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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서울] “내가 생명의 빵이다."
조회수 | 1,494
작성일 | 09.04.28
요즘 취업하기가 정말로 어렵다고 하지요. 특히 점점 높아만 가는 청년 실업률 때문에 취업하지 않고서 공부를 선택하는 청년들이 많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취업에 도움이 될 만한 글을 하나 올려 봅니다. 즉, 면접을 볼 때 해서는 안 되는 말로, 이런 말들은 면접관을 짜증나게 하는 말이기 때문에 절대로 써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이는 어떤 기업의 인사부장이 알려주는 비밀이기 때문에 충분한 근거가 있습니다. 물론 따르는 것은 본인 마음이지만요.

해서는 안 되는 첫 번째 말. “아주 좋은 질문입니다.”
지원자는 면접관의 질문을 판단하는 사람이 아니라 답변하는 사람이다.

해서는 안 되는 두 번째 말. “조금 전에 제가 말씀드렸는데요.”
지원자가 이야기한 내용을 다 기억하는 것은 무리다.

해서는 안 되는 세 번째 말. (긴 질문 후에)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이 순간 면접관의 마음은 이미 떠난다. 적극적인 경청이 중요하다.

해서는 안 되는 네 번째 말. “그런 일은 절대, 추호도 없습니다.”
절대, 추호도, 반드시 등의 표현은 다른 답변 상황에서 충돌을 가져올 수 있다.

이러한 말들, 사실은 일상생활에서도 자주 하는 우리들의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을 들을 때 어떠합니까? 그렇게 기분이 유쾌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괜히 그렇게 말하는 사람과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만 하는 말이 아닌, 바로 내 자신도 자주 하고 있는 말이라는 것이지요. 또한 주님께서도 이러한 말을 들으시고 기분이 좋으실까 라는 반성도 하게 되네요.

주님 위에 서서 주님을 판단하는 우리들입니다. 주님께 단 한 번 기도한 것으로 자기의 도리를 다 한 것인 양 생각할 때도 참으로 많았습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잘 듣지도 않습니다. 헛된 맹세를 말할 때도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리고는 자기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너무나 자주 주님께 원망과 불평을 던졌던 우리였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못된 말과 행동으로 얼마나 아파하실까요? 그러나 주님께서는 더 큰 사랑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지요.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도 당신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지만, 당신이 어떤 분인지를 친절히 설명을 해주십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이 바로 주님이십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다른 것에 신경을 쓰고 다른 것만을 쫓으면서, 주님에게서 멀어질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이제는 주님께 돌아와야 할 때입니다. 못된 말과 행동으로 더 이상 주님을 아프게 해드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에 맞게 말하고 행동하는 예쁜 자녀가 되어야 할 때인 것입니다. 바로 그때 주님께서 약속하신 생명을 누릴 수가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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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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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많은 사람들의 주 통신 수단은 휴대전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 휴대전화의 문자서비스는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지요. 그래서 저 역시 매일 아침마다 그날 우리가 가슴에 새길만한 성경말씀을 문자메시지로 보내고 있으며, 다른 사람에게 연락할 일이 있으면 이 문자메시지를 주로 이용합니다.

며칠 전의 일입니다. 우리 본당의 고3 학생들에게 힘내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혹시 저의 번호를 모를까봐 메시지 맨 뒤에 ‘빠다킹신부’라는 글을 적어 넣었지요. 그런데 문자를 보내자마자 전화가 왔습니다. 저는 “여보세요.”라고 말하면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상대방에게서 울리는 음성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누구세요?”

보통 전화 한 사람이 먼저 자신이 누구인지를 말하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약간 신경질적인 말투여서 저는 몹시 당황스러웠지요. 그리고 “조명연신부인데요.”라고 대답하자, 상대방은 “네? 신부가 뭐하는 사람인데요?”하면서 저를 이상한 사람 취급을 하더군요. 문득 ‘방금 내가 문자를 보낸 고3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 전화통화를 하면서 주소록을 보니 맞습니다. 그래서 큰 소리로 말했지요.

“나 본당신부라고.”

그때서야 알아보더라고요. 그리고 나중에 연락이 다시 왔는데, ‘빠다킹 신부’라고 적혀 있어서 결혼이벤트회사 광고 전화인줄 알았다는거에요.

아무튼 그 당시에는 무척이나 서운했습니다. 그래도 생각해서 문자를 보냈는데 이렇게 응답을 하니까, ‘앞으로 문자를 보내지 말까?’라는 생각까지 했었지요. 하지만 저를 알아본 다른 고3들의 고맙다는 답장을 보면서 보내길 잘했다는 생각도 드네요.

그런데 문득 ‘100%의 만족? 과연 가능할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하긴 주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우리들인데, 사람이 하는 일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갖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나를 반대하는 그 모습에 상처를 받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해 왔던 봉사와 희생을 이제는 안 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큰 욕심입니다. 사람들에게 100%의 인정을 받겠다는……. 주님께서도 100%의 인정을 못 받아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는데, 나는 100%의 인정을 받아서 십자가를 짊어지지 않겠다는 것은 아닐까요?

오늘 복음을 보면 사람들이 예수님께 “무슨 표징을 일으키시어 저희가 보고 선생님을 믿게 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그렇게 놀라운 기적을 보고도, 그리고 그렇게 가슴에 많이 와 닿는 말씀을 들었으면서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표징을 보여 달라는 욕심을 보입니다. 바로 예수님의 그 모든 행동과 말씀도 100%의 인정을 이끌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과연 어떤지요?

오히려 내가 받는 부정적인 평가를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짊어지신 십자가를 함께 짊어지는 것이기에……. 그리고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을 내 안에 모시는 것이기에…….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고 속상해하지 마세요.

조명연 신부
  | 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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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먹는다.’ 또는 ‘먹힌다.’라는 말을
다양한 경우에 사용한다. 무엇인가 부족한 것을 채울 때 그 행위의 상징으로 먹는다고 표현한다. 성이 고픈 남성이 여성을 취했을 때도 먹었다고 말하고, 운동경기에서 승리했을 때도 ‘1등 먹었다.’라고 표현한다. 대기업이 중소기업과 합병했을 때도 ‘먹었다.’고 표현한다. ‘먹었다.’는 것이 곧 ‘채워졌다.’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채워져야 할 것이 무수히 많겠지만
그중 생명에 가장 치명적 영향을 미치는 것은 빵이다. 영혼과 육신의 생명 질서는 그 원칙에서 동일하다.

먹는다는 말은 생명을 이어간다는 말이 전제되고,
생명이란 단어는 빵과 직결된다. 물질의 빵과 영적 빵인 말씀이 동시에 우리에게 들어와야 하며 한쪽이 모자라면 다른 쪽에서 많이 채워 생명의 균형을 잡아간다.

한 번의 영적 변화로
일생 동안 건강한 영혼을 보장받을 수는 없다. 새로 태어났어도 태어난 것은 빵을 먹으며 성장 발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종종 자기 점검을 해야 한다.

사람들과 잘 부딪치고 타인에게 너그럽지 못하며
남의 심정을 헤아리기보다 정의를 앞세워 칼같이 단죄하는 습성이 자주 드러난다면 이미 은총의 물이 욕조를 빠져나가듯 바닥이 보일 때다. ‘꼬르륵’ 하고 마지막 물 빠지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생명의 빵을 정기적으로 챙겨들지 않음을 알게 된다. “얘야, 생명의 빵 좀 먹고 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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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순 님
  |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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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독서와 복음에서는 예수님을 좀처럼 믿지 않는 완고한 유대인들의 태도와, 그와 아주 대조적으로 예수는 참으로 의인이시며, 예언자이시고, 사람의 아들이시며 주님이심을 피로써 증거하고 죽어간 스테파노의 위대한 신앙고백과 예수님 자신의 증언을 듣게 됩니다.

스테파노는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끊임없이 박해해 왔던 조상들의 완고한 마음을 상기시키면서 또한 그 시대에도 하느님의 중개자를 거부하고 그 뜻을 따르지 않는 유대인들의 잘못을 지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사람으로서 행하여야 할 참된 일은, 예수의 가르침과 말씀을 따르며 그 분을 믿는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예수께서도 자신을 하느님께로부터 파견된 자이며, 사람들이 기다려 오던 메시아이심을 믿고 받아들일 것을 또한 요구하셨습니다. 이 말을 군중들이 들었을 때, 그 사실을 입증해 보라고 요구하였습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굶주린 그 백성에게 하늘에서 만나를 가져다가 먹였고, 또 메시아가 오시면 시편 78, 24의 말씀과 같이 그 백성을 만나로 배불리라고 되어 있는데, 당신이 메시아라면 그 사실을 증명해 보라는 요구였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내가 바로 생명의 빵이며, 나에게 오는 자는 결코 배고프지 않고,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라"고 하시며 또한 당신 자신에 대한 믿음을 요구하셨습니다. 예수님 당시 사람들이나 스테파노를 죽인 사람들이나 모두 예수가 과연 하느님의 아들이신가 하는 것에 큰 관심이 있었으나, 그들은 예수님 안에서 신앙을 찾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 한테서 큰 능력을 보여주는 기적이나 징표를 요구하였던 것입니다.

출애굽기 16장에서 보면 모세는 이집트에서 탈출한 백성들을 데리고 사막을 지날 때, 먹을 것이 없어 불평하는 백성들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하느님께 기도했을 때, 하느님께서는 만나를 음식으로 내려 주셨던 것이다. 그래서 군중들은 모세가 그러했듯이 예수가 하느님께 보냄을 받은 이라면 모세가 행한 기적보다 더 큰 기적을 해보라고 요구하는 도전이었습니다. 그들은 5,000명을 배불리 먹인 빵을 하느님께로부터 그분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사실임을 못 알아 듣고, 보통 음식에서 시작해서 보통 음식으로 끝난 것입니다.

이러한 이들의 요구에 예수님은,
① 하늘에서 만나를 가져다 먹인 것을 모세가 아니라, 당신 아버지이시라는 것과,
② 음식은 사람의 생명을 유지시켜 주며, 음식을 먹지 않으면 사람은 살아 남을 수 없다.

그러나 먹고 나서 얼마 있으면 배가 고파서 또 찾아야 하는 그러한 음식을 찾기에만 몰두하지 말고 마음과 영혼이 영원히 배고프지 않을 음식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육신을 먹이는 음식보다 육신을 이끌어 나가는 마음의 양식, 영혼을 배불리고 영원히 살게 하는 음식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육신은 아무리 잘 먹어도 언젠가는 병들고 죽습니다. 그러기에 육신을 갖고 살아 있는 동안에 육신의 죽음으로 영혼도 함께 죽음을 맞아야 할 것이 아니라, 현세의 축복과 삶의 종말인 죽음을 지나 영원한 삶을 살기 위한 생명을 주는 음식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말씀이며, 예수님 당신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이러한 영원한 생명의 양식을 구하며 찾아야 하겠습니다. 또 주신 은혜에 감사드려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사람들이 당신에게 올 때나, 당신의 말씀을 따라 이 세상을 살아갈 때, 마치 음식이 육신에 생기를 주고 삶을 주듯이, 당신과 당신 말씀 안에 우리를 영원히 살리는 생명력을 주십니다. 인간은 육신과 영혼으로 구성된 합일체라고 합니다. 그러기에 인간은 그 신체적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육신적 음식도 필요하지만, 또한 인간은 인격체이며 하느님의 모상을 타고난 것이기에 정신적, 영혼의 양식도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에게 빵을 주시는 분도 하느님이시며, 또한 영혼의 양식을 주시는 분도 하느님이시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주시는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십니다. 바로 생명의 빵이신 것입니다. 하느님은 인간의 마음 속에 이 생명의 빵을 찾는 굶주림을 본성적으로 두신 것입니다. 이러한 굶주림은 세상의 음식이나 현세적인 욕망으로는 아무리 먹어도 만족을 느낄 수 없는 것입니다. 오직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은총, 그리고 생명의 말씀을 통해서만 만족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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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김웅태 신부
  |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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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체성사로 오시는 영원한 생명의 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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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부활 3주간 화요일입니다.
그리고 온누리를 형형색색으로 물들이는 꽃피는 4월입니다. 어떤 시인은 4월을 잔인한 계절이라고 표현했지만 만개하여 피어나는 꽃들을 보면, 우리에게 생명과 희망을 솟아나게 하는 힘찬 생동감의 계절입니다. 그러나 모두에게 다 그렇다는 말은 아닙니다.

일상을 바쁘게 사는 민초들은
계절의 감각도 잊고 사는 스스로 불쌍한 것 같은 시간들도 꽤 있습니다. 가정이 파괴되고, 어린이들이 결식하고, 노인들이 버려지고, 밤거리의 다니는 사람들은 무섭고...세상은 점점 어두운 색갈을 띠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기운이 주는 만물의 생동 현장에 비해서 인간이 살아가는 환경은 무척 칙칙한 환경입니다.

어느 노숙자가 자조 섞인 말로
내 귀에다 속삭이기를 "인생이 살면 얼마나 살겠나? 남은 인생이 지나온 날보다 짧기만 한데 “예수고 부활이고, 지랄이고...인생이나 즐겨야겠다.”...라고 도전적으로 말합니다. 나는 그에게 적절한 대답인지 아닌지도 구별하지 않은채 이렇게 귀에 속삭여 주었습니다. "나도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평화로 남은 인생을 멋있게 사랑하며 살고 싶다.”라고...

그 노숙자도 언젠가는
그렇게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웃옷과 몇푼 안되는 돈과 전대에 있는 단팥빵 두개를 집어주고 홀연히 다른 길을 향했습니다. 희망과 슬픔이 교차하는 내 마음 속의 4월에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하기를 외치면서.

오늘 복음에서 사람들이 예수께
“무슨 기적을 보여 우리로 하여금 믿게 하시렵니까?”(요한 6,30)하고 단도직입적으로 시정잡배들 같이 예의없이 대들면서 예수님께 묻고 있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건방진 것들의 말투나 행동은 똑 같은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 당연하게 그들에게 기적을 보여주시거나 어떤 이적을 보여주실 필요는 없으셨을 텐데도 그들은 용감하게도 따지고 있습니다.

그들의 무례함에 비해
주님의 반응은 참 의연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으과 같이 대답해 주십니다.“하늘에서 너희에게 진정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내 아버지이시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빵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며 세상에 생명을 준다.”(요한 6,33)

이 말을 들은 그들의 반응은 참 뻔뻔스럽게 보입니다.
180도로 바뀌었습니다. 금방 바뀌었다는 뜻입니다. 자기에게 이득이 되면 금방 주님하다가, 자기에게 이득이 없다면 금방 돌아서는 사람들과 같이, 그들은 오늘복음에서 주님께 요구합니다. “선생님, 그 빵을 저희에게 주십시오.”(요한 6,34) 주님과 이들과의 대화가 참 재미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산중에서 수십년간 참선이나 하신 것 같이 완전한 선문답으로 답하십니다.

“나를 먹어라”(요한 6,34참조) 하십니다.
이 얼마나 통쾌한 대답입니까?

지난번 복음에서 주님께서 니고데모에게
'너는 새로(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말씀에 '이 큰 어른의 몸뚱이가 어떻게 어머니 배속으로 다시 들어갈 수 있느냐?'는 식으로 질문을 하던 것을 보았습니다. 오늘도 주님은 그들이 듣기에는 이상한 대답을 하신 것입니다. 아마 그 말을 들은 그들은 놀랍고도 기괴한 답에 말문이 막혔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말씀하시기를...
옆에 먹을 것을 두고도 다른데 가서 먹을 것을 찾으며 돌아다니다가 허기져 굶어 죽는 일이 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진리는 바로 곁에 있고, 친구는 바로 옆에서 찾아야 됨을 주님께서는 행동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가 바로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고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이 생명의 빵이라고 말씀하시지만 사람들은 받아들이질 않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라 해도 인정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생명의 근원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분께 삶의 이유와 활력이 있는데도 모르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주관하고 계시는 분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다른 곳에서 열심히 찾고들 있습니다.

우리가 먹는 빵은 음식입니다.
생명의 빵은 영혼의 음식입니다. 영혼도 먹어야 하는 것입니다. 육체는 건강한데 영혼이 병들어 있다면 균형은 깨어지고 무너지고 맙니다. 삶이 불안해 지고 허무감에 휩싸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영혼이 굶주림을 호소하고 있는 것이고
갈증을 느낀다며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잘 모르고 있고, 모르고 있기에 불안과 허무에서 벗어나려고 본능적인 삶에 탐닉을 합니다. 영혼의 목마름은 더욱더 심해질 뿐입니다.

어떻게 하면 영혼의 목마름에서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그 방법은 영혼에게 생명력이 주어져야 합니다. 다시 말해 영적 음식이 제공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왜 살고 있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인지 답변이 주어져야 합니다.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당신 안에서 대답을 찾아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당신자신을 두고 생명의 빵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성체성사 안에서 생명의 빵을 체험하게 됩니다. 영성체를 통해 영적 음식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건강해진 영혼이 육체적인 삶에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얼마나 은혜로운 영성체 입니까?

우리는 매 미사 때마다 성체를 수없이 모시지만
영적인 힘을 느끼지 못했다면 생각을 해 보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인지, 나는 성체를 어떻게 모시고 있는가?

성체는 예수님의 몸입니다.
성체 앞에 나선다는 것은 실제로 살아 계신 예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냥 갈 수는 없는 일입니다. 최소한의 정성과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이 부분이 생략되었기에 구경하는 미사가 되고, 아무 뜻 없이 받아먹는 영성체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옛날에 성체신심은 정성에서 출발합니다.
교회가 공심재를 정해놓은 것은 정성을 다해 성체를 모시라는 뜻입니다. 지금은 많이 후퇴하여 성체를 모시기 한시간 전 까지면 음식을 먹을 수 있지만, 오래 전에 우리 교우들은 성체를 모시려면 전날 밤부터 아무 것도 먹지를 못했습니다. 물도 못 먹게 하였고 양치질을 해도 양칫물이 목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조심을 했던 것입니다. 물론 과장된 행동이었지만 그 만큼 정성을 들여 성체를 모시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네 옛 교우들은 이 규정을 끔직 이도 지켰답니다.

정성으로 성체를 모셔야 필요한 곳에서
영적인 에너지를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분 힘이 우리 영혼과 성체 안에 머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생활 속의 불안과 허무를 극복할 줄 압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사는 것인지 깨닫게 됩니다. 아름다운 변화가 자신에게 오는 것입니다. 생명의 빵이 주는 은총의 선물입니다. 성체를 정성껏 모실 수 있을 때, 성체께 대한 신심은 새로워 질 것이고, 그 분 안에서 결코 배고프지도 목마르지도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내가 바로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고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부활하신 주님은 신선한 빵입니다.
육화되어 이 땅에 오셔서 온갖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를 받았던 오염된 빵이 아니시고, 하느님의 영으로 '깨끗히 정화된 빵'입니다. 오늘 상큼한 봄 향기를 맡으며 하늘도 보고 아지랑이 피어나는 먼 산도 바라보며 진리는 바로 곁에 있다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면서 '신선한 빵을 들어보시지 않겠습니까?'.......맛있게 빵을 드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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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올 묵상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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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의정부] 항상 감사하며 삽시다  1421
25   [수도회] 예수님 안에서  [2] 1573
24   부활 제4주간 월요일 독서와 복음  1328
23   성체성사로 오시는 영원한 생명의 빵(요한6장 묵상 전체)  1992
22   저는 주님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1405
21   [기타]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1] 1613
20   [부산/수원] 자, 너희도 나를 버리고 떠나가겠느냐?  [4] 1520
19   [전주]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1]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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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인천/서울] 생명의 빵  [7] 1485
16   [수도회] 다양성 안의 일치  [8] 1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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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기타] 세상에는 빛과 어둠이 있습니다(?)  1448
12   [부산/원주] 완전한 신앙, 완전한 일치, 완전한 사랑  [4] 1509
11   [전주] 참된 양식과 참된 음료  [1] 1553
10   [수원] 봉헌과 성체와 삼위일체  [3]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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