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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부산/청주] 늘 깨어 기도하라
조회수 | 1,091
작성일 | 15.11.24
[대구] 늘 깨어 기도하라

오늘은 연중의 가장 마지막 날입니다. 보통 일반적으로 한해를 마무리 하는 날은 마음가짐을 차분하게 하고, 1년동안 있었던 일들을 정리해보면서 다음 해의 계획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기도 합니다. 오늘은 교회 전례력으로도 한해의 마지막 날이지만, 12월의 둘째 날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이 달에 송년회가 많이들 잡혀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송년회가 있는 이 12월이 정말 싫다고 얘기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송년회 때 술을 너무 많이 먹기 때문에 힘들다고 이야기 하시는 분들도 계시구요. 그만큼 현대에는 송년회의 의미가 많이 퇴색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선조들에게 좋은 여러 가지 풍습들이 많이 있는데, 그것을 잘 살리지 못하고 퇴색되어 가는 것 같아 참 안타깝습니다. 그러한 풍습 중에 덕담이라는 좋은 풍습도 있습니다. 덕담이란 그 사람에게 복을 빌어주는 말입니다. 남에게 좋은 말을 많이 해줌으로써 그 사람에게 좋은 일이 생기기를 기원하는 것입니다. 또 당사자도 그 덕담 덕분에 자신의 일이 잘 되리라는 희망과 확신을 가질 수 있어 더욱 좋은 것 같습니다.

저는 이 덕담을 생각하면서 새해 첫날에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말씀을 하셨을까하고 내일의 복음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다가 참으로 재밌는 사실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바로 내일 새해 첫날의 복음과 오늘 한해의 마지막 날 복음이 같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이럴 때 우리 신부들은 굉장히 당황하게 됩니다. 왠지는 다 아시지요? 예, 강론을 써야 하는데 이틀을 똑같은 강론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는 죄송하지만 “참, 예수님도 너무하시지.” 이런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아니, 얼마나 중요한 말씀이시길래. 한해의 마지막 날과 새해의 첫날에 이틀에 걸쳐 했던 얘기를 또 하시는 것일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오늘 복음을 묵상해 보았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덕담의 핵심은 늘 깨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 덕담을 곧이곧대로 지키려면 참으로 고약한 덕담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잠을 안자고 깨어 기도만 하는 것은 참 힘이 들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특히나 신학생 시절 성체조배나 묵상 때면 어김없이 졸음이 쏟아졌던 저로서는 예수님의 이 말씀이 참 얄굳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우리는 늘 깨어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것입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 우리에게는 주어져 있습니다. 바로 사랑의 힘입니다. 사랑은 늘 우리를 깨어있게 만듭니다. 사랑하는 이를 항상 생각하고 깨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연애 때의 휴대폰 요금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더욱 확실히 알 수 있는 예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자녀가 아플 때, 자녀가 고통으로 신음할 때, 어머니는 밤새 깨어 간호합니다. 혹 지쳐서 휴식을 취할 때에도 어머니는 자녀의 상태에 늘 주의를 기울입니다. 그러다가 작은 신음에도 깨어나거나 다가가서 아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알고 그것을 해주려고 노력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예수님을 위해 할 것입니다. 항상 기쁘게 매 삶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당신이 다시 오실 때를 기다리다가 예수님을 만날 것입니다.

그렇기에 늘 깨어 기도하라는 이 말씀은 당신이 다시 오실 때까지 당신을 사랑하고 또 다시오실 때 당신을 만날 수 있게 하라는 좋은 덕담인 것입니다. 다른 것에 심취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에 내 모든 마음을 빼앗겨 버리는 것이 아니라, 바로 사랑의 마음을 가져라는 이 말씀은 한해를 마무리하는 우리들에게 좋은 반성의 시간을 마련해 줍니다. 나는 과연 한해 동안 예수님을 사랑하고 살아왔는지, 나는 과연 예수님을 늘 생각하며 살아왔는지, 그리고 이웃을 통해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맞이하며 살아왔는지...오늘 우리에게 들려지는 이 깨어 기도하라는 말씀을 하루 동안 묵상해 보면서 올 한해의 삶을 잘 마무리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내일부터 시작되는 대림의 시간 동안 예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면서 예수님께서 차가운 마굿간이 아니라 따뜻한 우리 마음 안에 오실 수 있도록 잘 준비하셨으면 좋겠습니다.

▥ 대구대교구 박재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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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알파요 오메가의 하느님

“늘 깨어 기도하라.”(36절) 이것이 한해 전례달력의 마지막 날에 선포되는 메시지이다. 우리가 늘 깨어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세상의 종말이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에 이를 늘 준비하고 있어야 하기 위함이며, 그 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재림하시는 인자(人子) 앞에 떳떳하게 설 수 있기 위함이다. 우리가 전례력의 마지막 주간을 지내면서 매일미사의 복음을 묵상한 바에 의하면 인자의 재림은 두 가지 특징을 가진다. 하나는 재림의 순간이 눈으로 알아볼 수 있는 묵시적(黙示的) 징조나 표징과 함께 장엄하게 다가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도둑(마태 24,43; 루가 12,39)이나 덫(35절)처럼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들이닥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중에 어느 하나를 선택하려거나 어느 것일까 하고 점치려 하지 말라. 잘 못 골랐다간 낭패를 본다. 그러므로 둘 다를 염두에 두는 것이 상책이다.

인자의 재림은 준비된 ‘바로 그 날’에 일어날 사건이 되겠지만, 사실상 ‘갑자기’ 들이닥친다는 데 매력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늘 깨어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하느님 나라가 이미 우리 가운데 있듯이(루가 17,21) 인자의 재림도 반드시 미래의 어떤 사건만은 아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시어 영광의 몸으로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계시다면(마태 28,20), 인자의 재림은 이미 우리 가운데 시작된 사건이다.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이 세상은 더 이상 옛적의 세상이 아니다. 이 세상은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새 하늘과 새 땅, 새 창조를 향하여 그 여정을 시작하였고, 서서히 완성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인자의 재림은 예수님 편에서 볼 때, 별다른 사건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인간 편에서 볼 때, 이 사건은 나자렛 예수와 더불어 시작된 하느님의 심오한 구원계획이 완성됨을 증명하는 사건이고, 그분이 누구인지를 드러내는 우주 계시적 사건이며, 영광의 그분 앞에 서게 될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드러내는 사건이 될 것이다.

우리는 올 한 해 동안 독서와 복음말씀을 통하여 창세기부터 요한묵시록까지의 발췌된 성서를 읽음으로써 성서 안에서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다. 성서는 누구에게나 그를 읽는 사람에게 필요한 의미를 제공한다. 그렇다고 성서가 자신이 담고 있는 모든 내용으로 세상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의 정형(定形)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의 처음이 어떤 모양이었으며, 그 마지막 또한 어떤 모양이 될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성서 또한 인간에 의해, 인간의 언어로 기록되었기에 그 모양을 알 수 없다. 그러나 성서는 우리가 서 있는 극히 제한된 그 자리와 시간을 우주적 차원으로 확대시키며, 전역사의 차원으로 극대화시킨다. 다시 말해서 성서는 세상이 하느님으로부터 왔으며, 다시 하느님께로 돌아갈 것을 밝혀주고 있다는 것이다. 하느님이 모든 것의 알파(Α)요, 오메가(Ω)이시기 때문이다.

더러는 길게 살고, 더러는 짧게 사는 것이 세상이지만, 누구에게나 탄생과 죽음은 세상의 창조와 종말의 의미를 가지며, 탄생부터 죽음에 이르는 한 개인의 역사도 마찬가지로 창조부터 종말에 이르는 세상 전역사의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나의 존재가 사람들 앞에서는 비록 하찮은 것으로 보일지라도 하느님 앞에서는 결코 그럴 수 없다. 내가 없으면 창조도 없고 종말도 없기 때문이다.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는, 그러기에 스스로 최선을 다해야 하는 나만의 삶을 소중함과 자랑스러움으로 살도록 하자. 그리고 그 삶을 사는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세상을 만들자.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시작하신 일, 그 일을 당신 뜻에 맞게 질서 지워주시고, 용기와 지혜로써 진보하도록 이끌어 주시며, 은총과 자비하심으로 그 마침을 채워주실 것이다. 아멘.

▥ 부산교구 박상대 신부
  |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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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다시 오실 날을 준비하여 늘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오늘 복음을 통하여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날이 우리에게 덫처럼 갑자기 덮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기도해야하겠습니다. 우리는 구약의 노아의 방주와 롯의 이야기를 통해서 회개하지 않은 채 일상의 일에 몰입하고 있다가 멸망한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애청자 여러분에게 질문을 하나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사람의 성향이 잘 변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잘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사람마다 조금씩은 차이가 있겠지만 어떤 사람이 하루아침에 마음을 고쳐먹고 새롭게 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평소에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가득차 있다면 이러한 습관에서 벗어나기가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알코올 중독자나 마약 중독자가 결심을 단단히 하여 하루아침에 술을 끊거나 마약을 끊는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는 분명 한 생의 짧은 여정을 살아갈 유한한 존재입니다. 문제는 이 유한성을 인정하지 않고 그저 세상살이 자체에 몰입한 나머지 종말의 순간을 맞는다면 큰일이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날과 그 때, 곧 예수님께서 언제 다시 오실지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언제 오실지를 우리가 분명하게 알고 있다면, 우리는 분명 회개하고 그 때에 잘 맞추어 준비할 것입니다. 저희 성당에서 이주일전에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 드릴까 합니다. 그 때가 아마도 금요일 새벽인걸로 기억됩니다. 늦은 새벽시간 인적이 드문 때를 이용해서 도둑이 들었는데 그는 스댄으로 만들어진 정문의 대문을 훔쳐갔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정문이 휑하고 허전했습니다. 만일 그 도둑이 언제 올지 알았더라면 그 시간에 맞추어 그를 제지 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실 때 역시 그 도둑처럼 언제 올지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을 기다린다는 것은 항상 우리의 생활을 살펴보고 항상 회개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에 있습니다. 회개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늘 깨어 기도하는 삶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기도는 예수님과 나를 이어주는 편안하고 독보적인 대화의 장입니다. 기도를 통하여 매순간 나는 내 인생의 주인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나의 주인이심을 인정하고, 기도를 통하여 나의 뜻이 관철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뜻이 관철되도록 할 수 있습니다. 기도를 통하여 나의 시간이 아니라 예수님의 시간을 살게 될 것입니다. 기도를 통하여 종말의 시간이 슬픔과 공포의 시간이 아니라, 기쁨과 영광의 시간임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도를 통하여 우리는 초대교회의 신앙인들처럼 마라나타, 주여 어서 오소서! 하고 외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잊지 맙시다. 그날이 오면 두 사람이 같은 침상에 있더라도, 두 사람이 등산을 같이 하더라도 두 사람이 일상에 평범한 생활을 하더라도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내버려 둘 것을 말입니다. 정말 필요하고 꼭 해야 할 것은 매일 우리의 삶을 점검하여 기도하는 습관을 지니는 데 있습니다.

하루에 기도할 수 있는 일정한 시간과 공간을 마련하도록 합시다. 그것도 어려우면 적어도 아침에 일어나서 정성껏 십자성호를 긋고 주님께서 허락하신 하루를 당신 안에서 충실히 해 나갈 수 있도록 단 몇 분간만이라도 도우심을 구합시다. 또한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하루를 돌아보며 주님의 뜻에 어긋난 것에 대해 단 몇 분간만이라도 용서를 청하는 신앙인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기도를 많이 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매순간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시는 날은 도둑처럼 닥칠 것입니다. 그러니 늘 회개하고, 늘 새롭게 살며, 늘 깨어 기다리는 마음을 갖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더불어 회개와 새로움과 깨어있음의 은총을 달라고 성령께 청하도록 합시다.

▥ 부산교구 손영배 신부
  |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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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수첩에 기록된 것을 보면, 95년 여름 신학생 5학년이었을 때 여름방학을 하고 모든 신학생들이 주교님께 인사를 드리러 갔을 때 주교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지금 세상은 거센 물결에 휩쓸려 가고 있습니다. 제대로 정신을 차리고 있지 않으면 물질주의와 사치, 향락, 쾌락 등 찰나주의의 거센 소용돌이에 쉽게 휩쓸리게 됩니다. 하느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자주 가지면서 거센 물결을 거슬러 갈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늘 준비하면서 살아야 합니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곳은 돌아가신 이갑수 주교님께서 10년 전에 말씀하셨던 그때의 상황보다 더 어두워진 듯 합니다. 돈의 위력 앞에 힘없이 무너지면서 하느님의 영역인 생명까지, 고귀한 인격까지 사고파는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지금 현재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의 모습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흥청대며 먹고 마시면서, 세상일에 마음을 빼앗기면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다시 한 번 우리 자신을 돌아볼 수 있도록 해 주고 있습니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수녀님께서 이런 권고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무것에도 흔들리지 마십시오.
아무것에도 놀라지 마십시오.
다 지나가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변치 않으시니
인내가 모든 것을 얻게 합니다.
하느님을 소유하는 이에게는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고
오로지 하느님으로 충분합니다. .

눈에 보이는 것들에게 마음이 현혹되어 스쳐 지나갈 것을 놓지 못해서 연연하고, 붙들고 결국 영혼이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져 중심을 잃고 흔들리게 되는 것을 데레사 수녀님은 분명하게 인식하셨는가 봅니다.

오늘 복음에서처럼 늘 깨어 기도하면서 하느님 안에서 사셨던 성녀 데레사 수녀님은 세상 일에 맘을 빼앗기지 않았고,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넓은 문으로 몰려갈 때 하느님만을 바라보면서 좁은 문으로 가실 수 있었던 분이셨습니다. 우리가 전적으로 이분처럼 살아갈 수는 없겠지만 우리가 사는 이곳을 신앙인답게 달리생각할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영원히 살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기를 쓰고 살고 있는 이 세상 이후에 대해서 누가 이야기를 해 주고 있습니까? 인간의 마지막에 관해서 누가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습니까? 인간 죽음 이후에 관해서는 누가 이야기를 해 주고 있습니까? 인간의 처음과 세상의 근원에 대해서 누가 이야기를 해 주고 있습니까? 교회가 아니면 누가 해 줍니까?

이 교회 안에서 깨어있을 이유가 분명히 있는 것입니다. 그 교회 안에서 사제로 사셨던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께서는 감옥에 있으면서 교우들에게 이런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온갖 세상일을 가만히 생각하면 가련하고 슬픈 일이 많다. 이 같은 험하고 가련한 세상에 한 번 나서 우리를 내신 임자를 알지 못하면 난 보람이 없고, 가지고 있어도 쓸데없다”고 말입니다.

오늘 아침 주님은 우리들에게 흥청대며 먹고 마시는 일과 쓸데없는 세상 걱정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복음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흔들리며 중심을 잡지 못하고 마냥 휩쓸려 가고 있는 듯한 우리들 삶을 돌아봤으면 합니다.

어린이들이 가지고 노는 수많은 장난감, 모두들 값비싼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싶어하는 데.......그렇지만 맞으면 맞을수록 더욱더 중심을 잡고 있는 팽이가 유난히 머리 속에 그려집니다.

▥ 부산교구 도정호 신부
  |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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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그곳에 가고 싶다

때로는 풀어지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마음껏 즐겼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루카21,34).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간곡히 당부하셨는데 그 말씀을 외면 한다면 결과는 뻔합니다. 저의 마음을 꿰뚫고 계시니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마음은 참으로 흔들비쭉입니다. 사실 “나는 내가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나는 내가 바라는 것을 하지 않고 오히려 내가 싫어하는 것을 합니다”(로마7,15). 그래서 주님께서는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 하여라”(루카21,36).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육체적인 것에 마음을 쓰고 육체를 따라 삽니다. 어둠의 행실을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하며 언제나 대낮으로 생각하고 단정하게 살아가야 하지만 마음뿐입니다.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들은 영적인 것에 마음을 씁니다”(로마8,5). 그러나 우리 삶의 현실은 영적인 것보다는 육적인 것이 더 매력적이고 가까이 있습니다. 아파트 베란다 밑으로 휘황찬란한 네온사인들이 번쩍이며 유난히 빛나는 빨간 십자가를 등지고 유혹합니다. 한 잔술에 몸을 맡길 수 있는 그곳에 가고 싶습니다. 그리고는 후회할 것입니다. 대림절을 맞이하면서 새 생활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연말 송년회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때입니다.

“늘 깨어 기도하라”는 말씀을 되새겨야 하겠습니다. 유혹은 일회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시고 말씀으로 물리치셨지만 악마는 다음 기회를 노리면서 예수님을 떠나갔습니다(루카4,13). 하물며 연약한 우리에게는 얼마나 자주 접근하겠습니까? 그러니 회개의 삶도 한 번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일생을 통해 죽음에 이르기까지 계속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의 적대자 악마가 으르렁거리는 사자처럼 누구를 삼킬까 하고 찾아 돌아다닙니다. 여러분은 믿음을 굳건히 하여 악마에게 대항하십시오”(1베드 5,8-9).

주님께서 오시는 그 날과 시간을 모르니 만큼 언제나 깨어 기도하고 잠시라도 방심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분명 방심하는 순간이 심판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늘 성령 안에서 온갖 기도와 간구를 올려 간청하십시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인내를 다하고 모든 성도들을 위하여 간구하며 깨어있으십시오”(에페6,18). 세상에 너무 푹 빠져 있어도 문제요, 세상을 무시해서도 안됩니다. 미래의 영생을 희망하는 만큼 조화로운 삶을 추구하시기 바랍니다.

▥ 청주교구 반영억 신부 - 2015년 11월 28일
  |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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