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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 :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가겠습니까?
조회수 | 2,243
작성일 | 05.04.12
독서 : 사도 9,31-42
복음 : 요한 6,60-69  

그때에 예수의 제자들 가운데 여럿이 “이렇게 말씀이 어려워서야 누가 알아들을 수 있겠는가?” 하며 수군거렸다. 예수께서 제자들이 당신의 말씀을 못마땅해하는 것을 알아채시고 “내 말이 귀에 거슬리느냐? 사람의 아들이 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되면 어떻게 하겠느냐? 육적인 것은 아무 쓸모가 없지만 영적인 것은 생명을 준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적인 것이며 생명이다. 그러나 너희 가운데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누구며 자기를 배반할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알고 계셨던 것이다. 예수께서는 또 이어서 “그래서 나는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사람이 아니면 나에게 올 수 없다고 말했던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때부터 많은 제자들이 예수를 버리고 물러갔으며 더이상 따라다니지 않았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열두 제자를 보시고 “자, 너희는 어떻게 하겠느냐? 너희도 떠나가겠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나서서 “주님,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을 가지셨는데 우리가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가겠습니까? 우리는 주님께서 하느님이 보내신 거룩한 분이심을 믿고 또 압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요한 6,60­-69)


◆ 오늘 복음 역시 어제와 같이 예수님이 구세주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와 같은 대답을 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어 떠날 수도 있겠지요.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라는 말씀에서처럼 “영”은 하느님 또는 예수님한테서 오는 “영”을 가리키고 “육(또는, 살)”은 자기 자신에게만 내맡겨진, 제한된 가능성 안에 갇힌 인간이란 의미이겠지요. ‘육’으로서의 인간은 혼자 힘으로 예수님의 말씀과 표징의 깊은 뜻을 깨닫지 못하고 또 믿지도 못합니다. 반대로 ‘영’은 인간을 비추어 주는 생명의 힘으로 그의 눈을 열어주고 예수께서 표현하시는 ‘말씀’을 식별하게 해줍니다.

성령께서 내리시면(요한 7,39) 그 모든 의미가 밝혀지게 된다고 했으니 예수님의 인간적인 모습과 십자가를 꿰뚫어(13,7 참조) 그분의 영광을 식별하고, 그분께서 하시는 말씀과 행동의 진실성과 권능을 알아볼 수 있겠지요.

예수님이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시는 분인가를, 곧 하느님께 보냄을 받아 이 세상에 오신 구세주 그리스도임을 당신이 기적을 통해 증명하고 보여주었는데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성령께서 알려주시지 않는 것이니 정말 간절하게 알아보는 눈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가 믿음으로 고백했듯이 “주님,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을 가지셨는데 우리가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가겠습니까?” 하는 믿음의 고백을 하게 되는 순간을 체험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 김수빈 (서울대교구 명동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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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번 주간의 복음을 통하여 요한복음6장을 계속 들었다. 그것은 예수께
서 빵의 기적을 통하여 계시하고자 하시는 성체성사에 대한 가르침이었다. 그러
나 그것을 알지 못하는 군중들은 예수님을 억지로라도 왕으로 삼으려고 했고(15
절), 예수께서는 그것을 미리 아시고 서둘러 제자들을 배를 태워 가파르나움으
로 보내시고(16절) 당신은 산으로 피하셔서 기도하신 다음 물 위를 걸어서 제자
들에게 오셨고, 가파르나움으로 가셨다(19-20절). 군중들은 예수님을 찾아 헤매
다가 가파르나움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거기에서 군중들은 예수님을 만
나 뵙는다(25절).

예수님은 군중에게 너희가 나를 찾아온 것은 내가 너희에게 베푼 기적의 의미를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26절)이라고 하시며, 썩어 없
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애쓰지 말고, 영원히 살게 하는 양식을 얻도록 힘써라(27
절)고 하셨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빵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며 세상
에 생명을 준다(33절)고 하셨다. 그러니까 그들은 선생님, 그 빵을 항상 저희에
게 주십시오(34절)하고 청한다. 여기서 예수께서는 내가 바로 생명의 빵이다. 나
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고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
이다(35절)라고 하시고,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든지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곧 나의 살이다. 세상은 그것
으로 생명을 얻게될 것이다(51절)라고 하셨다.

이 말씀을 듣고 제자들 가운데 여럿이 이렇게 말씀이 어려워서야 누가 알아들을
수 있겠는가?(60절)하며 수군거렸다. 그리고 많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떠나 물러
갔고 더 이상 따라다니지 않았다(66절). 이 때에 예수께서는 열 두 제자를 보시
고 자, 너희는 어떻게 하겠느냐? 너희도 떠나가겠느냐?(67절)하고 물으셨을 때,
시몬 베드로가 주님,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는말씀을 가지셨는데 우리가 주
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가겠습니까?(68절)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님의 말씀은 영과 생명을 지닌 말씀이다. 이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실
천하여야 한다. 예수님의 말씀이 영원한 생명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
의 말씀을 영이며 생명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없는
것이다. 즉 예수님이 누구이시며 어디에서 오셨고 어디로 가시는 분이신가를 당
신의 기적들을 통하여 증명해 주시는 데도 받아들이지 않았던 유다인들과 같다.
우리는 이제 오늘의 복음 앞에 베드로가 고백했듯이 주님,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
을 주는 말씀을 가지셨는데 우리가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가겠습니까? 라고 믿
음를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당신의 몸을 우리에게 생명의 양식으로 남
겨주신 성체를 열심히 영할 수 있어야 한다. 성체성사는 어제도 말했듯이 교회
의 심장이며, 우리 인간을 당신으로 변화시켜주는 성사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다. / 수원교구 조욱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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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곧 생명의 빵이다 [요한 6, 60]

우리는 부활 3주간 평일미사 복음을 통하여 요한복음 6장의 말씀을 계속 들어 왔습니다. 그 내용은 우리가 매 미사때마다 받아 모시게 되는 영성체의 신비와 그 의미가 어디에 있는지를 더욱 깊이 묵상하게 해주는 예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빵인 성체가 당신 자신의 살아있는 몸이라는 것을! 또 왜 우리가 받아 먹어야 하며, 받아 먹음으로써 어떠한 영신적인 은혜가 우리 안에 이루어지는가를 이해시키시기 위하여 먼저 같은 복음인 요한 6, 1-15에서 유다인들의 명절인 해방절이 가까워 많은 사람들이 모였을 때 티베리아 호수 건너편에서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남자만도 5,000명을 배불리 먹이시고, 열 두 광주리나 남게 하시는 엄청난 기적을 행하셨던 것입니다. 그러한 기적을 목격한 그들은 자기들에게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구원자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던 터이므로 예수가 바로 그가 아닌가 하고 예수를 왕으로 추대할려고 선동했던 것입니다. 그런 움직임을 아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서둘러 호수건너편 가파르나움으로 배를 태워 보내시고, 당신은 피하시어 산에서 기도하신 다음 물 위를 걸으시어 건너가셨습니다. 다음 날 군중들은, 없어진 예수님을 찾아 가파르나움까지 쫓아왔습니다. 그러한 군중을 보시고 예수님은 "너희가 나를 찾아온 것은, 내가 너희에게 베푼 기적의 뜻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라, 쉽게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빵만을 보고 온 것이 아니냐? 한 평생의 허기를 채워주는 썩어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영원히 살게 하는 양식을 얻도록 힘쓰라!"고 그 기회에 일러 주셨습니다. 그 말을 들은 그들은 "그러한 빵은 어디서 구하며, 그빵을 항상 저희에게 주십시오!"했습니다. 이 때에 예수님은 그들에게 "내가 바로 생명의 빵이다! 내가 바로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것이며, 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생명을 간직하지 못할 것이다."하셨습니다. 즉,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육신을 살리기 위한 빵을 기적을 통해 마련해 주신 다음에 이제 물질적인 빵에서 마음을 들어높혀, 하느님의 신비 안에서 이룩되는 우리 영혼의 음식이 될 당신의 몸과 피를 마련하시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여기까지 온 사람들은 이제 그 말씀을 받아드리기가 어렵다고 수군거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 드리려 않는 태도를 책하시지 않으시고, 앞으로 장차 그 증거를 보여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즉 당신이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승천하심으로써 당신이 전에 있던 곳인 아버지께로 다시 올라가는 것을 보게되면, 그때 가서는 어떻게 하겠느냐? 하시는 것입니다. 문제는 결국 예수가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시는 분인가를 즉, 하느님께로 보냄을 받아 이 세상에 오신 구세주 그리스도임을 기적들을 통해서 증명하고 보여 주었는데도 받아드리지 않는 데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오늘의 복음앞에, 우리에게 당신 몸과 피인 성체성사를 주시며, 우리와 일치하시며, 은혜와 영생명을 주시는 주님께 감사드리면서, 사도 베드로가 믿음으로 고백했듯이 "주님, 주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을 가지셨는데 우리가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가야 합니까?"하는 믿음의 고백을 더욱 깊게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아멘. / 서울대교구 김웅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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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 : 요한 6, 60-69

참으로 우리 사회가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있지 못하고 한없는 욕심과 극도의 이기심 때문에 자신의 자리를 너무나도 무책임하게 떠나버리는 현실을 볼 때마다 매우 안타깝고 슬픈 생각이 듭니다. 정말 이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하는 사람은 아직도 무슨 미련이 그렇게 남아서인지 몰라도 끝까지 자신의 위치를 고수하려는 반면, 자신들을 애타게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야 죽든 말든 아무런 상관없이 오직 자신과 집단의 이익과 권리만을 찾기 위해 소중한 일을 내팽개치고 떠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근래에 들어 두 번 다시 있어서는 안 될 일들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는데 분노와 울분을 감추지 못하겠습니다. 의사가 죽어 가는 병자를 남겨 둔 채 떠나지를 않나, 기업의 구조조정으로 인한 대량의 노동자를 거리로 내쫓아 하루아침에 온통 집안을 풍비박살을 만들지 않나, 치매 걸린 불쌍한 노부모와 장애를 가진 가련한 어린아이를 버리지를 않나, 이와 비슷한 경우를 우리는 현실에서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빈번히 볼 수 있는 현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제는 가정뿐만 아니라 이 사회 전체가 심각한 분열과 해체의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는 눈곱만큼도 찾아 볼 수 없는 불행한 세상으로 점점 타락되어 가고 있습니다. 언제쯤 진정한 사랑과 평화가 실현될 날이 올지, 정말 미래와 희망은 있는지 모두들 근심과 우려 속에 하루하루를 연명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의 위기 상황은 '자기 희생적인 사랑과 봉사'보다는 '자기 중심적인 욕심과 이기심'을 먼저 앞세우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지난 날 모진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참고 견디던 인내와 성실성은 온데간데없고 조금만 귀찮고 힘들고 어려우면 그냥 도망쳐 버리려는 것이 지금 현재 우리의 자화상입니다. 타인은 자신이 바라는 대로 해 주기를 원하면서, 왜 자신은 타인의 마음을 조금도 헤아리지 않으려고 합니까? 희생과 인내가 따르더라도 언제나 변함없이 반드시 있어야 자리에 있어야 하는 것이 자기가 선택한 것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와 의무에 따른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참된 자유로움은 자신이 선택한 일에 책임을 질줄 아는 것을 깨닫는 일입니다. 따라서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 중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한 제자는 자신이 선택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질줄 몰라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그분을 배반하고 떠나버립니다. 그는 눈앞의 사리사욕에 빠져 그만 유혹에 떨어지고 만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보시고 똑 같이 "자, 너희도 나를 버리고 떠나가겠느냐? 하고 물으시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천주교 부산교구 박근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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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하는 예수님의 물음에 대한 정답은 누구나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대답하는 너는 네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할 때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나는 누구이며 뭘 하는 사람인가? “나는 성당을 짓고 있습니다.”(「님은 바람 속에서」, 57쪽)라고 말할 수 있다면 참으로 좋으련만 나는 오늘도 보람과는 먼 일상의 일들에 빠져 ‘성당 짓는 일’을 잊고 있는 것 같다. 엉뚱한 곳에 정신을 팔고 있다. 믿고 안다는 것과 땀 흘려 일하는 것과의 차이를 느낀다. 돈에 눈이 먼 생활이 아니었나 반성한다.

물고기 153마리(요한 21,'11)를 볼펜 상표로 만든 분이 있다. 뵙지는 못하였지만 그분의 기업 철학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게 해준다. 그 기업의 주인이 예수님인 것 같은 착각을 한다. 예수께서 하지 말라고 하신 일곱 가지(마태 5-7장) 중 맨 먼저 것이 “성내지 말라”임을 너무나 잘 알면서도 권위를 내세우고 있는 나 자신을 볼 때, 간음한 여인을 돌로 치려다가 진퇴양난에 처한 내 모습 ―'예수께서 이미 내 죄가 그 여인 못지않다는 사실을 알고 계심을 알았기에'―'과 비록 모든 사람이 주님을 버릴지라도 저는 결코 주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마태 26,'33)라고 다른 사람들은 주님을 버릴 수 있음을 단언하는 나의 위선을 생각하면 믿고 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한다.

“신이 인간이 된 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신이 되게 하기 위해서다”라는 옛 성인의 말씀은 우리가 얼마나 큰 하느님의 은총 속에 살며, 하느님을 닮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일깨워 준다. / 서울대교구 김기문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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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6,60-69

3일 내내 요한복음 6장 생명의 빵에 대해서 이야기 했는데, 오늘 복음도 그 연장선에서 이해해야겠습니다. 미사는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로 이뤄집니다. 지금까지 성찬의 전례, 특히 성체성사에 대하여 이야기했다면 오늘 복음은 말씀의 전례에 관한 대목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육적인 것은 아무 쓸모가 없지만 영적인 것은 생명을 준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적인 것이며 생명이다.”

주님의 말씀, 곧 복음은 성령의 감도에 의해 기록된 것이며 그 자체로 우리에게 생명을 줍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말들이 난무합니다. 언론매체, 대중매체에서 쏟아내는 쓰레기 같은 정보가 얼마나 많습니까? 게 중에는 진리를 거역하고 사회를 더욱 혼탁하게 만드는 거짓 말씀도 있습니다. 그것은 인터넷을 통해서, TV와 라디오를 통해서 교묘한 방법으로 우리를 하느님에게서 떼어 놓지요. 물론 평화방송은 예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육적인 것은 아무 쓸모가 없다고 했습니다. 육적인 지식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세상을 좀더 편리하게 살고, 삶을 좀더 윤택하게 만드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영혼을 살찌우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은연중에 세상의 지식들은 돈이 최고라고, 건강이 최고라고 강조합니다. 우리는 그러한 육적인 지식에 넘어가서는 안 되겠습니다.

요즘 <다빈치 코드> 같은 반그리스도교 서적들이 유행한다고 합니다. 이는 그리스도교 역사에 정통하지 못하면서 그리스도교 진리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거짓종교로 몰아세우는 뉴 에이지 계통의 서적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상당히 많은 부수가 팔렸다고 하는데, 가톨릭 신자들도 접하고 나서 반신반의한다고 하니 그 영향력은 실로 대단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아무튼 우리 신자들은 세상의 거짓된 말씀에 속아 넘어가서도 안 될 뿐만 아니라 그것과 대적하여 진리의 말씀을 선포해야 합니다. 거짓 논리에 휘말리지 마십시오. 진리는 반드시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우리의 진실한 복음적 실천을 통해서 그리스도교 진리는 승리할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주는 주님의 말씀을 매일 듣는 사람들입니다. 성서 말씀은 우리 안에서 엄청난 힘을 발휘합니다. 믿음으로 듣는 말씀은 용서를 가능하게 하고, 두려움을 없애 주며, 내적 평화와 사랑이 넘치게 만듭니다. 왜냐하면 말씀은 그리스도의 인격을 체험하게 이끌고, 그리스도와 하나 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이미 실천까지도 포함한 말입니다. 내 안에 하느님의 생명력이 충만한데 어찌 말씀이 삶으로 드러나지 않겠습니까? 이제 오늘 복음 말미에 나오는 주님의 말씀을 듣도록 합시다.

“자, 너희는 어떻게 하겠느냐? 너희도 떠나가겠느냐?”
“주님,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을 가지셨는데 우리가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가겠습니까?” / 천주교 부산교구 김영훈 미카엘 신부
  | 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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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도 떠나가겠느냐?~~주님,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을 가지셨는데 우리가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가겠습니까? (요한 6,60­-69)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특별히 예뻐한다는 이유로 반아이들 전체가 돌려놓은 적이 있습니다. 요즘 말로 왕따를 당한것입니다. 비록 어릴적 순수할 때의 기억이지만 외토리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외롭고 힘든일인지를 깨달았기에 만나는 이웃과 다양한 사회 속에서 다가오는 사람들과의 지혜로운 만남을 늘 생각할 수 있기에 감사한 마음입니다.

요즘에 새롭게 인간관계 갈등을 위한 통신 연수 3개월 과정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죽는 날까지 우리는 사람을 만나야하고 이웃속에서 서로 부딪치며 살아야합니다. 어느 누구든지 공동체 안에서나 인간관계 안의 갈등에서 자유로울수는 없을 것입니다. 서로의 이익과 각자의 처한 상황에 따라서 이해와 양보를 구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깨달으며, 공동체의 악으로 작용하는 갈등을 극복하고 생명을 줄 수 있는지를 새롭게 배우고 있습니다.

평소에 잘아는 형제님은 오랜 냉담을 겨우 풀고 주님의 품으로 돌아 온지 얼마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공동체의 장으로 적격이라는 이유로 사전 말한마디 없이 전임회장은 회원들이 모여있는 날 공지를 하고 박수를 쳐서 성급하게 통과시켰습니다. 물론 전임 회장은 맡은 일이 많았고 적당한 사람을 만났으니 천만다행이다 생각하였을 것이고, 혹시 미리 이야기를 했다가 거절당하지 않을까 우려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형제님은 이런저런 일로 심적으로 힘든 상황이었는지 또 다시 냉담하고 있습니다.

어느 공동체든지 지혜롭게 일을 처리하고 완벽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공동체는 다양한 사람이모인 곳이니 많은 갈등과 시행 착오가 빈번할 것입니다. 때로는 일좀 하려고 하면 어떻게든지 끌어내리는 시기와 질투 또 냉소적인 눈빛으로 상처를 주고 좌절시켜 신앙심 약한 영혼은 어둠의 삶을 살기도 합니다. 주님의 ' 영’은 인간을 비추어 주는 생명의 빛으로 우리들의 마음의 눈을 열어주고 예수께서 표현하시는 ‘말씀’을 식별하게 해줍니다.

지금의 고통스러운 아픔이나 환경이 그분에게 영광이고 기쁨이며 권능임을 식별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우리는 늘 나약하기에 주님을 두고 종종 떠나갑니다. 혹시 자신의 사소한 이기심이나 부족한 지혜 때문에 이웃이 좌절과 아픔으로 주님께 나아가는 생명의 삶을 좌절하게 하지 않았는지... 세상적인 것에 눈멀고 영적인 것에 마음을 두고서 항구하게 주님만을 찾아가는 은총의 삶이기를 기도합니다.

내일은 성소 주일, 착한 목자 주일입니다. 좋은 목자이신 주님께 일생을 바칠 젊은이들, 사제성소자들과 수도 성소자들을 위하여 정성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름답고 환한 세상에 봄의 향기가 힘들고 지친 영혼들에게 희망과 기쁨으로 전해지시길...행복한 주말과 주일 되세요. ● 엘리 복음묵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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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수도회] 수수깡 색안경  [7] 1620
5   [인천] “내가 생명의 빵이다."  [1] 1437
4   (백) 부활 제3주간 화요일 독서와 복음  1368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 :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가겠습니까?  [6] 2243
2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 저에게 믿음이 부족합니다.  [6] 2465
1   (백) 부활 제3주간 목요일 : 이는 내 말이라, 어김이 없다.  [6] 2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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