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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1 26.8%
[부산/청주/수원/전주] 적당히, 대충은--
조회수 | 622
작성일 | 15.11.05
[부산] 적당히, 대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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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세속의 자녀들이 자기네들끼리 거래하는데는 빛의 자녀들보다 더 약다”고 칭찬하신다. 이것은 청지기의 속임수나 뻔뻔스러움에 대한 것이 아니다. 장래를 대비하여 현재의 위치를 이용한 대담한 수완에 대한 칭찬이다. 예수님은 청지기의 부정직한 행동을 칭찬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직 시간이 남아 있을 때 장래를 대비한 기지를 칭찬하고 계신 것이다.

청지기는 세속의 자녀이다. 세속의 자녀는 오직 현세 삶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하느님의 뜻이나 약속, 종말에 대한 준비는 안중에도 없다. 자신의 삶에 이득이 되는 것만을 얻기 위해 모험도 하고 단호한 처신도 한다. 그에 비해 빛의 자녀들은 현세의 삶을 하느님의 눈으로 보려고 한다. 하느님께 대한 믿음으로 다가올 세상, 이 현세 너머에 존재하는 세상을 준비하며 살아간다.

세속의 자녀들이 자기네들끼리 거래하는데는 빛의 자녀들보다 약삭빠르지만 모든 면에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들은 오히려 빛의 자녀들보다 약삭빠르지 못하다. 세속의 자녀들의 시야는 이 세상의 현실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다가올 세상에 대해서는 무지하기 때문에 빛의 자녀들보다 더 어리석다. 하느님의 일에도 세속에서 거래할 때처럼 모든 노력과 힘을 기울여야 한다. 내 영신적인 이익을 위해서 필요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적당히, 대충 해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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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교구 오창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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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약은 집사의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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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부자가 집사를 두었는데, 이 집사가 자기의 재산을 낭비한다는 말을 듣고, 그를 불러 말하였다. ‘자네 소문이 들리는데 무슨 소린가? 집사 일을 청산하게. 자네는 더 이상 집사 노릇을 할 수 없네.’(루카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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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생의 주인은 주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 자기 인생의 집사입니다. 주님 뜻에 합당하게 인생을 충실하게 사는 것은 집사로서 충실하게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고, 그렇게 살지 않는 것은 집사로서 충실하지 않은 것입니다. 언젠가는 모두 자신의 집사 임무를 주님 앞에서 평가 받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집사가 주인의 재산을 낭비한다는 말은 집사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은 것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주인이 집사 일을 청산하라고 ‘미리’ 통보하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회개 할 수 있는 기회는 항상 ‘지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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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집사는 속으로 말하였다. ‘주인이 내게서 집사 자리를 빼앗으려고 하니 어떻게 하지? 땅을 파자니 힘에 부치고 빌어먹자니 창피한 노릇이다. 옳지, 이렇게 하자. 내가 집사 자리에서 밀려나면 사람들이 나를 저희 집으로 맞아들이게 해야지.’(루카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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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심판의 날이 오기 전에 미리 대비를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설마 멸망을 당하기야 하겠는가?”라고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면서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태평스럽게 살다가 그날을 맞이하는 사람은
주님의 심판 때에 처벌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이 바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비유에 나오는 집사의 모습을 심판에 대비하는 모습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표현은 세속적이지만, 어떻든 대책을 세우려고 노력하는 것은 현명한 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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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는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하나씩 불러 첫 사람에게 물었다. ‘내 주인에게 얼마를 빚졌소?’ 그가 ‘기름 백 항아리요.’ 하자, 집사가 그에게 ‘당신의 빚 문서를 받으시오. 그리고 얼른 앉아 쉰이라고 적으시오.’ 하고 말하였다. 이어서 다른 사람에게 ‘당신은 얼마를 빚졌소?’ 하고 물었다. 그가 ‘밀 백 섬이오.’ 하자, 집사가 그에게 ‘당신의 빚 문서를 받아 여든이라고 적으시오.’ 하고 말하였다(루카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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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의 표현만 보면, 집사가 자기 살길을 찾으려고, 주인 모르게 주인의 재산으로 장난치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만 생각하면, 자기가 잘못해서 쫓겨나게 되었으면서도 더 큰 잘못으로 살길을 찾으려고 하는 나쁜 행동이 됩니다.

그러나 다른 관점으로 보면, 또는 주인이 나중에 그 집사의 행동을 칭찬했음을 생각하면, 집사가 자기의 잘못을 바로잡으려고 노력하는 것으로, 그래서 자기를 쫓아내려고 하는 주인의 마음을 돌리려고 노력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신명기 율법을 보면, 동족에게는 이자를 받지 못한다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너희는 동족에게 이자를 받고 꾸어 주어서는 안 된다. 돈에 대한 이자든 곡식에 대한 이자든, 그 밖에 이자가 나올 수 있는 것은 모두 마찬가지다. 이방인에게는 이자를 받고 꾸어 주어도 되지만, 너희 동족에게는 이자를 받고 꾸어 주어서는 안 된다(신명 23,20-21).”

아마도 집사는 주인의 뜻과는 상관없이 자기 마음대로 이자를 받았을 것입니다. 그랬다가 쫓겨나게 되자 빚진 사람들을 불러서 처음에 정했던 이자를 모두 없애 준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잘못한 것을 바로잡는 일이 됩니다.

회개란, “제가 잘못했습니다. 잘못을 뉘우칩니다. 회개합니다.”라고
말만 해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잘못한 일을 바로잡는 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도둑질을 했다면 훔친 물건을 주인에게 돌려주고, 또 손해배상까지 해야 합니다. 그런데 살인을 했다면? 바로잡을 방법이 없으니 평생 보속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는 동안 평생 보속해도 죄가 너무 커서 보속이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연옥에서의 보속이 필요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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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은 그 불의한 집사를 칭찬하였다. 그가 영리하게 대처하였기 때문이다. 사실 이 세상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자녀들보다 영리하다(루카 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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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게 생각하면, ‘칭찬’은 잘한 일을 잘했다고 평가해 주는 일입니다.

누가 보아도 명백하게 잘못한 일인데도 잘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칭찬이 아니라 ‘비아냥거리는 것’입니다.

주인이 진짜로 집사를 칭찬했다면, 집사가 한 일에 대해서 그 일은 전에 잘못한 일을 바로잡은 일이라고 인정했다는 뜻이 됩니다.

비유의 표현만 보면, 주인은 집사가 영리하게 대처한 것을 칭찬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재산에 큰 손해를 입힌 집사를 칭찬할 주인은 없을 것입니다. 칭찬하기는커녕 더 큰 엄벌을 내릴 것입니다.

그래서 ‘칭찬’에만 초점을 맞추면, 주인이 집사를 쫓아내려던 마음을 바꿀 수 있을 정도로 집사가 ‘행동으로 실천하는 회개’를 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석하면, “이 세상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자녀들보다 영리하다.”라는 예수님 말씀은, “안 믿고 있다가 심판을 의식하고서, 믿고 회개하게 된 사람들은 신속하게 회개하고 보속하는데, 처음부터 하느님을 믿었다는 너희는 왜 이렇게 회개하고 보속하는 것이 굼뜨냐?”라고 꾸짖으시는 말씀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심판은 현재 상태만 보는 심판입니다. 이미 회개했고, 충실하게 보속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과거의 일에 대해서가 아니라 회개한 현재 상태에 대해서만 심판받게 됩니다.

그러나 끝까지 회개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전 생애가 모두 심판의 대상이 됩니다.

그런데 심판의 시간이 언제인지 아무도 모릅니다.

인류 전체가 받는 최후의 심판도, 각 개인이 받는 사심판도, 그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니 ‘지금’ 신속하게 회개해야 하고, ‘지금’ 철저하게 보속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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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송영진 신부
2019년 11월 8일
  | 11.08
451 26.8%
[수원] 약은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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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 나오는 집사는 교활한 사람이었다. 노예이기는 하였지만, 주인의 큰 재산을 관리하는 책임을 맡아 일했던 사람이었다. 오늘 복음의 집사는 자기가 맡은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면서 횡령을 하고 있다. 그런데 청지기뿐 아니라 빚진 사람들 역시 교활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당시 지주들에게 지불되는 빚이란 흔히 임대료를 말하는데 그것은 돈으로 내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나는 소출로 지불되었다.



이 때 주인은 자기의 부정을 알아차리고 이제 자기를 해고하겠다고 통고한다. 그래서 그는 그야말로 기발한 생각을 해낸다. 그는 장부를 조작하여 빚진 자들에게 실제로 빚진 액수보다 훨씬 적은 액수로 고쳐 쓰게 했던 것이다. 그렇게 해두면 자신에게 해고라는 최악의 불운이 닥치더라도 빚진 자들에게서 자기가 또 받아낼 수 있는 좀 더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러한 처사에 주인은 충격을 받았지만, 그 약은 청지기의 교활한 처사에 감탄을 하며 그 집사를 칭찬하고 있다. 여기서는 그들이 세속적인 삶을 위해서 얼마나 교묘한 수단 방법을 짜내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약은 집사의 비유는 중요한 가르침이 있다. 즉 다가올 미래를 생각하는 이 청지기와 같이 다가올 하느님의 나라를 준비하면서 오늘을 잘 살아야 한다는 종말론적 가르침이 담긴 말씀이다.

세상의 이익을 위해서 이들이 이처럼 갖은 재주, 갖은 꾀를 다 동원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우리들 자신은 우리의 영적인 삶을 위해서 무엇을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즉 사람들이 현세적인 이익을 위해서 돈이나 부귀영화를 얻으려고 노력하는 것만큼 하느님과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노력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영적인 삶, 신앙생활에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집사가 횡령을 하고 사기를 쳐가면서 준비한 그래서 그토록 안전을 보장받으려는 삶은 언젠가 끝나고 말 삶이다. 그러니 영원한 생명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겠는가? 우리의 육체적인 삶을 위해서 노력하는 바와 같이 우리의 영적인 생명을 위해서도 모든 노력을 다 할 수 있는 삶을 노력하여야 한다.

우리도 언젠가는 하느님 앞에 우리가 책임을 갖고 관리하던 우리 자신의 집사 일에 대한 셈을 하는 날이 올 것이다. 그 셈을 바치는 날이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날에 대비하여 언제나 준비되어있는 삶을 살도록 노력하고, 항상 깨어있는 삶이 되도록 하여야 한다. 준비가 되어있지 못하다면 우리는 주님께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이 항상 지금 여기에서부터 구원을 체험하고 그 구원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할 수 있는 삶이 되도록 그래서 우리도 그만한 준비를 갖출 수 있도록 하여야 우리가 맡은 집사 일을 잘 하는 것이다. 언제나 깨어있는 삶을 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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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조욱현 신부
2019년 11월 8일
  | 11.08
451 26.8%
[청주] 지혜로운 삶을 갈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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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날을 미리 준비한다는 것은 현명합니다. 재물에 투자하는 것보다 사람에게 배려한다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성공하려면 인재를 키워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온갖 정성을 쏟는 것보다 하늘의 영광을 헤아린다면 그것이야말로 모든 것을 얻는 것입니다. 내일을 준비하되 약속된 미래, 영생, 천상행복을 생각하면서 지혜롭게 해야 하겠습니다.

어떤 부자가 집사를 두었는데 그가 정직하지 못해‘해고 통지’를 했습니다. 해고 통지를 받은 집사는 고민 하다가 자신의 장래를 보장 받기 위한 부정을 또 저질렀습니다. 자기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불러다가 빚을 탕감해 주고 훗날 그들로부터 도움을 받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또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주인은 그것을 보고 그를 칭찬하였습니다. 세속적인 사람이 이렇게 세상을 살아가려 애쓰는 모습은 칭찬할 만합니다. 그러나 방법이 잘못되었으니 결국 세속적입니다.

어쩌면 그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현세적인 이득이나 높아지고자 하는 욕심, 자녀교육이나 재산의 축적과 같은 일을 위해서는 위장전입이나 탈법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을 오히려 잘나가는 사람으로 생각하니 말입니다. 아파트 청약에 몰려드는 사람들의 모습이나 소문난 좋은 유치원에 등록하기 위해 길바닥에 텐트를 치고 밤을 지새우는 모습을 보면 정말 감동적이라고 해야 하나요? 세상일에는 정말 많은 수고와 땀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고위 공직자들의 자녀들은 너나할 것 없이 병역면제를 받는 것을 보면 참 약삭빠릅니다. 유전 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있듯이 재물은 사람을 부리고 그래서 거기에 매달립니다.

세상일에도 이렇게 정성을 쏟거늘 하물며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노력은 얼마나 더 해야 하겠습니까? 세속의 자녀도 막다른 골목에서 돈을 팔아 사람을 사거늘 마지막 날 주님의 대전에서 서게 됨을 알고 있다면 그 준비를 미리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인이 돌아올 때 자기 책임을 다하고 있다가 주인을 맞이하는 종은 행복합니다(루가12,43). 그리고 ‘주인의 뜻을 알고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거나 주인의 뜻대로 하지 않은 종은 매를 많이 맞을 것입니다’(루가12,47).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지혜로워야 합니다. “지혜로운 덕은 사람으로 하여금 마땅히 행할 바가 무엇이며, 마땅히 피할 바가 어떤 것인지를 알게 하는 것입니다”(성 아우구스띠노). 그리고 “지혜로운 사람의 눈은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고정되어 있습니다. 빛 속에 거니는 사람이 어둠을 전혀 볼 수 없는 것처럼 그리스도님께 시선을 고정시킨 사람은 시선을 헛된 것에다 둘 수 없습니다”(니사의 성 그레고리오). 따라서 주님께서 허락하신 시간을 잘 이용하여 주님 마음에 들게 미래를 대비해야 하겠습니다.

사실“많은 일을 해도 해야 될 일을 안 한 사람은 적게 일한 것이고, 적게 일해도 해야 될 것을 한 사람은 많이 일한 것입니다. 그러니 말만 앞서거나 부산함만 피우지 마십시오”(성 요한보스코) 세속 일도 중요하지만 영원한 생명을 누리기 위한 일,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는 일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갈망하는 만큼 큰 수고와 정성으로 복된 날 만드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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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 반영억 신부
2015년 11월 6일
  |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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