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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심판날에 띠로와 시돈과 소돔 땅이..”
조회수 | 1,177
작성일 | 13.07.16
[인천] “심판날에 띠로와 시돈과 소돔 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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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서울에 갈 일이 의외로 많습니다. 방송국 일 뿐만 아니라, 단체 모임 때문에도 서울을 자주 방문하지요. 그런데 서울에서 제가 살고 있는 강화로 오다보면 곳곳에서 발견되는 특이한 이름의 간판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그 간판은 어느 닭 집 선전용인데요... 그 닭 집의 이름은 다음과 같습니다.

“맛없으면 돈 안 받는 닭”

이 이름을 보고 ‘얼마나 맛에 대해 자신이 있으면 닭 집 이름을 이렇게 지었을까?’라는 생각이 우선 들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한번 가봐야지 라는 다짐을 했었지요. 그런데 며칠 전, 드디어 그런 기회가 저에게 돌아왔습니다.

성지로 청년 2명이 놀러 왔고 저녁 식사를 하러 나가는 도중에 그 집이 생각난 것입니다. 장소도 정확히 모르면서 그 간판이 있었던 김포해안도로(일명 뚝방길)를 향해 갔습니다. 그쪽에서 이 간판을 많이 보았거든요. 그리고 가던 중에 닭 집 간판을 만났습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차에서 내려 간판을 자세히 보니, 그 ‘맛없으면 돈 안 받는 닭’ 집은 성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더군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간판을 볼 수 있도록 아주 많은 곳에 간판을 설치했었던 것이지요. 저는 그 사실도 모르고, ‘그쪽에 간판이 있었으니까 그 근처겠지.’라는 생각으로 아주 엉뚱한 곳을 갔었던 것입니다.

닭 집을 엉뚱한 곳에서 찾고 있었던 저는 그 다음에 어떻게 했을까요? 다른 곳에서 식사를 했을까요? 아닙니다. 특이한 가게 이름 때문이라도 그곳에서 식사를 하자고 주장을 했고, 저희는 힘들게 그 집에 가서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그 집은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서 이름을 바꾸었던 것이지요. 하긴 저도 그 이름이 계속 기억하면서 힘들어도 가지 않았습니까?

이런 모습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장사가 잘 되기 위해서 이렇게 가게 상호도 바꾸면서 열심히 홍보를 하는데,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세상에 전하기 위해서 얼마나 열심히 홍보를 하고 있는가?’

가톨릭 신자인 것을 부끄러워하는 경우, 참으로 많이 목격되곤 합니다. 그래서 공개적으로 자신이 천주교인이라는 것을 얼마나 많이 숨기는지요? 자신이 천주교인이라는 것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에 직면했을 때, 우리들은 그 순간을 피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식사 전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남의 이목을 생각해서 하지 않거나 또는 남이 보지 못할 정도로 급하게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보니, 주일미사 역시 세상의 다른 일들에 밀려서 봉헌하지 못하는 경우도 참 많습니다. 주님께서 그토록 사랑하라고 말씀하셨기에 당연히 천주교인이라면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사랑의 정반대인 미움의 마음을 더 많이 간직하면서 사는 경우는 또 얼마나 많은가요?

오늘 예수님께서는 “심판날에 띠로와 시돈과 소돔 땅이 너희보다 오히려 가벼운 벌을 받을 것이다.”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 도시에 살고 있었던 사람들은 주님을 알지 못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주님을 알고 있으면서도 천주교인답지 못하게 산다면 더 큰 벌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경고의 말씀인 것이지요.

성당 가는 순간, 또는 미사 가는 순간만 천주교인처럼 살아서는 안됩니다. 하루 동안 내게 주어진 24시간 모두를 천주교인답게 주님을 열심히 세상에 홍보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띠로와 시돈과 소돔 땅보다는 낫다는 소리를 듣지 않을까요? 자신이 신앙인이라는 것을 드러내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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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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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급변하는 현실을 보면서

오늘날 육체의 편안함과 장수를 갈구하는 우리 인간이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배아복제·줄기세포·유전자 변형식품 등 생물의 이변이 신기하고 놀라우면서도 때로는 미래 인간 존재에 대해 두려운 생각이 듭니다.

어릴 적 읽은 ‘겨울철 딸기 구하기’와 같은 동화는 정말 옛말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제 과일은 계절에 상관없이 원하면 언제든지 구할 수 있고, 그 크기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옛날 같으면 한입에 들어갈 딸기 크기가 칼로 잘라 먹어야 입 안에 넣을 수 있게 되지 않았는지요? 그런데 변형된 유전자로 생산된 음식물을 먹었을 때 우리 인체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 걸까요?

급변하는 현실을 보면서 이것이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느님의 뜻에 맞갖는 일인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혹여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한다는 휴머니티를 표방한 첨단 과학기술의 비윤리적 향방이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일일까요?

출애굽기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행한 모세에 대한 불만, 하느님을 향한 원망 등으로 빚어진 일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신 시대에 나타난 일들을 생각해 봅니다. 주님께서 “그러니 잘 들어라. 심판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오히려 더 가벼운 벌을 받을 것이다”(마태 11,24)라고 하신 성서 말씀을 묵상하며 현재 일어나는 일들이 하느님 뜻에 옳은 일인지 그른 일인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남을우 (가톨릭 여성 연구원 회원)>
  |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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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의 여우가 토끼를 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토끼를 잡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여우는 단지 한 끼의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뛰었지만, 토끼는 살기 위해 뛰었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 역시 무엇을 하고자 한다면 이 토끼처럼 간절하게 원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그러한 간절함 없이 당연히 누리는 것으로 받아들였고 또한 자신의 힘으로 모든 것을 다한 것처럼 교만에 빠졌을 때가 참으로 많은 것 같습니다. 이는 저 역시 예외가 아닌 것 같네요.

저는 오랫동안 이 새벽 묵상 글을 쓰고 있습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빠지는 날 없이 새벽 묵상 글을 쓰고 있는 저를 향해 사람들이 대단하다는 말씀들을 종종해 주십니다. 이 말에 저는 종종 으쓱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또한 이 새벽 묵상 글을 위해서 남들보다 더 일찍 새벽에 일어나고 있으며, 많은 책을 읽고 있다면서 저의 노력으로 이 묵상 글이 나오는 것처럼 생각한 적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실 저의 힘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주님이 저와 함께 하셨고, 그 안에 주님의 힘이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저 혼자만의 힘으로 과연 이렇게 살 수 있을까요? 잘 생각하면 모든 것 안에 주님께서 계셨기에 가능했습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도 다 할 수 있었던 것처럼, 그러면서 별 다른 노력도 하지 않는 모습에서 오늘 예수님께서 꾸짖는 도시에 대한 말씀이 바로 제게 하시는 말씀이 아닐까 싶습니다. 큰 기적으로 많이 일으키셨지만 회개하지 않는 도시인 코라진, 벳사이다, 카파르나움이었지요. 그렇다면 우리 안에서 주님께서 행하신 그 모든 활동을 생각해보십시오.

‘이싸’라는 일본 시인이 쓴 짧은 시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얼마나 운이 좋은가 올해에도 모기에 물리다니.’

자신이 살아있음 그 자체를 감사할 수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은 항상 만족하며 기쁘게 살 수 있습니다. 이에 반해 많은 사람들은 주님께서 내게 주신 것을 보려 하지 않고, 내게 주지 않으신 것들만을 바라보면서 불평불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들이 과연 과거 예수님께서 큰 기적을 많이 일으켰지만 회개하지 않는 도시들과 다를 바가 무엇이 있을까요?

모기에 물린 것에도 감사할 수 있는 마음, 즉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느끼고 감사할 수 있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불행의 길이 아닌 행복의 길에 들어설 수가 있으니까요.

<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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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당신이 기적을 가장 많이 일으키신 고을들을 꾸짖기 시작하셨다. 그들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태오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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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여러 일들을 보고도 자신들이 지은 잘못에 대해 뉘우치지를 못했을까? 그분께서 보이신 행동들이 의미하는 것을 읽을 수가 없었던 것일까? 예수님께서도 단단히 화가 나셨나 보다. 멸망한 소돔 땅 사람들보다도 못한 사람들이라 표현하신다. 마치 저주라도 하시는 듯 그 말씀이 격하시다.

복음서를 통해서 우리가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할 것이 있다. 예수님께서 당신 민족에게 보여주신 행동과 들려주신 말씀은 과히 누구나 놀라게 한 일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분을 십자가의 길로 몰아세웠다.

왜 그랬을까?
크게 세 가지 부분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하나는, 성숙하지 못한 인간은 자신의 숨기고 싶은 잘못이나 죄를 건드렸을 때, 일차적인 반응으로 화를 낸다. 자신의 모든 허상과 죄가 타인에 의해 드러났다는 사실을 참을 수 없는 것이다. 눈앞의 것만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역시 그러한 면이 없는지 뒤돌아보아야 한다.

또 하나는, 바로 편견이다.
우리의 상스러운 표현 중에 하나가 “제까짓 게 뭔데?”라는 표현이 있다. 이 말은 상대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그의 모든 것을 무시하려는 성향을 말한다. 더욱이 옳은 소리를 했을 때, 더욱 무시하고 싶은 반작용의 심리다. 그만큼 인간은 모자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목수의 아들 주제에 무슨 대단한 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기득권에 대한 방어본능이다.
예수님께서 부딪치셔야 했던 벽들은 높고 튼튼했다. 소위 전문가라는 인간들이 만들어놓은 성을 부수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전문가들은 보통 자신의 전문분야를 자신과 다른 방향으로 건드리려 할 때, 본능적으로 방어기제를 작동 한다. 그리고 눈이 멀고 만다. 옳고 그름을 식별하려는 작업보다는 공격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앞선다. 가장 비겁한 방법으로써 자신이 구축한 힘을 빌려 자신을 건드리려는 힘을 없애고자 집중한다. 그리고 가능하면 같은 입장에 처해진 힘들을 규합하여 양아치 짓을 서슴지 않고 한다.

늘 우리는 순수한 마음을 청해야 한다. 회개라는 것은 순수한 마음이 있을 때 가능하다. 감동이든 슬픔이든 간에 뜨거운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람에게 가능하다. 아무리 우리에게 자신을 뒤돌아볼 기회가 주어진다 한들, 이미 굳어진 마음이라면 뉘우침은 요원한 일이 되고 만다. 하여, 예수님께서는 늘 우리에게 어린이와 같이 되라 하셨는지도 모른다.

오늘 예수님께서 보이신 격한 반응은 저주가 아니었다. 그것은 안타까움이었다. 우리가 그분의 이러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릴 수 있다면 우리에게는 다시 희망이 허락될 것이다.

<하늘호수 마리아>제공
  |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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