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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정부/서울] 우리들의 일상 삶 안에 깨우침을 주시는 하느님
조회수 | 1,161
작성일 | 15.11.24
[인천] 우리들의 일상 삶 안에 깨우침을 주시는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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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신앙생활은 하지만 몸이 너무나 허약해서 각종 병을 안고 사시는 형제님이 한 분 계셨습니다. 그 형제님은 신앙의 힘으로 자신의 모든 병이 치유될 수 있다는 굳은 믿음을 가지고 늘 열심히 기도를 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어느 날, 드디어 하느님께서 응답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조금 이상합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집 앞의 바위를 매일 밀어라!”

그 형제님 집 앞에는 큰 바위가 있었는데, 그 바위 때문에 집에 들어오고 나가는 것이 상당히 힘들었거든요. 그런데 바로 이 바위를 매일 같이 밀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은 것입니다. 따라서 이 형제님은 조금 이상하기는 했지만, 하느님의 음성을 직접 들었다는 기쁨에 그리고 이 바위를 밀어 놓은 다음 자신의 병을 치유시켜 주실 것이라는 희망에 매일 같이 시간이 날 때마다 바위를 밀었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고……. 글쎄 8개월이 지나가고 말았습니다. 그러면서 점차 자신의 꿈에 대한 회의가 생기는 것이었어요. ‘아무리 밀어도 꿈쩍도 하지 않는 바위인데, 정말로 하느님께서 내게 말씀하신 것일까요? 혹시 개꿈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머리 속에 떠나지를 않는 것이에요. 그래서 그는 바위의 위치를 자세히 측량해 보았습니다. 그 결과 바위는 단 1인치도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8개월 동안 헛수고를 했다는 생각에, 원통해서 울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 순간 하느님께서 이 형제님께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세요.

“사랑하는 아들아! 왜 그렇게 슬퍼하니?”

“당신 때문이에요. 하느님 말씀을 듣고 지난 8개월 동안 희망을 품고 바위를 밀었는데, 바위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움직이지도 않는 바위를 왜 옮기라고 하신 것입니까? 왜 이렇게 쓸데없는 일을 저한테 시키신 것입니까?”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웃으시며 말씀하셨어요.

“나는 네게 바위를 옮기라고 말한 적이 없단다. 단지 그냥 바위를 밀라고 했을 뿐이지. 이제 거울로 가서 너 자신을 보렴.”

거울 앞에 선 그 형제님께서는 깜짝 놀랐습니다. 글쎄 거울에 비춰진 남자는 병약한 남자가 아니라 근육질의 남자였던 것입니다.

맞습니다. 하느님의 뜻은 바위를 움직이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그 형제님을 변화시키는 것에 하느님의 뜻이 있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바위를 옮겨놓는 것보다 바위를 미는 행동 자체가 더 중요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모습도 자신이 변화되었다는 사실보다는 그 바위를 움직이지 못했다고 절망하는 이 형제님처럼, 스스로 세운 결과에만 집착하고 절망할 때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눈앞의 현실은 그 바위가 조금도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우리들에게 다가오는 고통과 시련 역시 조금도 변화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의 시선을 조금만 바꾸면 이 고통과 시련으로 인해서 너무나 많이 변화된 내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할 수 있는 것이지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연의 섭리를 보면서 하느님 나라가 다가온 것을 알라고 하십니다. 즉, 우리들의 일상 삶 안에 깨우침을 주시는 하느님을 발견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느님을 보면서 내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지요.

혹시 나는 움직이지 않는 바위만을 보면서 한숨만 짓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나요? 이제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고 절망하지 마세요. 그것도 나를 위한 하느님의 배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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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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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편의점 앞을 지나가는데, 고성이 오가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편의점 주인으로 보이는 중년의 자매님과 젊은 아가씨가 서로를 향해서 욕설과 함께 소리를 지릅니다. 아마도 계산에 관련된 시비가 붙은 모양입니다. 그런데 편의점 주인이신 자매님께서 젊은 아가씨에게 “너 나 무시하니?”라고 말하면서 눈물을 펑펑 쏟습니다.

누가 잘 하고, 누가 잘 못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오해로 인한 다툼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편의점 주인이신 자매님께서 참으로 억울한 마음을 가지고 있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다는 생각, 즉 자기 존재에 대해 무시 받았다는 생각에 억울함을 표시한 것이지요.

사람은 누구나 상대에게 자신이 소중한 사람이라고 여겨질 때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이 행복을 위해 주님께서는 분명히 ‘사랑’을 강조하셨지요. 서로 사랑하라는 것은 우리 모두가 행복을 느끼면서 기쁘게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습니다.

언젠가 어떤 신부님을 만나서 대화를 하는데, 자신은 고속도로 요금소를 지날 때 편하고 빠르게 지나갈 수 있는 하이패스 구간을 통과하지 않고 요금징수원이 있는 곳을 지나간다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리고 요금징수원에게 껌 한 통, 과자 한 봉지, 굴 몇 알 등등의 것을 전해준다고 합니다. 매번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요금징수원이 얼마나 힘들겠냐는 것이지요. 따라서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조금이라도 받도록 “수고하십니다. 이것 하나 드시면서 하세요.”하면서 건네면 너무나도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고 하시더군요.

세상의 모든 것은 생겼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요? 동시에 절대로 사라져서는 안 될 것은 또 무엇일까요? 주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이 점을 말씀해주십니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 특히 사랑의 말씀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사라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스스로를 소중한 사람으로 여길 수 있으며, 이로써 행복을 간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전해주시는 이 사랑을 어떻게 계속 이 땅에 남기도록 할 수 있을까요? 그 몫이 우리에게 전해졌습니다. 이웃을 향한 따뜻하고 관심 가득한 말과 행동들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실천할 것만은 아닙니다. 바로 나부터가 실천해야 할 것이며, 그때 주님의 말씀인 사랑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 사랑이 가득한 곳. 바로 이미 왔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느님 나라가 가까워졌다는 증거가 될 것입니다.

▥ 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 2015년 11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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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 21,29-33 (무화과나무의 교훈)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비유 하나를 말씀하셨다. “무화과나무와 다른 모든 나무를 보아라. 잎이 돋자마자, 너희는 그것을 보고 여름이 이미 가까이 온 줄을 저절로 알게 된다.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이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 날의 승리에 함께 하리라>

짓누름과 빼앗음을 꺾고 섬김과 베풂이 마침내 승리하리니, 약육강식의 거친 세파 거슬러 지금 홀로라도 섬기고 베풀어 그 날의 승리에 함께 하리라.

독선과 아집을 물리치고 포용과 배려가 마침내 승리하리니, 제힘에 잘난 이들 틈바구니에서지금 작은 품이나마 약한 이 보듬어 그 날의 승리에 함께 하리라.

악과 불의를 깨뜨리고 선과 정의가 마침내 승리하리니, 악을 일삼는 불의한 이들에 맞서 지금 두려움 없이 정의를 살아 그 날의 승리에 함께 하리라.

광기어린 독재를 무너뜨리고 모든 사람이 주인인 민주가 마침내 승리하리니, 독재에 맛들인 이들과 결연히 갈라서 지금 민초들과 더불어 힘차게 나아가 그 날의 승리에 함께 하리라.

재물 권력 섬기는 우상의 시대를 끊고 하느님만이 주님이신 하느님 나라가 마침내 승리하리니, 탐욕을 자극하는 검은 유혹을 물리쳐 지금 오롯이 하느님과 함께 하여 그 날의 승리에 함께 하리라.

▥ 의정부교구 상지종(베르나르도) 신부 - 2015년 11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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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일에는 의정부에 계시는 어머니께 잠시 다녀왔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좋아하는 굴비를 맛있게 준비해 주셨습니다. 어머니는 여전히 굴비의 머리 쪽만 드시고, 살은 제가 먹을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아침을 두 그릇이나 먹으니, 어머니께서는 무척 좋아하십니다. 아들의 나이가 50이 넘었어도, 세상에서 제법을 일을 하여도, 어머니의 눈에는 늘 아이처럼 보일 것입니다. 겨울 따뜻하게 지내시도록 내의를 드리고, 기도하실 때 켜시라고 초를 갖다 드렸더니 너무도 좋아하십니다. 어머니의 눈은 늘 사랑의 눈이고, 믿음의 눈이고, 희망의 눈입니다. 그 마음에 사랑과 믿음과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가끔씩 방에 있는 피아노의 건반을 만져봅니다. 예전에 기타를 쳤기 때문에 주로 코드를 중심으로 피아노 연습을 합니다. 코드는 우리의 귀에 익숙한 음악의 길입니다. 코드와 다르게 피아노를 치면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들리곤 합니다. 정해진 코드에 따라서 건반을 만지면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피아노를 반주하는 것도 정해진 길과 규칙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그 정해진 길과 규칙을 꾸준히 연습하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르는 분들은 굳이 악보를 보지 않아도, 마음속의 음들이 손을 통해서 피아노의 건반을 움직이게 할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볼 수 없는 길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도, 버스를 기다릴 때도 사람들이 질서 있게 줄을 서는 것을 봅니다. 그것이 더욱 빠르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우리들의 의식에 타인에 대한 배려가 커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무조건 먼저 타려고 밀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영화도, 야구도 암표가 성행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모르는 사이에 아이들이 커가듯이, 우리들의 시민의식도 성숙했다고 생각합니다.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 사람은 자신의 정체성을 잘 알아야 합니다. 인간은 다섯 가지 특징을 지닌 존재라고 합니다.

첫째, 인간은 욕망을 지닌 존재이지만, 그 욕망은 절제되어야 합니다.

둘째, 인간은 모순된 삶을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그 모순된 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사랑하니까 헤어지는 것’도 인간이고, 남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던지는 것도 인간이고, 자신의 욕심 때문에 타인을 죽이는 것도 인간입니다.

셋째, 인간은 사이에 있는 존재입니다. 선과 악 사이에 있고, 인간과 인간 사이에 있는 존재입니다. 혼자서 살 수 없고,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넷째, 인간은 육체의 한계를 넘어서 영원을 생각하는 초월적 존재입니다. 명상과 묵상을 통해서 하느님의 뜻을 찾아가는 존재입니다.

다섯째, 그래서 인간은 나그네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나그네가 언젠가 집으로 돌아가듯이, 인간은 삶의 여정을 통해서 죽음이라는 문을 넘어서야 하는 존재입니다. 생명은 죽음이 있기 때문에 생명이라고 말을 합니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다가올 죽음을 거부하거나, 두려워하기 보다는, 주어진 삶에 충실하여, 새 하늘과 새 땅을 찾아야 합니다. 하늘과 땅이 사라질지라도, 변하지 않는 하느님의 사랑을 찾아가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며, 그것은 죽음을 넘어서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교회의 전례로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될 것입니다. 막힌 곳은 시원하게 뚫어주고, 골이 깊은 곳은 사랑으로 메워주고, 앞서가는 사람은 뒤에 오는 사람의 손을 잡아 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우습게 아는 곤충들도 우리보다 훨씬 먼저 이 지구별에서 삶을 시작하였습니다. 순간을 감사드리고,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작은 발걸음이라도 디딜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매일 이렇게 묵상 글을 이웃들과 나눌 수 있으면 더 바람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은혜를 베풀어주신 주님께 노래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주님 이름 찬양하면서 하루를 시작하고 싶습니다.

▥ 서울대교구 조재형(가브리엘) 신부 - 2015년 11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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