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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조회수 | 981
작성일 | 13.07.13
[인천]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스티븐 호킹 박사를 아십니까? 영국의 우주 물리학자로 빅뱅이론, 블랙홀 이론 등등 현대 물리학의 혁명적 이론을 제시했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갈릴레이, 뉴턴, 아인슈타인 다음으로 그를 물리학의 계보로 꼽습니다. 이렇게 대단한 업적을 이룬 스티븐 호킹 박사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하지요.

“내가 이룬 업적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다.”

그가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하고 케임브리지 대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준비하고 있던 중에 몸속의 운동신경이 차례로 파괴되어 전신이 뒤틀리는 루게릭병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게 됩니다. 병원에서는 그에게 앞으로 1~2년밖에 살지 못한다는 시한부인생을 선고했지요.

그러나 그의 학문 인생은 이러한 진단을 받은 다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병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자신의 병과 적극적으로 싸우면서 동시에 더욱 더 연구에 몰두해서 70세인 현재(1942년생임)까지 살아있는 것은 물론 세계적인 물리학자로 이름을 세상에 날리고 있습니다.

만약 그가 포기했다면 어떠했을까요? 그의 이름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한 주님께서 주신 그 놀라운 재능을 세상에 펼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와는 달리 우리들은 얼마나 쉽게 포기하는지 모릅니다.

요즘 세상을 보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희망을 잃어버리고 절망을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주시는 희망을 받아들일 때, 이 세상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유보다 살아야 할 이유가 더 많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이 점을 힘 있게 말씀해주십니다.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어떤 사람이 엄마에게 반지를 잃어버려서 속상하다는 말을 합니다. 그러자 엄마가 “괜찮아. 손가락은 그냥 있잖아.”라고 말씀하셨답니다. 반지를 잃어버리는 절망의 순간, 그녀는 반지를 다시 낄 수 있는 손가락을 보며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우리도 이렇게 희망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를 위해 세상의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창조하시고 이 땅에 보내신 하느님 아버지를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그분의 뜻을 거부하지 않으며, 그분께서 주신 삶을 절대로 소홀히 하지도 또 포기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과연 누구를 두려워하고 있을까요? 썩어 없어질 세상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을 두려워하면서 지금의 삶에 충실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희망의 삶을 적극적으로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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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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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양념 회사에서 “어떻게 하면 매출이 늘 것인가?”라는 주제로 회의를 열었답니다. 여러 의견을 실행했지만 매출이 높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지요. 그런데 얼마 뒤 한 여사원이 제안한 아이디어를 적용했더니만 매출이 배로 올랐습니다. 그 놀라운 아이디어는 “양념 통 구멍을 크게 하면 어떨까요?”라는 것이었지요.

이러한 아이디어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어떻게 하면 매출이 늘 것인가?”라는 첫 질문을 “어떻게 하면 조미료를 빨리 사게 할까?”로 바꾸어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조미료를 빨리 사가는 방법을 찾다보니 양념 통 구멍을 크게 해서 소비를 늘릴 생각을 할 수 있던 것이지요.

사실 우리들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고정관념에 갇혀 버리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문제의 한 면만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금만 돌려서 바라본다면 그 문제에 좀 더 쉽게 다가설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이에 따른 답도 쉽게 찾을 수가 있는데 말이지요.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서 잘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만을 바라보고 있으면, 나보다 잘사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이 보입니다. 그에 비해서 내 자신은 너무나도 초라해 보이지요. 결국 “잘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자마자, “나는 안 돼.”라면서 포기하는 경우가 많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의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즉,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서 잘 살 것인가?”라는 질문보다는 “어떻게 하면 주님의 뜻에 맞게 잘 살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말이지요. 이 질문에 답을 내다보면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세상의 기준을 따르지 않게 됩니다. 다른 사람과도 비교하지 않게 됩니다. 그보다는 나와 주님과의 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도 우리들에게 세상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시지요. 그들은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 주 하느님을 두려워해야 할 것을 명령하십니다.

주 하느님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따라서 이 세상의 기준에 맞춰서 또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생각하면서 잘 살 것을 노력하기 보다는, 주님 앞에서 떳떳한 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주님께서 좋아하시는 우리들의 모습은 무엇일까요?

돈 많이 버는 것? 아닙니다.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 아닙니다. 자기 혼자 모든 것을 독차지 하는 것? 역시 아니지요.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함께 하나를 이루면서 사랑을 완성하길 원하시고, 그러한 모습을 좋아하십니다. 이를 통해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분은 주 하느님이심을 기억하면서, 주님 뜻에 맞게 살아가는 즐거운 주말을 만드시길 바랍니다.

<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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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 중 아돌프 히틀러가 이끈 나치당이 독일 제국과 독일군 점령지 전반에 걸쳐 계획적으로 유태인과 슬라브족, 집시, 동성애자, 장애인, 정치범 등 약 1천1백만 명의 민간인과 전쟁포로를 학살한 사건을 의미하는 홀로코스트를 아실 것입니다. 이 홀로코스트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인 아이작과 나탄이라는 사람이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아이작이 나탄에게 물었습니다.

“자네는 나치를 잊은 적이 있나?”

나탄은 “아니, 나는 잊은 적이 없네. 그들은 정말로 끔찍하네. 눈앞에 있다면 당장이라도...”라면서 분노를 표출합니다. 그러자 아이작이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네는 아직 그들의 수용소에 갇혀 있는 걸세. 나는 더 이상 수용소에 갇혀 있지 않기 위해 그들을 용서했네.”

똑같은 불행 앞에서 두 사람은 다른 선택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이작이 권하는 용서는 나치에게 면죄부를 주라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증오심에 사로잡혀 아직도 과거에 갇혀 있는 나탄과, 용서를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아이작의 모습인 것이지요.

이 이야기를 보면서 내 자신은 아이작의 모습인지 아니면 나탄의 모습인지를 묵상해 보았으면 합니다. 사실 답은 알지만 그 답을 외치기 힘들어하는 우리는 아닐까요? 그래서 주님이 필요합니다.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은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사라지게 만들고 주님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희망을 향해서 지금을 기쁘게 살아갈 수 있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시지요.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마태 10,28)

그런데 세상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 두려움에 빠져 있다 보니 때로는 증오의 마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계속 과거 속에 파묻혀 살아갈 뿐입니다. 이 두려워하는 마음이 바로 믿음입니다. 세상에 대한 믿음이 더 크기 때문에 이 세상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세상을 별 것 아니라는 듯이 대할 수 있게 됩니다.

세상은 우리를 지배하려고 들지만, 주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려고 하십니다. 세상은 우리를 하나의 도구로 생각하면서 별 것 아닌 것으로 여기지만, 주님은 우리의 머리카락 숫자까지 세어 두실 정도로 귀하게 여기십니다. 결국 이 주님께 대한 믿음은 내 자신을 더욱 더 귀하게 만드는 길입니다.

이제 어디에 믿음을 두고서 살아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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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 2019년 7월 13일
  |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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