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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회] 사람이 되고 싶은 허수아비
조회수 | 1,342
작성일 | 13.09.18
100년에 한 번, 봉황이 나타나 간절한 소원을 들어준다는 봉황마을이 있었습니다. 그 영험한 봉황은 앞모습은 기러기요, 제비턱에 닭의 부리, 뱀의 목에 거북이 등, 꽁지는 물고기, 뒷모습은 기린이요, 영롱한 오색 깃털에, 울음소리마저 신비한 5음을 낸다고 합니다.

이 마을에 사람이 되고 싶은 허수아비가 있었습니다. 그는 날마다 외로이 들판에 서서 올 가을에는 꼭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어느 날 발가락이 간지러워 내려다보니 작은 새 한 마리가 발가락 사이에서 나오는 단물을 정신없이 빨고 있었습니다. ‘내 발가락 사이에서 단물이 나오네?’ 허수아비는 발가락을 움직이지 않으려고 조심하면서 작은 새를 내려다보았습니다. 물을 달게 먹고 난 작은 새는 허수아비에게 말했습니다. “사람이 되고 싶으세요?” “그렇단다.” “사람이 되고 안 되고는 아저씨 마음에 달려 있어요.” 그 후로 날마다 작은 새는 허수아비에게 날아와 신비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주었고, 그의 발가락 사이에서 솟아나는 단물로 목을 축이며 행복해했습니다. 허수아비도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드디어 허수아비의 꿈을 알고 있는 가을이 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작은 새가 아주 못생기고 몸이 불편하여 제대로 날지도 못하는 검은부리 참새를 데리고 왔습니다. 작은 새는 자기가 마실 물을 양보할 뿐더러 참새가 물을 먹는 동안 먹이감을 구해 오기도 했습니다. 허수아비는 못생긴 검은부리 참새를 위해 희생하고 수고하는 작은 새가 안타깝고 못마땅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높은 창공을 가르며 솔개 한 마리가 나타나더니 검은부리 참새를 노리며 허수아비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었습니다. 허수아비는 ‘기회는 이때다.’ 하며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습니다. 솔개는 순식간에 참새를 낚아챘습니다. 먹이를 구해 오던 작은 새가 이 광경을 보고 비명을 지르면서 참새를 구하려다 솔개의 날개에 치여 저만치 나동그라졌습니다. 허수아비는 놀라고 후회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들녘의 추수를 다 마친 농부가 이제는 쓸모가 없어진 허수아비를 쑥 뽑아 논두렁에 던져버렸습니다. 그때 허수아비는 자신의 심장이 뛰는 소리를 처음으로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소리는 점점 잦아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곁에는 앞모습은 기러기요, 제비턱에 닭의 부리, 뱀의 목에 거북이 등, 꽁지는 물고기, 뒷모습은 기린이요, 영롱한 오색 깃털을 지닌 작은 새의 주검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주님을 알고 사랑한다면 매순간 내가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좋아하시는 것을 좋아하고 그분이 사랑하시는 것을 사랑하는 지혜를 지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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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순교복자수녀회 송미영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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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불경을 딱 한 줄로

어느 날, 강가를 걷고 있던 까까마리 고등학생인 나에게 스님께서 불쑥 물었습니다. "니, 성경과 불경을 딱 한 줄로 줄일 수 있겠나?" "헛 참, 그걸 알면 내가 미쳤다고 스님을 졸졸 따라다니겠습니까?" 한참 뜸을 들이시던 스님께서 정답을 말씀하셨습니다.

"다-지나가노니, 헛되고 헛되도다!"

존경하는 이산하 시인이 쓴 산사기행 "적멸보궁 가는 길"이란 책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요 며칠 세상 돌아가는 걸 눈여겨보며 문득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적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 그리고 남은 날도 섣불리 기약할 수 없다는 사실, 안심하고 지낼 수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서글퍼지기도 합니다.

이번 수재로 인해 크게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이런 저런 사연들을 들으면서 "참으로 인간이란 존재는 이렇게도 나약한 존재구나" "죽기살기로 기를 쓰고 살아가지만 정말 한 순간이구나" 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한 순간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힘든 일은 숟가락을 들어올리는 일입니다. 시인의 표현대로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한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고통스런 일은 "숟가락을 밥그릇에서 입으로 가져가는 일"입니다.

죽음과도 같은 시련이나 고통 앞에서 취하는 행동들은 각양각색입니다.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며 자포자기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 지혜로운 사람도 있습니다.

일단 벌어진 사태의 추이를 정확히 파악합니다. "사건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지? 어떻게 대처해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차분히 연구를 시작합니다.

상황의 극복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인간적인 노력도 다 하지만, 결국 최종적인 해결책은 바로 하느님께서 지니고 있다는 것도 솔직하게 인정합니다.

이번 태풍 때 모든 것은 한 순간이었습니다. 물론 전문가들은 거의 정확하게 태풍의 진로를 파악했었고, 상당히 설득력 있는 대비책도 강구되었습니다. 그러나 한 순간이었습니다. 우리 인간의 보편적인 룰이나 상상을 초월하는 상황이 순식간에 벌어진 것입니다.

하늘 아래 벌어지는 모든 일들에는 반드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순간에 희생당하신 모든 분들이 이제 주님의 품안에서 주님께서 주시는 충만한 위로를 받으며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길 기원합니다.

살아남은 우리들은 보다 더 겸손해질 필요가 있겠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예견되는 모든 조짐들, 예표들에 우리의 오관을 집중시켜야 하겠습니다.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는 모든 가슴 아픈 사건들은 주님으로부터 다가오는 경고의 신호로 받아들여야겠습니다. 빨리 정돈된 생활로 돌아오라는 주님의 음성, 다시금 그릇된 길을 접고 새 출발하라는 주님의 외침을 이번 사건을 통해서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열심히 분위기를 띄웠음에도 불구하고 냉랭한 사람들, 마치 소 닭 보듯이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전혀 반응이 없습니다. 그럴 때 얼마나 괴로운지 모릅니다.

오늘도 여러 가지 모습으로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를 향해 "이제 그만 좀 알아들어라" "깨어 나거라." "내 말 좀 귀담아 들어보라"고 외치고 계시건만, 그저 묵묵부답인 우리는 아닌지 반성하는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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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루카7,31-35)

<환대의 아름다움>

저희 살레시오회 분위기나 영성 안에 동료 인간에 대한 ‘환대’는 아주 중요한 덕목 중에 하나입니다. 창립자 돈보스코는 갈 곳 없는 청소년들을 교육공동체이자 생활공동체인 ‘오라토리오’에 받아들였는데, 한 아이가 돈보스코의 집으로 들어올 때 마다 극진히 환대했습니다.

“애야, 정말 잘 왔다. 그 동안 여기 저기 떠돌아다니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았니? 이제 안심해도 된단다. 편안하게 지내거라.”

돈보스코로는 진심어린 환영의 인사,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환대를 통해 첫 만남 때부터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아버렸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로는 잘 왔다고. 편히 지내라고 합니다만 표정이나 행동, 마음은 전혀 그게 아닐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돈보스코는 온 몸과 마음으로, 말투와 표정으로 그야말로 진심을 담아 진정성 있는 환대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돈보스코는 환대의 인사 끝에 늘 덧붙이는 말이 있었습니다. “이제부터 여기가 네 집이다. 집처럼 지내거라.”

후에 돈보스코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시복시성 과정에서 돈보스코와 오라토리오에서 함께 살았던 여러 증인들이 이렇게 한 목소리로 증언했습니다.

“저희는 집을 떠나왔지만 돈보스코의 오라토리오에서 집을 떠나오지 않은 것처럼 살았습니다. 돈보스코는 저희의 아버지였고, 오라토리오는 진정한 저희의 집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환대받기를 원합니다. 이 세상 그 누구라도 홀대받고 문전박대 받기 좋아하는 사람 없을 것입니다. 어떤 집을 방문했는데 분명 안에 사람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문을 열어주지 않을 때 기분이 참 ‘거시기’합니다. 문을 열어주기는 하는데, 들어오라 소리도 않고, 잠깐 앉으라 하지도 않으면 참 분위기 어색합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 견공들이 훨씬 더 나을 때가 있습니다. 하루 온 종일 격무에 지친 가장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아파트 문을 열면 다른 식구들은 잠에 취해 얼굴도 안 내비치는데 발자국 소리, 열쇠 돌리는 소리에 바깥주인임을 확인한 강아지는 한걸음에 달려 나와 갖은 애교를 떨며 환영합니다.

원만하고 바람직한 인간관계 형성을 원한다면 ‘환대’는 필수불가결한 태도입니다. 환대란 무엇입니까?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환영하는 것, 다시 말해서 호응하는 것, 기꺼이 그와의 만남에 응하는 것입니다.
복음에 따르면 누군가 기뻐서 피리를 부르면 흥겹게 춤을 추는 것입니다. 슬퍼서 곡을 하면 한 마음으로 슬퍼하며 우는 것입니다.

어떤 유다인은 참으로 냉정하고 야박했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와서 빵을 먹지도 않고 포도주도 마시지 않으면서 예언자로서의 극단적 청빈을 살아가자 존경을 표하기는커녕 ‘저자는 마귀 들렸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님께서 우리 인간 세상에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육화강생하실 뿐만 아니라 완전히 우리 인간과 똑같은 모습으로 살아가셨습니다. 세리와 창녀, 죄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셔서 그들과 함께 먹고 마셨습니다. 그 모습을 본 유다인들은 얼마나 ‘겸손한 메시아신가?’라고 칭송하기는커녕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라고 손가락질을 해댑니다.

자신들의 구원자요 해방자로 이 땅에 오신 메시아를 온 몸과 마음으로 환대하기는커녕 무시하고 홀대한 유다인들, 대놓고 거부한 유다인들이었습니다. 이런 유다인들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정말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당신 발길을 이방인들에게로 돌리셨습니다.

오늘도 구세주께서 냉대받고 거부당하지는 않는지 주변을 돌아봐야겠습니다. 또 다시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입니다. 오랜만에 그리웠던 사람들을 만납니다. 서로의 존재 안에 깃들어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봐야겠습니다. 예수님 섬기듯 그를 섬겨야겠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극진히 환대하는 명절이면 좋겠습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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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주의자

현재를 사는 현재주의자에게 삶은 발효의 변화이지만, 현재를 살지 못할 때는 부패의 변질입니다. 발효의 변화에 따른 삶의 향기이지만 부패의 변질에 따른 썩어가는 냄새, 악취입니다. 어느 치열하게 살아가는 영화감독의 인터뷰 내용에 전적으로 공감했습니다.

“변한다는 건 사실 변질과 변화 두 방향이잖나. 썩느냐 발효되느냐인데, 부패가 변질이라면 발효는 변화다. 어차피 나도 지구의 곰팡이다. 인간은 뭐 다 곰팡이같은 존재지! 음식을 썩게 하는 곰팡이가 있고 발효시키는 곰팡이가 있는데, 당연히 후자가 되고 싶지 않겠나.현실 조건에 너무 불만을 갖지 마시라. 그게 부패의 지름길이다. 현실 조건은 불만의 대상이 아닌 극복의 대상이어야 한다. 극복해야 발효가 되지, 비난만 하면 부패한다.”

내 삶은 끊임없는 변화의 삶인가 혹은 변질의 삶인가 묻게 됩니다. 불평과 불만은 삶이 부패되기 시작했다는 신호입니다. 하느님 중심을 향해 끊임없는 회개의 삶을 살아갈 때는 찬미와 감사의 변화이지만 중심을 잃고, 되는 대로 살아갈 때는 알게 모르게 부패의 변질입니다. 발효되면 변화이지만 부패되면 변질입니다. 이어 계속되는 다음 내용도 의미심장합니다.

“현실은 분명 비정하다. 이걸 잘 견뎌야 한다. 바로 오늘 지금 여기를 사는 게 중요하다. 과거에 얽매이거나 미래의 불안에 시달리며 살기보다 오늘을 살아야지! 나는 이것을 현재주의라고 한다. 현실주의자 말고. 현재주의자처럼 무서운 사람이 없다. 나이가 많다고 다 어른이 아니고 어리다고 다 애가 아니다. 이런 사람들이 내 스승이다. 그걸 발견할 때 참 행복하더라."

강론 취지에 맞게 실명이나 일부의 내용은 정정하거나 생략했습니다. 현실주의자라는 말을 들어봤으나 현재주의라는 말은 처음입니다. 바로 하루하루 오늘 지금 여기를 사는 이들이 현재주의자입니다. 매일 처음이자 마지막처럼 종말론적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현재주의자이며 진정한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살아야 변질이 아닌 변화요 맑고 향기로운 삶입니다. 부단한 회개의 은총이란 효소가 삶을 발효시켜 변화의 삶으로 이끌어 줍니다.

부패로 변질된 삶의 본보기가 오늘 주님이 말씀하시는 ‘이 세대 사람들’입니다. 진지함도 성실함도 보이지 않습니다. 성찰도 지혜도 철학도 가치관도 자존감도 없습니다.

“이 세대 사람들을 무엇에 비기랴? 그들은 무엇과 같은가?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이들과 같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는다.”

완전히 변질된, 부패된 삶의 모습입니다. 공감과 배려의 결핍은 물론 무감각, 무반응, 무의욕, 무성의, 무기력으로 요약되는 모습입니다. 이어 계속되는 주님의 말씀을 보면 매사 부정적인 이들의 왜곡된 심사는 구제불능처럼 보입니다. 예나 이제나 ‘이 세대 사람들’의 현실은 변함이 없어 보입니다. 자기의 편협한 잣대로 모두를 재단합니다.

세례자 요한이 와서 빵을 먹지도 않고 포도주를 마시지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하고,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라 비아냥거립니다. 똑같은 현실을 부정적 시선으로 보기에 이런 결과입니다. 현재를 살지 못하기에 이런 왜곡된 평가입니다.

현재주의자의 좋은 본보기가 바로 예수님이요 세례자 요한입니다. 아니 바오로 사도는 물론이고 모든 성인들이 오늘 지금 여기를 치열하게 살았던 현재주의자들이었습니다. 바로 오늘 지금 여기가 영원이요 하늘나라이기 때문입니다. 현재주의자의 시각으로 볼 때 뚜렷이 부각되는 문제점들입니다.

영원의 시각에서 현재를, 본질을 직시하기에 이들의 판단은 언제나 정확합니다. 지혜가 옳다는 것은 바로 이런 지혜의 모든 자녀를 통해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옷도 화장도 본질을 감출수는 없습니다. 마음이 진선미로 빛나면 옷도, 얼굴도 진선미로 빛나기 마련입니다.

“돈도 있고, 사람도 있고 소위 모든 것을 다 갖춘 공동체입니다. 그런데 하나가 빠졌습니다. 바로 기쁨입니다.”

수도형제의 지적에 전적으로 공감했습니다. 참 기쁨은 오늘 지금 여기를 사는 현재주의자의 삶에서 피어납니다. 사도 바오로의 권고대로 살아계신 하느님의 교회로서, 진리의 기둥이며 기초인 하느님의 집에서 깨어 살아갈 때 가능한 현재주의자의 삶입니다. 바로 오늘 여기 하느님의 집에서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위대한 신앙의 신비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오늘 1독서의 후반부는 초대교회 신자들이 함께 불렀던 그리스도 찬미가입니다.

“그분께서는 사람으로 나타나시고, 그 옳으심이 성령으로 입증되셨으며, 천사들에게 당신을 보이셨습니다.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시어, 온 세상이 믿게 된 그분께서는 영광속으로 올라가셨습니다.”

바로 파스카 주님께 대한 고백의 찬미가입니다. 바로 이런 주님을 모시는 거룩한 미사시간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한 당신 말씀과 성체의 효소 은총으로 발효, 변화되어 우리 모두 현재주의자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 분도회 이프란치스코 신부
  |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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