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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수원/청주] 두려워하지 마라
조회수 | 1,039
작성일 | 13.07.13
[광주] 두려워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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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에 천호성지에서 피정한 적이 있었다. 그곳에는 순교자 묘지가 있다. 전주 숲정이에서 순교한 성 정문호 바르톨로메오의 묘지가 거기에 있다. 한때 고을의 원員으로 있었던 정문호 바르톨로메오 성인은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날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오늘은 천국으로 과거 보러 가는 날이다. 오늘은 정말 기뻐해야 할 날이다.” 그가 사형장에 끌려가면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기뻐하며 당당할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하느님과 함께 있다는 체험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로마 8,31)라고 말한 바오로 사도와 같은 강한 믿음을 지녔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복음을 전하러 나가는 제자들에게 거듭 “두려워하지 마라.”고 하시며 용기를 준다. 복음 전파는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체험에 대한 증언이다. 하느님을 모르는 이들에게 하느님과 복음에 대한 증언을 하다 보면 많은 어려움과 박해에 직면할 수 있다. 그리고 하느님과 함께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도전이다. 비복음적 가치들과 맞서서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매달아야 하는 도전이다. 오늘 복음은 하느님 때문에 겪게 될 세상의 비난이나 박해나 어려움에 대해선 두려워 말고 오직 하느님을 두려워하라고 말한다. 논어에서는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이 없다.”고 말한다. 우리가 정작 두려워해야 할 분은 우리를 속속들이 알고 계시고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불러주시는 하느님 한 분뿐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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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대교구 김권일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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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참된 두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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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 대한 두려움, 경외심은 다른 모든 두려움을 몰아내고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 살게 합니다. 사도행전9장을 보면 사울은 사도들과 함께 예루살렘을 드나들며 주님의 이름으로 담대히 설교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계 유다인들은 사울을 없애 버리려고 벼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유다와 갈릴래아와 사마리아 온 지방에서 평화를 누리며 굳건히 세워지고, 주님을 경외하며 살아가면서 성령의 격려를 받아 그 수효가 늘어갔습니다. 진정한 두려움은 주님을 차지하게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너의 방패다. 너는 매우 큰 상을 받을 것이다”(창세15,1)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게도 “두려워 마라. 내가 너의 곁에 있다. 걱정하지 마라 내가 너의 하느님이다. 내가 너의 힘이 되어 준다”(이사41,10). “내 가르침을 마음속에 간직한 백성아, 사람들의 모욕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의 악담에 낙심하지 마라”(이사51,7)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도 더 귀하다”(마태10,31)고 하셨고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고 하시며 “너희 마음이 산란해 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요한14,28)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셔서 힘을 주신다는 것을 믿고 주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일에 주저함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주님을 전하고 말씀대로 살고자 할 때 예기치 않은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세상의 가치관과 천상의 것은 서로를 거스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적당히 타협하면서 살기를 원하지만 하느님의 뜻은 ‘예’할 것은 ‘예’하고, ‘아니오’ 할 것은 분명 ‘아니오’ 하고 답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어떤 인간적인 힘도 천상 생명에 대한 우리의 희망을 파괴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킬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그분은 수많은 참새보다 더 나를 귀하게 여기시는 분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드러나게도 부르시고, 때로는 침묵하시고, 때로는 어떤 일을 우리를 통해 이루시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열려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제 때에 그분의 뜻에 응답할 수 있습니다. 응답은 좋을 때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일이 뒤 틀릴 때, 그때야말로 결단의 순간이고 신앙이 증거 되어야 할 때입니다. 그러나 결코 그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분은 사랑이시고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절개 없고, 죄 많은 이 세대에서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마르8,38). 주님께서는 우리의 힘이시니 주님을 경외하고 세상 것에 두려워하지 않기를 희망합니다. 우리의 영원한 운명은 예수님께 대한 우리의 태도가 중요합니다.

마지막 날 주님 앞에 설 때 ‘잘 왔다. 그간 내 뜻대로 살았으니 이제 편히 쉬어라.’ 는 말씀을 듣는 사람이 되길 원합니까? 아니면 ‘너는 아무래도 잘못 온 것 같다. 좀 더 단련을 받아야 하겠는 걸?’ 하는 말씀을 들어야 하겠습니까? 주변 사람에게 원성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랑과 봉사의 삶으로 이웃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으며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가 주님을 증거 하는 사람이겠습니까? 세례명을 받은 선택받은 신앙인의 품위를 지켜 주님과 하느님 아버지 앞에 당당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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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 반영억 신부 : 2019년 7월 13일
  |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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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나를 위해 망보시는 하느님

신학생 때 복음 묵상을 하면서 적어놓은 노트를 보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어떻게 저런 묵상을 할 수 있는지 스스로 대견스러울 정도로 훌륭한 묵상이 있는가 하면, 말 그대로 ‘유치 뽕짝’인 내용을 담고 있는 부분도 있다. 그만큼 순수하고 열정 가득했던 신학생의 모습을 담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면서 다시 그때로 돌아가 초심을 잃지 않고 나를 다잡으려고 노력한다.

그때도 오늘 복음과 동일한 부분을 읽고 묵상했다. 내 머리카락 한 가닥까지도 모두 다 세어놓으셨다는 주님의 말씀이 무척 두렵고 겁나서 조심조심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은근히 소심해지기도 했고, 아침에 머리를 감고 나면 세면대 위에 빠져 있는 머리카락을 세어보면서 ‘오늘은 몇 가닥이 빠졌는데 주님도 잘 헤아리고 계시려나.’ 하면서 혼자 거울을 보며 히죽거렸던 기억도 새롭다. 그런데 이제는 주님 말씀 때문에 소심해지거나 그분께서 두려운 분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내 머리카락 하나까지도 다 세어두실 정도로 나를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분이 하느님이시며, 그 누구보다도 나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신 분이 또한 하느님이심을 마음속 깊이 느끼게 되었으니 말이다.

사제 수품을 앞두고 피정을 할 때 ‘하느님께서는 내가 죄를 짓고 있는 순간에도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해주시기 위해서 망을 보고 계신다.’는 말씀을 듣고 펑펑 울었던 기억이 있다. 그만큼 나를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시는 분이 하느님이심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사람들에게 그분을 알고 있다고 증언할 수 있다. 주님은 무섭거나 두려운 분이 아니라 참으로 좋으신 아버지라고 말이다. 예수님도 이러한 내 모습을 보고 하느님 아버지 앞에서 나를 알고 계신다고 증언해 주시길 겸손하게 청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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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노성호 신부
  |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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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참으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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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서는 예수께서 장차 당신의 제자들이 당할 박해를 예고하시면서도 언제나 보호해 주시리라는 것을 말씀하신다. 스승보다 더 나은 제자가 없고 주인보다 잘난 종은 없다고 하신다. 그저 스승이나 주인만큼 되면 넉넉하다고 하신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넉넉하게 되는 것은 그분과 같이 되는 것이다. 스승께서 십자가를 통하여 영광에 들어가셨으니, 제자들이라면 이제 자기 십자가를 통하여 자신을 완성하는 것, 즉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 넉넉하게 되는 것이라고 하겠다.

스승이신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바로 주님께서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당신의 모든 것을 바치시고 십자가 위에 오르실 수 있었듯이 제자들도, 즉 우리들도 우리가 드려야 할 희생과 마음의 각오를 갖추어야 한다고 하신다. 그 어려움은 언제나 어디서나 올 수 있는 것이며, 그것은 결국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 될 것이다. 아브라함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자기 고향과 부모와 친척들을 모두 뒤에 두고 떠나야 했던 것처럼, 처음부터 어려움을 당하게 될 수도 있다.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난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모세도 마찬가지이다. 이집트의 파라오에게 가는 것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사명이었다. 그래서 여러 핑계를 대었고 모면하려 했으나, 결국 하느님께서 함께 해 주신다는 말씀에 용기와 믿음을 가지고 이집트로 갔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어떤 사건을 대하게 될 때에 그 뜻을받아들일 것이냐 거부할 것이냐는 자신의 몫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주위의 사람들을 통해서 부정적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그 때문에 많은 경우에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머뭇거릴 수 있다. 사회적 체면이 그것을 방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영혼과 육신을 아울러 지옥에 던져 멸망시킬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28절).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바로 하느님의 뜻을 거슬러 마음의 평화와 자유를 잃지 않도록 하라는 말씀이다. 진정으로 두려워 할 것은 나 자신이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품위를 잃을까 두려워하라는 말씀이다.

이 두려워하는 삶을 살아갈 때,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보호해 주신다고 말씀하신다. 참새 한 마리도 아버지께서 다 돌보신다고 하신다. 그 "참새 한 마리도 너희의 아버지께서 허락하시지 않으시면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너희의 머리 카락까지도 낱낱이 다 세어 두셨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훨씬 더 귀하다"(29-30절).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데 아무런 두려움이나, 미온적인 태도를 가져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의 복음적인 삶이 자연스럽게 이웃에게로 전해지는 모습이 된다면, 그 안에서는 기쁨과 진정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삶을 살수 있도록 은총을 청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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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조욱현 신부
  |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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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마태오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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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한국에 있을 때의 이야기를 하나 꺼내보려 한다. 새벽 6시, 아침 9시와 11시 그리고 저녁 7시에 미사가 있었고, 그 네 대의 미사를 모두 집전한 주일이었다. 그런데 그 이유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한 여고생이 네 대의 미사에 모두 참례했다. 그런데 이상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매 미사마다 헌금을 하러 줄을 섰고 헌금을 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그래서 저녁 미사가 끝나고 소녀를 불러, 왜 네 번이나 헌금을 했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소녀는 작은 소리로 “남들 다 헌금하러 나가는데, 저만 가만히 혼자 앉아 있으면 창피하잖아요.” 라고 대답을 한다.

부끄럽다는 말을 생각해 본다. 부끄러워할 수 있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주신 커다란 선물이다. 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는 선물이기 때문이다.

부끄러움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자신 안에서 발견되는 옳지 못한 행동이나 마음에 대해, 혹은 최선을 다하지 못한 부족함에 대해 느끼는 것과 같은 부끄러움이다. 또 하나는 순수성에서 나오는 수줍음과 같은 부끄러움이다. 이 두 가지의 부끄러움은 사람을 긍정적으로 발전시키고 올바른 관계를 형성하게 하며, 무엇보다도 제대로 된 신앙의 길로 인도한다.

그런데, 이러한 정상적인 부끄러움과는 달리 일그러진 부끄러움이 존재한다. 그것은 건강하지 못한 마음이 만들어내는 부끄러움이다.

우리의 모습은 어떨까? 우리가 과연 혀를 차며, 앞에서 소개한 소녀를 걱정할 처지는 되는 것일까? 때로는 사람들의 눈을 의식해서 성호조차 긋지 못하거나, 허벅지에 슬그머니 그은 적은 없었던가? 엄지 손가락 하나로 전광석화처럼 명치부위에 십자가를 그은 적은 없었던가?

그리스도는 분명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큰 자랑거리다. 우리가 자신의 신앙을 숨기려 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부끄러워한다는 이야기다. 부끄러워해야 할 것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그것이 제대로 된 사람이다.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 아닌 것, 아니 자랑스러워 해야 할 것조차 부끄러워하는 우리가 아닌지 뒤돌아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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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호수 마리아 제공
  |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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