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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예수님의 관심사는 오직 사랑입니다
조회수 | 1,575
작성일 | 09.05.01
사람들의 관심사는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여기 있는 우리들도 다 다릅니다. 예수님의 관심사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사는 오직 사랑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요한복음에서 성체성사를 설명하는 마지막 부분입니다. 오늘 복음 다음구절에 일부 제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하고 투들 거립니다.

우리들을 너무나 사랑하신 예수님께서는 그 사랑의 방법으로 당신의 몸을 내어주십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살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빵에 관한 말씀을 볼 때, 그 빵은 먼저 배고픔에 관한 해결로 설명됩니다. (안셀름 그륀, 김선태 옮김, 요한복음 묵상 “예수, 생명의 문”, 분도츨판사, 2005, 95-104쪽 참조.)

6장 35절에 보면, “내가 생명의 빵입니다. 내게로 오는 이는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고, 나를 믿는 이는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합니다. 믿음은 갈증을 해소시켜주며,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는 배고픔을 해결해 줍니다.

배고픔은 어린이가 배부르지 않을 때 표현하는, 무엇인가 만족스럽지 못한 느낌을 뜻합니다. 따라서 배고픔은 결국 항상 따뜻함과 사랑에 대한 굶주림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빵에 관한 말씀 중에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한 사건을 상기시켜줍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늘 굶주림의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들은 모세에게 먹을 것을 달라고 외쳤고 하느님께서는 하늘에서 만나라는 빵을 내려 주셨습니다. 그때부터 만나는 하느님의 음식, 곧 인간의 내면인 영혼을 기르는 음식인 것입니다.

빵의 의미가 이제부터는 깊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굶주림과 굶주림을 잠재우는 빵이 아니라 ‘죽음’과 ‘생명’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6장 51절에서 “내가 줄 빵은 세상의 생명을 위해 주는 내 살입니다.”라는 말씀을 합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당신의 목숨을 내놓습니다. 세상의 생명을 위해서... 그분은 우리를 위해 당신의 목숨을 바치시어, 우리로 하여금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십니다. 이것은 마치 ‘신적교환’과도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으시고 이로써 우리는 살게 됩니다. 영원히 살게 됩니다. 이것이 요한복음에서 말하고자 하는 ‘죽음’과 ‘부활’의 의미입니다.

6장 4절의 말씀에서 이를 암시합니다. “유다인들의 축제인 해방절이 다가오고 있었다.”하고 전합니다. 성찬례를 통하여 죽음과 부활이 구체적으로 이루어집니다.

6장 55절에서 56절의 말씀, “내 살은 참된 음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입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이는 내 안에 머물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뭅니다.” 라는 말씀을 통해서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성찬례를 통해서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께 대한 신앙이 물리적으로 표현됩니다. 그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사람은 그분과 하나가 되고 그분의 의식과 통합이 됩니다. 요한은 먹는 것을 ‘씹어 음미하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희생에서 완성된 예수님의 사랑을 음미함으로써, 그분의 사랑이 우리 마음만이 아니라 우리 육신에 쓰며들도록 해야 합니다. 씹는 행위는 음식 섭취의 외적 과정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영성적 의미에서는 항상 하느님의 말씀을 내적으로 되새기는 묵상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성찬례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 안에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 말씀과 온전히 합치되고 그 말씀들이 우리 자신을 내면으로부터 결정하도록 그 말씀들에 우리 자신을 내맡깁니다. 우리는 빵으로 강생하신 하느님의 사랑을 먹는 것입니다. 이로써 그 사랑이 우리에게 스며들고 우리를 변화시켜 줍니다. 성체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 가운데 가장 농축된 인격적이 관계를 가져다줍니다. 그로 인해 예수님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그분 안에 머무르게 됩니다. 그래서 3장 6절의 말씀이 완성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들을 우리 손에 내주시어, 우리로 하여금 그분을 믿고 먹으면서 우리 안에 받아들이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를 변화시키는 영원한 생명, 하느님의 생명,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라고요.

요한복음은 빵에 대한 이야기에서 성체성사의 사상을 독자적으로 전개해 나갑니다.

먼저 가나의 혼인잔치는 성체성사를 나타냅니다. 신적 신랑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나누시는 혼인잔치라고 교부들은 해석합니다.

15장 포도나무의 비유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안에 머물러 있음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밝힙니다. 포도나무에 가지로 붙어있는 사람은 참된 열매를 맺는데, 우리가 사랑의 열매를 맺지 않으면 성체성사가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13장의 발씻김도 성체성사를 드러내는데, 우리를 끝까지 보살피시는 당신의 사랑을 드러냅니다. 발씻김은 단순한 정화가 아니라 상처의 치유도 포함합니다. 성체성사에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 자신이 깨끗하게 되었음을 체험할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이 온전히 하느님의 품에 받아들여졌음까지도 체험합니다. 그리고 세상을 거닐면서 날마다 더러운 것을 행하던 발까지도 깨끗하게 되었음을 체험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체성사 중에 우리 자신이 깊은 상처를 입어 나 자신을 받아들일 수조차 없는 그곳에서 우리를 만나고 치유하시기 위해 우리 발에까지 당신의 몸을 숙이십니다. 그분은 충만한 사랑으로 우리의 상처를 대하심으로써 치유를 해 주십니다.

요한복음에서 성체성사에 관해 언급하는 마지막 장면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티베리아스 호숫가에서 제자들과 함께 하시는 아침 식사 장면입니다. 성찬례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특히 부활하신 분과의 만남을 의미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다른 강가에서 우울한 우리의 아침이나 실망으로 가득 찬 우리의 밤에 찾아오시어, 사랑과 평온의 분위기를 만드십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빵이 아니라 물고기도 주십니다. 직접 구운 물고기는 우리에게 주시는 또 다른 영원한 생명입니다. 이 음식은 부활하신 분과 함께 하는, 신적인 불사불면의 생명에 참여하는 음식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긴 말씀... 우리가 한 주간 들었던 복음 말씀의 뜻을 알아듣지 못한 유대인들은 "저 사람이 어떻게 우리에게 자기 살을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관심인 ‘사랑’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진정 우리의 관심사도 ‘예수님’과 우리를 위한 그분의 ‘사랑’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한창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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