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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스카의 신비에 대한 체험
조회수 | 1,485
작성일 | 09.05.03
이번 주간의 복음은 요한복음 6장을 중심으로 한 '생명의 빵'에 대한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도 생명의 빵에 대한 유다인들의 수근거림, 반박, 즉 불신과 이에 대한 주님의 설득, 가르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주된 키워드는 생명, 살과 피, 빵입니다. 모두가 오늘날의 성찬례와 직결되어 있는 신학적인 용어들입니다.

일반인들의 상식으로서는 실제로 성체의 실체적 변화, 즉 빵과 포도주가 형상은 그대로 있으면서도 본질은 주님의 살과 피로 변한다는 성체성사의 진수는 실제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톨릭 신자들은 신앙의 진리로 받아들이고 영성체를 통하여 그 신비를 체험하고 있습니다. 성체성사는 과학적 사실로 규명되는 것이 아니라 신앙적 체험 속에서 현실로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체성사가 하나의 실제적 구원사건이며 은총이라는 것은 신자들의 체험 속에서 드러납니다. 각 천주교회에서는 ‘성체성사에 관련한 행사’를 갖습니다. 성시간과 성체조배, 늦은 시간까지 많은 신자들이 함께 하면서 축제 분위기입니다. 그 축제 분위기 속에서 간간이 어떤 신자들은 마음이 열리면서 그 기쁨으로 오는 은사를 받기도 합니다. 그 기분은 느껴보지 않는 사람들은 거짓말이라고 할 정도로 뜨거운 감동으로 와 닿습니다. 엠마오 도상의 두제자들이 주님에게 뜨거운 감동을 느꼈다는 그런 표현과 같은 류입니다. 그런데 이 감동적 현상에서 분명한 것은 그 변화가 자기 힘이 아니라 성체 안에 계시는 주님의 능력에 의해서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도 믿지 않는 자에게는 성체와 무관하게 우연한 것으로 이해되겠지요. 하지만 우리에게는 분명히 진리이고 사실입니다.

오늘독서인 사도행전(9,1-20)에서도 비신자들 또는 믿음이 부족한 신앙인들에게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되는 일이 일어납니다. 당시 예수님을 박해하는 무리들, 바리사이파의 거두인 사울(후에 바오로)이 다마스커스 길을 가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남으로써 회심하게 되어, 이전 까지 해왔던 일과는 정반대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선포자로서 가장 핵심적인 인물로 변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만화같은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당시부터 지금까지의 역사가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사울 + 그리스도 영 = 바오로'라는 다른 질적 인간으로 바뀐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나 + 성체(그리스도 영)=새로운 나'가 된다는 공식도 인정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참 신묘막측한 일입니다. 서슬퍼런 칼날을 세우고 예수님을 추종하던 무리를 없애는데 앞장서던 사울이 예수님을 만나면서 자신이 얼마나 큰 잘못을 하고 있는지를 알게 되고, 즉각 회심하여 예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그는 결국 주님의 열렬한 추종자가 되어 이방인의 사도라는 칭호를 받게 됩니다.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서 주님께서는 오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아버지의 힘으로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의 힘으로 살 것이다.” 성체를 모시는 사람은 자기 힘이 아니라 주님의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종전의 예와 같이 미워하는 사람에 대한 완전한 용서는 자기 힘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주님께서 나의 자리를 온전히 차지하실 때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성체를 모시는 사람은 내 안에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사시기 때문입니다. 주님만이 온전히 용서할 수 있습니다.

이제 성체성사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성체를 모시는 자는 성체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성체를 통해 주님과 하나(일체) 된 우리는 또 하나의 생명의 빵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빵은 사람에게 먹히면서 자신은 철저히 사라집니다. 그러나 그 빵은 비록 사라지지만 빵을 먹는 사람 안에서 살과 피가 되어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납니다. 생명의 빵은 자신은 죽이면서 남을 살렸던 주님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그 빵을 먹는 사람들이고, 그 힘으로 다른 사람에게 주님처럼 자신을 내어 놓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말과 같이 그렇게 잘 안됩니다. 그 이유는 내 안의 나(에고, ego)를 버린다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자기 나름대로 신념을 설정하여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신념에 따라 자신의 주변을 만들어 가며 살아갑니다. 흔히 이런 것을 철학이니, 이념이니, 윤리관, 가치관이니 하는 고상한 개념의 테두리에 집어넣고 그 안에 갇혀서 철저한 경계선을 두고 살아갑니다. 유유상종이라고 하던가요? 이것이 공동체 생활에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신념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갇혀 있는 사람이나 집단들이 자신들의 경계선 무너뜨리지 못하고 이기적 개인(집단)으로 고착될 때, 어떤 결과를 가져다주는지 우리는 지난 인류 역사에서 잘 보아 왔습니다.

가까운 예로 독일과 일본의 제2차대전 전범들에 대한 예에서 우리는 많은 실례를 볼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을 수백만명이나 죽이는 게르만족들, 동남아 지역의 선량한 사람들을 자기네 패권야욕에 이용한 일본(왜)족들, 또 우리와 형제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북한의 괴뢰집단들......그들도 신념, 이념, 철학이라는 말로 자기들의 편견을 합리화시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 이념집단의 테두리 밖에 있는 사람들, 또는 상황들을 가볍게 취급하거나 아예 무시해버림으로써 상상도 못할 수많은 상처와 고통을 낳게 합니다. 자기희생이 아닌 다른 이의 희생을 강요하기가 일 수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신념이나 이념이나 철학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사탄으로부터 조종받는 야욕입니다.

사울이 위대한다고 인정받는 것은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 도상의 체험에서 그러한 잘못된 자신을 보고 깨닫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교황 바오로 2세가 종파를 초월하여 세계인들의 존경을 받는 것은 과거 가톨릭사의 잘못된 점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참회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겼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근린국가인 일본이나 동맹국가인 미국은 자기들의 잘 못을 인정하지 않고 자꾸만 수구화하려 합니다. 그들 나라에는 주님의 빵이 배달되지 않는가 봅니다. 주님의 빵이 배달되지 않는 나라는 시한부 생명입니다. 반드시 망합니다. 이는 제 말이 아니고, 주님의 말씀입니다.

정말 잘 들어두어라. 만일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너희 안에 생명을 간직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이며 내가 마지막 날에 그를 살릴 것이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며 내 피는 참된 음료이기 때문이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서 살고 나도 그 안에서 산다.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의 힘으로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의 힘으로 살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이 빵은 너희의 조상들이 먹고도 결국 죽어간 그런 빵이 아니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영원한 생명의 빵이시며 참된 양식’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유다인들은 영원한 생명, 곧 구원을 가져다주실 분은 오직 하느님 한 분뿐이시라고 고집을 피웁니다. 그래서 감히 그 누가 그분의 권한을 대신할 수 있단 말인가? 더욱이 동등시 할 수 있단 말인가? 자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라니? 하면서 오로지 그들만이 생각하고 있는 잘못된 하느님 관(신념, 사상)에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스스로 올가미에 빠진 자들은 진실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유다인들도 주님을 하느님으로 알아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념(사상)의 오류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자신의 복음서를 통해 빠스카의 희생양이 되신 예수님이 바로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구원자)이심을 거듭 상기시켜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분은 죽음에서 부활하셨고 이제 당신의 제자 공동체(교회)와 함께 하시며, 그 공동체 가운데서 계속되는 성제의 영원한 제물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오늘복음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의 제단에서 그분의 희생과 죽음과 부활을.... 그분은 사랑의 공동체, 일치와 화해, 그리고 평화를 나누는 공동체 한 가운데 계시며, 그분의 살과 피를 나누어 먹고 마시는 우리가 또 다른 그분 사랑의 화신으로 태어나 이 세상 한 가운데에서 그것을 무기로 삼아 복음을 증거하며 살아가기를 바라신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님의 부활을 소리 높여 찬양하며 기뻐하는 이 부활시기에 더욱 자주 말씀의 전례 안에서 예수님을 체험하고 거듭 회심하며, 성찬의 전례 안에서 그분을 나누어 먹고 마셔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일상의 식탁을 준비하고 나누는 가운데 그분의 복음을 전하는 신앙의 증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두올묵상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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