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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회] 천재지변
조회수 | 757
작성일 | 15.11.22
[수도회] 천재지변

지난 여름 미국에서는 카트리나라는 무서운 허리케인으로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재난이 있었다. 그때 우리는 그 일이 미국에서 일어났는데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고 재난을 당했다면 제3세계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얼마나 더 큰 재난이 있었을까라고 생각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우리나라도 지난 추석에 충청도에 뜻하지 않은 폭우로 농경지가 모두 물속에 잠겼을 때 한 농부가 뉴스 인터뷰에서 한 말이 생각난다. “뭐, 할 수 있습니까? 하느님이 하시는 일인데요.” 천재지변 그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준비할 수 있는가. 과학이나 어떤 준비로도 당해낼 수가 없었던 이런 체험을 통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오늘 복음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즈음 어떤 징조가 나타나겠는가고 묻는 장면을 본다. 예수께서는 그때를 말씀하시지 않고 다만 소문을 듣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며 끝날이 곧 온다고만 하셨다. 아마도 이것은 언제나 준비하고 있으란 말씀이신 것 같다. 나 역시 나에게 일어나는 일을 통해 그런 징조를 보기보다는 어떤 외부적 큰 사건을 통해 주님을 알고 싶어하는 것 같다. 좀더 내 맘을 예민하고 섬세하게 들여다보며 마음을 닦고 그분의 움직임에 반응해야 하는데 말이다.

이런 우화가 있다. 두 사람이 굴뚝을 청소했는데 한 사람은 얼굴에 까맣게 검댕이 묻어 있었고 또 한 사람은 깨끗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굴뚝 청소를 끝내고 얼굴을 닦으러 간 사람은 검댕이 묻은 사람이 아니라 깨끗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상대방 얼굴에서 검댕을 보는 순간 자기 얼굴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진정 자기가 무엇을 했는가를 생각하며 그 후에 일을 준비하고 실천해야 하지 않을까?  

▥ 오 마리아 수녀(성심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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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어, 성전을 정화하신 다음, 어느 날 성전에서 하신 긴 담화의 한 부분입니다. 이는 예루살렘 성전파괴에 대한 예언과 세상종말이 오기 전의 표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성전은 주님의 현존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거룩한 것이라 하더라도 본래의 의미를 벗어나면 그 존재의미를 잃게 되고 맙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루카21,6)

성전 파괴에 대해서는 이미 예언자 미카, 예레미아, 에제키엘 등에 의해서 진술된 바 있었습니다. 그리고 옛 솔로몬 성전은 느부갓네살에 의해 기원전 586년에 파괴되었습니다.

사실, 예수님 당시의 성전은 유배에서 돌아온 이들에 의해 즈루빠벨의 치하에서 기원전 515년에 재건된 제 2성전이었습니다. 이 성전은 헤로데 왕에 의해 기원전 19년부터 확장되고 웅장하고 화려하게 꾸며지면서 그 본래의 의미를 잃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 성전의 파괴를 예고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와 표징을 묻는 이들에게 이르십니다.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또 ‘때가 가까웠다.’하고 말할 것이다.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말라”(루카21,8)

남을 속이는 일은 당연히 말아야 하겠지만, 남에게 속지도 말라는 말씀입니다. 특히 거짓 예언자, 거짓 메시아에게 속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이비 메시아는 누구일까? 대체, 우리는 누구에게 혹은 무엇에 속고 있는가?

그것은 물질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재물이라는 우상을 사이비 구세주로 따르고 속아 넘어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또 재물뿐만이 아니라, 세속정신 특히 프란치스코 교종께서 현대사회의 가장 큰 병폐로 지적하신 신자유주의 정신을 조심해야 할 일입니다.

또한, 남에게도 속지 말아야 하겠지만, 또한 자신에게도 속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 우리는 곧잘 자신을 속이기도 하고, 자신에게 속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욕망과 생각, 자신의 견해와 뜻에 속습니다. 스스로를 기만하고 포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이라는 우상을 조심해야 할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과 뜻에 응답하는 사람들입니다. 자기 자신이 아니라,그분이 우리의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오로도 디모테오에게 말합니다. “그대 자신을 조심하십시오. 그리고 그대의 가르침의 내용을 잘 살피시오. 이렇게 꾸준히 일을 해 나가면, 그대 자신을 구원할 뿐만 아니라, 그대의 말을 듣는 사람들을 모두 구원할 수 있을 것입니다”(1티모4,16)

또한, <로마 신지들에게는 보낸 편지>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하십시오.”(로마 12,2)

그렇습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깨어있어야 할 일입니다. 아멘.

▤ 파주 올리베따노 이영근신부 - 2017년 11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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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중심 -정주定住의 영성-

참 재미있습니다. 오늘 새벽 옛 강론집을 펴보던중 22년전인 제 나이 47세 때, 1995년 11월28일 강론에 눈길이 멎었습니다. 역시 최선을 다한 강론이었고 오늘 날자와 독서 복음도 그대로 일치했습니다. 하여 수도원 미사때는 이 강론을 다시 나누고 오늘 새 강론만 수도원 홈페이지에 올리기로 했습니다.

제 사랑하는 영성이 정주의 영성입니다. 우리 삶의 중심인 하느님께 깊이 뿌린 내린 삶입니다. 마치 땅의 현실에 깊이 뿌리 내리고 하늘 향해 높이 가지들 뻗은 나무같은 삶입니다. 늘 거기 그 자리에 있어도 세상의 중심이 되고 있는 나무들이야말로 제 영원한 삶의 스승입니다.

어느 곳을 방문해도 우선 찾아 보는 것이 노목들입니다. 불가 사찰의 두 자산은 노목老木과 노승老僧이란 말도 있습니다. ‘요셉수도원 설립 25주년 기념감사제(2012.9.15.)’때 낭송했던 제 자작 좌우명 애송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라는 시 첫 연도 정주 영성의 모범인 나무를 비유로 들었습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하늘 향한 나무처럼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덥든 춥든,
봄, 여름, 가을, 겨울
늘 하느님 불러 주신 이 자리에서
하느님만 찾고 바라보며 정주(定住)의 나무가 되어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살다보니 1년생 작은 나무가
이제는 25년 울창한 아름드리 하느님의 나무가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삶의 중심인 하느님께, 수도공동체에 깊이 뿌리내리는 것이 바로 분도회수도자들의 첫째 서원인 정주입니다. 하여 오늘 강론 제목도 ‘삶의 중심-정주의 영성’으로 정했습니다. 정주영성에 충실하고 항구할 때 한결같은 삶입니다. 온갖 혼란스런 외적 삶에도 내적안정과 평화가 있습니다. 정주의 뿌리가 빈약해 두려움과 불안, 혼란과 방황입니다. 분도 규칙 머리말도 정주로 끝맺습니다.
“주의 가르침에서 결코 떠나지 말고, 죽을 때까지 수도원에서 그분의 교훈을 항구히 지킴으로써 그리스도의 수난에 인내로써 한몫 끼어 그분 나라의 동거인이 되도록 하자. 아멘.”(성규;머리50)

어제 11.28일은 위 ‘분도규칙서’를 내셨던 이형우 시몬 아빠스의 선종 1주기날이었습니다. 아무도 예측 못한 아빠스님의 죽음이었습니다. 제행무상입니다. 영원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 삶의 중심인 하느님께 뿌리내린 이들만이 영원한 삶입니다. 오늘 말씀도 이런 정주의 렌즈로 보면 그 의미가 선명히 드러납니다. 누구보다도 복음의 예수님이나 다니엘서의 다니엘은 정주영성의 대가입니다.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

아름다운 돌과 자원 예물로 꾸며진 대성전의 외관에 넋이 빠진 이들과 달리 본질을 직시한 예수님은 언젠가 사라질 성전을 내다보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통찰 역시 정주영성의 열매입니다. 보이는 외관이 아닌 영원한 하느님께 마음을 두라는 말씀입니다. 또 주변의 혼란하고 시끄러운 상황에도 경거망동, 부화뇌동하지 말고 제 삶의 자리에 충실히 정주할 것을 당부하십니다.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또 ‘때가 가까웠다.’하고 말할 것이다.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마라. 그리고 너희는 전쟁과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더라도 무서워하지 마라.”

바로 정주영성이 답입니다. 우리 삶의 중심인 하느님께 깊이 뿌리 내릴 때 비로소 안정과 평화요 세상 유혹에 현혹되어 흔들리지 않습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사실 인류역사상 영원할 것 같던 대제국들도 다 사라졌습니다. 오늘 다니엘의 꿈 해몽이 이를 입증합니다. 그러나 하느님만은 하느님의 나라만은 영원하심을 역시 다니엘이 그 옛날에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 임금들의 시대에 하늘의 하느님께서 한 나라를 세우실 터인데, 그 나라는 영원히 멸망하지 않고 그 왕권이 다른 민족에게 넘어가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 나라는 앞의 모든 나라를 부수어 멸망시키고 영원히 서 있을 것입니다.”

바로 연중 마지막 전 주일 우리는 온 세상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을 지냈습니다. 바로 다니엘서가 말하는 영원한 하느님의 나라, 그리스도의 나라는 교회를 통해 실현되기 시작했습니다. 보십시오. 세상 제국들은 다 사라졌지만 가톨릭교회는 2천년이상 지속되고 있지 않습니까?

참으로 그리스도의 왕권만이 영원합니다. 하느님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서 정주의 삶에 항구한 이들은 이미 지금 여기서 영원한 삶을 삽니다. 또 이렇게 정주영성에 항구한 이들은 마치 늘 북쪽을 가리키는 북극성처럼 많은 이들에게 늘 하느님을 가리키는 '희망의 표지'가, '삶의 좌표'가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정주의 삶에 항구하고 충실할 수 있게 하십니다. 주님은 오늘 복음 환호송에서 정주영성에 충실한 자들에게 생명의 화관을 약속하십니다.

“너는 죽을 때까지 충실하여라. 내가 생명의 화관을 너에게 주리라.”(묵시2,10). 아멘.

▤ 분도회 이수철 신부 - 2017년 11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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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루카 21,6)

허물어짐 또한 은총입니다. 허물어져야 바뀔 수 있습니다.그 어떤 것도 자랑하거나 내세울 것 없는 부실한 우리의 삶입니다. 주님의 뜻에는 허물어지는 아픔의 시간까지 포함되어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허물어져야 거짓의 시간을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내려놓지 않고서는 깊어질 수 없는 우리의 시간입니다. 허물어지고 부서지는 예수님의 삶에서 구원을 향한 가장 뜨거운 사랑을 만나게 됩니다.

허물어짐은 또 다른 창조입니다. 우리의 종말이 허물어질 우리의 자아를 기쁘게 내려놓는 은총의 때이길 기도드립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2017년 11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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