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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회] 아름다운 심포니
조회수 | 937
작성일 | 15.11.24
[수도회] 아름다운 심포니

예수님은 흥청대며 먹고 마시는 일과 쓸데없는 세상 걱정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 일에 온통 마음을 빼앗기는 경우 어떤 것을 올바로 바라볼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집착과 애착 안에서 사는 삶은 눈을 밝혀 주지 못하기 때문에 주변을 바라보지 못하게 됩니다. 저는 음악을 잘 알지 못하지만 한때 클래식을 좋아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걸어 다니거나 차를 타거나 노상 베토벤의 심포니를 듣곤 했습니다. 음악에 빠져 있을 때 옆에 누가 있는지 관심조차 없었습니다. 행여나 이 멋진 순간을 방해받지나 않을까 오히려 불안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지인 한 분이 제게 “너 베토벤의 심포니를 좋아하는구나. 나는 네가 사람들이 사랑하면서 만들어내는 심포니가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깨달으면 더 좋겠어”라는 말을 던졌습니다. 그 순간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음악에 대한 애착 때문에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이웃 사랑이 만들어 내는 가장 완벽한 심포니를 놓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참된 사랑은 하느님께로부터 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언제나 아름다운 심포니가 울려 퍼집니다. 오늘 이 심포니를 들어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 살레시오회 백광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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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깨어 기도하여라. 이 문구는 2005년 나의 좌우명이었다. 여러 가지를 생각하다 올해도 역시 이 말씀을 선택했는데, 나의 이웃들은 때때로 이 말씀이 너무 어렵고 힘들지 않느냐고 한다. 참으로 자신을 살피고 예수님 안에서 늘 기도하고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기도한다는 것을 특정 장소나 시간에 무릎 꿇고 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에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집은 5대째 내려오는 천주교 집안이다. 그래서 이른 새벽 안방에 모여 아침기도로 하루를 시작했다. 삼종기도·조과·묵주기도·구일기도, 각종 기도문을 다 바치고 나면 거의 한 시간이 걸렸다. 내 자리는 늘 벽 쪽이었다. 가까이 베개가 있다면 끌어다가 허리에 끼우고 다시 달콤한 잠을 청하는데는 안성맞춤이기 때문이었다. 묵주기도의 선창은 돌아가면서 하는데 항상 졸다가 옆에 앉으신 어머니께서 꾹 찌르시면 잠시 깨어 선창하고, 임무가 완료되면 다시 잠에 떨어져 기도를 한 것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어린 시절에는 사실 기도하기가 싫었다. 그래서 빨리 기도문을 외우느라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가 ‘우리를 우해 빌샤’가 되기도 했다. 가끔 어머니께 이렇게 입으로 줄줄 외며 반복하고 성의 없이 하는 것이 기도가 되겠냐고 따지기도 했다. 그러면 어머니는 늘 웃기만 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 부모님이 보여주신 신앙생활의 모습이 나의 신앙을 성숙하게 했음을 절실히 느낀다. 가슴속에 기도하고자 하는 열정을 길러주고 기초를 놓아주신 두 분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가족이 모여서 함께하는 기도는 참으로 중요하다. 습관적으로라도 기도를 하다 보면 주님과 더욱 가까워짐을 느낀다. 요즘은 가족이 모일 시간이 없다고들 하지만 적어도 식사 전후 기도나 또는 텔레비전 시청 뒤끝이라도 짧게나마 기도를 하는 게 어떨까?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기도는 기도하면서 배운다”라고 하셨다.

▥ 오 마리아 수녀(성심수녀회)
  |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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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회] 사제로서의 깨어있음

인디언들은 11월을 이렇게 부른답니다.

11월
물이 나뭇잎으로 검어지는 달
산책하기에 알맞은 달
강물이 어는 달
만물을 거두어들이는 달
작은 곰의 달
기러기 날아가는 달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그런대로 지낼 만 했던 달, 11월도 벌써 저물어가고 있군요. 오늘은 교회 전례력 상으로 연말인 연중 제34주간 토요일입니다. 연말에 걸맞게 요즘 계속되는 복음내용은 주님의 날, 마지막 날을 잘 준비하라는 강경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한두 번도 아니고 계속해서 듣기 섬뜩한 말씀, 너무 지나치다 싶은 말씀 때문에 한 동안 꽤 부담스러우셨겠지요.

그러나 강경한 경고의 말씀 그 이면에는 빗나가는 자식들을 향한 아버지의 안타까운 마음, 자녀인 우리들이 죽음의 길을 벗어나 생명의 길로 빨리 돌아왔으면 하는 아버지의 간절한 마음이 담겨져 있다는 것을 기억하셔야 할 것입니다.

자녀인 우리들을 향한 사랑이 극진한 아버지시기에 때로 칭찬과 격려도 하시지만, 때로 매도 드시고, 혼도 내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질책은 우리가 제 갈 길을 제대로 걸어가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자주 망각합니다.

계속 회개하라, 정신 차리라는 주님 말씀도 있고 해서, 저도 최근 한 가지 작은 결심을 했습니다.

많이는 아니었지만 그간 홀짝 홀짝 조금씩 잘도 마시던 술을 끊는 것입니다. 한 몇 일 금단 현상인지 의욕도 없고, 두통이 오고 그러더니 또 몇 일 지나니 온 몸이 얼마나 가벼워졌는지 모릅니다. 덕분에 아이들과 축구시합을 하는데 펄펄 날아다녔습니다.

“흥청대며 먹고 마시는 일과 쓸데없는 세상 걱정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조심하여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더욱 새롭게, 그리고 감사하게 들려왔습니다.

요즘 자주 훌륭한 사목자들에 대한 글이나 이야기를 자주 접합니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신의 사목자들을 칭찬하는 신자들을 바라보니 저 역시 기뻤습니다. 반성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자상하고, 얼마나 인정이 많고, 또 얼마나 눈물이 많은지, 신자들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여기며 신자들과 동고동락하는 사제, 사제서품 이후 단 한 번도 식복사를 두지 않고 홀로 식사를 해결하는 사제, 미사 시작 1시간 전, 가장 먼저 성체 앞에 앉아 기도하는 사제, 조금의 돈이라도 생기면 어려운 사람들 찾아나서는 사제, 자신을 위해서는 단 한 푼의 돈도 쓰지 않는 사제, 죽기 살기로 자신의 축일행사를 마다하는 사제, 떠나갈 때 모든 것 그냥 두고, 모든 것 나눠주고 손가방 두 개만 챙겨서 떠나는 사제, 전철 잘 운행되는데 자가용은 무슨 자가용이냐며 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제...

오늘 그 훌륭한 선배 신부님들로부터 다시 한 번 사제로서의 깨어있음이 무엇인지 잘 배웠기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살레시오회 양승국 신부
  |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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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회]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하루하루 처음이자 마지막처럼, 평생처럼-

“그리고 그날이 너희를 덫처럼 갑자기 덮치지 않게 하여라. 그날은 온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들이닥칠 것이다.”(루카21,34ㄴ-35)

오늘 복음 중반부의 말씀입니다. 쏜살같이 흐르는 세월입니다. 오늘이 바로 그날입니다. 그러니 하루하루 처음이자 마지막처럼, 평생처럼 살아야 합니다. 연중 제34주일 그리스도왕 대축일에 이은 연중 마지막 성서주간에도 어울리는 복음입니다.

우리 요셉수도원은 요즘 연중피정중입니다. 늘 마지막 주간의 연중피정의 위치가 참 적절하고 절묘합니다. 성서주간과 겹치면서 성서의 정점이자 절정인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을 새롭게 불붙이는 절호의 기회도 됩니다. 특히 올해부터의 피정은 주일인 그리스도왕 대축일 저녁기도부터 시작하여 11.29일 대림1주일 미사로 끝나며 매해 그렇게 될 것입니다. 끝은 새로운 시작임을 알리는 연피정입니다.

그렇습니다. 끝은 시작입니다. 죽음이 새생명의 시작임과 같은 이치입니다. 배밭농사를 봐도 한 눈에 들어오는 진리입니다. 배수확이 끝나자 마자 배나무 전정剪定으로 농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무수히 쳐낸 크고 작은 가지들로 새롭게 꼴잡힌 나무들을 보며, 매일, 매달, 매년 우리도 삶의 전정剪定을 통해 새롭게 꼴잡아 가야 함을 깨닫습니다. 하여 삶의 전정을 위해 전례력으로 한해의 끝자락에 잡힌 연피정이 참 고맙습니다.

요 몇일 간은 방안과 집무실의 책과 책상 서랍을 정리했습니다. 사제수품후 26년간 거의 빠트리지 않고 써온 강론자료들로 가득한 책장이었습니다. 자신 생각에도 너무도 치열히 살아 온 삶에 저절로 터져나오는 신음이었습니다. 정말 하루를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봉헌해 온 미사요, 써온 강론들이요, 살아온 삶이었음을 확인하며 전의戰意를 새로이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언젠가의 그날이 아니라 오늘이 바로 그날입니다. 바로 제1독서 다니엘 마지막 말씀이 그대로 실현되는 그날의 오늘입니다. 오늘의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그리스도왕을 모심으로 이미 실현되기 시작한 제1독서 다니엘의 예언입니다.

“나라와 통치권과 온 천하 나라들의 위력이 지극히 높으신 분의 거룩한 백성에게 주어지리라. 그들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가 되고, 모든 통치자가 그들을 섬기고 복종하리라.”

참 원대하고 고무적인 꿈의 실현입니다. 바로 세례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가 그분의 거룩한 백성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의 오른쪽에 앉아 계신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사제직과 예언직과 왕직에 참여하고 있는 자랑스런 우리의 신원이며 이를 새롭게 확인하는 복된 미사시간입니다.

거룩한 피정기간이지만 역사를 공부하는 마음으로 ‘남한산성’(김훈)을 읽으며 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지금까지 계속되는 고난의 역사요, 지금 여기 이렇게 살아남았다는 것이 기적이요, 이스라엘 나라에 버금가는 하느님 섭리의 나라임을 깨닫습니다. 조선을 침략한 청태조 칸(누르하치)에 대한 묘사가 강렬했습니다.

‘칸은 붓을 들어서 문장을 쓰는 일이 없었으나, 문환관들의 붓놀림을 엄히 다스렸다. 칸은 고사를 끌어 대거나, 전적을 인용하는 문장을 금했다. 칸은 문체를 꾸며서 부화한 문장과 뜻이 수줍어서 은비한 문장과 말을 멀리 돌려서 우원한 문장을 먹으로 뭉갰고, 말을 구부려서 잔망스러운 문장과 말을 늘려서 게으른 문장을 꾸짖었다. 칸은 늘 말했다. “말을 접지 마라. 말을 구기지 마라. 말을 펴서 내질러라.”

지극히 간결담백한 꾸밈이 없는 글과 말을 선호한 칸임에 분명합니다. 삶은 글이자 말입니다. 간결담백한 삶에서 간결담백한 말과 글입니다. 삶의 전정을 통해 삶을 간결담백하게 하라 있는 연중 마지막 성서주간에 주님께서 주시는 세가지 가르침입니다.

첫째. 늘 깨어있는 삶(vigilant life)입니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듯이 늘 깨어있는 삶입니다. 깨어있음은 빛입니다. 깨어있음은 자유입니다. 깨어있을 때 허무와 무의미의 어둠은 물러나 비로소 자유롭고 건강한 영혼입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마음을 지키는 최선, 최상, 최고의 방법이 깨어있음입니다. ‘마음이 짓눌리지 않도록’ ‘마음이 물러지지 않도록’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성경번역도 다 달랐습니다만 마음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힘든 일인지 깨닫습니다.

둘째, 끊임없이 기도(constant prayer) 하는 것입니다.

저절로 깨어있는 삶이 아니라 끊임없는 기도가 있어 깨어있는 삶입니다. 끊임없는 기도가 목표하는 바도 깨어있는 삶입니다. 비움기도, 향심기도, 반추기도, 명상기도 등 성구를 반복하는 짧은 기도의 수행들 모두가 깨어있는 삶을 목표로 합니다.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주님 앞에 설 수 있는 힘의 내공을 쌓는 일이 바로 끊임없는 기도요, 매일의 미사임을 깨닫습니다. 그날을 앞당겨 오늘 미사중 사람의 아들이신 주님을 직면하는 우리들입니다.

셋째, 항구한 자기 훈련(consistent self-discipline)입니다.

깨어있음도, 기도도 자기훈련입니다. 세상에 훈련없이 되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제가 매일 쓰는 강론 역시 자기훈련입니다. 우리의 모든 반복되는 수행이 자기훈련입니다. 하루의 일과표가 우리의 자기훈련의 과정과 요소를 환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매일, 평생, 끊임없이, 규칙적으로 바치는 미사와 성무일도, 노동, 성경묵상 등 자기훈련 아닌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런 항구한 자기훈련이 있어 깨어있는 삶, 자유로운 삶입니다. 진정 믿는 이들은 주님의 영원한 훈련병들입니다.

주님은 매일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당신의 영원한 훈련병으로 깨어 기도하며 충실히, 항구히, 기쁘게 살게 해주십니다.

“주님, 눈이란 눈이 모두 당신을 바라보고, 당신은 제때에 먹을 것을 주시나이다.”(시편145,15참조). 아멘.

▥ 분도회 이수철(프란치스코) 신부 - 2015년 11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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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회] 자아도취 <루카 21, 34-36>

마약이나 술이나 쾌락이나 오락에 빠진 사람은 자아도취 상태에 사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주관만 있고 객관은 없는 사람입니다. 자기 생각에 갇혀 우월감이나 열등의식으로 무엇을 선택하지 못하고 의존하고, 불안하고, 안락함에 빠져 자기 밖을 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술에 취한 사람은 무서운 것 없고 자기 멋대로 행동하고 어떤 질서도 무시하고 나 외는 다른 것은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오늘 복음에 “방탕, 만취, 일상의 근심으로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라.” 이는 갑자기 덮치는 사건에 대처하라고 경고하십니다. 자신감, 우월감, 자기만족으로 타인을 생각하지 않고 무질서하게 살다 보면 정신없이 큰 불행에 빠지게 됩니다.

지나친 애착심이 사랑인 줄 알고 자식을 위하여 부정하는 사람이나 자기 문제에 빠져 옆도 돌아보지 않고 문제에 허덕이는 사람이나 물불을 가리지 못하고 덤벙 되거나 앞뒤를 가리지 못하고 먼저 가려고 하는 사람은 결국 교통사고를 당하는 사람과 같이 됩니다.

오늘 세상의 종말이 오고 죽음의 골짜기로 들어간다고 해도 깨어 기도하는 사람은 당황하지 않고 일어난 일에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아무리 큰일이라도 정신만 차리면 해결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자아도취에 빠지지 않으려면 깨어 자기반성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가난한 마음으로 겸손하고 온유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자기 생각 안에 갇히지 않고 밖을 보고 자기를 떠나 남을 볼 줄 알게 됩니다. 자기 분노, 소리 지름, 과격한 행동, 자기 과시, 자기 자랑, 고집불통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모든 사물의 본질은 무한한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인간은 사물에 대하여 한계가 있습니다. 자기도취에 취해 있는 사람은 자기는 능력자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다른 사람을 무능력자로 보고 무시하고, 억누르고,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내가 무시하는 사람은 내 행위보다 더 깊은 의미를 가지고 살아 있습니다. 나의 작은 행동으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 주지 말고 오로지 사랑의 신비 안에 자비와 일치와 친교의 올바른 관계를 맺고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야 주님이 오시는 날 주님 앞에 서 있는 사람으로 당당하게 주님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 성 베네딕도회 : 이석진(그레고리오) 신부 - 2015년 11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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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의 끝자락에서

저희 한국 살레시오회 출신 몽골 선교사인 이호열 시몬 신부님께서 며칠 전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이 주관한 개발원조의 날 기념행사 때 영예로운 해외봉사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올 여름 잠시 몽골을 방문했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신부님은 마치 몽골 아이들의 자상한 친 아버지 같았습니다. 신부님의 머릿속은 어떻게 하면 몽골 아이들을 기쁘게 해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몽골 아이들 삶의 질을 높여줄 수 있을까 하는 고민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런 신부님이기에 아이들은 하루 온 종일 신부님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역사상 유례없이 짧은 기간에 원조를 받던 국가에서 원조를 하는 국가로 탈바꿈한 나라가 우리나라라고 합니다. 그런데 경제적인 원조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원조가 인적 자원의 원조입니다. 하루하루 생사마저 보장되지 않는 위험한 분쟁 지역에서, 존재하는 것이라고는 혹독한 가난과 그로 인한 고통뿐인 세상의 끝에서 자신의 삶 전체를 바쳐 헌신하고 있는 수상자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정말이지 큰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대표로 두 분의 소감을 듣게 되었습니다. 말씀 한 말씀 한 말씀이 무뎌질 데로 무뎌진 제 마음을 크게 건드렸습니다.

“나이 마흔이 되었을 때 인생을 좀 더 보람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 고민하던 끝에 모든 것을 정리하고 길을 떠났습니다. 큰 걱정과 두려움이 앞섰지만 여기 오기를 정말 잘 했다고 생각합니다. 하느님께서 저를 이 오지의 전쟁터로 보내주신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사람을 세우는 일이 세상을 세우는 일이며 사람을 구하는 일이 세상을 구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은 생애도 그곳 형제들을 세우고 구하는 일에 전념하겠습니다.

해외봉사 시작할 때 내가 뭔가 그들에게 준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것이 큰 착각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실은 그들이 제 큰 사랑과 소중한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들 사이에서 다정한 친구가 되어 그들 사이에서 머물고 싶습니다.”

교회 전례력으로 우리는 한해의 끝자락에 서있습니다.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은총의 선물인 ‘새해’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고민할 때입니다. 세상의 끝으로 나아가 피한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젊음을 바치고 있는 분들과 견주어 보니 그저 내 발밑만을 바라보며 나만을 위해 허덕이며 살아온 지난 삶이 정말 부끄럽습니다.

마지막 날에 저희에게 건네시는 주님의 메시지도 오늘따라 가슴을 치게 만듭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루카 21장 34절)

바오로 사도는 이런 예수님의 말씀을 좀 더 구체적으로 풀어서 설명합니다. “밤이 물러가고 낮이 가까이 왔습니다. 그러니 어둠의 행실을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 대낮에 행동하듯이, 품위 있게 살아갑시다. 흥청대는 술잔치와 만취, 음탕과 방탕, 다툼과 시기 속에 살지 맙시다. 그 대신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십시오. 그리고 욕망을 채우려고 육신을 돌보는 일을 하지 마십시오.”(로마서 13장 12~13절)

우리가 전혀 준비하고 있지 않은 순간에 마치 섬광처럼 다가오실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몸과 마음으로 준비해야겠습니다. 지나온 한 해 동안의 내 삶을 진지하게 한번 성찰해봐야겠습니다. 진흙탕처럼 흐려진 영혼의 상태를 진정시켜야겠습니다. 아직도 용서와 화해가 이루어지지 않은 사람이나 사건이 있다면 하느님의 크신 자비에 맡겨드려야겠습니다. 좀 더 영적이고 좀 더 단정하고 품위 있는 하루를 살아가야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좀 더 자주 성체 앞으로 나아가야겠습니다.

▥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2015년 11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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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의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하느님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사람의 길은 믿음으로 봉헌하는 봉헌의 길입니다. 거스를 수없는 이 마지막 날을 하느님께 봉헌합니다. 삶의 순간순간이 하느님의 소중한 사랑뿐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부르시면 언제라도 떠날 수 밖에 없는 우리들입니다.

쌓인 눈을 털어내는 세찬 바람을 산위에서 만납니다. 산다는 것은 털어내는 것임을 산위의 세찬 바람을 통해 다시 뜨겁게 배웁니다. 일상으로 주어진 이 모든 시간은 결코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욕망의 일상이 아니라 근심의 일상이 아니라 하느님 사랑을 나누는 나눔의 시간입니다.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알게되는 우리의 어리석은 시간을 봉헌합니다.

우리의 앞길을 다시 열어주시는 하느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길은 봉헌의 길입니다. 시작과 끝이 모든 것을 봉헌합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2015년 11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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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회] 아름다운 심포니  [6] 937
1465   [인천/의정부/서울] 늘 깨어 기도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4] 979
1464   [대구/부산/청주] 늘 깨어 기도하라  [4] 1091
1463   (녹) 연중 제34주간 토요일 독서와 복음 (깨어 있어라)  [1] 2602
1462   [수도회] 십자가  [2] 675
1461   [인천/의정부/서울] 우리들의 일상 삶 안에 깨우침을 주시는 하느님  [3] 1161
1460   [부산/대구/청주] 오늘 주님께서 하늘과 땅이 사라질지라도  [2] 1018
1459   (녹) 연중 제34주간 금요일 독서와 복음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옴)  [2] 2643
1458   [수도회] 구원받을 때  [4] 742
1457   [부산] 징벌의 날  [1] 764
1456   [인천/서울] “몸을 일으켜 머리를 들어라.”  [2] 916
1455   (녹) 연중 제34주간 목요일 독서와 복음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2] 2897
1454   [수도회] 바빠요 바빠  [5] 801
1453   [인천/서울] 중요한 것은 결과 자체가 아닙니다.  [3] 810
1452   [부산/청주/수원] “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3] 908
1451   (녹) 연중 제34주간 수요일 독서와 복음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4] 2767
1450   [수도회] 천재지변  [3] 689
1449   [대구/청주/수원] 세상의 종말이 있지만  [2] 833
1448   [인천/서울] 종말 언제 올지  [3] 793
1447   (녹) 연중 제34주간 화요일 독서와 복음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3] 2763
1 [2][3][4][5][6][7][8][9][10]..[74]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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