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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서울]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조회수 | 1,721
작성일 | 09.01.12
[인천]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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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부터 정력적으로 사업에 몰두하던 형제님이 중년에 들어서자 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위궤양 증세로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그는 일을 하다가 그만 피를 토하고 쓰러져 큰 대학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지요. 의사는 그의 병세가 심각한 지경이라는 진단과 함께 매일같이 위세척을 하도록 했습니다. 그에게 주어진 식사라고는 1시간마다 알칼리성 분말과 반 스푼 정도의 크림과 우유 반 컵 정도였지요. 이런 치료는 몇 달 동안 지루하게 계속되었습니다. 그동안 이 형제님의 체중은 79킬로그램에서 40킬로그램까지 내려갔지요. 하지만 이런 혹독한 치료에도 그의 병세에는 호전된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당황한 의사들은 좀 더 정밀한 검사를 한 후에 그에게 완치될 가망이 없다는 충격적인 선고를 내렸습니다. 이 형제는 눈앞에 캄캄했지요.

‘이제 내 앞에 죽음밖에 남아 있는 것이 없다니…….’

하지만 그는 곧 마음을 새롭게 다졌습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진정으로 원하던 일을 아낌없이 해보겠다는 다짐도 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던 중에 젊은 날 세계 일주를 해보고 싶었던 꿈이 되살아났습니다. 그는 의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달라는 부탁을 남기고 여행을 시작하였지요.

여행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여태까지 복용했던 약이나 위세척의 횟수를 차츰 줄이고 먹고 싶었던 여러 가지 음식들을 먹어보았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죽음을 초월한 그에게 장애될 것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지요. 마음껏 스스로의 자유를 즐기고 아름다움을 느끼면서 소망하던 낯선 세계로의 길을 떠났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사업상의 문제들이 부질없는 걱정거리였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더욱 더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었지요.

세계 일주 여행이 끝났을 때 그는 죽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위궤양은 씻은 듯 사라졌고 오히려 체중이 50킬로그램 정도 늘어난 건강한 몸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지금이라는 현재에서 보다 더 나은 생활을 위해 노력을 했고, 그 결과 죽음을 이겨낼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내게 다가온 고통과 시련에 그냥 주저앉을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오늘은 연중 시기의 첫 날입니다. 이 연중 시기의 첫 날, 주님께서는 오늘 복음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그 말은 언제 하라는 것일까요? 바로 지금이라는 현재에 당장 행하라는 것이지요. 그것이 내가 가지고 있는 고통과 시련을 이길 수 있는 힘이기에, 그리고 지금의 상황에서 더 나은 상황으로 바꿀 수 있는 힘이기에 지금 당장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당장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떠올려 봅시다. 주님께서는 안일한 마음을 가지고 대충 대충 살아가는 우리들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최선을 다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을 원하신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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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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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길을 얻었는가?

예수님을 만났다 함은 길을 만난 것입니다. 참된 행복의 길, 평화로운 인생길, 조화로운 삶의 길입니다. 내 앞에 길이 있음은 내가 여기 말고 다른 곳으로 가야 함을 의미합니다. 찾아야 할 삶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하느님은 내게 생명을 주시고 손을 떼신 것이 아니라 매순간 삶을 이끄십니다.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를 외치기만 하지 않고 친히 그 영접의 길로 인도하시고자 우리를 부릅니다. 어부는 고기를 잡고 농부는 곡식을 거둡니다.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 필요한 물자를 얻으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물을 들고 바다로 가고 소를 몰고 밭으로 가고 승용차를 몰고 회사로 갑니다. 한결같이 피곤하지만 가족의 행복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출정입니다. 그러나 지고의 행복이란 바로 ‘하느님 나라’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럴 필요가 없어집니다. 예수, 그분께서 행복의 모든 과정을 생략하시고 직접 하느님 나라로 인도하시겠다고 초대하시기 때문입니다.

부르심에 응답한 자는 자신에게 행복의 도구였던 어선도 그물도 버렸는지 챙겼는지 무상해집니다. 그분을 따라나서는 것만이 중요할 뿐. 그럼에도 즉시 따라나서지 못한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가까운 행복을 두고 왜 아직도 먼 길을 돌아가야 할까요? 움직이길 싫어하면서 건강을 위한 운동은 따로 하고 몸에 좋은 약과 웰빙 식품을 찾습니다. 버리고 떠날 수는 없을까요? 우리 ‘산 위의 마을’에서는 힘들여 노동하면서 소박하지만 좋은 음식을 먹고 삽니다.

<서울대교구 박기호 신부>
  |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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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1년 동안 간석4동 성당에서 거주하면서 미사를 도와주었던 학생 신부님이 다른 본당으로 이동을 했습니다. 떠나는 신부님을 보면서 잘해주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많이 남더군요. 사실 항상 그렇지요. 그때에는 충실하지 못하면서, 시간이 지난 뒤에야 후회하는 모습들.

저 역시 또다시 이런 후회를 하면서 신부님의 많은 짐들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저의 짐들을 생각하게 되더군요.

매년 늘어만 가는 저의 짐들. 너무나도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는 나의 모습들. 또한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누군가 달라고 하면 과감하게 포기할 수 있는가라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참으로 많은 것을 가지고 있었던 저였습니다. 그리고 그 짐은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늘어만 갔습니다. 또한 그 짐에 대한 욕심도 만만치 않았지요. 그래서 꽉 움켜잡고서 지키기에 급급했던 적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과연 내 것들을 포기할 수 있을까요? 솔직히 자신이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를 부르시는 예수님을 떠올려 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나를 부르신다면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처럼 내가 소유하고 있는 그 모든 것을 곧바로 버리고 예수님을 따를 수 있을까 라는 묵상을 해 봅니다.

마이스터 엑하르트 성인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아무것도 더 바라지 않고, 아무것도 더 알려고 하지 않으며, 아무것도 더 가지려고 하지 않는다. 욕망으로부터의 자유, 지식으로부터의 자유, 소유로부터의 자유를 말하고 있다.”

그러나 저는 마음이 가난하지 못했습니다. 즉, 욕망, 지식, 소유에 대해서 자유롭지 못했던 저였습니다. 이렇게 마음이 가난하지 못했기에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는 주님의 부르심에 곧바로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는데 주저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거리의 걸인들은 한 번 손에 들어온 것은 절대로 남에게 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주위의 모든 사람을 의심하지요. 왜냐하면 자신이 가진 것을 남이 빼앗으려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모습은 거리의 걸인들 안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내가 가진 것을 행여 잃어버리면 어떻게 할까 노심초사하는 사람들, 내가 아는 지식을 남이 알면 내가 초라해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너무 많지 않습니까?

소유로부터 자유로운 사람들은 함께 나누는 기쁨을 간직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이야말로 주님의 부르심에 망설이지 않고 곧바로 응답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제는 가지고 있는 것들을 정리해야 할 때입니다. 그래야 주님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뭘 하러 흐리멍텅하게 살겄나? 죽지 못해 일하고 입에 간신히 풀칠이나 하며 살 바엔, 고생두 신나게 해야 사는 보람이 있잖어.(황석영, ‘개밥바리기별’ 중에서)

<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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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9일에는 제 동창신부의 기일이었습니다. 2003년에 뜻밖의 사고로 주님 곁으로 간 지 벌써 12년이나 지났네요. 성직자 묘원에 묻혀있는 동창신부의 무덤 앞에 영정사진을 놓고 그 주위에 동창신부와 몇몇 신자들이 모여서 함께 연도를 바치고 있을 때였습니다. 문득 영정사진 속의 신부는 여전히 30대 초반의 젊은 신부 모습인데, 그의 무덤 옆에서 연도를 바치고 있는 저희 동창신부들은 이제 젊은 신부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졌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머리숱도 많이 없어지고, 흰 머리카락도 많이 생겼습니다. 또한 젊을 때의 날렵한 모습들은 사라지고 대신 배가 참 많이 나왔네요. 그래서 한 신부가 이렇게 말하네요.

“너만 늙지 않는구나.”

시간의 빠름을 느낀다는 것은 바로 살아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네요. 그리고 그 시간의 빠름을 오늘 새벽 또 다시 깨닫게 됩니다.

2010년 6월 17일. 제가 인천교구 성소국장으로 발령을 받고 교구청에 들어간 날입니다. 그리고 오늘 이제 성소국장의 직무를 벗어버리고 1년 동안의 안식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성소국장’이라는 뜻밖의 소임에 깜짝 놀라면서 ‘어떻게 이 소임을 충실하게 할까?’, ‘과연 내가 성소국장으로 잘 살 수 있을까?’를 걱정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5년의 시간을 보내고 떠납니다.

완벽하게 소임을 마쳤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할 수 있을까를 의심하고 걱정했던 것들에 비해서 잘 마칠 수 있음에 주님께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가 없네요. 그리고 또 하나 깨닫는 것은 미래에 대해 굳이 걱정할 것도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미래를 알지 못한다는 그 사실이 더 큰 희망이 되는 것이 아닐까요?

어떤 소설가가 쓴 글에서 이런 내용이 있더군요. 어느 새해, 그 해에 환갑을 맞이하는 선배 소설가를 찾아가 세배를 할 때 이런 말씀을 하시더랍니다.

“60에는 무엇이 있을까. 60에는 무엇이 또 나를 기다릴까. 가슴이 설레!”

미래는 걱정하는 시간이 아닌, 알 수 없기 때문에 설렐 수 있는 은총의 시간인 것입니다. 저 역시 새로운 1년의 시간을 맞이하면서 걱정하기 보다는 설레는 마음으로 감사하며 살아가려 합니다. 왜냐하면 분명히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 시간을 주실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지요.

오늘부터 교회력으로 성탄시기를 마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 전체를 묵상하는 연중 시기가 시작합니다. 새로운 전례력을 맞이하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시지요.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과거에 얽매이고 미래를 걱정만하는 어리석은 우리가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 다가온 하느님 나라를 느끼면서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지혜로운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미래에 대한 우리들의 설레는 마음에 기쁘게 살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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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끊는 사람을 독한 사람이라고 하지요. 제가 그 독한 사람 중에 한 사람입니다. 십년 넘게 담배를 피우다가 끊었으니까요. 더군다나 끊을 당시에는 하루에 세 갑 이상 피우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 당시의 제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독하다”라는 말을 합니다.

지금 담배 끊인 지가 벌써 9년이 됩니다. 그런데 저는 이 담배를 끊음으로 인해서 큰 선물이라 할 수 있는 자신감을 얻을 수가 있었습니다. 즉, ‘독하다는 담배도 끊었는데 하지 못할 것이 무엇이 있는가?’라는 생각으로 그 어떤 것이든 포기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실 담배를 끊겠다는 생각을 딱 한 번 품고서 단번에 끊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수십 차례 실패에 실패를 거듭했었지요. 그러면서 ‘나는 할 수 없어.’라는 약한 마음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어떤 정신학자의 글을 하나 보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려는 선천적인 동기가 있다.”

이 글을 보는 순간 이번만큼은 꼭 성공하고 싶었고, 주님께 기도하면서 한 노력 끝에 드디어 담배의 유혹에서 어렵게 벗어날 수가 있었지요. 그리고 담배를 끊었다는 선물만이 아니라, 내 의지를 더욱 더 두텁게 만드는 큰 선물들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새벽 묵상 글도 10년째 계속할 수가 있게 된 것이며, 꾸준히 운동할 수 있는 의지도 갖게 되어 건강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또한 세상의 많은 유혹거리에서 벗어나 매일 기도하고 책을 가까이 하는 습관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하나의 강한 의지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이것이 우리 신앙인들 모두에게 ‘믿음’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주님께 대한 강한 믿음. 그 믿음만으로 우리는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고, 더 큰 선물을 주님으로부터 받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라고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십니다. 이렇게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우리에게 믿음이라는 선물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통해서 더 많은 것들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호수에 그물을 던지고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고 있는, 부족해 보이기만 한 시몬과 안드레아 그리고 제배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을 제자로 부르셨지요. 왜냐하면 이렇게 부족한 사람들을 통해서 하느님의 영광은 더욱 더 크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지금 우리들을 부르십니다. 우리가 잘 났기 때문에 그리고 능력이 많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보다는 우리를 더욱 더 성장시키기 위해서, 그래서 하느님의 영광을 부족한 나를 통해서 드러낼 수 있도록 부르십니다. 이 부르심의 결과는 결국 나에게 큰 선물이 주어지는 은총과 축복입니다. 우리들은 이 부르심에 “예”하고 말하고 따라가는 ‘믿음’만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이제 할 수 없다는 나약한 마음은 이제 그만 내려놓으십시오. 주님께서는 나의 믿음을 통해서 더 많은 선물을 함께 주시기 때문에 못할 것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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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 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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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 작가의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책을 읽다가 ‘사랑의 반대말은 무엇일까요?’라는 질문을 보게 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질문의 답은 ‘미움’이 아닌 ‘무관심’일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도 곧바로 ‘무관심이겠지.’라고 생각하면서 그 답을 보고서는 깜짝 놀랐습니다. 이 책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의 반대말은 ‘이용한다’입니다.”

출세를 위해, 외로워서, 욕정을 풀기 위해, 돈이 없어서, 먹고 살기 위해서, 남이 얕보니까, 집안일을 위해, 허전하니까, 내가 너를 사랑하니까…. 등의 이유 있는 사랑은 상대를 이용하는 것으로 사랑과 정반대라는 것입니다.

공지영 작가는 사랑을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이란 상대방의 성장을 위하여 자신을 내어주려는 의지입니다.”

받으려는 사랑, 이용하려는 사랑, 각종 이유를 붙이는 사랑은 그만해야 합니다. 그보다 주는 사랑, 목적 없는 사랑에 집중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 모습이 주님을 따르고 주님과 함께 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것보다 주님의 것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사람만이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를 부르십니다. 사실 일꾼을 뽑으려고 할 때, 우리는 먼저 세상의 기준을 생각하게 됩니다. 능력도 많고 배움의 양이 많은 사람을 그리고 다른 이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성격과 재능을 갖춘 사람을 뽑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부르심은 조금 다릅니다.

제일 먼저 뽑은 제자들은 배운 것 없는 모두 어부였습니다. 고기를 잡는 것 외에 특별한 기술이나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당신 계획의 일꾼으로 가장 단순하고 평범한 사람들을 삼으십니다. 세상의 눈으로는 터무니없는 사람이지만, 하느님 나라를 위해 세상 것들을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을 부르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부르심에 걸림돌이 되는 것이라면 이 지상 생활의 그 어떤 것에도 연연할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직업을 유지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주님을 따랐으며, 가족까지도 뒤로 하고 주님을 따랐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도 “나를 따라오너라.”라고 부르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세상의 것들을 포기하면서 주님을 따를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세상의 것을 더 누리겠다는 욕심과 이기심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주님의 사랑과 축복을 가득 받기를 계속해서 청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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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2021년 1월 11일
  |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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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매님 한 분이 전화를 하였습니다.
병원에서 검사를 했는데 ‘암’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다행히 초기라고 합니다.
병자성사를 원한다고 하였습니다.
자매님을 만나서 함께 기도하였습니다.
자매님의 표정이 무척 밝았습니다.
지인들에게도 기도를 부탁한다고 알렸다고 합니다.
‘병은 알려야 낫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걱정하고 감추면 근심이 더 커졌을 겁니다.
많은 분들이 자매님을 위해서 기도하시니
좋은 결과를 얻으리라 믿습니다. 오
늘 이 묵상을 읽으시는 분들께서도
자매님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하느님께서 아담에게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아담아 너 어디에 있느냐?”
아담이 자신의 잘못을 감추지 않았다면,
숨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담이 하느님 앞에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청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는 아담의 죄를 용서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오늘의 본기도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
주님! 백성의 간절한 기도를 자애로이 들으시어 저희가 해야 할 일을 깨닫고 깨달은 것을 실천하게 하소서.”

2021년을 시작하는 우리에게
삶의 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와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셨고, 십자가 위에서 죽기까지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4명의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아는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아버지 제배대오를 삯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의 첫 번째 제자들은 해야 할 일을 깨달았고, 예수님을 따르면서 실천하였습니다.

작년 11월 3일에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미국의 대통령 선거의 전통이 있었습니다. 이긴 사람은 승리선언을 하였습니다. 패배한 사람은 승복 선언을 하였습니다. 미국의 국민은 승리한 사람에게는 축하를 패배한 사람에게는 위로를 하였습니다. 대통령 선거는 치열한 싸움이었지만 대통령 선거의 결과는 축제의 마당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름다운 전통을 볼 수 없었습니다.
이긴 사람의 승리선언은 있었지만 패배한 사람의 승복 선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의 반장선거도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대통령 선거를 초등학교의 반장선거보다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코로나19로 많은 사람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대통령 선거의 결과에 불복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당선인과 함께 산적한 많은 문제를 풀어야 했습니다.

한 주간을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입니다.
조금은 불편하고, 손해 보는 것 같고, 남는 것이 없는 것 같지만 가치 있고, 소중하며, 참된 행복을 주는 그런 자리를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만남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과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제자들은 아무 이유 없이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을 하였습니다.
분명 빛이 나는 자리는 아니었고,
물질적인 이익이 보장되는 자리도 아니었습니다.
그 길은 십자가의 길이었고,
그 길은 세상의 눈으로 보면 보잘 것 없는 길이었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였습니다.
2021년의 1월도 많이 지났습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을 알았다면 실천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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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조재형 신부
2021년 1월 11일
  |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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