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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1 38.4%
[수도회] 행동의 변화
조회수 | 352
작성일 | 15.11.05
[수도회] 행동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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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살다 보면 생활이나 어떤 순간의 분위기가 이것이 아니다 싶 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할까 고민도 많이 하게 됩니다. 여러 가지 선택의 가능성이 보이는데 어떤 때는 살짝 말을 흘리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내일 아침에는 담당 구역 청소를 특별히 점검해서 잘한 사람은 상을 주고 못한 사람은 벌점을 줘야겠다고 비공식적으로 살짝 흘립니다. 그러면 나태하고 안이한 아이들의 생활 태도가 갑자기 바뀌기 시작합니다. 평소에 청소를 안 하던 아이들이 보란 듯이 빗자루를 들고 다니며, 제가 지나갈 때마다 청소를 하고 있으니 잘 봐 달라고 밉지 않은 표정들을 합니다.

말 한마디 때문에 잘 보이기 위해서 아니면 벌점을 받지 않기 위해 서 태도를 바꾼 아이들이 밉다기보다는 오히려 순수하고 착해 보여서 더욱 더 사랑하게 됩니다. 쉽게 자신의 태도를 좋은 쪽으로 바꾸는 아이들 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게 됩니다. 오늘은 우리의 태도를 바꿈으로써 우리가 칭찬을 받을 차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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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레시오회 백광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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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회]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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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만 열리면 온통 스승입니다. 판단할 대상이 아니라 배워야 할 대상입니다. 누구나 장단점을 공유하기에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배울 것은 배우는 것이 겸손이자 지혜임을 깨닫습니다. 사실 주변 형제자매들의 삶자체보다 더 좋은 스승도, 가르침도 없습니다.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것들’, 어제 경향잡지 11월호 사도 법관이라 불리며 만인의 존경을 받았던 고 김홍섭(1915-1965) 판사에 관한 특집 기사를 보며 순간 떠오른 말마디였습니다.

-김홍섭 판사님을 떠올리면 어떤 모습이 가장 인상에 남으시지요?-

“매일 새벽미사를 다시셨어요. 날마다 미사를 드리시고 저녁시간이 되면 조배하러 나오시는 거예요. 초라한 옷을 입으시고 고무신을 신고 저녁에 조배하러 오셨어요. 하루도 안 빠지고, 우리 기억속에 그분은 성자였어요. 기도할 때면 항상 무릎을 꿇고 손은 합장하고 계셨어요. 늘 고개를 숙인채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그런 자세로 기도하셨어요.”

-김홍섭 판사와의 마지막 만남은 언제였나요?-

“그런데 그분 유언이라는 것이 ‘우리 애들 신앙 잃지 않도록 돌봐 달라는’ 얘기였어요. 다른 것 없이, 마지막 까지 자녀들 신앙 걱정하면서 가셨어요. 아버지 뜻대로 8남매 자녀들 모두 신앙인으로 잘 살고 있어요.”

-오늘날 더 그리운 분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신부님의 심정은 어떠신지요?-

“세월이 50년이 흘렀는데도 아직도 그 모습 그 얼굴이 그대로 떠올라요. 스물다섯 살 젊은 사제를 40대 후반의 판사가 얼마나 깍듯하게 모셨는지 그때를 생각하면 황홀하지요.”

광주대교구 이영수 은퇴신부와의 인터뷰 기사입니다. 보고 배웁니다. 이런 살아있는 성자의 삶n자체보다 더 좋은 깨우침도 가르침도 없습니다. 우리를 부끄럽게 하고 분발케 하여 잘 살아 보겠다는 각오를 갖게 합니다. 대자 임기석 형제의 증언도 감동이었습니다.

“그분의 명함을 본이는 드물 것입니다만 그분의 명함에는 金(姓) 洪燮(名) 석 자밖에 없었고, 왜 직함을 넣지 않으시냐고 했더니 ‘사람이 인사하는데 이름 석자면 됐지 무슨 다른 수식어가 필요있느냐?’하셨습니다. 가슴을 치는 말씀이었습니다. 세상의 명예와 이욕은 그분에게는 과연 뜬구름과 같았습니다.”

1915년에 태어나셔서 1965년 만 50세에 돌아가셨는데 이런 경지에 이르신 분이었습니다. 이분보다 무려 11년을 더 살고 있는 제 자신을 뒤돌아 보며 많이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새삼 ‘얼마나’ 많이가 아닌 ‘어떻게’ 잘 살아야 하나, 삶의 질을 생각하게 됩니다.

스승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나이가 많든 적든 우리를 부끄럽게 하며 깨우침을 주는 이들 모두가 스승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인의 칭찬을 받는 불의한 집사도 우리를 부끄럽게 합니다.

‘주인은 그 불의한 집사를 칭찬하였다. 그가 영리하게 대처하였기 때문이다. 사실 이 세상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자녀들보다 영리하다.’(루카16,8)

불의한 집사의 가치관이 아니라 위기에 처했을 때 미래를 위해 기민하게 처신하며 준비하는 삶의 자세가 우리를 부끄럽게 합니다. 영적일수록 현실적이란 말이 있습니다. 영적 삶을 추구하는 빛의 자녀들일수록 현실감각을 지니고 오늘 지금 여기를 살아야 함을 배웁니다.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살 것이지 무리하여 빚지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유비무환입니다. 지체없는 회개로 늘 새롭게 시작하는 삶이요, 죽음을 날마다 눈앞에 환히 둔 삶입니다. 일일일생, 평생 삶을 하루로 압축했을 때 어느 시점에 와 있는지, 또 인생사계, 평생 삶을 사계절로 압축했을 때 어느 계절에 와 있는지 점검해 보는 것도 유익합니다.

오늘 제1독서 로마서의 바오로 사도도 우리를 부끄럽게 합니다. 복음의 불의한 집사처럼, 참으로 기민하게 최선을 다해 미래를 내다보면서 영적 삶을 사셨던 바오로 사도였습니다. 고 김홍섭 판사의 세례명도 바오로였고, 100% 삶을 사셨던 바오로 사도처럼 김홍섭 판사도 그렇게 사셨습니다. 과연 우리는 몇%의 삶을 살고 있는지요?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을 위하여 일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사실 다른 민족들이 순종하게 하시려고 그리스도께서 나를 통하여 이룩하신 일 외에는, 내가 감히 더 말할 것이 없습니다.”

특히 모든 업적을 그리스도께 돌리는 바오로 사도의 겸손이 우리를 부끄럽게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을 위하여' 바오로 사도의 모토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물론 고 김홍섭 판사의 겸손도 우리를 부끄럽게 하며 분발케 합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당신의 겸손과 온유를 닮게 하십니다.

“행복하옵니다, 당신 집에 사는 이들! 그들은 영원토록 당신을 찬양하리이다.”(시편84,5).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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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도회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2015년 11월 6일
  | 11.08
451 38.4%
사실 이 세상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자녀들보다 영리하다.(루카 1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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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건 바뀌고 변화합니다. 현실을 바탕으로 하는 소통이 중요합니다. 소통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입니다. 그래서 소통과 관계 맺음은 참으로 어려운 숙제입니다. 생각과 마음만 바꾸면 언제나 소통의 길은 보입니다.

약은 집사는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처한 현실을 낙담하지 않고 새로운 변화와 새로운 시도를 모색합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우리의 삶을 반성해봅니다.

모든 길은 주님께로 이어져 있습니다. 편견에 갇혀 있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십니다.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언제나 기회를 주시는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은 그 어떤 처지에서도 소통하고 관계 맺는 새로운 변화의 길임을 잊지 마십시오.

아버지 안에 빛의 자녀도 세상의 자녀도 길을 찾으며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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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2019년 11월 8일
  | 11.08
451 38.4%
당연하다 여기면 부족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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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유학할 때 학교에 가는 길에는 항상 구걸하는 행려자들이 줄지어있었습니다. 저도 십일조를 내야했기에 거의 매일 행려자들에게 천 원 정도씩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러다보면 당연히 더 받아야한다고 믿는 사람들은 벌떡 일어나서 저를 따라옵니다. 그리고 돈을 더 받아내기 위해 이런저런 사정 이야기를 합니다. 사정이 딱해서 만 원도 주고 심지어 몇 십만 원을 줄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고마워해야 할 텐데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지 이젠 아예 거액의 돈을 꾸준히 주지 않으면 미워하겠다는 눈초리를 보냅니다. 그러면 저도 무서워서 다시는 그 길로 다니지 못하게 됩니다.

다른 길로 다니면서 또 돈을 나누어줍니다. 그러다보면 천 원을 주던, 만 원을 주던 항상 감사해하는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 사람은 절대 따라오지 않고 주는 것에 만족해합니다. 그 사람이 돈을 청하는 것은 대부분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가족을 위하고 이웃을 위해 청합니다. 거저 받은 것이라 그런지 거저 내어주려는 마음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아무리 큰 액수의 돈을 주어도 아깝지 않습니다. 어떤 때는 돈이 없어 눈인사만 하고 지나쳐도 그 사람은 저의 사정을 이해해주며 미소로 화답해줍니다. 그러면 나중에라도 돈이 생기면 또 그 사람에게 주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우리가 지닌 것들 중에 당연한 것이 있을까요? 만약 내가 버려져 동물에게 키워졌다면 나는 두 발로 걸을 수도 없고 말을 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내가 숨을 쉬는 것도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오늘 하루도 허락해주지 않으셨다면 나는 어제 죽었어야 합니다. 모든 것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은총이요, 선물입니다. 더 많은 은총을 받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감사해해야 하고 주님 말씀대로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려는 마음을 가져야합니다. 더 받고 싶으면 이미 받은 것을 감사한 마음으로 나눌 줄 알아야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집사 한 명이 등장합니다. 그는 처음에 주인의 재산을 자신의 재산처럼 낭비하며 살았습니다. 주인의 것이 곧 자신의 것이니 당연히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주인이 이 사실을 알고는 당장 집사 일을 정리하라고 말합니다. 그제야 자신이 가지고 누리던 모든 것들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 주인의 것임을 자각합니다.

이때부터 그는 정리하는 척 하면서 쫓겨날 자신을 받아줄 사람들을 만듭니다. 기름 백 항아리를 빚진 사람에게는 쉰 항아리로 탕감해주고 밀 백 섬 빚진 사람에게는 여든 섬으로 깎아줍니다. 자신이 받은 권한으로 이웃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들이 자신이 쫓겨났을 때 받아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인은 이 약삭빠른 종을 칭찬해줍니다.

그리고 이렇게 결론을 맺습니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들을 만들어라. 그래서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거처로 맞아들이게 하여라.”(루카 16,9)

불의한 재물은 부당한 재물입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이 내가 가지기에 합당해서 가진 것들이 아님을 알 때 그 재물들은 나에게 부당한 재물이 되고 불의한 재물이 됩니다. 부당한 재물인줄 알아야 나눌 줄 알게 되고 나눌 줄 알게 되어야 친구가 생기며 그 친구들이 내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보증이 됩니다.

내가 지닌 모든 것들에 항상 감사합시다. 머리카락 하나까지 당연히 받아야 해서 받은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그런 것을 당연히 주셔야 할 의무는 없으십니다. 더 받으려면 받은 것을 감사하게 나눌 줄 알아야합니다. 우리가 받은 것 중에 가장 부당한 재물은 ‘복음’입니다. 내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복음만큼 가치 있는 재물이 없습니다. 그러니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내가 가진 복음까지 잃게 될 위기에 처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러면 큰일입니다.

구원의 복음은 내가 가진 재물과 함께 이웃에게 나누어져야합니다. 이렇게 약삭빠른 집사가 될 때 하느님나라에서 가장 충실한 집사로 그분의 모든 재산을 맡아 일할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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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레시오회 양승국 신부
2019년 11월 8일
  |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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