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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정부/서울] 늘 깨어 기도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조회수 | 1,056
작성일 | 15.11.24
[인천] 늘 깨어 기도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어제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아주 황당한 것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글쎄 옛날 만화책 한 권에 천만 원이라는 것입니다. 1961년에 만들어진 만화책이라는데, 지금은 그 원본도 찾을 수가 없어서 천만 원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6~70년대의 다른 만화책들도 있었는데, 그 만화책들 역시 적게는 오만 원에서 많게는 오백만 원까지의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그 만화책들 중에서 옛날에 우리 집에 있었던 만화책들도 보이더라는 것입니다. 만약 그 만화책을 지금도 가지고 있다면 횡재했을 텐데, 당시에 부모님께 구박받으면서 봤던 만화책이 지금 그러한 가치를 할 것이라고 누가 알았겠어요?

당시에는 정말로 필요 없고 하찮다고 생각했던 것이 지금 이러한 가치를 내고 있는 것을 보면서, 지금 소홀히 하고 있는 것 중에서 혹시 그런 것은 없는가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데 항상 사랑 그 자체라고 말을 하면서 정작 내 자신은 주님께 한없이 소홀히 했던 점, 주님께서 그토록 사랑 좀 하라고 성경을 통해서 또한 생활을 통해서 계속해서 말씀하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외면하였던 저의 모습에 크게 반성하게 되네요.

이 세속적인 삶을 강조하면서 정작 주님을 소홀히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지금 주님이 눈에 직접 보이지 않는다고, 주님께서 내게 어떤 말씀도 하지 않으신다고, 성경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책일 뿐이라고, 이러한 식으로 주님의 존재를 의심하고 부정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요? 그러나 당시에는 쓸모없다고 생각했던 만화책이 지금 그렇게 큰 가치를 보여주는 것처럼, 지금의 내 모습이 먼 훗날 주님 앞에 나아갈 때 큰 가치를 드러낼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종말에 대한 말씀을 하시면서 이러한 말로 경고하십니다.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늘 깨어 기도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주님과의 대화를 끊임없이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럼으로써 주님과 연결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지요. 바로 주님께서는 당신이야말로 구원의 통로이기에 절대로 그 연결의 끈을 놓지 말라고 늘 깨어 기도하라는 것이지요. 그렇지 않으면 악으로 쉽게 기울어 질 수 있으며,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주님과의 관계를 소홀히 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늘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특히 교회력으로 올해의 마지막에 서 있는 오늘, 기도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올 한 해 주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고 보살펴 주셨는지를 살펴보고, 다가오는 새해에는 더욱 더 주님과 하나 될 수 있는 은총의 시간이 되길 기도합니다.

▥ 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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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하면서

처음 신앙을 가질 때, 주님의 사랑을 매순간 느끼게 되고 주님 없이는 이 세상에 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마음이 조금씩 사라지게 되지요. 그러면서 일주일에 한 번 주일 미사 참석하는 것도 어려워합니다.

또한 이웃 사랑을 하라는 주님 말씀에 따라 미워하는 사람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그러한 마음도 사라집니다. 대신 저런 사람은 벌을 받아야 이 세상이 공평하다면서 그들을 내 나름대로 판단하고 단죄하는 데에만 최선을 다합니다. 이런 마음들이 생길 때가 바로 신앙의 권태기입니다.

오늘은 교회력으로 볼 때, 한 해를 마무리하는 날입니다. 왜냐하면 교회에서는 대림시기에 들어서면서 새해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1년의 제일 마지막 날인 12월 31일에 사람들은 ‘내가 일 년 동안 어떻게 살았나?’ 하고 반성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력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오늘, 우리들은 내 자신을 다시금 되돌아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나는 과연 얼마나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왔는가? 혹시 신앙의 권태기를 맞아서 주님을 멀리하며 살았던 것은 아닐까?”

▥ 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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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 21,34-36 (깨어 있어라)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그리고 그날이 너희를 덫처럼 갑자기 덮치지 않게 하여라. 그날은 온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들이닥칠 것이다.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사람의 아들 앞에 서고 싶습니다>

사람의 아들을 닮아 사람의 아들이 기뻐하실 모습으로 사람의 아들 앞에 서고 싶습니다. 버려진 이들 보듬는 따스한 두 손 정갈하게 모아사람의 아들 앞에 서고 싶습니다. 억울한 피눈물 닦아주는 깨끗한 마음 곱게 다듬어 사람의 아들 앞에 서고 싶습니다. 불의한 이들 깨우치는 당당하고 준엄한 목소리 지니고 사람의 아들 앞에 서고 싶습니다. 참혹한 세상 속 깊이 내달리는 힘찬 두 발로 한걸음에 나아가 사람의 아들 앞에 서고 싶습니다.

아름답고 거룩한 세상 이루려 쉼 없이 달려온 거친 숨소리 모아사람의 아들 앞에 서고 싶습니다. 나누고 나눠 목숨까지 내어주어 빈 몸 빈 마음 가볍게 날아올라 사람의 아들 앞에 서고 싶습니다온 삶으로 닮고 싶던 사람의 아들 만날 설렘 가득 머금고 사람의 아들 앞에 서고 싶습니다.

▥ 의정부교구 상지종(베르나르도) 신부 - 2015년 11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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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교회의 전례력으로 한 해를 마감하는 날입니다. 서양은 시간을 끝을 향해서 나가는 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로 그리고 미래를 향해서 흘러간다고 생각했습니다. 주변을 보면 이런 생각이 맞는 것도 같습니다. 아이는 청년이 되고, 청년은 노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꽃은 피고, 열매를 맺고, 지기 때문입니다. 나라를 보아도 그렇습니다. 큰 뜻을 품고 새로운 나라가 생겨나지만, 종국에는 끝이 있기 마련입니다. 로마, 몽고, 오스만 제국이 그랬습니다. 그러기에 인생은 어쩌면 덧없고, 허망한 것 같기도 합니다.

반면에 동양은 시간은 순환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봄이 가고 겨울이 오지만, 또다시 봄이 오기 때문입니다. 강물이 흘러 바다로 가지만 바다는 구름이 되어 강으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지구는 태양을 향해서 돌고, 태양은 우리 은하를 향해서 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會者定離’ 만난 사람은 헤어지기 마련이고, 헤어진 사람은 언제가 또 만날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마치 나무가 나이테를 가지듯이, 교회의 전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과 부활을 중심으로 순환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어 오셨음을 기억하고,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립니다. 그것이 바로 희망입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돌아보면 고마운 일들이 많습니다. 지친 몸을 편안하게 해 주는 침대, 베게가 그렇습니다. 아무런 불평 없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저를 받아 줍니다. 책상에 있는 탁상용 달력도 그렇습니다. 제게 날을 알려주고, 해야 할 일들이 있음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나와 세상을 연결해 주는 컴퓨터, 스마트 폰도 그렇습니다. 다리와 같아서 내가 세상을 행해서 나갈 수도 있고, 세상의 소식은 저를 향해서 들어옵니다. 나를 믿고 지지해 주는 직원들, 함께하는 수녀님과 신부님이 있습니다. 같은 사무실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어쩌면 태초부터 맺어주신 하느님의 사랑이라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늘 깨어 있으라.’고 하십니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는 것도 감사할 일입니다. 신앙의 눈을 뜨고 하느님을 찬양하는 것도 기쁨입니다. 희망의 눈을 뜨고 ‘이 모든 것 또한 지나가리라.’고 받아들이는 것도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기꺼운 마음으로 나누는 것도 행복입니다. 그러기에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큰 행복입니다. 신앙인이라는 말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몸을 팔았던 여인도, 눈이 멀었던 소경도, 나병환자도, 하혈하던 여인도, 중풍병자도, 듣지 못하던 사람도 예수님을 만나서 신앙인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살아서 참된 행복을 느꼈고, 영원한 삶을 보았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아주 간결하게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지키고 따른다면 그곳이 바로 ‘꽃자리’입니다. 우리가 일상의 근심으로 마음이 물러진다면 그곳이 바로 ‘가시방석’입니다. 우리가 하느님 앞에 바로 설 수 있도록 늘 깨어 기도한다면 그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새로운 시작을 다짐하면서 좋아하는 글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 서울대교구 조재형(가브리엘) 신부 - 2015년 11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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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으로 인해서 생명을 잃게 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제 주변에도 암으로 투병하시는 분이 계시기에 이 암이 얼마나 무서운 병인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NEJM: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라는 세계적으로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학술지에 아주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2012년에 발표되었습니다. 글쎄 ‘암’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더 무서운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말’이라고 합니다. 말만으로도 사람의 생명을 앗아갈 수가 있다는 것이지요. 그 예로 암이라는 사실을 통보받은 사람들은 이후 첫 일주일간 자살 위험도가 일반 사람에 비해 12.6배가 증가했고, 심장 문제로 인한 사망 위험도도 5.6배나 증가했다고 합니다. 자살도 또 심장마비 역시 심장이 멈춘 것을 말하지요. 중요한 것은 암이라는 병 때문에 심장이 멈춘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당신의 몸에 암이 생겼습니다.”라는 말을 듣고서 자살을 선택해서 스스로 심장을 멈추게 하거나, 심장이 알아서 스스로 멈춰 생명을 잃는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암보다 더 무서운 것은 ‘말’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이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말이 과연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서고 있었을까요? 사람을 살리는데 사용되었을까요? 아니면 죽이는데 사용되었을까요? 아쉽게도 사람을 죽이는데 이 말이 사용될 때가 많습니다. 각종 비판들, 그리고 이를 근거로 단죄를 내리는 말들이 사람을 살리지 못하고 죽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죽음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잘 살아서 하느님의 영광을 이 세상에 널리 펼치기를 원하십니다. 이를 위해서는 생명을 살리는 말, 사랑의 말, 희망의 말을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좋은 일들을 늘 뒤로만 미루고 있습니다. 순간적인 기분에 의존해서 좋은 말을 하기 보다는 나쁜 말로 상처와 아픔을 남기고 있을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언제 또 어디에서 사람을 살리는 말을 해야 하는 것일까요?

먼 훗날 주님 앞에 심판을 받게 될 때, 우리의 말과 행동에 대해서 책임을 지게 된다고 하지요. 사람을 죽이는 말과 행동을 한다면 분명히 우리가 원하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언제 사람을 살리는 말과 행동을 할 것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마지막 날을 잘 준비해야 함을 강조하십니다. 분명히 그 날은 오지만 그 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른다고 하셨지요. 따라서 늘 깨어서 잘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나약함과 부족함을 너무나 많이 간직하고 있는 우리이기에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여서 강조하시지요.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나의 말부터가 생명의 말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만큼 세상의 마지막 날을 잘 준비하는 것은 없으니까요.

▥ 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 2015년 11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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