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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 연중 제1주간 월요일 독서와 복음 (회개하고 믿어라-제자를 부름)
조회수 | 1,461
작성일 | 09.01.12
제1독서 : 하느님께서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장 1절-6절

1 하느님께서 예전에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여러 번에 걸쳐 여러 가지 방식으로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지만,
2 이 마지막 때에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드님을 만물의 상속자로 삼으셨을 뿐만 아니라, 그분을 통하여 온 세상을 만들기까지 하셨습니다.
3 아드님은 하느님 영광의 광채이시며 하느님 본질의 모상으로서, 만물을 당신의 강력한 말씀으로 지탱하십니다. 그분께서 죄를 깨끗이 없애신 다음, 하늘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4 그분께서는 천사들보다 뛰어난 이름을 상속받으시어, 그만큼 그들보다 위대하게 되셨습니다.
5 하느님께서 천사들 가운데 그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 하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까? 또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되리라.” 하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까?
6 또 맏아드님을 저세상에 데리고 들어가실 때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천사들은 모두 그에게 경배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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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 1장 14절-20절

14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시어,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15 이렇게 말씀하셨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16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호수에 그물을 던지고 있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를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17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18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19 예수님께서 조금 더 가시다가,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는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을 보시고,
20 곧바로 그들을 부르셨다. 그러자 그들은 아버지 제베대오를 삯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그분을 따라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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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의 한 명문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돌아온 사람이 대학에 교수직을 찾고 있었습니다. 적당한 대학의 교수로 살아도 좋을 것 같은데, 그는 꼭 일류 대학의 교수직을 고집하는 것이었습니다. 개인적인 명예도 있겠지만, 유능한 제자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바라는 좋은 연구 성과를 내려면 능력 있는 제자가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스승이라면 누구나 유능한 제자를 두기를 바랄 것입니다. 자신의 사상이든 기술이든, 능력 있는 제자가 물려받아 계승해 가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예수님만은 다르셨습니다. 제자를 부르실 때 그들의 능력도, 배경도 묻지 않으십니다. 그저 ‘보시고’ 당신의 제자로 삼으십니다. 그분께는 어부든 세리든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고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은 우리의 능력 때문에 부름 받은 것이 아닙니다. 한발 더 나아가, 교회의 봉사자나 사제나 수도자로 부름 받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주님의 일을 하는 데 자신이 가진 재능과 배경들을 오히려 쓰레기로 여겼습니다(필리 3,8 참조).

우리가 ‘자신의 능력과 재능을 내세울 때’는
자기 자신의 일을 하지만, 오히려 바오로 사도처럼 ‘우리의 약함을 자랑할 때’(2코린 11,30 참조)는 주님께서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봉사자로 일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주님, 저는 부족한 죄인일 뿐이지만, 당신의 도구로 써 주십시오.” 하는 겸손한 응답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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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2011년 1월 10일
  |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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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서 가장 눈에 들어온 말이 있습니다.
두 번이나 나오는 ‘곧 바로’라는 낱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시몬과 안드레아를 부르실 때 그들은 ‘곧바로’ 응답합니다.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실 때에도 이 둘 역시 ‘곧바로’ 그물을 버립니다. 사실 다른 복음과 달리 마르코 복음에서 이 낱말을 많이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철수는 무슨 일에서나 뒤로 미루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어느 날 족제비가 울타리 구멍 사이로 고개를 들이밀고 닭장을 노려보았습니다. 철수는 눈을 부릅뜨고 족제비를 바라보면서 말했습니다. “이놈, 우리 집에 들어오기만 해 봐!”

족제비는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울타리 구멍을 통과해 닭장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철수는 주먹을 불끈 쥐면서 말했습니다. “족제비 이놈, 닭장에 들어가기만 해 봐라.”

족제비가 거리낄 게 없다는 듯이 닭장 안에 들어가자, 철수는 몹시 화내며 말했습니다. “저런 겁 없는 놈을 봤나? 닭을 물고 가기만 해 봐라.”

그러나 족제비는 닭을 낚아채 울타리 구멍을 유유히 빠져나갔습니다. 족제비가 멀리 사라져 가는 모습을 보면서 철수는 씩씩거리며 소리를 질렀답니다. “저런 나쁜 놈 같으니! 다시 나타나기만 하면 그냥 두지 않을 거야.”

우리는 어떻습니까?
혹시 철수처럼 ‘다음에 하자’, ‘내일 하자’, ‘여건이 되면 하자’ 하며 미루는 일이 많지 않은지요? 예수님께서는 순간순간 우리를 부르십니다. 이 부르심에 ‘곧바로’ 응답하지 못한 채 미적거리는 동안, 그 부르심에 담긴 소중한 선물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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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2013년 1월 14일
  |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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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과 흙으로 된 담장이 고색창연하여 아름답기 그지없다.
걸음을 멈추고 바라보는데 담 구멍 사이에 뱀 허물이 기다랗게 걸려 있다. 뱀은 봄마다 허물을 벗으면서 성장한다. 허물을 벗는 것들은 많다. 기어 다니던 애벌레가 나비가 되어 날아가는 것을 보면 어쩜 저런 자연의 섭리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신비 자체다. 아름답고 경탄스럽다. 지상과 천상의 세계는 일체 공간임을 생각하게 된다.

곤충은 자연의 질서로 번신(翻身)하지만
사람은 의식의 각성과 회개로 변신(變身)한다. 어떤 교우는 자수성가하여 남부럽지 않게 살고는 있는데 자신의 가족과 가정밖에 모르는, 이기적이고 인색하기 그지없었던 자다. 그가 본당의 ‘선종 봉사회’에 가입해 주검을 자주 대하면서 큰 각성을 얻었던가 보다. 어려운 노인들을 찾아다니면서 방도 고쳐 주고 희사도 했다. 밝고 툭 터진 얼굴로 성당에 와서는 교우들에게 웃음을 전염시킨다.

사람이 변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생의 목적이 생겼다는 말이 될 것이다. 살아가는 목표와 이유가 뚜렷해지면 영생의 길을 깨치게 되어 몸도 마음도 변하게 된다. 그것을 ‘회개’라 할 것이다. 내 얼굴도, 이름 석 자도 어제 그대로지만 이제는 예수님 제자의 삶으로 갈아탔다.

어제까지는 절름거림이었지만 이제 껑충거림으로 간다.
직접 경험해 보아야 비로소 삶의 기쁨이 무엇인지 느낄 것이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기’ 때문이다. 내가 어부임은 변함없지만 이제는 사람 낚는 어부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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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2015년 1월 12일
  |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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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첫 사도들을 부르십니다. 그들은 물고기를 잡는 모든 도구와 배를 버리고 그리스도를 따릅니다. 이는 세상 사람들의 시각으로는 참으로 어리석은 결정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누가 그들의 삶이 헛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그들이 어부로만 평생을 살았다면 죽음을 흐뭇하게 맞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죽어서도 모든 이에게 의미 있는 가치를 추구하는 삶이 가장 가치 있는 삶입니다.

어떤 사람이든 물건을 만들 때는 반드시 그 목적을 가지고 만듭니다. 연필 하나도, 의자 하나도 목적 없이 만들어진 물건은 없습니다. 그리고 그 만들어진 목적대로 잘 사용되면, 사람은 그것을 사랑하고 그것에 고마움을 느낍니다. 인간도 하느님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창조 목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 목적대로 인간이 살아야 주님께 사랑도 받고 보상도 받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그 창조 목적을 쉼 없이 알려 주셨습니다(히브 1,1-2 참조).

예수님께서는 오늘 제자들을 부르시며, 인간의 창조 목적이 물고기를 잡는 삶이 아니라 ‘사람을 낚는 삶’이라고 알려 주십니다. 사람을 낚는 삶이란 ‘사랑의 삶’을 의미합니다. 종교를 막론하고 세상 모든 위인은 다 사랑을 실천한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처음부터 주님께서 말씀하셨고 부르셨던 유일한 삶의 의미입니다.

마지막 때에 주님 앞에 물고기를 가지고 가는 사람과 정처 없이 떠도는 사람의 영혼을 데려가는 두 종류의 사람만 있을 것입니다. 누가 받아들여질지는 명확합니다. 이제 물고기 잡던 그물을 버리고 말씀으로 사람을 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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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매일미사 2019년 1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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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예수님의 복음 선포는 이천 년 전에 한 번 있었던 사건이 아닌 바로 지금 우리에게도 선포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물고기를 잡던 어부들에게 당신을 따라오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또한 부르시는 말씀입니다. 제자들은 그들의 생계 수단인 그물과 배를 버리고 마지막에는 그들의 아버지까지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릅니다.

제자들이 버린 것은
자신의 생계 수단만이 아닙니다. 그들은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미지의 삶에 자신의 모든 것을 던졌기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물질뿐 아니라 자기 자신을 기준으로 하는 삶 또한 내려놓았습니다.

이제 제자들은
소유의 삶이 아니라 존재의 삶을 살고자 합니다. 소유욕에 따른 소비보다 존재로 나타나는 나눔의 삶, 하느님 나라의 복음의 삶을 삽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은 영성가들과 기도하는 이들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초대받은 삶입니다.

우리도 제자들처럼
모든 두려움, 걱정, 인간적인 나약함을 내려놓고, 예수님을 기준으로 하는 복음의 삶을 살아 제자들처럼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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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교구 신우식 토마스 신부
매일미사 2021년 1월 11일
  |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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