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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부활 제3주간 목요일 : 이는 내 말이라, 어김이 없다.
조회수 | 2,269
작성일 | 05.04.12
독서 : 사도 8,26-40
복음 : 요한 6,44-51  

그때에 예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다. 그리고 내게 오는 사람은 마지막 날에 내가 살릴 것이다. 예언서에 그들은 모두 하느님의 가르침을 받을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누구든지 아버지의 가르침을 듣고 배우는 사람은 나에게로 온다. 그렇다고 해서 아버지를 본 사람이 있다는 것은 아니다. 하느님께로부터 온 이밖에는 아버지를 본 사람이 없다. 정말 잘 들어두어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누린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 너희의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도 다 죽었지만 하늘에서 내려온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든지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곧 나의 살이다. 세상은 그것으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 (요한 6,44­-51)


◆ 군중은 투덜거리며 이렇다 저렇다 말함으로써 믿음이 없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빵의 기적을 베푸신 예수님은 당신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이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든지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곧 나의 살이다” 하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예수님의 그런 말씀을 받아들이기를 망설였습니다. ‘나자렛의 한 가난한 목수의 아들인 그가 어떻게 감히’ 하는 마음에서일까요?

예수님이 세상에 오실 때 목동들에게 나타난 천사는 그를 알아보는 표는 “구유에 누운 아기”라 했습니다. “구유에 누운 아기”에게서는 세상을 통치할 아무런 힘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목동들은 알아보았습니다. 그래서 성서는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하느님을 알아볼 것이라 했나 봅니다.(마태 5,8)

“그날 내가 이스라엘 가문과 맺을 계약이란 그들의 가슴에 새겨줄 내 법을 말한다. 내가 분명히 말해 둔다. 그 마음에 내 법을 새겨주어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다. 내가 그들의 잘못을 다시는 기억하지 아니하고 그 죄를 용서하여 주리니, 다시는 이웃이나 동기끼리 서로 깨우쳐 주며 야훼의 심정을 알아드리자고 하지 않아도 될 것이며,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나 내 마음을 모르는 사람이 없으리라. 이는 내 말이라, 어김이 없다.”(예레 31,33-­34) / 김수빈 (서울대교구 명동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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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든지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곧 나의 살이다."라고 예수께서는 빵
의 기적 후에 군중들에게 말씀하신다. 그러나 그들은 이 말씀을 이해하기가 너
무 힘들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어렸을 때부터 잘 알아온 사람으로 목수의 아들
인 사람이 이런 말을 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예수님을 인간적으로만 평가하고
사회적 가치관과 세속적인 기준으로만 판단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가르침과 그분
이 주시는 생명의 말씀이 그들에게 먹혀들 수가 없었다. 우리 자신도 이런 잘못
을 곧잘 범한다. 내가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선입견, 판
단이다. 그리고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나를 너무 잘 안다고 생각하는 착각 때
문에, 무엇인가 새로운 일을, 변화되는 삶을 하려고 할 때에 걸림돌이 되어 일
을 시작할 용기마저도 갖지 못하고 주저앉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사고판단을 기준 삼을 때 마찬가지로 우리는 예수님께 대해서 아무 것
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다”고 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오늘도 미사
에 참여하면서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구원을 믿으며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 옆에
는 신앙을 갖지 않고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우리가 그들보다 무엇이 더
나아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보다 우리를 먼저 이끌어주셨다는 것
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께 더욱 감사해야 할 것이다. 아버지께 감
사한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에 이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은 당신의 역할이 지금까지 나타났던 예언자들과
는 다른 당신의 신비스러운 역할을 드러내신다. 예언자들은 하느님을 보지 못했
지만 예수께서는 아버지와 함께 계셨으며 그분에게서 보고, 들은 바를 우리에게
전해주시며 우리를 살리기 위해 왔노라고 하시는 것이다. 이렇게 영원한 삶을 위
하여 당신이 주시는 빵을 먹어야 한다고 하신다. 그 빵은 곧 당신 자신이며 당신
이 곧 생명의 빵이라고 밝히신다. 이 빵은 조상들이 먹고도 죽어간 만나보다 더
위대한 영원한 생명을 위한 빵이라고 하신다. 그러기에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개
인적인 위안과 평화만을 찾는다면 유다인들 못지 않은 예수님께 대한 몰이해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그런 신앙은 결국 주님을 배척하게 되고 말 것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간다고 하면서도 막연하게, 습관적으로 신앙생활
을 할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 우리에게 다가오시며 우리를 깨우쳐 주시고 영원
한 생명을 주시고자 하는 예수님을 언제나 맞아들이며 언제나 이 생명의 빵을 우
리의 양식으로 삼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 당신의 아들을 통하여
모든 것을 주신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하며 이 미사를 봉헌하자. / 수원교구 조욱현 신부
  | 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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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약의 만나와 신약의 생명의 빵 [요한 6, 44]

하느님의 첫사랑 : 파리의 어떤 모임에서 교황대사로 있던 롱칼리 추기경과 프랑스의 유다교 최고 랍비가 마침 일인용 엘리베이터 앞에서 마주하게 되었다. 두분이 한꺼번에 탈 수는 없고 해서 랍비가 젊잖게 교황 대사보고, '먼저 타고 가십시오'하며 권했다. 그랬더니 롱칼리 추기경이 '아닙니다. 랍비께서 먼저 타셔야지요 !' 하며 또 양보하였다. 그리고 서로 입장이 곤란한 시간이 잠시 흘렀다. 드디어 롱칼리 추기경이 미소를 지으며 다음과 같이 설명을 하였다. '랍비님이 절대로 저보다 먼저 타고 가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구약이 먼저이고 그 다음이 신약이니까요!'

오늘 복음에서는 구약의 빵인 만나와 신약의 생명의 빵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과거에 자기 조상들이 만나를 먹은 것을 은혜롭게 여기며 자부심이 대단했는데, 예수님은 그 보다도 더 좋은 영원한 생명을 주는 생명의 빵을 준다고 하는데도 유대인들은 좀처럼 믿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며, 이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히 살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어떻게 빵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더구나 그 살을 양식으로 준다는 말씀은 비인간적인 일이며 인간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이 말씀을 농담으로 하신 것이 아니라, 분명히 군중들에게 그리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군중들에게 빵의 기적을 베푸신 다음에 당신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나는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나를 먹는 자는 내가 마지막 날에 나를 믿는 자들을 다시 살리리라!"는 등의 말씀을 하셨지만 사람들은 예수님의 그런 말씀을 받아들이기를 망서렸습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행하신 기적들과 예수님 자신은 아버지 하느님께로 부터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기 위하여 보냄을 받았다는 증언의 말씀을 하셨지만 그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을 모르고,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선입견은 예수가 나자렛의 한 목수의 아들이며, 가난한 가정에서 자라난 그가 어떻게 능히 하느님께 보냄을 받은 자가 될 수 있는지? 하는 문제였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예수를 인간적인 면에서 평가하고, 사회적인 가치관과 세속적인 기준으로만 판단했기에 예수의 가르침과 그분이 주시는 생명의 말씀을 들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를 인간적인 견지에서 생각하여 그러한 결론에 도달하였다면, 우리도 지금 예수와 하느님 사정에 대해서 그러한 사고판단을 가질 때, 예수께 대해서, 우리도 마찬가지로 아무 것도 찾을 것도 없고 가질 것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시지 아니하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다!" 이 말씀은 하느님과 예수님은 공동으로 일하시며 서로 그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 일치되어 계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등장하신 이래, 현대에 이르기까지 진실로 예수는 어떤 분이신가가 인류의 가장 큰 수수께끼 중의 하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인간이시며 하느님이심을 받아들이는 것이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성서에서 말씀하시는 메시지는 끊임없이 하느님께서는 예수라는 인물안에서 신앙의 선택을 요구합니다. 시메온이 아기 예수를 보고 예언하였듯이, 예수는 분명 온 인류에게 구원과 멸망의 걸림돌이 되시는 것이다. 성서에서는 분명히 에수님을 거절하면 그를 보내신 하느님을 거절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결단에 있어서, 그분의 인간적인 지위나 재산 상태, 출신 성분, 그의 형제, 자매, 친구 동료들과의 관계만으로는 예수님을 선택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예수님한테는 그보다도 하느님과 일치되어 계신 분, 그리고 그분의 하느님과의 관계, 하느님을 알려주시는 신비를 통해서 예수님께 대한 신앙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구세주라고 고백하며 신앙할 수 있는 것은 하느님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갖는 예수님의 독특한 위치를 인정해야 하며, 또한 하느님의 증언을 통하여 예수님을 알 수 있게 됩니다. 또한 반대로 하느님은 예수님을 통하여 자신을 드러내 보이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 대한 신앙은 하느님 안에서 찾은 것이기에 예수님께서 오늘 말씀하셨듯이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시지 아니하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다'고 하셨고, 우리는 이 말을 진리로써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많은 종교들 가운데 예수께서 계시하신 하느님을 믿으며, 또한 믿음으로써 구원을 받으리라는 희망 속에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아멘. / 서울대교구 김웅태 신부
  | 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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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 가면 모두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특히 출장중에 만나는 외국인들에게서 자존심 상하는 얘기를 들을 때 나는 더 애국자가 된다. 낯선 사람에게서 듣는 우리나라에 대한 호의적 얘기는 신나는 것이지만 부정적 얘기를 듣는 것은 정말 죽을 맛이다. 특히 내가 천주교 신자라는 것을 알고 비아냥거리듯이 질문을 해오면 여간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면 주님께서 나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하여 마련한 만남의 시간이었다고 믿어질 때도 있다.

가끔 기내에서 해외에 입양되는 아기들을 만나기도 한다. 이 아기들은 임시 보모인 유학생들의 품속에서 몇 시간씩 울며 보챈다. 자기들을 버리는 조국에 대한 항의의 울음일까? 이 아기들과의 만남도 하느님께서 마련한 귀중한 시간이었다. 북한의 기아에 대해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과의 만남, 서울의 밤하늘을 수놓는 그 많은 붉은 십자가의 의미 등을 궁금해하는 사람들, IMF의 원인에 대해 물어오는 사람들은 우리의 현재 상황을 똑바로 만나보라고 하시는 하느님의 섭리처럼 느껴졌다.

주님과의 만남이 맛남(?)이어야 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맛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는데, 주님께서는 온갖 맛을 가르쳐 주시며 이를 다 터득하게 하시고 최고의 감칠 맛을 만들도록 나를 가르쳐 만들어 가시는 것 같다. / 서울대교구 김기문 형제
  | 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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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복음 6장 44~51절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든지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곧 나의 살이다. 세상은 그것으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

주님의 몸

복사를 한 이라면 누구나 몰래 대제병을 먹어본 일이 있을 것입니다. 아무 맛도 없고 미사 때 영하는 소제병과 다를 게 없는 것을 먹어보고 싶어했던적이 저에게도 있습니다. 그러한 마음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복사 아이들에게는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신학생 때 복사 아이들이 제병을 먹고 싶어 해서 소제병을 조금씩 준 일이 있습니다. 물론 신부님이나 수녀님이 알았다면 꾸중을 들을 일이지만요. 저는 그 아이들이 그 자리에서 그것을 다 먹은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에 그 아이들에게 얘기를 들어보니 잘 싸가지고 다니면서 조금씩 아껴먹었다고 했습니다. 제병이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없는 것이어서 그렇게 소중하게 다룰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 제병이 성체로 사용될 것을 알았기에 더 소중하게 다루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아이들이 성체의 의미는 잘 몰랐더라도 그 소중함을 알고 있지 않았을까요? 영원한 생명으로 이끄는 주님의 몸을 우리는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고 경건하게 영성체를 하고 있습니까? 어린이들의 순수한 마음처럼 그 소중함을 아무 조건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성체는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이끄는 양식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조건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 이형호 신부
  | 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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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8,26-40 : 믿음과 열정으로 충만한 기쁨을 누린 내시]

필립보는 주님의 천사가 말한 대로 예루살렘에서 가자(예루살렘 서남방향 약 70Km 지점에 위치한 도시)로 내려가는 길을 가던 중에 에티오피아(검은 피부란 뜻) 여왕의 내시로 왕실 재정을 담당한 고관을 만난다. 그는 내시이기 때문에 유대인의 일원이 될 수는 없었지만 유대교를 독실하게 믿는 사람으로서 예루살렘을 순례하고 돌아가던 중이었다. 그가 에티오피아에서 예루살렘까지의 먼 길을 순례하러 왔다는 사실은 그가 얼마나 유대교를 진심으로 믿고 있었는가를 잘 드러내준다. 신심 깊은 그는 마차 안에서도 이사야 예언서를 큰소리로 읽고 있던 중에 필립보를 만났다. 그는 필립보를 자신의 마차에 오르도록 권유하여 필립보로부터 성서 말씀과 예수님에 관한 복음을 전해 들었다. 그리고 필립보로부터 세례를 받고, 기쁨이 충만하여 고국으로 돌아갔다.

에티오피아의 내시는 이방인으로서 아마도 흑인이었고, 거세되었기 때문에 유대인이 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하느님을 굳게 믿는 사람이었고, 하느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본국에서 예루살렘까지의 거리가 대단히 멀음에도 불구하고 순례하였다. 하느님의 도성이며 하느님께서 머무르시는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가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하느님께 대한 열정과 믿음이 컸던 것이다. 그는 순례하는 길에서도 예언서를 큰소리로 읽으며 하느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자 하였다. 이처럼 그는 하느님께 대한 열정과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이러한 그의 믿음과 열정을 어여삐 보시고 하느님께서는 그를 소중하게 여기셔서 필립보를 보내셨다. 그로 하여금 예수님에 관한 복음을 듣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세례를 받도록 하심으로써 그를 구원하시고, 그에게 충만한 기쁨을 주셨다. 이처럼 주님을 통한 커다란 기쁨을 누리게 된 내시는 아마도 본국으로 돌아가 복음을 전하며 이방인의 선교사가 되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의 겉을 보지 않으시고, 그 내면을 보신다. 그의 지위, 가문, 재산을 보지 않으시고, 그의 내면에 있는 믿음과 사랑, 열정을 보신다. 하느님께서는 무엇보다도 믿음과 열정을 지닌 사람을 사랑하신다. 당신께 믿음을 두고, 당신 말씀을 가슴에 담고 사는 사람, 말씀으로 사는 사람을 사랑하신다. 아니,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소중하고 귀하게 여기시지만, 하느님의 말씀을 가슴에 담고 사는 깊은 신앙인, 하느님께 대한 열정을 가진 사람만이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며 체험할 수 있다.

사도 바울로는 “하느님께서는 믿는 사람이면 누구나 아무런 차별도 없이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십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입니다.”(로마 3,22) “아무 공로가 없는 사람이라도 하느님을 믿으면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얻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비록 죄인일지라도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로마 4,5)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비록 내가 하느님께 드릴 공덕이 없을지라도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열정을 가지고 살아감으로써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구원되며, 하느님께서 주시는 충만한 기쁨을 누리는 신앙인이 되자. / 전주교구 경규봉 신부
  | 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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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사제이기 전에 한 사람의 신앙인으로서 살아가면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우면서도 동시에 가장 큰 주님의 은총을 느끼게 되는 신비는 바로 성체의 신비입니다.
겉으로 보여지는 성체는 보잘 것 없습니다.
그리고 음식으로 치자면 별 맛도 없고 또 허기를 달래는데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먹는 그 어떤 음식보다도 나를 살찌우고 변화시키는 양분을 제공하는 것이 바로 성체라는 것을 우리는 믿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먹힘으로써 우리 안에서 녹아 없어지지만 성체를 모시면 오히려 우리가 예수님께 먹혀 예수님 안으로 녹아 들어가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이렇게 됨으로써 우리는 밥이 되어주신 예수님을 따라 밥이 되어주는 신앙인으로 새롭게 태어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살을 참된 양식이며 당신의 피는 참된 음료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냥 일반적인 양식이나 음료가 아니라, ‘참된’ 양식이며 음료라고 말입니다. 여기서 참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저는 ‘참되다는 것’이 성체와 성혈이 온전한 한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없어서는 안 될 ‘사랑’자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사랑을 받지 못하면 온전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멀쩡하게 살아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사랑을 받지 못하고, 사랑을 주지 못하고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마치 죽은 것과 같은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조건 없는 완전한 사랑이 바로 우리가 모시는 성체와 성혈 안에 담겨 있습니다. 아니 성체와 성혈은 사랑 자체라고 해야 더욱 맞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성체를 모실 때 사랑을 먹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랑은 우리를 사랑 덩어리로 바꾸어 줍니다.
이 사랑이 곧 우리의 참된 힘이 됩니다.
그 사랑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누군가를 딛고 일어서려 하고, 다른 사람들을 제물 삼아 위로 올라가려고 할때 우리가 다른 이들을 위해 기꺼이 발판이 되어주고 제물이 될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얻게 해줍니다.

우리가 주님을 먹고 마시며 살아갈 때, 우리 역시 다른 누군가에게 먹을 것으로 마실 것으로 우리 자신을 내어놓아야 할 것입니다. 성체로서 주님은 우리에게 먹힘으로써 우리를 성체로 변화시켜 세상의 양식으로 파견하시기 때문입니다.

* 대구대교구 이태우(프란치스코)신부
  | 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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