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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부산/전주/광주]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회수 | 1,252
작성일 | 13.07.16
[대구] ‘그럼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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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예수님!
오늘 강론의 주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입니다.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에 가면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제목의 유명한 인물 조각상이 있습니다. 이 조각상에 이런 이름이 붙은 데는 이런 내력이 있습니다. 오래 전에 이 작품을 제작하던 조각가가 불행하게도 사고로 오른손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작업이 미완성인 채 끝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이 조각 작품이 한 손만으로 완성된다고 생각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조각가는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었습니다. 왼손 하나만으로 끈질기게 작업을 계속하였습니다. 마침 내 작품이 완성되었습니다. 그것은 본래 작가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이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훌륭했습니다. 이 조각상의 본래 이름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애칭으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의미 있는 말이 아닙니까? 우리는 때때로 험한 세상의 여정 가운데 넘어지고 방황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서서 길을 찾는 것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뜻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코라진아, 베싸이다야, 가파르나움아 화를 입으리라. 저주의 말씀을 하십니다. 그토록 많은 기적을 행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변화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선포의 말씀이 참으로 인상 깊습니다. "죄를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죄'라는 단어가 빠져있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의 시선이 우리의 죄에 머물러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새롭게 변화되어 힘차게 생활하라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많은 죄를 지으며 동시에 많은 허물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우리들을 사랑하십니다. 죄의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 변화되지 않는 우리의 모습을 안타까워하시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끝까지 우리를 사랑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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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배상희 마르첼리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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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우리의 닫혀 진 마음을 열고 주위를 바라본다면

어느날 아침 창밖을 보면서 "모든 것들이 오늘 아침에는 이전과 다르게 보이는군! 풀밭은 그전보다 더 푸르고, 나무도 그전보다 더욱 청아하고, 꽃도 그전보다 더욱 아름답구나!" 하고 말하면서 새날을 맞이한다면 그 사람의 하루는 유쾌하고 즐거운 날이 될 것 입니다. 사실은 풀밭이 변한 것이 아니고 나무와 꽃이 변한 것도 아니며, 다만 자신의 마음이 변화되어 온 세상이 달라지게 보이는 것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좋은 것을 보면서 좋다고 말 할 수 없고 선한 것을 보면서 선하다고 말 할 수 없으며 주위에 펼쳐진 하느님의 은혜를 느끼지 못하는 우리의 굳어진 마음에 조금의 변화를 갖도록 노력한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세상이 아름답게 보일 것입니다. 제대로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을 갖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시는 복음 말씀을 묵상합시다.

오늘 복음을 얼핏 보기에는 예수의 말씀과 기적들을 보고도 회개하지 않는 코라진과 베싸이다, 가파르나움 사람들에게 화가 나시어 저주하시는 예수의 모습을 전해주는 듯 하지만 사실상은 말씀을 제대로 알아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슬픔이 베여있는 탄식의 말씀입니다. 예수의 활동이 펼쳐진 주 무대는 갈릴레아였고, 그중에서 유명한 도시 셋 즉 코라진, 베싸이다 그리고 가파르나움이었습니다. 이 도시들은 랍비들의 종교 교육이 가장 성행하던 종교 도시였기에 누구보다도 하느님께 열려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도취와 오만으로 예수의 가르침을 외면하였습니다. 그들은 눈을 감고 빛을 보지 않았고, 귀는 틀어막고 자기의 소리를 듣지 않았습니다. 또한 예수께서는 다른 어느 곳에서보다 이 도시들에서 많은 기적을 보여 주셨고, 그 기적을 보고서라도 회개하기를 기다리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끝내 고개를 돌리고 돌아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코라진은 후에 상처만 남았고, 베싸이다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며, 가파르나움은 예수의 이름조차 역사에서 지워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예수의 말씀은 선입견과 편견, 물질적 이익 때문에 볼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린 마음의 눈을 갖고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반성의 시간을 갖게 합니다. 하느님이 인간에게 준 은혜를 제대로 볼 줄 모르고 마음을 꼬집은 우화를 전할까 합니다.

어느날 여러 동물들이 창조되었을 때 하느님은 그 동물들을 모아놓고 그들의 몸에 맞는 것들을 선물로 붙여 주셨습니다. 새에게는 빨리 날 수 있는 날개를, 어떤 짐승에게는 뿔을, 추위에 견디도록 털을 각각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만은 털도, 뿔도, 날개도 어떤 선물도 받지 못하자 선물을 기다리던 인간이 하느님을 찾아가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내가 특별히 생각해서 준 것에 대해서 깨닫지도 못하고 있구나, 나는 너에게 다른 동물들 보다 몇 배나 좋은 걸 주었단다. 그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마음속에 들어 있어 모든 것을 아름답게 만드는 사랑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을 들은 인간은 그제야 받은 선물의 소중함을 깨닫고 하느님께 감사를 드렸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닫혀 진 마음을 열고 주위를 바라본다면 하느님께 받은 은혜를 발견하게 되고 감사드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돌아섬이요, 회개이며 코라진과 베싸이다, 가파르나움을 향해서 탄식하시는 예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길들여진 삶의 방식과, 은혜로움을 잃어버린 마음으로는 새로운 아침을 맞이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아름다우면 세상과 이웃이 새롭게 보입니다.

<부산교구 이석희 신부>
  |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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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모두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한다.

오늘 강론의 주제는 모두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하고 말 것이라는 주제입니다. 오늘 복음에는 회개하지 않은 세 도시가 등장합니다. 코라진은 갈릴래아 호수 북쪽에 위치한 고을이고 베싸이다는 북부 요르단 강이 갈릴래아 호수로 들어오는 입구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가파르나움은 호수 어촌으로서 시몬 베드로의 집이 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공생활중 주로 이 집에 거처를 정하고 갈릴래아 및 이스라엘 각지의 순회 전도를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이러한 도시는 예수께서 기적도 많이 행한 사랑받은 도시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당신의 기적을 가장 많이 행하신 이 도시들을 꾸짖기 시작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이들 도시들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코라진아, 너는 화를 입으리라. 베싸이다야, 너도 화를 입으리라. 너희에게 베푼 기적들을 띠로와 시돈에서 보였더라면 그들은 벌써 베옷을 입고 재를 머리에 들쓰고 회개하였을 것이다. 그러니 잘 들어라. 심판 날에 (차라리) 띠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가벼운 벌을 받을 것이다” 하시며 이들 도시들을 저주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신 전도 여행의 거점이었던 가파르나움마저 저주하십니다. “너에게 베푼 기적들을 소돔에서 보였더라면 그 도시는 오늘까지 남아 있었을 것이다 (여기 소돔은 사해 남쪽에 있던 전설적인 고을인데, 남색을 일삼다가 그만 유황불로 타버렸다고 합니다). 그러니 잘 들어라.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오히려 더 가벼운 벌을 받을 것이다” 하시며 예수께서는 회개하지 않은 가파르나움을 저주하셨습니다.

코라진과 베싸이다와 특히 가파르나움에 보내는 예수님의 위협은 불신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모두 해당되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예수께서 이토록 강조하시는 회개가 왜 이처럼 중요한지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회개는 구원과 직결됩니다. 예수님에 의하면 회개하지 않으면 구원에서 제외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나 성자께서 이 세상에 강생하신 이유도 바로 인류의 구원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구원을 위한 첫쩨 조건이 바로 회개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복음전파를 시작하시면서 제일 먼저 ‘회개하라’는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회개는 신앙의 관문이며 구원받기 위한 필수 조건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회개한 무엇입니까? 회개란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본연의 자기 자신을 깨닫고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기 위하여 하느님께 귀의하는 것을 뜻합니다. 마치 탕자가 아버지를 떠나 있다가 다시 아버지께로 돌아오는 것처럼 우리 자신을 자기중심에서 탈피하여 하느님께 향하도록 방향을 전환하는 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진정으로 회개하기 위해서는 일생 동안 하느님을 향하는 회개의 자세를 견지해야 하며, 이러한 방향에 맞추어 우리의 생활 전체를 끊임없이 이끌어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회개했다는 증거를 행실로써 보이라고 말한 세례자 요한의 호소대로, 회개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우리의 일생의 삶이 오늘 복음에 나오는 세 개의 도시처럼 회개하지 아니하여 결국 주님의 저주의 삶으로 끝나버리고 만다면 우리의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힘들고 갖가지 어려운 삶 속에서도 언제나 끊임없이 회개의 생활로 주님을 향하는 기도의 열매, 이웃을 생각하는 사랑의 열매, 자신을 낮추는 겸손의 열매, 선행과 봉사의 열매, 희생과 절제의 열매, 기쁨과 평화의 열매를 맺어 항상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며 구원으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아멘.

<부산교구 김만수 요한 보스코 신부>
  |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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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회개하지 않는 고을들 (마태 11,20-24)

예수님께서 '회개하지 않는 고을들'을 꾸짖으십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당신이 기적을 가장 많이 일으키신 고을들을 꾸짖기 시작하셨다. 그들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마태 11,20)."

예수님께서 꾸짖으신 코라진, 벳사이다, 카파르나움은 갈릴래아 호수 주변의 유대인 마을들인데, 예수님께서 활동하셨던 지역입니다. 이 마을들과 대조해서 언급하신 티로와 시돈은 이방지역의 도시들이고, 소돔은 구약시대 때에 멸망한 것으로 전해지는 도시입니다. 예수님께서 티로와 시돈 지방으로도 가신 적이 있지만(마태 15,21), 그 지역에서는 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활동하시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기적을 가장 많이 일으키신 고을들'이라는 말이 '더 많이 사랑하신 고을들'이라는 뜻은 아니고, 다른 고을들을 덜 사랑하셨다는 뜻도 아닙니다. 하느님(예수님)은 특정지역의 사람들만 편애하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현실적으로 갈릴래아 지역은 예수님께서 주로 활동하셨던 지역이기 때문에 기적을 행하신 일이 많았던 것일 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꾸중은 '내 사랑을 더 많이 받았으니 나에게 더 많이 보답해야 한다.'가 아니고, '가장 먼저 복음을 들었고, 더 많은 은혜를 받았으니 더 많이 회개해야 한다.'입니다.(회개하지 않는 유대인들의 모습이 복음을 들은 적 없는 이방인들보다 못하다는 꾸중입니다.)

"불행하여라, 너 코라진아! 불행하여라, 너 벳사이다야!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티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자루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하였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티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마태 11,21-22)."

그런데 이 말씀이 티로와 시돈을 칭찬하시는 말씀은 아닙니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라는 말은 심판과 벌을 받아도 유대인들보다는 덜 받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아주 안 받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거나 주인의 뜻대로 하지 않은 그 종은 매를 많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주인의 뜻을 모르고서 매 맞을 짓을 한 종은 적게 맞을 것이다(루카 12,47-48)."

복음을 들을 기회가 없었던 사람에게 복음을 믿지 않은 죄를 하느님께서 물으시지는 않겠지만, 보편적인 선과 악에 대한 심판까지 면제해 주시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하느님(예수님)을 믿든지 안 믿든지 간에 선행은 선행이고 악행은 악행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회개하지 않는 고을들을 꾸짖으신 말씀을 우리 교회 내부에 적용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데, 예수님의 말씀을 오늘날의 상황에 맞게 바꾸면 이렇게 될 수도 있습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회개하지 않는 크리스천들아! 너희에게 베푼 은혜를 □□ 종교 사람들과 △△종교 사람들에게 베풀었다면 그들은 벌써 회개했을 것이다. 심판 날에는 그들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인이 되었다는 것은 특별한 선택과 부르심을 받은 것이고, 비그리스도교인들보다 더 많은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더 많이 회개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을 믿는 신앙인이라면 안 믿는 사람들보다 더 착하게 살아야 하고, 더 많이 사랑을 실천해야 하고, '믿음의 삶'이 무엇인지를 '온 삶으로써' 분명하게 드러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 5,16)."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지 않는 쓸모없는 신앙인은 밖에 버려질 것이라고(무서운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그러나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아무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마태 5,13)."

특히 성직자들과 수도자들은 예수님의 꾸중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부르심을 받고 성직자나 수도자가 된 사람들이 다른 신자들보다 더 많이 회개해야 하고, 더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게 살겠다고 자기 스스로 서원했기 때문입니다. 만일에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더 엄하게 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똑같은 죄를 지었다고 해도 성직자들과 수도자들이 일반 신자들보다 더 무서운 벌을 받게 된다는 뜻입니다.)

성직자들 가운데에서도 남들보다 고위직에 임명된 사람이라면 더욱더 모범적으로 살아야 하고...

<전주교구 송영진 모세 신부>
  |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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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감사하는 삶

코라진, 벳사이다, 카파르나움 이 세 지역은 갈릴래아 호수 북쪽에 자리한 지역이다. 이들은 서로 인접해 있다. 이들 지역에서 예수님은 많은 활동을 하셨다. 그중에서도 어촌이며 세관이 있는 카파르나움은 예수님의 주된 활동 무대였다. 여기서 예수님은 많은 기적을 베풀며 하느님의 능력과 현존을 드러내셨다. 하지만 그 지역 사람들은 회개하여 예수님께 돌아올 줄 몰랐고 감사할 줄도 몰랐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의 완고함을 꾸짖으신다.

얼마 전 미사를 마치고 성당 문을 나서는 교우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한참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60대 후반쯤 되시는 남자 교우 한 분이 눈물을 흘리며 다가와 인사를 하신다. 의아하게 여기며 그 교우의 말을 들어보니 오늘 강론 내용이 부끄럽지 않게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삶을 깊이 반성하게 해주어 감사하다는 것이다. 그날은 준비가 잘된 강론은 아니었다.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는 때때로 나의 노력이나 능력보다도 더 큰 일을 이루어 주심에 감사드린다.

우리는 평소에 하느님께 모든 것을 받고도 이를 알아보지 못하고 감사할 줄 모르며 사는 경우가 많다. 삼일이라는 친구가 있다. 지적장애를 안고 있지만 물어보는 말에 웃으면서 척척 대꾸도 잘한다. 스마트폰으로 영어와 한자 공부도 한다고 자랑한다. 그러던 친구가 지금은 미사에 나오지 않는다. 갑자기 상태가 악화되어 정신병원에 입원했다고 한다. 가슴이 아프다. 삼일이와 같은 친구들이 우리 본당에는 아주 많다. 그들이 삶의 비참함을 넘어서서 주님께 찬미를 드릴 수 있음은 하느님 사랑에 대한 체험 때문이다. 이러한 그들의 모습을 통해 하느님께 감사하는 법을 배운다.

<광주대교구 김권일 신부>
  |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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