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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 연중 제1주간 화요일 독서와 복음 (권위를 가지고 사람들을 가르치심)
조회수 | 1,661
작성일 | 09.01.12
제1독서 : 하느님께서 구원의 영도자를 고난으로 완전하게 만드신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히브리서 2장 5절-12절

5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지금 말하고 있는, 곧 앞으로 올 세상을 천사들의 지배 아래 두신 것이 아닙니다.
6 어떤 이가 어디에선가 이렇게 증언하였습니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그를 기억해 주십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그를 돌보아 주십니까?
7 천사들보다 잠깐 낮추셨다가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워 주시고,
8 만물을 그의 발아래 두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만물을 그의 지배 아래 두시면서, 그 아래 들지 않는 것은 하나도 남겨 놓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보기에는 만물이 아직도 그의 지배 아래 들지 않았습니다.
9 그러나 우리는 “천사들보다 잠깐 낮아지셨다가” 죽음의 고난을 통하여 “영광과 존귀의 관을 쓰신” 예수님을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겪으셔야 했습니다.
10 만물은 하느님을 위하여 또 그분을 통하여 존재합니다. 이러한 하느님께서 많은 자녀들을 영광으로 이끌어 들이시면서, 그들을 위한 구원의 영도자를 고난으로 완전하게 만드신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11 사람들을 거룩하게 해 주시는 분이나 거룩하게 되는 사람들이나 모두 한 분에게서 나왔습니다. 그러한 까닭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형제라고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12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저는 당신 이름을 제 형제들에게 전하고, 모임 한가운데에서 당신을 찬양하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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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 예수님께서는 권위를 가지고 사람들을 가르치셨다.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 1장 21ㄴ절-28절

카파르나움 마을에서,
21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
22 사람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께서 율법 학자들과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23 마침 그 회당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소리를 지르며
24 말하였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25 예수님께서 그에게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꾸짖疸시니,
26 더러운 영은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켜 놓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갔다.
27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놀라,“이게 어찌 된 일이냐?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 저이가 더러운 영들에게 명령하니 그것들도 복종하는구나.” 하며 서로 물어보았다.
28 그리하여 그분의 소문이 곧바로 갈릴래아 주변 모든 지방에 두루 퍼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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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투명한 미래가 두렵습니다.
하는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습니다. 삶이 혼란스럽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럴 때 받는 유혹이 족집게 점쟁이를 찾는 일입니다. 미래를 예측해 주고 자신의 가려운 데를 긁어 주리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온갖 잡다한 영을 통하여 우리 운명을 점쳐 보고, 지푸라기라도 잡듯 그곳에라도 의지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잡다한 영들에게 의지하면 할수록, 결국은 사람들의 삶을 더 혼란스럽게 하고 불안으로 몰아넣습니다.

사람들의 불안과 두려움,
세속적 욕심과 우상 숭배는 더러운 영들의 좋은 은신처가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권위와 능력을 드러내시며 이런 더러운 영들을 쫓아내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더러운 영이 예수님을 보고 아우성을 치는 이유도, 세상에서 그들의 자리를 빼앗길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궁극적으로
우리 인생을 아름답게 하시고 참되게 하시는 분은 진리의 원천이신 하느님이십니다. 삶이 불안하고 혼란스러울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모든 것을 선으로 이끄시는 그분께 둔 신뢰를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더 자주 미사 참례를 하고, 성체 조배를 하며, 고해성사를 통하여 자신을 더욱 깨끗이 정화해서 주님의 능력을 내 안에 모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미래를 몰라서 삶이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 신뢰와 희망을 두지 않아서 불안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보이지 않는 미래를 주신 이유는, 우리가 하루하루를 새롭게 창조해 가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미래는 설렘과 기다림의 세계로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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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2011년 1월 11일
  |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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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는 ‘권위’라는 말이 두 번 나옵니다.
대개 권위라는 말을 부정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나오는 권위는 좋은 의미입니다. ‘예수님께 권위가 있었다.’는 표현이 곧잘 나옵니다. 우리가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권위’는 좋으나, ‘권위적’은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는 권위가 있었지만,
그분께서 권위적이지는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분께서는 겸손하셨습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철부지 어린이처럼 기도하시면서도, 사람들 앞에서는 언행일치의 삶을 보여 주셨습니다. 제자들을 훈계하시되 그들에게 무조건적으로 복종하라고 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오늘날은 ‘권위적인’ 사람이 많아서 문제이기도 하지만,
가지고 있는 권위가 실추되어서도 문제가 생기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때 권위적이지 않으면서 권위를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을까요? 아버지의 권위, 어머니의 권위, 교사의 권위, 어른의 권위, 신앙인의 권위 등 말입니다.

예를 들어 생각해 봅시다.
학자의 권위는 어디에서 옵니까? 논리적이면서 근거 있는 지식에서 옵니다. 건축가의 권위는 어디에서 옵니까? 풍부한 경험과 능력 있는 기술에서 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권위는 어디에서 왔을까요? 하느님 아버지의 권위에 절대적으로 따르는 거룩한 순종에서 나왔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받은 권위가 제대로 살아나려면 기본적으로 우리 자신이 하느님 아버지의 영광스러운 권위를 존중하고, 이에 절대적으로 순종하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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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2013년 1월 15일
  |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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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는데
악령 들린 자가 벌떡 일어나 항의했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예수님께서는 호통치셨다. “그 사람에게서 (썩) 나가라.”

오늘날 본당 안에서
공동체를 분열시키려 하거나 사제의 강론을 곡해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 것 같다. 신자들의 영혼을 잘 이끌고 공동체의 일치를 인도하는 교회의 책임이 무겁게 느껴지는 때이다. 오늘날 악령은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침투할까? 주님의 말씀이 더욱 무겁게 느껴진다. “악령아, 그 사람에게서 썩 나가거라!”

우리 한국 사회는 이념과 지역, 빈부의 갈등이 극심하다.
불행이다. 동포임에도 남북이 서로 원수로 적대해야 한다. ‘퍼 주기’다, ‘종북 좌파’다 매도한다. 영남과 호남이 정치적으로 갈라져 생각 다르기가 첨예하다. 투자 이윤은 경제 성장률이나 물가보다 훨씬 더 많이 보장받는다. 자본주의 법칙이다.

전 국민이 일치된 의식이 있다면,
‘소비문화의 노예’로 살아가는 것 하나다. 사람이 만든 기술 제품은 사람의 삶을 바꾸어 놓는다. 육신을 병들게 하고, 변종시키거나 퇴화시키며 정신세계와 공동체성을 해체시킨다. 자발적 노예의 삶이다.

이토록 철저하게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힘은 무엇일까?
보이지 않으면서도 실제로 나의 의식을 지배하는 것을 악령이라 한다. 우리 시대에 소비문화의 악령에게서 자유로운 이는 없다. 악령 붙은 몸으로 주일 미사에 와서 성체를 모시게 된다. 예수님께서 분노하시니 축복이 없을 것이다. 또한 우리 시대의 복음 선포자이며 악령 추방의 치유사라는 자의식을 갖지 못한다면 예수님의 사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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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2015년 1월 13일
  |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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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권위 있는 가르침을 사람들에게 주시면서 ‘더러운 영’에 사로잡힌 사람을 풀어 주십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하느님의 말씀으로부터 옵니다. 그 말씀은 진실하시고 거짓이 없으시며 악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만물이 그분의 말씀 앞에 무릎 꿇고 진리임을 고백하기에 권위가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삶은 불투명하고 불안하기에 누구의 권위를 빌려 살고자 합니다. 진리를 찾는 사람은 하느님의 말씀에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이와는 반대로, 거짓 영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그 영의 지시에 따라 살아갑니다. 세속의 사람들은 잡다한 영들에게 의지하고 예속되어 더욱 혼란스러운 삶을 살게 될 뿐만 아니라 종국에는 파멸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가 미움과 시기, 질투와 방탕, 우상 숭배에 빠져 있을 때, 우리의 영혼은 더러운 영들의 은신처가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를 때 우리 영혼은 정화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신적 권위와 능력으로 더러운 영들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해방시키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잠시 악령의 지배를 받게 되더라도 우리를 구원해 주십니다. 악의 세력은 끊임없이 우리의 영혼을 흔들어 대며 지배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며 우리의 영혼을 지켜 주시는 예수님에게 나아가야 합니다. 미사 참례와 성체 조배, 고해성사로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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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 류한영 베드로 신부
매일미사 2017년 1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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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은 권위에 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 세상이 주는 권위인 율법 학자라는 칭호를 받은 이들보다 훨씬 큰 권위를 보이셨습니다. 사람들은 그 권위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의아해 했습니다.

그런데 때마침 회당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있었습니다. 권위는 지배권을 의미하는데 참다운 권위는 나쁜 영까지도 지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귀를 쫓아내시면서 왜 율법 학자들과는 다른 권위를 지니셨는지 보여 주십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보자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라고 소리칩니다. 이 얼마나 큰 칭찬이자 영광입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꾸짖으십니다. 이것이 참다운 권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칭찬에 휘둘리지 않으십니다.

권위를 가지려면 다른 권력에 눌려서는 안 됩니다. 명예도 권력이고 돈도 권력입니다. 저마다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판사가 돈을 좋아한다면, 누군가 큰 뇌물을 바칠 때 권위 있는 판결을 내리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이렇듯 바리사이들이나 율법 학자들은 세상 것을 좋아하는 이들이었기에, 아무리 좋은 가르침을 주어도 권위가 있을 수 없었던 반면, 예수님께서는 세상 권력과 권위 위에 서시어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우셨기에, 하늘에서 오는 힘을 행사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참으로 권위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오늘 독서 말씀처럼 주님께서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워 주셨음’을 믿고 ‘만물을 자신의 발아래 두어’ 세상 힘에 휩쓸림이 없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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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매일미사 2019년 1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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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이 땅에 오신 분이십니다. 오늘 독서가 전하고 있듯 우리는 하느님께서 “천사들보다 잠깐 낮추셨다가,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워 주신” 존재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뜻 안에 살지만 자주 하느님의 뜻을 잊고 정반대로 살아가면서 주님께 구원을 청하기도 합니다.

더러운 영이 심어 놓은 많은 것들 속에서
우리는 고통스러워하고 두려워하며 어둠 속으로 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권위 있는 말씀과 행동으로 더러운 영에 사로잡힌 이를 구원하시며, 당신을 우리에게 드러내 보이십니다. 더러운 영은 우리를 하느님에게서 떨어지게 하며, 주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의 삶과 멀어지게 합니다.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예수님의 신원에 관하여 이렇게 외칩니다.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사실 이 외침은 더러운 영이 주님께 한 신앙 고백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라고 신앙 고백을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고백하였고, 더러운 영은 하느님을 알아보았지만 두려움 속에서 예수님의 신원을 외칩니다.

더러운 영은 우리 인간을 하느님께 나아가지 못하게 막고,
멀어지게 합니다. 하느님을 믿기보다 세상의 많은 물질과 자기 자신을 믿게 만듭니다.

악은 끊임없이 우리를 재촉하여
하느님을 사랑하기보다 세상을 사랑하고, 하느님을 두려워하게 만들어 그분에게서 도망치게 합니다. 하느님 나라에 살기를 희망하며 하느님을 향하여 나아가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으로 대하지 않고, 모든 것을 주님께 내어 드리며 그분을 사랑 가득한 분으로 여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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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교구 신우식 토마스 신부
매일미사 2021년 1월 12일
  |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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