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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서울] 중요한 것은 결과 자체가 아닙니다.
조회수 | 809
작성일 | 15.11.23
[인천] 중요한 것은 결과 자체가 아닙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나에게 어려운 일이 생길 때 빨리 시간이 지나가 버렸으면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지요. 아마 오늘 적어도 50만 명 이상이 이러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싶네요. 즉, 오늘 시험을 치루는 50만 명의 수험생들은 빨리 시간이 지나서 시험에 대한 부담을 없앴으면 하는 마음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수험생들에게 이런 동화를 하나 들려주고 싶네요.

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그 젊은이는 자기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연인을 기다리고 있었지요.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자기의 연인이 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 젊은이는 초조했지요. 바로 그 때 어떤 회색의 난쟁이 노인이 갑자기 나타나서 이 젊은이에게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하고 묻는 것이었어요. 이 젊은이는 자기의 연인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지요. 그랬더니 이 노인이 단추를 하나 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 단추를 옷에 붙여서 오른쪽으로 돌리면, 당신은 시간을 먼저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거짓말처럼 사라졌어요. 이 젊은이는 너무나도 신기했고 꿈같았지만, 혹시나 하면서 자신의 옷에 단추를 붙이고는 오른쪽으로 돌리면서, "사랑하는 연인이여, 빨리 와다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고대하던 연인이 웃는 얼굴로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이 젊은이는 너무나도 신기했지요. 그래서 이번에는 단추를 오른쪽으로 돌리면서, "사랑하는 연인과 빨리 결혼하고 싶다."라고 말했더니, 말하기가 무섭게 성대한 결혼식 장면이 펼쳐지는 것이었습니다. 이 젊은이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집이 필요하다."라고 말하면 집이 세워졌고, "아이를 원한다."라고 하면 몇 명의 아이들이 태어났습니다. 또 "포도밭이 있었으면……."하면 포도밭이 생겨났습니다. 이 젊은이는 너무나도 신기하고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그 희망의 단추를 돌렸지요. 그런데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자기는 이미 백발노인이 되어서 자기 무덤 앞에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었지요.

성급하게 미래를 먼저 가진 그 동화 속의 젊은이는 처음에는 행운인 줄 알았지만, 죽음까지도 먼저 얻게 된다는 사실은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우리는 미래에 빨리 다가가고 싶지요. 그래서 가톨릭 신자임에도 불구하고, 철학원 같은 곳에 가서 점을 보는 사람들도 많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마 오늘 이 새벽, 수능을 보는 수험생들, 그리고 그 수험생들의 부모님들은 이렇게 자신이 원하는 미래로 빨리 다가서고 싶을 것입니다. 그래서 ‘희망의 단추가 하나 있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을 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말씀드린 그 동화의 이야기를 보았을 때, 우리에게 이러한 희망의 단추가 없다는 것 자체가 오히려 더 큰 행운이 아닐까요?

중요한 것은 결과 자체가 아닙니다. 그 결과를 가져오게끔 하였던 과정이 있기에, 그 결과가 어떻든 의미를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미리 걱정하지 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단지 지금 현재에 내가 얼마나 충실했는가가 중요한 것이며, 나의 부족한 부분은 주님께 맡겨 드리면 그만인 것입니다.

아무쪼록 수험생들 모두가 침착하게 시험 잘 치루기를 바라면서, 여러분들이 그동안 노력한 것들이 주님 안에서 좋은 결실을 맺기를 기도합니다.

▥ 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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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요즘에 집 밖을 나가지 않고 사제관 안에서 처박혀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제 저녁 미사 때 신자들에게 “요즘 춥지 않지요?”라는 말을 했다가 빈축을 사기도 했지요. 밖으로 돌아다니지 않으니 추운지 안 추운지를 잘 몰랐던 것이지요. 아무튼 제가 왜 사제관 안에서만 생활하고 있을까요? 사실 이틀 동안 소설책을 3권이나 볼 정도로 책 읽는 것에 푹 빠져 있어서 밖으로 나갈 생각을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소설책의 마지막을 보고서는 아쉬움과 함께 또 다른 기대감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소설책의 마지막에는 의미심장한 말이 이렇게 적혀 있었거든요.

“4권에서 계속됩니다.”

알 수 없는 4권의 내용. 그 내용이 과연 어떨지를 상상하면서 큰 기대감과 더불어 아쉬움을 갖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저는 4권이 나오기만을 기다릴 것입니다.

생각해보니 우리들에게 다가올 미래 역시 이러한 식으로 받아들인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미래에 대해서 알 수 없다고 하면서 불안해하는 것이 아니라, 과연 어떤 새로운 일이 생길까 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매 순간을 기쁘고 활기차게 살 수 있지 않을까요?

미래는 절망으로써 다가오는 시간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희망으로 다가오는 시간이 바로 미래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현재 자신의 모습을 비관하면서 미래 역시도 그러한 절망의 상태가 될 것이라고 하면서 지레 겁을 먹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매일 매일의 삶이 똑같아 보이지만, 정말로 똑같은가요? 주님께서는 똑같은 삶을 우리들에게 주시지 않습니다. 아무리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일지라도 오늘이 어제와 똑같지는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그 새로움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종말에 대한 말씀을 하십니다. 박해를 당하는데, 심지어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우리를 넘겨서 더러는 죽이기까지 할 것이라는 끔찍한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런 말씀을 하실까요? 우리들의 미래는 이렇게 어둡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아닙니다. 그 어떤 순간이 오더라도 희망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변론할 말을 미리부터 준비하지 말라고, 어떤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주겠다는 약속을 하시지요. 또한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인내로서 생명을 얻어라.”라는 말씀으로 새로운 희망을 건네주십니다.

실제로 예수님의 제자들을 비롯해서 많은 성인 성녀들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순교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나요? 이 박해를 통해서 오히려 예수님의 복음이 온 세상 모든 민족들에게 전파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새 생명이 태어나려면 산고를 겪듯이, 박해를 통해서 모든 것이 끝장나는 것이 아니라 새 하느님 나라가 태어나는 시작이 되었던 것입니다.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미래는 절망이 아니라 희망의 시간입니다. 특히 주님께서 함께 하는 한, 그 시간은 항상 활기찬 희망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이 점을 기억하면서 오늘도 힘차게 시작해보세요. 주님과 함께…….

▥ 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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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제가 교구 성소국장으로 있을 때의 일입니다. 성소국장이다 보니 예비신학생과 신학생들과 자주 면담을 하게 됩니다. 한 예비신학생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학교는 정말로 아름답고 좋은 곳 같아요. 그 안에서 생활한다고 생각하면 너무나 행복해요.”

그리고 성소자가 부족하다는 말에, 이렇게 좋은 곳을 가려고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면서 자신은 이 신학교에 정말로 가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 학생은 자신의 바람대로 신학교에 합격해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신학교 안에서 생활을 하는데, 도중에 스스로 신학교를 그만두는 학생들이 있는 것입니다. 이 학생은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왜 신학교를 그만두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요. 정말로 천국 같은 멋진 곳인데, 정신이 어떻게 된 것이 아닐까요?”

제가 갑곶성지에 오고 나서 얼마 뒤에 이 학생의 근황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군대를 다녀오고서 복학을 했지만 얼마 못가서 스스로 그만 두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신학교가 좋고 멋지다고 말했던 학생이었는데 왜 그만두었을까요? 많은 이유들이 있었겠지만, 신학교 안에서의 행복보다 더 큰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실제로 전에 이런 학생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이 학생 역시 정말로 신학교 생활이 행복하다고 말하곤 했는데, 그만 두기 직전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신학교가 감옥처럼 답답해. 너무 끔찍해서 도저히 살 수가 없어. 행복하지가 않아.”

문제는 장소가 아닙니다. 바로 자신의 마음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지요.

오늘 주님께서는 당신을 따름으로 인해 겪게 될 어려움에 대한 말씀을 하십니다. 사람들에게 박해를 당하는데 심지어 가족과 친구들에게 미움을 받을 수 있다고 하시지요. 당시 이 말을 듣고 있었던 사람들은 주님의 이 말씀을 이해하기가 힘들었을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있는 그 순간이 너무나도 행복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박해의 순간이 찾아왔을 때 어떻게 되었을까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자,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집니다. 이제 더 이상 예수님 안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면서 떠났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문제일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을 향한 마음이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욕심과 이기심을 채우는 것이 목적이었던 사람들은 결국 예수님을 떠납니다. 그러나 끝까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참 행복을 얻게 되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말씀처럼 인내로써 생명을 얻은 것입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세상의 것들을 쫓는 마음에서 주님을 찾는다면 결국 조금의 고통과 시련에서도 주님을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떠한 순간에도 주님과 함께 하려는 마음, 그 굳은 믿음이 참 행복을 얻게 할 것입니다.

▤ 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 2017년 11월 29일
  |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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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경찰의 힘이 막강합니다. 총기를 사용할 수 있고, 합법적으로 무력을 행사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경찰의 통제를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자칫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의미가 되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시민은 경찰을 만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특히 교통법규를 위반한 사람, 불법 행위가 있는 사람은 경찰을 두려워합니다. 법칙금의 규모가 상당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추수 감사절에 미국의 경찰은 불법 운전자들에게 범칙금 대신에 깜짝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경찰의 깜짝 선물을 받았던 운전자들의 반응은 대단했습니다. 감격해서 우는 사람도 있었고, 경찰과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었고, 기뻐서 소리를 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경찰을 바라만 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뜨거운 사막에서 시원한 오아시스를 만난 것 같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 시작을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분은 죄인인 우리에게 오셨고, 하느님나라의 기쁜 소식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많은 표징을 보여주셨고, 이 세상은 따뜻한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음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내가 남에게 원하는 대로 남에게 해주면 좋다고 하셨습니다. 친구가 오리를 함께 가자고 하면 십리까지 함께 가주면 좋다고 하셨습니다. 벗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하셨으며, 우리를 위해서 목숨을 내어 놓으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그분의 죽음은 절망의 끝이 아니었고,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는 길이 되었습니다.

교황님께서는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고 하셨습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주일을 선포하셨고, 가난한 이웃들을 초대하셔서 함께 식사를 하셨습니다. 미얀마를 방문하셔서 고통 중에 있는 이웃들의 손을 잡아 주십니다. 우리의 주변을 보면 따뜻한 이야기도 많습니다.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지낼 수 있도록 산동네에 연탄을 나누어주는 이웃도 있습니다. 김장을 할 수 없는 이웃들에게 김치를 나누어 주는 이웃도 있습니다.

요즘 우리는 묵시문학의 이야기를 묵상하고 있습니다. 묵시문학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아무리 강한 조직과 나라일지라도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면, 하느님과 함께 하지 않는다면 악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나약하고, 작은 나라일지라도 하느님의 뜻을 따르면 하느님과 함께 한다면 주님께서 이끌어 주시니, 강가에 심어진 나무처럼 생기가 돋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신자 분들을 만나면서 많은 묵상을 하게 됩니다. 자녀문제로,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부부의 불화로 힘들고 어렵게 지내는 가정이 많았습니다. 신앙을 갖지 않았다면, 하느님을 알지 못했다면 도저히 이겨낼 수 없는 문제들로 가슴아파하는 분들을 보았습니다. 묵시문학은 이야기 합니다. ‘이 모든 것들도 다 지나가리라.’ 결국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밝은 빛을 보리라고 말을 합니다.

“인내로서 생명을 얻으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예전에 읽었던 시가 생각납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 서울대교구 조재형 신부 - 2017년 11월 29일
  |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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