 원하는 것을 얻도록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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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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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에서 본 내용입니다. 이 책의 저자는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자전거 일주에서 겪은 일을 이야기합니다. 자전거 일주를 하다가 자기와 마찬가지로 부산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는 세 명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서울에서 부산까지 20시간 안에 가겠다고 새벽 일찍 출발한 팀이었지요. 혼자 자전거 타는 것이 힘들어서 함께 해도 되겠느냐고 묻자, 자기네들은 기록을 갱신해야 하기 때문에 자기들 일행에서 뒤쳐져도 기다려 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하겠다고 하고 함께 자전거를 타던 중, 그만 그 일행의 맨 후미를 담당했던 사람이 자그마한 돌부리에 걸려서 넘어지는 사고가 났습니다. 그는 크게 넘어졌는지 일어서지를 못합니다.

그 뒤에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 일행의 남은 두 명은 다친 동료를 내버려두고 기록 갱신을 위해 자전거를 타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답니다. 그 동료에게 “우리를 이해하지?”라고 말하고 말입니다.

기록 갱신. 물론 중요하지요.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람이 없고서는 기록 자체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며칠 전 새벽에 제 휴대전화가 울립니다. 발신 표시를 보니 처음 보는 낯선 번호였습니다. ‘이 새벽에 누구야? 잘못 걸은 전화 같은데 받지 말까?’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또한 새벽에 이것저것 할 것이 많아서 전화 받는 것이 귀찮다는 생각도 들었지요. 하지만 쉼 없이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결국 전화를 받았습니다. 받자마자 흐느껴 우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신부님, 저 ***에요. 신부님, 제 아들이 교통사고가 났어요. 지금 신부님이 필요해요.”

저는 병원을 확인하고 곧바로 출발했습니다. 병원 응급실에 도착하니 그 아들은 이미 주님 곁으로 갔더군요. 유족들과 함께 기도를 바쳤습니다.

유족들을 위로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서 만약 전화를 받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할 일이 많다는 생각에 그리고 잘못 걸린 전화일 것이라는 생각에 전화를 받지 않았다면 계속해서 후회했을 것입니다. 그날 새벽에 있어서 제게 중요한 것은 새벽에 하는 일이 아닌, 바로 전화를 받는 것이었지요.

덜 중요한 것을 가장 중요한 것처럼 착각하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은 아니었을까요? 이를 이천 년 전 예수님께서는 꼭 집어서 보여주십니다.

예수님 앞에 한 나병환자가 나타나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의 말처럼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로 분명히 나병이라는 병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나병 환자에게 손을 내밀어 대시지요. 이는 당시 율법에서 강조하는 정결 규정을 어기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나병 환자에게 손을 댔기 때문에 몸이 더럽혀졌을 것이라 생각했겠지요. 하지만 몸이 더러운 사람이 과연 치유의 기적을 행할 수 있겠습니까?

이 나병환자는 치유의 은총을 얻습니다. 이는 곧 율법을 통해서 치유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은총을 통해서 치유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그리고 중요한 것은 율법 자체가 아닌 사랑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시는 것이지요.

내 삶에 있어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떠올려봅시다. 나를 드러낼 수 있는 세상의 물질과 명예가 아닌 사람 자체에 대한 사랑이라는 것을, 또한 내가 내세우는 기준이 아닌 주님께서 내세우시는 기준이 더 중요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의 기준인 사랑을 통해서 우리는 삶 안에서 주님의 커다란 은총들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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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노만 쿠신’이라는 사람은 어느 날 몸이 너무 아파서 병원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강직성 척추염’이라는 희귀 불치병에 걸렸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 병은 뼈를 감싸고 있는 인대에 염증이 생겨서 심해지면 인대가 시멘트처럼 굳어지는 것으로, 점차 내장기관까지 굳어져서 사망에 이르게 되는 무서운 병입니다.

고통 속에서 오래 살 수 없다는 말을 들은 이 사람의 감정은 어떠했을까요? 당연히 커다란 좌절에 빠졌고 모든 의욕이 사라졌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우연히 텔레비전의 코미디 프로를 보게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아프다는 사실도 잊어버린 채 실컷 웃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프로가 끝나고 난 뒤에 몸이 좋아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뒤 매일 코미디를 즐겨 보면서 적극적으로 웃었습니다. 그 결과 이 불치병을 고칠 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재미있는 소리는 육신의 병을 고치고 인간의 정신을 치료한다.”

저 역시 반백 년 이상의 삶을 살면서 깨달은 작은 것이 하나 있다면 슬퍼하는 사람은 늘 슬프고, 기뻐하는 사람은 늘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 놓이든 말입니다. 슬픈 사람은 슬픈 이유를, 기쁜 사람은 기쁜 이유를 찾기 때문입니다.

요즘 특히 건강의 중요성이 강조됩니다. 그렇다면 기뻐할 수 있는 이유를 찾는 노력을 멈춰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소리 내어 웃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나병을 고쳐 주기 위해 나병 환자에 손을 대십니다. 이는 이스라엘 정결 규칙을 어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몸이 전혀 더러워지지 않고 여전히 깨끗하신 상태로 나병 환자를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어떤 병에도 더러워지지 않는 분이라는 것을 보여 주십니다.

이 나병 환자의 믿음을 생각해보십시오. 그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깨끗하게 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믿음에 같은 마음으로 응답해주셨습니다. 따라서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부정적인 마음으로 될 수 없다는 생각만 할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마음으로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야 합니다. 그래야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 속에서도 주님을 만나고 주님 안에서 커다란 은총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나병 환자의 믿음이 바로 우리의 믿음이 될 수 있도록 좀 더 긍정적인 방향을 바라보았으면 합니다. 긍정의 이유만을 찾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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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2021년 2월 8일
  |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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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제주도 엠마오 연수원에서 지낼 때입니다.
걸어서 15분 거리에 이시돌 피정의 집이 있었습니다. 피정의 집에는 ‘삼뫼소’라는 아담한 호수가 있습니다. 3개월 동안 거의 매일 호수엘 갔습니다. 사진을 찍으면 주변의 아름다운 모습이 호수에 그림처럼 담겨 있었습니다. 밤에는 하늘의 구름과 달이 호수에 내려왔습니다. 호수의 물이 바람에 출렁거리면 주변의 모습은 호수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구름과 달도 호수에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호수가 잔잔할 때는 그렇게 주변의 모습을 담아 낼 수 있었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근심과 두려움의 바람이 마음에 불면 이웃의 모습을 담을 수 없었습니다. 욕심과 욕망의 바람이 불면 하느님의 뜻을 담을 수 없었습니다. 원망과 미움의 바람이 불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였습니다.

마음을 거울처럼 만들 수 있다면 우리는 평정심을 찾을 수 있습니다.
거울에 비친 얼음은 차갑지 않습니다. 거울에 비친 불은 뜨겁지 않습니다. 거울은 건강한 사람도, 아픈 사람도 더하거나 빼지 않고 비추어줍니다. 거울은 오는 사람막지 않고, 가는 사람 붙잡지 않습니다.

장자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거울 같은 사람은 비춰오는 것이 밉다고 해서 배척하지도 않고, 곱다고 해서 환영하지도 않으며, 비춰진 것이 떠나가도 굳이 그 자취를 남기려고 하지 않는다.”

성모님의 마음이 그랬던 것 같습니다.
시메온의 예언을 듣고도 마음에 담았을 뿐입니다. 죽으신 예수님을 품에 앉은 성모님의 모습도 그런 것 같습니다. 기도하지 않고는,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는 도저히 갈 수 없는 길입니다.

2021년에는 무엇이 다가올지 모르겠습니다.
코로나19는 여전히 우리 곁에서 여름까지 머물 거라고 합니다. 신문의 홍보도 아직은 시작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신문사에서 주최하는 성지순례도 올해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겨울의 끝에 언 땅을 뚫고 새싹이 나오듯이, 밤이 깊으면 먼동이 트듯이 희망이 빛이 조금씩 보이고 있습니다. 밴쿠버 성 김대건 성당에서 신문 구독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대림특강을 온라인으로 함께 했습니다. 특강을 마치고 질의 응답시간이 있었고, 신문을 홍보할 시간이 있었습니다. 온라인 강의나 피정 후에 신문을 홍보하는 것도 새로운 방법입니다. LA 지역에서 가톨릭평화신문을 홍보하겠다는 모임이 있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서부지국을 설립하려고 합니다. 비온 뒤에 땅은 더 굳어진다고 합니다. 코로나19가 지나가면 영적인 갈증을 채우려는 움직임이 더 커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가톨릭평화신문도 좋은 지면으로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어린아이에게 진주와 과자를 주면 과자를 선택할 것입니다.
진주의 가치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신앙 안에서 살지 않으면 우리는 세상의 것들을 택하게 됩니다. 돈, 명예, 권력, 성공과 같은 것들입니다. 그것은 맛있어 보이고, 아름다워 보이고, 화려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얻기 위해서 모든 것을 투자합니다. 시간을 투자하고, 공부를 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도 합니다.

세상의 것들을 택하는 사람들에게
‘양보, 인내, 친절, 겸손, 나눔, 봉사’를 택하라고 하면 웃을 것입니다. 그것들은 힘들고, 어렵고, 얻는 것도 별로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신앙인들은 그런 것들을 택하려고 노력합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을 택할 때, 우리는 이 세상에서의 행복뿐만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 과정을 미리 보여주십니다. 사람들로부터 죄인취급을 당하고,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는 나병환자를 치유시켜 주셨습니다. 이제 나병환자는 죄인취급을 당하지 않아도 되고, 고개를 들고 세상을 볼 수 있으며, 가족들과도 함께 지낼 수 있고, 단절된 관계를 회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생명이란 바로 그런 것입니다. 하느님 앞에 모든 죄가 사해지고, 하느님 품안에서 참된 행복을 느끼며, 단절된 하느님과의 관계가 회복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약하기 때문에 세상의 유혹 앞에 넘어지곤 합니다. 그래서 참된 가치와 진실한 행복을 선택하기 보다는, 순간의 기쁨을 주는 것들을 택하게 됩니다. 잠시의 기쁨과 쾌락을 위해서 양심과 영혼을 속이기도 합니다.

오늘 사도 요한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내가 여러분에게,
곧 하느님의 아드님의 이름을 믿는 이들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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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조재형 신부
2021년 1월 8일
  |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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