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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서울]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오
조회수 | 589
작성일 | 15.01.10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비참함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바로 다른 사람과 자기 자신을 비교할 때입니다. 또한 교만함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그때 역시 다른 사람과 자기 자신을 비교할 때입니다. 즉, 다른 사람이 나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면 비참하게 생각되고,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면 교만한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런 생각을 가지고 이 세상을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그러한 비교를 통해서는 올바른 자신의 성장을 가져올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역시 항상 나쁘게 나타났던 것 같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비교를 해서는 안 됩니다. 이 세상에 우리 각자 각자는 유일한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이지요. 쌍둥이라 할지라도 완전히 똑같지는 않다고 합니다. 얼굴이 똑같아 보여도 그 부모는 어떻게든 구분하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다른 사람은 차이를 느끼지 못해도 구분할 수 있는 다른 점이 있기 때문에 정확하게 누구인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어떤 경우에도 비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늘 새로움을 가지고 당신의 일을 해 오셨지요. 오늘과 어제를 비교해보십시오. 매일 똑같은 삶의 반복이라고 이야기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잘 따지고 보면 비슷해보여도 너무나도 다름을 깨닫게 됩니다. 날씨도 다르고, 만나는 사람도 틀립니다. 일어나고 잠자는 시간도 다르고, 그날 먹은 식사의 내용 역시 다릅니다.

이렇게 늘 새로운 창조를 하시는 하느님의 일에 있어서 비교는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 역시 하느님을 믿고 따른다면 비교의 삶이 아닌, 하느님의 창조 사업에 동참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대신 그들의 고유함을 인정하면서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비교하려는 순간, 예수님의 길을 곧게 내기 위해 오신 세례자 요한을 묵상했으면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신 뒤에 기쁜 소식을 전하면서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시기 시작합니다. 이 모습을 본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 스승인 요한에게 일러바치지요. 세례는 세례자 요한의 고유한 행동인데, 예수님과 그 제자들이 따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과 그 제자들은 세례를 베풀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당시 세례자 요한의 인기는 엄청났었지요. 사람들은 그를 메시아로 생각하기도 했었으니까요. 인간적인 욕심에서 볼 때, 사람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는 것이 좋을까요? 아니면 그냥 인정받지 못하고 무시당하는 것이 좋을까요? 당연히 존경과 사랑을 받는 편을 좋아하는 것이, 인간이라면 당연히 선택해야 할 길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요한의 대답은 ‘자신은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분에 앞서 파견된 사람일 따름이다.’라고 하면서 예수님과 자신을 비교하는 것을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대신 자신이 할 일에 대해 충실한 것, 주님께서 맡겨주신 고유한 일에 대해 비교 없이 묵묵히 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함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도 이 요한의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주님으로부터 파견된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모든 영광은 자신이 아닌 주님이 받아야 한다는 것. 이 두 가지만 기억한다면 자신이 할 일에 대해 최선을 다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으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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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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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NHK에서 제작하였고,
KBS에서 방영했던 ‘경이로운 지구’를 유튜브를 통해서 보았습니다. 총 6부작입니다. 40억년 지구의 역사를 다양한 영상으로 전해주고 있습니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지구의 역사도 수없이 많은 ‘도전과 응전’으로 여기까지 왔음을 보여줍니다. 지구는 소행성의 충돌로 지금의 크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소행성의 충돌은 지구의 환경에 커다란 변화를 주었습니다.

지구는
수백만 년 동안 또는 수천만 년 동안 얼음으로 뒤덮인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화산의 분출과 지각의 융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의 아름다운 지구는 수십억 년 동안의 도전과 그에 대한 응전의 결과라고 합니다.

지구에서 살고 있는 생명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5번의 커다란 멸종의 사건들이 있었지만 생명은 멸종의 위기를 극복하고 다양한 생명으로 진화하였다고 합니다. 인간의 출현은 지구의 역사를 1년으로 생각할 때 12월 31일 오후 11시 59분이라고 합니다. 바다에서 살던 생명이 육지로 올라오기까지 30억년의 시간이 필요했다고 합니다. 지금부터 4억 년 전에 바다에서 살던 생명은 강을 통해서 육지로 올라왔고, 지느러미는 손과 발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육지라는 새로운 신세계에 생명은 터전을 마련하였다고 합니다.

인간의 잣대와 기준으로 지구를 보기보다는
기나긴 시간을 살아온 지구의 관점에서 인간을 보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면 인간은 좀 더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 지금이라는 시간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오늘 독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그분의 뜻에 따라 청하면 그분께서 우리의 청을 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청하든지 그분께서 들어 주신다는 것을 알면, 우리가 그분께 청한 것을 받는다는 것도 압니다.”

우리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청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청하라고 합니다. 우리의 시간과 기준으로 청하지 말고 하느님의 시간과 기준으로 청하라고 합니다.

하느님은 동전을 넣으면
커피가 나오는 자판기와 같으신 분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크신 뜻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살아야 합니다. 옹기장이의 손에서 만들어지는 질그릇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삶에 충실해야 합니다.

예전에 어느 공소회장님의 기도를 들었습니다.
공소회장님은 다 쓰러져가는 공소를 다시 세울 수 있도록 매일 기도했습니다. 몇 년이 지나서 우연히 주교님께서 공소회장님의 집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공소회장의 기도를 들었던 주교님은 공소를 다시 지을 수 있도록 남모르게 도움을 주었습니다. 몇 년이 지난 뒤에 주교님이 공소를 방문했습니다. 작지만 아담한 공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공소회장은 공소에 사제를 보내 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공소회장의 기도를 들었던 주교님은 사제를 파견하였습니다. 공소회장은 자신의 시간과 기준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신부를 차지하는 이는 신랑이다. 신랑 친구는 신랑의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 내 기쁨도 그렇게 충만하다.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세례자 요한은
자신의 업적이 드러나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의 길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신랑의 친구는 신랑이 오면 당연히 신부에게 자리를 내어주듯이 기뻐하며 예수님께 자리를 내어 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세례자 요한에 대해서 ‘여인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 중에 가장 귀한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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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조재형 신부
2021년 1월 9일
  |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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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책을 들어봤을 것입니다. 루이스 캐럴의 작품으로 1865년에 소개된 환상의 세계에서 모험을 겪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내용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저 역시, 어렸을 때 텔레비전을 통해 봤던 기억을 통해서 이 책을 잘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줄거리만 어렴풋이 생각만 하고 있을 뿐 정확하게 알지 못했습니다. 이번 기회에 이 책을 꼼꼼하게 읽으면서 겨우 그 내용을 정확하게 알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느님에 대해서도 이렇지 않을까요? 인류 역사를 통해 하느님이 얼마나 많이 알려졌습니까? 그래서인지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하느님을 더 알려는 노력을 하지 않습니다. 하느님과 인간의 대화인 기도도, 주님께 올리는 제사라 할 수 있는 미사도,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는 것도…. 우리는 충실하게 행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느님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착각합니다.

하느님을 더 잘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많이 알수록 더 가깝고 친밀한 관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 안에서 큰 기쁨과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세례자 요한의 증언이 등장합니다. 그는 자신의 역할이 종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에 대해서 끊임없이 알려고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많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 앞에서 자신이 ‘종’이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하느님을 알지 못했다면,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요?

세상 사람들은 커지길 원합니다. 즉, 높은 자리에 올라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알게 되면 감히 커지려고도 또 높은 자리에 올라갈 생각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종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 바치고 있는 기도의 내용을 보십시오. 종이 아닌 주인 행사만 합니다. ‘이거 해 달라, 저거 해 달라.’면서 종의 말이 아닌, 주인의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자기가 받은 것에 만족합니다. 자신의 위치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우리가 받은 것에 만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자신의 위치를 알아야 합니다. 하느님과 자신의 관계 안에서 자기 자리를 잘 알아야 합니다. 그때 더 많은 것을 얻고, 더 높은 곳에 오르려는 욕심보다는 주님의 뜻에 맞춰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 안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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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2021년 1월 9일
  |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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