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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백인대장과 같은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조회수 | 723
작성일 | 15.09.15
브라질의 축구 영웅 펠레는 많은 광고에 출연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가 절대로 출연하지 않는 광고가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담배 광고였습니다. 거액의 출연료를 준다고 해도 그는 다음과 같은 간단한 말로 거절했습니다.

“저는 아이들을 사랑하거든요.”

펠레는 정말로 아이들을 사랑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상품이든 그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것만으로도 세계 곳곳의 아이들이 그 상품을 사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요. 펠레는 가난하게 자랐기에 거액의 돈이 큰 유혹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청소년의 판단을 그르치고 건강을 해치게 하는 광고의 영향력을 잘 알기에 절대로 담배 광고에 출연할 수 없다고 했던 것이지요.

사랑한다는 것은 이처럼 상대를 귀하게 여기는 것이며,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일, 내가 사는 물건, 내가 먹는 음식, 내가 존경하는 사람, 내가 보는 영화, 내가 사용하는 말투, 아침부터 저녁까지 우리가 하는 선택에는 책임이 따름을 깨닫게 됩니다. 그 어떤 것에도 책임이 주어지지 않는 것이 없지요. 사랑의 선택 역시 이러한 책임은 반드시 주어집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이 책임을 지는 일에 소홀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모든 책임을 떠맡기기에 급급한 소극적인 모습을 멀리서도 아닌 바로 내 자신에게서 발견하지 않습니까?

이는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는 사랑은 입에서만 나오는 ‘주님 사랑합니다.’라는 말뿐이었습니다. 행동으로 책임을 질 수 있는 그래서 주님을 정말로 귀하게 여기는 사랑의 실천은 거의 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백인대장은 우리와 다른 차원의 사랑의 고백을 합니다.

“주님, 수고하실 것 없습니다.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주님을 찾아뵙기에도 합당하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그저 말씀만 하시어 제 종이 낫게 해주십시오.”

바로 이 신앙고백이 우리가 매 미사 때의 영성체 때마다 외는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이다.”라는 기도문이 되어 지금까지 귀중하게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백인대장과 같은 사랑 가득한 신앙고백을 외우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백인대장처럼 주님을 거룩하고 귀하게 생각하는 사랑을 갖지 않고 있으며, 나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마치 나를 위한 도구로만 주님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주님 앞에 죄인이라는 고백도 하지 않습니다. 마치 맡긴 물건을 찾아가듯이 주님께 끊임없이 외치고 있는 나의 모습은 아니었을까요?

이제는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백인대장과 같은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주님을 거룩하고 귀하게 그리고 주님 앞에 한 없이 큰 죄인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는 사랑을 간직해야 합니다. 그때 이렇게 부족한 우리도 백인대장처럼 예수님을 감동시킬 수 있지 않을까요? 주님을 감동시켜 봅시다. 책임지는 사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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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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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초에 있었던 일입니다. 기도하는데 꾸벅꾸벅 졸고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좋아하는 책을 읽다가도 졸고 있고, 심지어 고해소에서도 사람들이 없을 때는 저도 모르게 졸고 있습니다. 잠을 덜 자는 것도 아닙니다. 예전보다도 더 많이 자는데도 불구하고 피곤함이 계속해서 밀려듭니다.

저는 이 피곤함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금방 알아챘습니다.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일이 많아서 그럴까요? 하는 일의 종류는 많지만 그렇게 피곤할 정도는 아닙니다. 어디가 아파서 피곤한 것일까요? 이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피곤함을 느낄까요? 단적으로 이야기하면 ‘게을러서’ 그렇습니다.

솔직히 운동하는 것이 귀찮아서 한동안 전혀 운동하지 않았습니다. 여름이라 너무 덥다고, 또 장마철에는 비가 온다는 이유로 며칠씩 운동을 하지 않다 보니 자연스럽게 운동을 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운동하지 않으니 체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약간의 집중만 해도 피곤함을 쉽게 느꼈던 것이지요.

이런 체험은 처음이 아닙니다. 몇 년 전에도 매일 하던 운동을 하지 않아서 어느 날 갑자기 허리에 이상이 생겨서 병원에 입원했던 일도 있었거든요. 그래서 지금 매일 새벽에 25Km 이상의 거리를 자전거로 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더 피곤하고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순간을 넘겨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힘들어도 참고 견뎠습니다. 지금 현재 피곤함은 거의 사라졌고 힘차게 하루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운동에 대한 믿음이 있으므로 힘든 상태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주님께 대한 우리의 믿음도 이렇습니다. 그 믿음이 헛되지 않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어떤 상태에서도 이 믿음을 버리지 않고 주님을 따르는 데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백인대장이 그러했습니다. 주님이 크신 분이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그분 앞에 겸손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래서 말합니다.

“제가 주님을 찾아뵙기에도 합당하지 않다고 여겨졌습니다. 그저 말씀만 하시어 제 종이 낫게 해 주십시오.”

이렇게 스스로 자격 없는 자라고 고백하는 겸손이 그를 합당한 사람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는 자기 집을 주님을 모실 만한 곳으로 여기지 않았지만, 그럼으로써 더욱 영예롭고 주님을 모실 만한 곳으로 만들었습니다. 주님 몸소 그의 집으로 가지 않았어도, 그분의 치유를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굳은 믿음을 통한 겸손이 이루어낸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생각해보십시오. 굳은 믿음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께 희망을 두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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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2019년 9월 16일
  |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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