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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조회수 | 1,337
작성일 | 09.05.03
예수님과 유다인 사이에 벌어진 영원한 생명을 주는 빵에 대한 논쟁 이후에 많은 사람이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수군거립니다.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요한 6,60). 그리고 제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그분 곁을 떠납니다(66절). 이러한 상황에서 예수님이 질문을 하십니다.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당신의 열두 제자를 향해 던진 예수님의 질문은 단순히 “만일 너희가 떠나고 싶으면 떠나라!”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들이 나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나를 떠난다고 하더라도 당신들만은 나를 떠나지 않고 내 곁에 남아 있기를 바랍니다.”라고 번역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참 포도나무의 비유’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기”(요한 15,5) 때문입니다. 당신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마음을 이해한 베드로 사도가 제자들을 대표해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16,68)라고 대답합니다.

신앙인으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 역시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어떤 순간에는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오며 건네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해서, 또 어떤 때는 예수님의 말씀을 비록 알아듣기는 했지만 그 말씀이 귀에 거슬리기에(오늘 복음에 나오는 유다인들처럼), 또 어떤 때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너무 어려워서 예수님을 떠나고 싶은 유혹을 받기도 합니다.

그 순간에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고백한 것처럼 우리 역시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라는 신앙을 고백하면서 그분 안에 머물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당신의 성령을 부어주시어, 세상의 풍파 속에서도 우리가 당신의 말씀을 충실히 따르도록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서동원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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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과 하나 되어 기적을 행하는 베드로

교회는 유대인과의 마찰이 어느 정도 해소됨으로써 안정을 찾고 성장하게 되었다. 사도 베드로는 여러 지방을 다니다가 리따에서 8년 동안 중풍으로 누워있던 에네아를 주님의 이름으로 치유시킨다. 또한 요빠에서 죽었던 여신도 다비타를 소생시킨다. 베드로가 보인 치유와 죽은 이를 소생시킨 기적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계신다는 징표이며 이러한 기적을 통하여 많은 이들이 주님을 믿게 되었다. 그리하여 주님을 믿는 신도들의 수효가 점점 늘어났던 것이다.

베드로가 행한 기적을 보면, 에네아의 중풍을 고칠 때는 주님의 이름으로 그를 치유한다. 그런데 다비타를 소생시킬 때는 주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주님께서 행하셨던 것처럼 행하여 소생시킨다. 베드로는 먼저 예수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소생시키실 때처럼(마르 5,40) 사람들을 방에서 다 내보낸 후, 예수님께서 “소녀야, 어서 일어나라.”(마르 5,41)라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다비타, 일어나시오.” 하고 말한다. 베드로가 깨어난 다비타를 일으키는 모습 역시 회당장의 딸을 소생시킬 때와 비슷하다(마르 5,41).

이를 통하여 우리는 베드로가 시간이 흐를수록 주님과 더욱더 하나 되었음을 볼 수 있다. 사실 그가 예수님의 제자로서 예수님과 함께 생활하였을 때까지는 악령 하나도 제대로 쫓아내지 못하였다(마르 9,18). 그리하여 예수님으로부터 기도하지 않고 믿음이 부족하다는 꾸지람을 들었다(마르 9,29; 마태 17,20). 예수님의 으뜸 제자이며, 예수님을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마태 16,16)라고 고백하면서도, 중요한 순간에는 주님과 함께 있었으면서도 그는 겁 많고 나약하여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던 사람이었다. 그만큼 그는 예수님과 함께 있었으면서도 예수님과 멀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을 체험한 후 성령을 받은 베드로는 온전히 변하였다. 자기들을 박해하는 사람들 앞에서 그들의 죄를 물으며 부활하신 주님을 선포하는 사도가 되었다. 주님의 이름으로 모욕과 박해를 당하는 것을 기뻐하는 사람으로 변화되었다(사도 5,41).

뿐만 아니라 주님의 이름으로 앉은뱅이와 중풍병자를 치유한다. 베드로 안에 주님께서 함께 계시며, 베드로를 통하여 주님의 능력이 사람들에게 전해진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제 베드로는 주님께서 행하셨던 것처럼 행함으로써 다비타를 소생시킨다.

베드로는 주님께서 행하셨던 것처럼 행할 수 있을 만큼 주님과 온전히 하나가 된 것이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또 나를 위해서 당신의 몸을 내어주신 하느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갈라 2,20)라는 말씀대로 베드로는 자신이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그 안에서 사시고, 자신이 행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그 안에서 행하시는 삶을 산 것이다.

그는 이미 주님과 하나가 된 천국의 삶을 지상에서 살았던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다락방에서부터 함께 기도함으로써 얻어진 것이며, 주님을 굳게 믿는 믿음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기도와 믿음은 이처럼 사람을 겁 많고 나약하며 비겁한 사람을 용기 있는 사람으로, 능력 없는 사람을 능력 있는 사람으로, 주님과 먼 사람을 주님과 하나 된 사람으로 변화시킨다. 그러므로 기도와 믿음을 통하여 주님과 하나 되고, 주님의 능력을 행하며, 주님을 선포하는 신앙인이 되자.

경규봉 신부
  |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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