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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수원/기타] ‘남들도 다 그렇게 해.’
조회수 | 1,159
작성일 | 13.07.11
[인천] ‘남들도 다 그렇게 해.’

많은 분들이 저를 두고서 ‘신부님은 상당히 부지런하세요.’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제가 일찍 일어난다는 이유 때문이지요. 그런데 사실 저는 그렇게 부지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제가 본 저의 모습은 너무나 게으릅니다. 특히 정리 정돈을 잘 못하고 방 청소를 하지 않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식사를 한 뒤에 설거지를 뒤로 미루는 저의 행동은 제가 얼마나 게으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모습들입니다.

하긴 주부들도 설거지가 제일 귀찮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식사 준비하는 것은 재미있지만, 설거지하기는 전혀 재미있지도 않고 누군가가 그 부분을 담당해주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고 하네요(맞지요?).

저 역시 갑곶성지로 인사이동이 된 뒤, 제가 직접 식사를 해 먹기 때문에 주부들의 이 마음이 이해되더군요. 즉, 식사를 한 뒤에 설거지를 곧바로 한다는 것이 얼마나 귀찮고 짜증이 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항상 식사를 하고 난 뒤, 설거지 꺼리를 보면서 이렇게 말하지요.

‘조금만 쉬었다가 설거지 하자.’

이렇게 뒤로 미루면 다음 식사를 준비해야 할 시간까지도 그 모습 그대로 될 때가 상당히 많습니다. 그래서 설거지 꺼리가 싱크대에 쌓여 있는 것을 보고서 식사 준비를 포기하고 밖에 나가 음식을 사먹는 경우도 많았지요.

사실 설거지는 그때그때 하지 않으면 이렇게 귀찮아지는 것은 물론, 그릇에 음식물이 붙어버려서 잘 닦이지도 않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귀찮다는 이유 때문에, 또 바쁘다는 이유로 뒤로 미루면서 다음 식사를 포기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비록 그 순간에 귀찮아도 식사 후 곧바로 설거지를 하고 나면, 다음 식사 준비를 하기가 훨씬 수월합니다. 그러면서 제대로 된 식사 준비를 하게 되지요.

이러한 저의 게으른 모습을 보면서, 제대로 된 준비의 시작이 무엇인지를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잘 마무리를 하는 것입니다. 잘 마무리하는 모습이 새로운 일에 대한 철저한 준비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잘 마무리를 하지 못하지요. 시작은 정말로 멋지지만, 흐지부지하게 끝맺음을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이렇게 형편없는 마무리가 새로운 시작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도 어제에 이어서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걱정이 많으신가 봅니다. 그래서 ‘마치 양을 이리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 같다’고도 말씀하시지요. 그러면서 아주 자세히 어떤 식으로 세상에 하느님 나라를 선포해야 하는지를 준비시켜 주십니다.

지금 이 현재에도 주님께서는 우리들을 준비시켜주십니다. 성서를 통해서 각종 영적 말씀들을 통해서 그리고 기도를 통해서 우리들이 이 세상에 하느님의 뜻을 전할 수 있는 준비를 시키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그 완성을 위한 노력을 얼마나 잘 하고 있는지요? 혹시 주님의 말씀을 들은 처음만 그렇게 하겠다고 다짐한 뒤, 얼마 가지 못해서 흐지부지 해버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그러면서 스스로 타협합니다.

‘남들도 다 그렇게 해.’

예수님께서 2000년 전에 걱정하셨던 이유는 이렇게 당신의 그 준비를 완성시키지 못하는 우리들의 나약함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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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주님은 언변의 마술사

말주변도 없고, 사람들 앞에만 서면 얼굴부터 붉어지는 인물의 전형이 바로 나다. 왜 그리 멋쩍고 창피하던지 뭐라 말할 수가 없었다. 무엇인가 발표할라치면 원고를 준비하고 충분히 연습한 끝에 시도하는데, 그래도 그 시간이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학창시절에는 ‘어떻게 이다음에 사제가 되어 강론을 할 수 있을까?’ 하고 내심 걱정도 많이 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일은 부제가 된 이후에 벌어지기 시작했다. 부제품을 받고 처음 강론하던 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원고를 준비하고 강론대에 섰는데 긴장한 탓에 신자석에 앉은 교우들의 얼굴은 고사하고 강론 원고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마음을 가다듬고 무작정 입을 열었다. 시작 부분은 좀 얼버무리고 주제에서 어긋나는가 싶었는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점점 교우들의 얼굴이 눈에 들어오고 원고 없이도 강론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놀라웠다.

사제가 된 후에 하느님의 은총이 나에게 내리고 있다는 것을 가장 크게 느끼는 때는 강론할 때인 것 같다. 강론 준비를 잘하는 날도 있지만 때로는 이런저런 일들에 치이다가 그만 준비도 못하고 미사를 봉헌하는 경우도 있다. 처음에는 좀 당황스럽고 어떤 말을 해야 좋을지 막막하기만 했는데, 요즘엔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느님께서 그때마다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일러주실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믿음을 빌미로 강론 준비를 게을리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한테는 하느님께서 참으로 살아 계시며 당신 일을 하실 때 나를 당신 도구로 쓰고 계신다는 것에 대한 깊은 확신이 생겼다.

신앙인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실천하면서 세상에 복음을 전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때로는 복음을 전할 때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고 두려울 때도 있을 것이다. 또한 그들의 냉대와 무관심 속에서 의기소침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가 없다. 끝까지 견디는 이한테는 구원이 따를 것이고, 주님은 우리의 커다란 힘이 되어주실 것이며 하느님의 영이 우리 안에서 우리 대신 말씀해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수원교구 노성호 신부-주교>
  |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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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책장을 정리하다가 사진 한 뭉치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정리하겠다고 모아 두었다가 시간이 없어서 그냥 책장에 처박아 두었던 사진들이었지요. 사진들을 꺼내서 보니, 그 안에 신학교 시절의 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스물 한 두 살 때의 제가 웃으면서 사십대 중반에 들어서고 있는 저를 바라보고 있네요. 그때의 모습을 보면서 ‘피부도 탱탱했고……. 이때가 좋았는데…….’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런데 그 당시를 떠올려 봅니다. 그때의 저는 너무나도 걱정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외모에 대해서도, 내 자신의 능력에 대해서도 늘 자신 없어 했지요. 사진을 보니 지금보다 훨씬 멋있었던 이십대였는데 부족함만을 바라보면서 항상 소극적인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할 수 있었던 것도 하지 못했던 것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문득 육십 대가 되어 사십 대 때의 사진을 바라보고 있는 저를 상상해 봅니다. 과연 사진 속의 저를 바라보면서 어떤 말과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혹시 지금의 저처럼 ‘왜 이렇게 살았니?’라면서 또 후회를 말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

지금이 가장 젊을 때이며, 지금이 가장 최고의 때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일 역시 가장 최고의 때인 지금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세상에 전해야 함을 계속해서 우리들에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이러한 선교 사명을 잊습니다. 특히 세상 일이 바쁘다는 이유를 들어서 주님의 명령을 계속해서 뒤로 미루고 있습니다. 심지어 기도할 시간도 없다면서 주님과 대화를 나누고 함께 하는 시간을 만들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주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만들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걱정을 만드는 것이며, 후회할 일을 또 하나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을 늘 기억하라고, 또한 주님을 따름에 있어서 어렵고 힘든 일들을 끝까지 견딜 때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희망을 예수님께서는 전해 주십니다.

세상일도 어렵고 힘든데 하물며 전능하신 하느님의 일이 어떻게 쉽겠습니까? 당연히 세상의 일보다도 훨씬 복잡하고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어렵다고 포기해버린다면 이는 앞서 이야기했던 후회를 만드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후회를 줄여나가고 지금에 최선을 다할 때, 먼 훗날 지금의 내 모습이 담긴 사진을 바라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요?

‘그래, 그때는 참 열심히 살았다.’

하느님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오늘을 만들어 보세요.

<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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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 (마태오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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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견하는 제자들이 겪어야 할 어려움을 생각하시면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뱀의 슬기, 그리고 비둘기의 순박함.
등장하는 뱀이나 비둘기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슬기롭다는 말과 순박하다는 말이다.

우리 말 성경에는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 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라틴어 성서를 찾아보니 “뱀처럼 빈틈이 없고 비둘기처럼 단순하게 되어라.”("Estote ergo 'prudentes' sicut sepentes et 'simplices' sicut columbae.")로 되어있다.

‘빈틈이 없다’는 말과 ‘단순하다’는 말은 분명 서로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말들이다.
아니 서로 반대의 뜻을 지닌 단어로 보여진다.
왜 예수님께서는 이리도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모습을 제자들이 지녀야 한다고 하셨을까?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이렇게 상충되는 듯한 복음적 단어들은 제법 많이 있다.
정의와 사랑, 인내와 열정, 선포와 침묵, 평화와 불(火) 등등.

그렇다. 이들은 서로 상충되는 단어들이 아니다.
사랑이 바탕이 되지 않은 정의는 정의일 수 없다.
희망에 대한 열정 없이는 인내할 수 없다.
침묵 안에서 그분께 귀를 기울지 않으면 복음을 선포할 수 없다.
자신을 불태우지 않으면 평화를 얻을 수 없다.

늘 깨어 있으라 하신다. 그리고 어린이처럼 단순해져야 한다고도 하신다.
깨어 있다는 말은 슬기롭다는 말이다.
옳은 것을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은 순박하고 순수하고 단순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순수하고 단순한 믿음이 없다면, 슬기로운 처녀들처럼 깨어서 신랑을 기다릴 수 없다.
순박하고 단순한 눈물을 흘릴 수 없다면 옳음을 위해 선택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식별할 수 없다.

결국,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라는 말씀은 악의 유혹이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고, 옳은 것을 위해서 믿음을 갖고 뜨거운 눈물을 흘릴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리라.

<하늘호수 마리아>제공
  |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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