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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봉헌과 성체와 삼위일체
조회수 | 1,506
작성일 | 09.05.01
오늘 노동자 성 요셉 축일이지만 계속 성체성사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 중이라 끊이지 않기 위해서 평일 묵상을 했습니다.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 ^

하느님은 은총을 인간에게 주시기 위해 그 인간이 그 은총을 받기에 합당한지 시험해 보시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하느님은 아브라함을 통해 그의 후손들에게 축복을 주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그런 축복을 약속하셨지만 아브라함은 후손을 일으킬 아들이 없었습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약속이 반드시 실현된다는 사실을 증명이나 하듯이 늦은 나이에도 아들을 주십니다. 그의 이름이 이사악이고 이사악을 통해 많은 축복을 주시기로 약속하십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하느님은 조금 자란 이사악을 모리아 산에서 제물로 바치라고 하십니다. 아브라함은 아무런 주저함도 없이 아침 일찍 일어나 그를 끌고 산으로 올라가 아들이 멋도 모르고 지고 온 장작 위에 그를 묶어놓고 칼로 찌르려합니다.

이 믿음에 당황한 것은 오히려 하늘이었습니다. 하늘의 천사가 다급한 목소리로 이사악에게 손을 대지 말라고 소리 지릅니다. 그리고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인정하면서 다시 이사악을 통해 세워질 하느님의 백성에게 커다란 은혜를 베풀겠다는 약속을 재확인하십니다.

하느님은 왜 축복을 그냥 주시지 않고 인간에게 축복을 받을만한지를 시험하시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하느님은 은총을 낭비하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시고 남은 부스러기를 하나도 남기지 말고 모두 모아들이라고 하십니다. 또한 진주를 돼지에게 주지 말라고 하시며 귀한 은총이 부당한 사람에게 낭비되어져서는 안 됨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죄의 상태에서 성체를 영하는 것이 매우 큰 죄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죄를 지은 상태로 성체를 영하면 하느님을 돼지우리에 집어넣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성체성사의 의미와 삼위일체를 연결시키십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모든 것의 주인은 하느님 아버지이십니다. 아들은 이름 외에 아무 것도 지니고 있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마치 아브라함처럼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아버지께 순종하십니다. 죽기까지 순종하시는 아들을 보시며 아버지는 아들에게 ‘모든 것’을 주십니다. 이 ‘모든 것’이 무엇일까요? 아버지께서는 아들이 당신께 죽기까지 순종하며 자신을 낮추는 것을 보시고 그를 사랑하여 주시는 모든 것이 바로 사랑, 즉 ‘성령님’입니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이 하시는 말씀은 곧 하느님의 말씀이다. 하느님께서는 그분에게 성령을 아낌없이 주시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사랑하셔서 모든 것을 그의 손에 맡기셨다.” (요한 3, 34-35)

하느님이 사랑이시라면 성령님을 통해 주시는 그 사랑은 당신의 모든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모든 것을 되돌려 주실 때 아들은 죽음에서 ‘부활’하게 됩니다. 이것이 파스카의 신비입니다. 세례를 통해 받으셨던 성령님을 아들은 죽기까지 순종하며 아버지께 돌려드리고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하셔서 다시 성령님을 보내셔서 그를 부활시키신 것입니다. 이 주고 받음과 가난하게 됨과 부자가 됨은 삼위일체 안에서 쉼 없이 반복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아버지의 힘으로 사시는 것입니다. 이 관계를 아들은 우리와 똑 같이 반복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이 멜키세덱에게 바친 것처럼 벌어들인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주님께 바칩니다. 사제는 그 제물을 마치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 때 예수님께서 하신 것처럼 빵과 포도주의 모양으로 아버지께 바칩니다. 이런 믿음을 보시고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모든 것인 아들을 그 빵과 포도주의 모양으로 우리에게 되돌려주십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곧 생명나무, 즉 영원한 생명을 줍니다. 이것보다 큰 은총은 없습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모든 것을 인간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하느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하느님께 제물을 바치지 않는다면 하느님은 그 사람의 믿음을 보시고 그만큼 작은 은총을 주십니다.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은 아닐지라도 우리의 믿음은 봉헌을 통해 증거됩니다.

실제로 봉헌된 삶을 산다고 하면서도 매 순간 그분의 뜻을 찾아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간다면 그것은 겉으로만 봉헌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모든 것을 주시고 아들이 아버지께 그것을 다시 되돌려주시듯이 우리도 받은 만큼 돌려 드려야합니다. 그 드림을 통해 더 큰 은총을 받게 됩니다.

전삼용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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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간절한 심정

운전면허증을 갓 취득하고 한창 운전에 맛을 들이고 있었을 때의 일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운전면허증을 취득하면 운전을 하고 싶은 욕구가 커지듯 그날, 저 역시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때는 겨울인지라 눈이 소복이 쌓인 노면은 차가 다니기에 위험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막무가내로 아버지께 떼를 써서 자동차 키를 받아내려 했고, 아들의 모습이 안쓰러우셨던지 아버지께서는 마침내 키를 내주셨습니다. 키를 받아냈다는 기쁨과 운전을 하는 즐거움도 잠시, 차가 그만 눈에 빠지게 되어 옴쭉달싹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아버지께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때 아버지께서 제게 이런 말씀을하셨습니다.

“그것 봐라! 아버지 말을 좀 들을 때는 들어야 할 것 아니니.”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에게 사람의 아들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유다인들은 예수님을 식인종 취급하면서 마음의 문을 닫고

그분 말씀의 뜻을 헤아리고자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진실로 진실로”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얼마나 알아듣지 못했으면 “진실로 진실로” 말씀하셨겠습니까? 때로는 우리의 생각과 뜻이 올바르고 현명하다고 확신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는 자세가 필요하고 아버지 말씀의 참 뜻을 헤아리며 행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노성호 신부
  |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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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옛 어른들이 ‘세 끼 밥은 먹으면서 기도는 하지 않는다’고 꾸짖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이는 하느님을 공경하기 위해 기도할 뿐 아니라 자신이 영혼의 양식을 잘 먹어야 한다는 가르침이었습니다. 육체의 굶주림을 채우기 위해 밥은 먹으면서 영혼의 굶주림을 채우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실 육체의 허기는 잘 느끼지만 영혼의 허기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육체의 양식 못지않게 영혼의 양식을 먹지 못하면 공허감이나 애정 결핍이나 실망이나 분노와 같은 영혼의 굶주림으로 허덕이게 됩니다. 이를 메우기 위해 닥치는대로 먹어치우고 마셔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수께서는 말로만 우리를 먹여 살리겠다고 하시지 않고 십자가 위에서 당신의 몸을 빵으로 내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조건 없는 사랑을 체험하는 신앙인은 생명의 빵을 먹으면서 영혼의 갈증을 채우고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생명이란 영원이신 하느님께서 시간 안에서 사는 인간 안으로 들어오셔서 하나가 됨으로써 주시는 충만한 삶입니다.“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요한 6,55-­56). 속담에 ‘먹으면서 정난다’는 말대로 함께 음식을 먹고 마시며 나누는 행위는 생명을 유지할 뿐 아니라 좋은 인간관계를 이루게 합니다.

우리는 미사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받아들여 그 말씀이 우리를 다스리도록 내맡겨 드립니다. 또한 성찬례에서 빵으로 오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먹고, 이 사랑이 우리 안에 스며들어 변화시키도록 내맡깁니다. 성체를 영함으로써 예수께서 내 안에 사시고, 내가 그분 안에 머무르게 됩니다. 이렇게 예수께서는 나와 하나가 되시어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해주십니다. 성체는 바로 우리를 변화시키는 영원하신 하느님의 사랑이며 생명입니다.

김동원 신부
  |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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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 후 60년경 로마제국의 사치는 역사상 유례없는 것이었다.
맛있는 것을 많이 먹기 위해 구토제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새로운 맛, 더 좋은 음식, 더 나은 음식을 찾기에 여념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산다는 것이 음식을 배불리 먹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님을 가르쳐 주시는 오늘의 복음 말씀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본적으로 영양을 섭취하여야 한다.
이 때문에 노동을 하고 그렇기에 그 노동은 신성하며, 새로운 창조의 행위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 육신에게 중요한 음식을 항상 마련하면서도, 또한 마음과 영혼이 영원히 배고프지 않을 음식, 우리의 모든 것을 영원히 채워주는 음식을 찾아야 하겠다. 이 양식이 바로 예수님 당신 자신이라고 오늘 복음에서 밝히신다.

이 음식은 예수님 만이 주실 수 있다고 하신다.
육신은 잘 먹는다해도 결국은 죽는다. 그렇게 맛있는 요리를 먹기 위해 구토제까지 사용하던 로마인들도 모두 죽었다. 육신을 가지 고 살아가면서 우리는 또한 현세의 종말인 죽음을 지나 영원한 생명을 주실 수 있는 분, 그분은 바로 하느님의 말씀이며, 예수님 자신으로 우리는 그 말씀을 먹 고 마셔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말씀과 성체성사로 우리 가운데 현존하시는
것이다.

성경 말씀을 잘 알아듣고,
그 말씀을 실천하며, 우리에게 당신 자신을 양식으로 내어주신 성체를 잘 영함으로 우리 안에 영원한 생명을 키워가야 한다. 놀라운 진리가 이 성체성사 안에 있다.

성체성사는 우리 인간을 당신으로 변화시키는 성사이다.
예수님은 우리보다 더 강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비록 영하기는 하여도 그분이 우리를 당신화, 그리스도화 하시기 때문이다.

성체를 영함으로 우리가 그리스도로 변화된다면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처럼, 그리스도로서 살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스도와 같은 우리의 모습이 바로 우리가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하느님의 모상이며, 우리가 완성해야할 나의 진정한 본 모습이다. 우리에게 오시어 우리를 당신으로 변화시켜 주시는 주님께 감사드려야 한다.

성찬의 식탁에서 나누어지는 이 빵은 생명의 빵으로서 “많은 사람들”을 위해 전적으로 당신을 봉헌하신 예수님 자신이시다. 즉 당신 자신을 온전히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새로운 계약으로 내어주신 당신의 몸이다. 이 몸은 모든 인간들을 그리스도 안에 하나로 만들어 하느님 아버지께로 되돌아가게 할 것이다.

이 성체는 하느님의 계획이 역사적으로 실현된 것이며,
예수께서는 성체를 통해 당신의 생명을 신자들에게 나누어주시어 그들로 하여금 당신과 “한 몸”이 되게 하신다.

이제 이 성체는 교회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다.
교회의 심장으로서 성체는 인간으로 하여금 “신화(神化)” 하고, 형제들 간에 일치를 이루는 성사이다. 그리스도와 일치하고 그리스도화 될 수 있도록 모든 정성을 다하여 영성체를 준비하고 삶을 살 수 있도록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이 미사를 봉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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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조욱현 신부
  |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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