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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회] 두려움의 끝에 서계신 아버지
조회수 | 825
작성일 | 13.07.13
[수도회] 두려움의 끝에 서계신 아버지

거친 바다를 항해하는 우리를 향해 예수님께서는 참으로 큰 위로가 되는 말씀을 건네십니다. 다양한 두려움에 떨다가도 이 말씀 묵상하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너희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그분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언젠가 제가 평소 느끼고 있는 두려움의 원천을 거슬러 올라가봤습니다. 참으로 다양한 두려움 속에서 제가 살아가고 있더군요.

실패에 대한 두려움, 추락에 대한 두려움, 병고에 대한 두려움, 노화에 대한 두려움, 나란 존재가 잊혀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상실에 대한 두려움...

이런 다양한 두려움의 끝에는 결국 소멸과 상실에 대한 두려움, 다시 말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더군요.
        
그런데 ‘죽음’이란 것이 무엇입니까? 인류 역사상 그 누구도 죽음을 이겨낸다든지 극복해낸 사람이 없었습니다. 죽음의 신비에 대해 뚜렷하게 밝혀낸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육화강생으로 인해 드디어 그분께서는 죽음을 정복하셨습니다. 그리고 죽음조차 당신 손안에 넣으셨습니다. 이제 그분께서는 죽음조차 다스리시며 죽음의 주인이 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이제 더 이상 죽음은 죽음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도 아닙니다. 영원한 생명, 하느님 아버지의 나라로 건너가는 다리가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육신의 죽음이 아니라 영혼의 죽음입니다. 이런 연유로 예수님께서는 아주 강하게 요구하십니다.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어린 시절, 완전 꼬마 때의 일입니다. 갓 난 아기 시절을 보내고 겨우겨우 걸음을 걷기 시작할 때의 일들이 어렴풋이 떠오릅니다.

작고 어리다보니 세상 모든 것들이 다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벼슬이 빨간 큰 장 닭 녀석도 저를 작다고 우습게보고 달려들곤 했습니다. 지나가는 개들도 어찌 그리 무섭던지. 형들은 생각 없이 휙휙 건너는 작은 도랑도 한참을 가늠해보고 건너야 했습니다.

한번은 동네 놀이터에 놀러갔을 때의 일입니다. 저보다 한참 큰 형들이 신나게 미끄럼틀에서 놀고 있더군요. 계단을 통해 높은 곳으로 올라가서 미끄럼틀을 타고 마구 내려왔습니다.

저는 엄청 형들을 부러워하면서도 미끄럼틀의 높이가 두려웠습니다. 겨우겨우 용기를 내서 미끄럼틀의 정점에 서보니 얼마나 무섭던지. 이제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가야 하는데 너무 무서워서 엄두도 안 났습니다. 그런데 그 두려움이 머지않아 한 순간에 사라졌습니다.

미끄럼대 끝에서 아버지가 지켜서 계시면서 저보고 아무 걱정하지 말고 안심하고 내려오라고 두 손을 벌리고 계셨습니다. 저는 안심하고 미끄럼대에 몸을 맡길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그토록 두려워하는 실패와 상실, 시련과 병고, 노화와 죽음 그 끝에는 든든한 하느님 아버지께서 환한 얼굴로 두 팔을 벌리고 서 계십니다. 따지고 보니 너무 두려워하며 살 일이 아니군요.

든든한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 인생 전체를 주관하고 계시고, 언젠가 이 세상이 지나가면 그 자상하고 사랑 많으신 아버지께서 우리를 당신 눈동자처럼 사랑해주실 것이니, 그저 모든 걱정 아버지께 맡기고 안심하고 살아갈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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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레시오회 양승국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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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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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하지 말라는 말은 신약성서에서 총 21번 나오고, 복음에서 17번 나오는데 오늘 복음에서만 세 번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는 비교적 여러 번 두려움에 대해 말씀하신 편입니다.

그런데 오늘 주님은 세 번이나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우리가 두려워하게 되는 세 가지 상황과 우리가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세 가지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1, 우리가 두려움을 느끼는 첫 번째 상황은 모함을 받는 상황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악평을 좋아할 사람 없고 없는 죄 뒤집어쓰는 모함을 좋아할 사람은 더더욱 없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당연히 싫어하고 심지어 두려워할 겁니다.

그러니까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은 보통 사람 이상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보통 사람 이상의 사람입니까?

정치가들을 보면 보통 사람이 아닌 경우를 종종 봅니다. 분명히 엄청난 잘못을 하고도 그에 대해 지적을 하면 정치적인 공세이고 모함이라고 딱 버팁니다.

공세요 모함이라면 강하게 버텨야지 물러서거나 두려워해서는 어떻게 정치를 할 수 있겠느냐는 그런 결기가 느껴집니다. 그러니까 정치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이런 공세와 모함을 당할 거라는 각오를 한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들도 이런 결기가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를 전하면서 세상의 저항과 모함이 없을 수 없습니다. 만일 없기를 바라고 기대했다면 너무 순진하고 낭만적인 도전 자세입니다.

그것은 마치 엄마가 되면서 아줌마가 되지 않으려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아줌마는 자식과 가정을 위해 처녀 때의 그 아름다움과 고귀함이 망가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랑의 존재지요.

그러므로 제자들도 모함을 두려워해 움츠러들어서는 아니 됨은 물론 감춰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라는 주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으로 그리고 귓속말로 들은 것을 옥상에서 외치겠다는 그런 자세로 더욱 당당하게 복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2, 둘째로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를 두려워말고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 말은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지만 그리 설득력이 있지 않습니다. 이는 마치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더 흉포한 깡패이지 덜 흉포한 깡패가 아니라는 말과 같이 들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음은 주님의 다음 말씀,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는 말씀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육신과 영혼 모두를 지옥에서 멸망시킬 수 있는 분이지만 결코 우리가 멸망케 되기를 바라시지 않을 뿐 아니라 우리를 너무도 소중히 여기시는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상을 종합하면 이렇습니다.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으려면 우리도 보통 사람 이상의 존재가 되어야 하고 하느님도 두려운 존재보다 더 큰 사랑의 하느님이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두려움을 넘어서는 믿음을 가져야 하고, 하느님의 사랑은 두려움을 무릅쓰게 할 믿음을 우리에게 주셔야 합니다. 두려움을 몰아내는 하느님의 사랑과 그 사랑을 믿는 우리의 믿음은 환상의 궁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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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작은 형제회 김찬선 신부
  |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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