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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 연중 제24주간 화요일 독서와 복음 (젊은이야, 일어나라)
조회수 | 2,437
작성일 | 05.09.13
▥ 독서 : 감독은 나무랄 데가 없어야 합니다. 봉사자들도 마찬가지로 깨끗한 양심으로 믿음의 신비를 간직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 사도 바오로의 티모테오 1서 3,1-13

사랑하는 그대여, 1 이 말은 확실합니다. 어떤 사람이 감독 직분을 맡고 싶어 한다면 훌륭한 직무를 바라는 것입니다.
2 그러므로 감독은 나무랄 데가 없어야 하고 한 아내의 충실한 남편이어야 하며, 절제할 줄 알고 신중하고 단정하며 손님을 잘 대접하고 또 가르치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3 술꾼이나 난폭한 사람이 아니라, 관대하고 온순하고 돈 욕심이 없으며 4 자기 집안을 잘 이끌고 아주 품위 있게 자녀들을 순종시키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5 자기 집안을 이끌 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하느님의 교회를 돌볼 수 있겠습니까?
6 새로 입교한 사람도 안 됩니다. 교만해져서 악마가 받는 심판에 떨어질 위험이 있습니다. 7 또한 바깥 사람들에게도 좋은 평판을 받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비방을 받거나 악마의 올가미에 걸리지 않습니다.
8 봉사자들도 마찬가지로 품위가 있어야 하고, 한 입으로 두말하지 않으며, 술에 빠져서도 안 되고 부정한 이익을 탐내서도 안 됩니다. 9 그리고 깨끗한 양심으로 믿음의 신비를 간직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10 또 그들을 먼저 시험해 보고 나서 흠잡을 데가 없는 경우에만 봉사직을 수행하게 해야 합니다.
11 여자들도 마찬가지로 품위가 있어야 하고, 남을 험담하지 않으며, 절제할 줄 알고 모든 일에 성실해야 합니다.
12 봉사자들은 한 아내의 충실한 남편이어야 하고, 자녀들과 자기 집안을 잘 이끄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13 사실 봉사직을 훌륭히 수행하는 이들은 좋은 명성을 얻고,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한 믿음에 더욱 큰 확신을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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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 :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 루카 7,11-17

그때에 11 예수님께서 나인이라는 고을에 가셨다. 제자들과 많은 군중도 그분과 함께 갔다. 12 예수님께서 그 고을 성문에 가까이 이르셨을 때, 마침 사람들이 죽은 이를 메고 나오는데, 그는 외아들이고 그 어머니는 과부였다. 고을 사람들이 큰 무리를 지어 그 과부와 함께 가고 있었다.
13 주님께서는 그 과부를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에게, “울지 마라.” 하고 이르시고는, 14 앞으로 나아가 관에 손을 대시자 메고 가던 이들이 멈추어 섰다.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15 그러자 죽은 이가 일어나 앉아서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그 어머니에게 돌려주셨다.
16 사람들은 모두 두려움에 사로잡혀 하느님을 찬양하며, “우리 가운데에 큰 예언자가 나타났다.”, 또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다.” 하고 말하였다.
17 예수님의 이 이야기가 온 유다와 그 둘레 온 지방에 퍼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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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아 콤플렉스’라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문제를 자신이 해결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힌 경우를 일컫는 말입니다. 무언가 선한 일을 하려는 동기는 옳지만, ‘자신’이 그것을 해야 할 주체라는 생각은 교만입니다. 사실 우리가 해결의 주체가 되는 것은 위험합니다. 모든 문제의 해결은 ‘내’가 아니라 ‘주님’께서 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이 이를 잘 보여 줍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외아들의 상여를 뒤따라가는 과부를 만났습니다. 그분께서는 그녀를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관에 손을 대시며 장례 행렬을 멈추게 하십니다. 그리고 죽은 아들을 살리십니다. 이러한 행동은 당시의 사고방식으로는 상당히 파격적입니다. 율법에 따르면, 죽은 시신이나 관에 손을 대는 사람은 부정하게 됩니다(민수 19,11-22 참조). 또한 당시의 관습에 따르면, 장례 행렬을 가로막는 것은 상당한 결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경우는 전혀 다른 결과로 드러납니다. 그분께서 부정하게 되신 것이 아니라 부정함의 원천인 시신에 생명을 불어넣으셨고, 결례를 일으키신 것이 아니라 그곳의 모든 사람이 하느님을 찬양하게 하셨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우리가 주체가 되면 우리 자신이 부정하게 되기 쉽습니다.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결례를 일으키기 십상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하시면 달라집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오로지 주님께서 하시는 대로 따르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체가 되시어 우리를 도구로 사용하고자 하실 때, 그저 그분께서 시키시는 일을 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몫입니다.

► 매일미사 2013년 9월
  |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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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부둣가에서 물에 빠져 죽어 가는 사람을 구해 주지 않고 구경만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수영도 잘하는 건장한 사람이었습니다. 숨진 사람의 가족이 그를 신고하여 재판이 열렸습니다. 그러나 무죄 판결을 받았다고 합니다. 죽어 가는 사람들을 일일이 다 구해 주어야 할 의무는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다는 것이 사회에서는 감옥에 가야 할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에서는 이런 상황이라면 유죄 판결이 내려질 것입니다. 심판의 기준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아무 이유 없이 과부의 외아들을 살려 주십니다.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가엾은 마음”이 드셨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이를 보고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다.”고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방관하지 않으십니다. 주위에서 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가엾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 가엾은 마음이 바로 하늘에 계시던 하느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시게 만든 힘인 것입니다.

이 “가엾은 마음”이 나의 도움이 필요한 곳으로 나를 움직이게 합니다. 사랑하면 움직일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에서 나의 도움이 필요한 수많은 사람이 죽어 가고 있습니다. 그들을 방관한다면 주님 앞에 가서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요한 사도는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1요한 4,20)라고 말합니다.

방관도 살인입니다. 나에게 “가엾은 마음”이 있는지요? 내 주위에는 가난한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나는 어떤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움직이고 내 주위에는 어떤 사람들이 많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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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매일미사 2019년 9월 17일
  |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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