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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회] 조심 하여라. 그러나 두려워하진 마라
조회수 | 34
작성일 | 18.07.12
[수도회] 조심 하여라. 그러나 두려워하진 마라

오늘 복음은 이제 복음 선포를 위한 여행을 하면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이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조심하라 그러나 두려워할 것까지는 없다.

남자는 늑대, 여자는 여우. 남자는 다 도둑놈. 통념적으로 형성된 남자와 여자에 대한 인간관입니다. 그런데 이런 말들을 쓰는 속뜻은 아무리 양의 탈을 쓰고 있어도 정체는 늑대임을 알라는 것이고, 그러니 믿지 말고 속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 제자들을 파견하시는 주님께서도 그 파견이 양들을 이리 가운데 보내는 것과 같다고 걱정하십니다. 이것은 처음 자식을 세상에 내보내는 부모마음과 똑같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당신들 보호아래만 있던 자식이, 그래서 지금까지 보호를 떠난 본 적이 한 번도 없는 자식이 처음 보호를 떠나는 것이 우선 걱정이고 보호 없이 맞닥뜨려야 할 사람들이 당신들과는 달리 자식들을 잡아먹으려 호시탐탐 노리는 것이 두 번째 걱정입니다.

그러나 걱정의 본질은 자식에 대한 걱정입니다. 아직 믿음이 가지 않습니다. 보호 없이 살 수 있을까? 사람들이 다 부모와 같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이리와 같은 사람을 그렇게 믿었다가 잡혀먹는 것은 아닐까? 좋은 사람이지만 부모와 같을 것이라 믿었다가 실망하고 좋은 사람을 잃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아직 믿음이 가지 않고 걱정이 되지만 세상에 아니 내 보낼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내 보내면서 단단히 타이르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만날 사람들은 이리들이고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그러니 조심하여라.

그런데 조심만 해가지고는 부족합니다. 각오를 해야 합니다. 걱정하고 조심해도 결국 닥칠 것은 닥치기 때문입니다. 각오 없이 조심하면 될 것이라 생각하다 맞닥뜨리면 감당하기 힘들 것이고 당황하게 될 것이고 끝내는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각오하고 준비하면 차분히 맞이할 것이며 해야 할 것을 끝까지 해낼 것입니다. 그 각오가 죽을 각오라면 두려울 것도 없고 못 이룰 것도 없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최악을 각오하라고 하십니다. 이리 같은 사람이 이리 같은 짓을 할 것이라고 각오하는 정도가 아니라 형제와 부모와 자식이 이리 같은 짓을 할 것도 각오하라고 하십니다. 특히 복음 선포를 하는 경우에는 주님 때문에 부모를 포함한 모든 이에게 미움과 핍박을 받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죽을 각오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우리에게서 두려움을 몰아내는 것은 주님께 대한 믿음입니다. 주님께서 비둘기처럼 닥칠 모든 것을 순박하게 받아들일 용기를 주시고 뱀처럼 해야 할 말을 잘 할 수 있는 지혜 주실 것이라는 믿음 말입니다. 주님께 대한 믿음이 있을 때 우리는 ‘왜 나에게!’, ‘왜 이런 것이 나에게!’,

‘왜 그 사람이 나에게 이런 짓을!’을 하고 거칠게 따지지 않고 주님의 도우심으로 차분히 해야 할 것을 해나갈 것입니다. 이것이 지혜입니다. 왜 이런 일이 닥쳤는지 거부하고 따지고 흥분하다 해야 할 일 하나도 못하는 바보짓을 하지 않습니다.

▦ 작은 형제회 김찬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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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말라.” (마태오 10,16-23 )

▦ 그분께서 내 뒤에

서품이나 종신서원을 하고 첫 사목지로 파견되는 형제들을 바라보면서 지난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오랜 양성 기간을 끝내고 드디어 파견되는 첫 소임지입니다. 그 어려운 신학공부, 오랜 초기 양성기간을 일단락 짓고 새 출발하는 기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기대감에 밤잠도 설칩니다. 만나게 될 아이들 생각에 가슴도 설렙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두려움도 큽니다. ‘내가 과연 잘 해낼 수 있겠는가?’ ‘혹시라도 사람들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어쩌지?’ 짧게나마 예수님으로부터 ‘특별 제자교육’을 받고 전도여행을 떠나는 제자들의 심정도 비슷했을 것입니다. 기쁨, 가슴 설렘, 기대감도 컸겠지만, 갖은 걱정, 불안감, 당혹감도 교차했을 것입니다.

‘나는 말주변이 없는데’ ‘나는 체력이 약한데’ ‘나는 남들 앞에 서면 완전히 쫄아드는데’

이런 제자들을 향해 예수님께서는 조목조목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가르치고 계십니다. 여러 가르침 가운데,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 오늘 복음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주실 것이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무엇보다도 모든 근심을 아버지께 맡기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무능력, 소심함을 걱정하기보다는 아버지의 능력을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아버지께서 다 알아서 하실 것인데 미리 앞서서 불안해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계속되는 불볕더위 가운데 하늘은 장관입니다. 휴식시간에 잠깐 평상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니 강렬한 햇볕과 쪽빛 하늘, 뭉게구름의 조화가 환상입니다. 햇볕이 강하니 온갖 초목들도 제 색깔을 되찾습니다. 완연한 초록입니다. 마찬가지겠지요. 하느님 은총이 강하니 부족한 우리들도 저마다 제 빛깔을 되찾습니다. 하느님의 크신 자비와 무한한 은총으로 인해 우리의 나약함이 강건함으로 바뀝니다. 우리의 모든 걱정들이 평화로 변화됩니다. 우리 내면의 모든 두려움들이 담대함으로 변화됩니다.

우리를 파견하시지만, 절대로 홀로 보내시는 주님이 아닙니다. 든든한 동반자, 강력한 협조자, 하느님의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걸어가십니다.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의식, 내 뒤에 그분께서 받쳐주고 계신다는 생각, 그분께서 지속적으로 도와주실 것이라는 확신이야말로 복음 선포자가 지녀야할 최우선적인 마음자세입니다.

▦ 살레시오회 양승국 신부
  |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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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을 전하는 일. ▬

지난 주일부터 우리는 복음 전파를 떠나라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예수님의 말씀대로 한다는 것은, 참 힘든 일이라 생각되고,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불가능이라는 한계가 바로 이 세상 이리떼에게 우리가 먹혀버리는 것이기에 그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죽음이기도 하기에,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기에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살기위해서도 예수님의 말씀을 따를 생각을 해야 합니다.

오늘 예수님은 그 복음 전파의 길이 어떻게 될지 그 어려움과 위험을 직접 알려주십니다. 우리가 세상에 그리스도를 전할 때 겪게 될 일들입니다.

"너희를 법정에 넘겨주고 회당에서 매질할 사람들이 있을 터인데 그들을 조심하여라.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왕들에게 끌려가 재판을 받으며 그들과 이방인들 앞에서 나를 증언하게 될 것이다."

사랑을 해도 죄가 되고, 사랑을 하기에 고문과 위협을 당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는 이야기입니다. 누구에게도 어떤 해도 끼치지 않고, 오히려 봉사와 희생으로 일관한 삶이 의심을 받고, 생명의 위협까지 당해야 하는 일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복음 전파. 그 삶이 그렇게 불가능한 현실을 넘어, 이런 엄청난 결과까지 내 다 볼 수밖에 없다면 그 길을 우리가 과연 걸을 수 있겠습니까? 말씀이 계속 될수록 자꾸만 불가능으로 굳어져 가는 것을 숨길 수가 없습니다.

이런 길을 누가 걸어가려 하겠습니까? 피해가자, 돌아 가자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이미 우리가 그리스도를 전하는 길이 아니라고 이리떼 속에 한 무리가 되는 길이라 주님이 말씀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주님은 이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뱀같이 슬기롭고 비둘기같이 양순해야 한다.”

그런데 이 말씀은 주님이 우리에게 살아남는 방법으로 제시하신 것이 아니라, 그런 상황에서 어떤 맘으로 어떻게 지내야 할지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위험의 상황은 현실이 되며, 그것을 피해갈 수는 없습니다.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양순하게. 사랑하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그 사랑에 반하여 화를 내거나 악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됩니다. 그것이 아무리 자신의 억울함이라 하더라도 흥분하여 화를 내면 자신이 알려왔던 모든 하느님의 사랑을 일시에 무너뜨리고 하느님의 자녀인 자신도 허물어져 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상황을 예측하고 있다면, 어떤 상황을 만나도 흥분하거나 겁먹지 말고, 우리의 사랑을 거절하는 사람들의 이유를 물어보고, 그런 그들의 잘못을 오히려 드러낼 수 있도록 냉정함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이 일이 주님의 일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면, 그 상황에서조차 주님을 전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그 일은 어차피 시작부터 내가 한 일이 아니라 주님이 하신 일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 상황에 성령께 모든 것을 맡기라 하시는 겁니다. 사랑을 전합시다. 그러면 고난은 분명히 옵니다. 그러나 각오했다면 그 상황은 전혀 다른 모습이 되어 우리에게 느껴질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놓고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그것을 자신들을 위해 이용하려 드는지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게 될 것입니다. 형제끼리, 부모자식끼리,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자신을 위한 사랑으로 싸우는 모습을 목격할 것입니다. 그들 안에 주님의 조건 없는 사랑은 얼마나 좋은 먹이거리입니까?

그러나 끝까지 그 싸움에 휩쓸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처럼 십자가를 차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이 세상을 살리는 길입니다. 다 빼앗겨도 그들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느끼게 함으로써 마음을 돌려놓게 하는 일. 그것이 복음 전파의 목적을 이룰 것입니다.

그러니, 각오를 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은 하느님께서 책임지시니. 단호한 각오로 하루를 살아갑시다.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양순하게 말입니다.

▦ 익명으로 좋은 글 주심에 감사
  |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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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느님의 손길 안에 ▬

미사가 끝난 후 내리쬐는 햇빛이 참 곱다고 쳐다보다가 반가운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그이는 간 이식 수술을 하고 늘 마스크를 하고 미사에 왔는데 오늘은 환한 얼굴을 드러내고 웃고 있었습니다. 건강이 많이 좋아진 것 같다고 하자 사실은 지난주에 몹시 앓았다고 했습니다.

상태가 악화되어 재이식 수술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몇 번의 우여곡절 끝에 진정이 되어 왔다면서 옆에 서 있던 부인은 눈물을 글썽입니다. 20퍼센트의 실패율이 있다고 하면 다섯 명 중 하나에, 30퍼센트의 재발 가능성이 있다고 하면 세 명 중 하나에 속하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워한 순간을 이야기했습니다.

그 모든 어려움을 겪고 나니 오히려 이제는 마음이 편하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더 살게 해주시면 더 살고, 일찍 데려가시면 그대로 맡기겠다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에는 자신이 선택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교만한 마음도 있었지만 사람이 자랑하는 많은 것들이 사실 별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이 교우뿐이겠습니까? 우리 모두가 다 풀잎과 같이 연약한 인생을 살고 있지요. 인도하시는 목자의 뒤를 따라 걷고, 어려운 때를 만나면 그분께 의지하며 견뎌나가는 인생이지요. 왜냐하면 인생은 막막한 우주 공간에 버려진 존재가 아니라 자비하신 하느님의 손길에 싸여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 홍영선 신부(성공회 서울대성당)
  |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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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도 여전히 사도들을 파견하시면서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특히 오늘 말씀은 그들이 박해와 어려움을 당하게 될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미리 무장시키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마태 10, 16)

여기서, 우리가 알아들어야 할 것은 먼저 제자들을 파견하는 것이 마치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보낸다.”는 사실입니다. 결코 이리 떼를 제거해주거나 쫓아주지 않고, 오히려 그들 가운데로 보낸다는 사실입니다. 곧 세상이라는 어장은 결코 환상적이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오히려 그 질곡과 어려움 속에 던져진 것입니다.

사실, 교회도 수도원도 마찬가지입니다. 결코 환상적인 곳이 아닙니다. 때로는 서로가 이리가 되어 헐뜯을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못된 곳에 온 것이 아닙니다. 바로 그러한 이곳에 우리의 파견지인 것입니다. 그러나 두려워할 것은 없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그 대처방법을 가르쳐주십니다. “그러니 너희는 뱀같이 슬기롭고 비둘기같이 순박하게 되어라.”(마태 10, 16)

여기서, “슬기롭다”는 말의 성서에 따른 뜻은 “지혜롭다”는 말과 같습니다. “지혜롭다”는 것은 먼저 “하느님을 경외함”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 지혜는 하느님에게서 옵니다. 이를 오늘 <복음>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10, 19-20)

이는 “슬기로움”이 많이 아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이 사랑하는 데 있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곧 슬기로움은 사랑 때문에 핍박과 박해를 받기도 하고, 끝내는 죽기까지 하는 것을 말한다 할 수 있습니다. 지혜이신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듯이 말입니다.

그리고 “순박하다”는 말의 성경에 따른 뜻은 “온유하고 겸손하다”는 말과 같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성품인 동시에,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거듭난 자의 성품과 덕입니다. 이를 오늘 <복음>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나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참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마태 10, 22)

이는 “순박함”이 그저 화를 내지 않고 온유한 성격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강한 것을 말한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그러니 ‘순박함’은 끝까지 믿고 참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곧 마지막까지 희망을 꺾지 않는 것입니다. 온갖 굴욕을 받기까지, 끝내는 배반 받고 죽기까지도 믿는 것입니다.

따라서 “뱀같이 슬기롭고 비둘기같이 순박하게 되어라.”는 말씀은, 설혹 이리 떼에게 생명을 노략질 당한다하더라도 “죽기까지 사랑하라.”는 말씀이요, “끝까지 믿고 희망하라.”는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당신께서는 박해를 두고, 산상설교에서는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마태 5, 12)고 하십니다.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마태 5,11-12).

▦ 양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신부 : 2018년 7월 13일
  |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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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한 기다림의 인내가 답이다.
<인내의 믿음과 희망>

요즘도 계속 피고 지는 꽃들입니다. 오늘 말씀 묵상 중 떠오른 오랜 전 써놓은 자작시입니다.

“꽃같은 만남보다
더 좋은 만남 있으랴
꼬박 일년 기다려
피어 난 꽃이다
꼭 일년만의 만남이다
능소화, 백합,---
모든 꽃이 그렇다
꽃같은 반가운 만남 되려면
일년은 꼬박 기다려야 하는구나“
<2001.7>

항구한 기다림의 인내가 답입니다. 끝까지 인내하는 자가 승리합니다. 인내의 믿음, 인내의 희망, 인내의 사랑입니다. 인내의 뿌리에는 신망애, 믿음, 희망, 사랑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때가 될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리는 것이 지혜이자 믿음입니다. 봄꽃이 폈다하여 먹는 열매가 아니라 가을의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려야 익어 따 먹을 수 있는 열매입니다.

우리 분도 수도자들의 정주 서원 역시 항구한 인내의 믿음을 뜻합니다. 은총의 깨달음 역시 부단한 인내의 열매입니다. 며칠전 읽은 분도회 어느 고승과의 마지막 인터뷰 내용에 크게 공감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혹시 당신은 베네딕도 규칙에서 좋아하는 구절이 있는지, 혹시 모토로 삼고 있는 구절이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육체나 품행상의 약점들을 지극한 인내로 참아 견디며,’(성규72,5), 바로 이 구절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입니다.-

이래야 평화 공존의 공동생활입니다. 육체나 품행상의 약점들을 지극한 인내로 참아 견디라 했지 교정하라 하지 않습니다. 때가 되어 스스로 깨달아 개선할 때까지 ‘건들이지 않고’ 그냥 ‘놔두는 것’이 믿음이자 지혜입니다. 참으로 넉넉하고 헐렁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끝가지 인내하며 기다리면 언젠가 때가 되면 저절로 해결됩니다. 아니 문제의 해결解決이기 보다는 문제의 해소解消입니다.

무엇이든 다 때가 있는 법입니다. 때가 될 때까지 지극히 기다리는 인내의 믿음이 필수입니다. 고백성사때 용서가 안된다는 점을 호소할 때는 다음과 같은 충고도 드립니다.

“우선 용서하려는 지향으로 충분합니다. 시험볼 때도 어려운 문제는 제쳐놓고 쉬운 문제부터 풀어가지 않습니까? 우선 쉬운 것부터 용서하고 인내하며 기다리면 언젠가 때가 되면 힘든 문제도 용서할 수 있는 은총이 주어질 것입니다.”

요셉수도원 초창기 분원장 직을 맡았던 선배 수도형제와 주고 받은 문답도 생각납니다.

-“수사님은 수도생활에서 어느 덕이 가장 필요하다 생각하십니까?” 제가 ‘사랑’이라 말하자 선배 수도형제는 ‘인내’라 대답했습니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그렇습니다. 항구한 인내가 답입니다. 주님은 온갖 힘든 상황중에 있는 모든 분들에게 큰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주십니다. 오늘 복음의 핵심 구절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마태10,22ㄴ).

참으로 끝까지 기다리는 인내의 믿음을 지닌 자에게 주님은 슬기로움과 순박함의 은총도 주시어, 이리 떼 세상 가운데서 평화롭고 안정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 주십니다.

“그럼으로 뱀처럼 슬기롭고 비들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

슬기로움과 순박함은 하나입니다. 실로 초연한 믿음의 순박한 무사無邪한 마음에서 솟아나는 슬기로움이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하느님께서는 때에 맞게 적절히 말함으로 위기를 통과할 수 있는 지혜도 주십니다.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주실 것이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그러니 영원토록 하느님 아버지께 희망을 두어야 합니다. 막연한 수동적인 인내가 아니라 적극적인 인내에 희망은 필수입니다. 하느님께 희망을 두어야 지극한 인내의 믿음도 가능합니다. 다음 시편 말씀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아,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 희망을 하느님께 두어라.”(시편131,3).

바로 제1독서 희망의 예언자 호세아의 말씀도 고무적입니다. 해피엔드로 끝나는 호세아서 말씀이 참 고맙습니다. 하느님 마음을 그대로 전하는 호세아의 감동적인 강론입니다.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부단한 회개로 당신께 돌아 온 인내의 믿음을 지닌 겸손한 자들에게 주시는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이제 내가 그들의 마음을 고쳐 주고, 기꺼이 그들을 사랑해 주리라.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이 되어 주리니, 이스라엘은 나리꽃처럼 피어나고, 레바논처럼 뿌리를 뻗으리라. 이스라엘의 싹들이 돋아나, 그 아름다움은 올리브 나무 같고 그 향기는 레바논의 향기 같으리라.”

말씀이 시처럼 참 아름답습니다. 희망뿐 아니라 사랑의 예언자이자 신비가이자 시인인 호세아입니다. 항구한 인내의 믿음이 얼마나 내적으로 역동적인지 깨닫습니다. 끊임없는 내적 회개와 겸손으로 하느님께 희망을 둔 슬기롭고 순박한 영혼들만이 바로 지극한 인내의 믿음을 지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끝까지 인내할 수 있는 믿음을 지닌 이들이 분별력의 지혜를 지닌 의인들입니다. 호세아의 결론 말씀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를 깨닫고, 분별 있는 사람은 이를 알아라. 주님의 길은 올곧아서, 의인들은 그 길을 따라 걸어가고, 죄인들은 그 길에서 비틀거리리라.”

인내의 믿음을 지닌 지혜롭고 분별있는 의인들만이 주님의 올곧은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당신께 희망을 둔 우리 모두에게 항구한 인내의 믿음과 더불어 슬기롭고 순박한 마음을 선물하시어 주님의 올곧은 길을 잘 걸어 가게 하십니다.

“하느님 제 마음을 깨끗이 만드시고, 제 안에 굳건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편51,12). 아멘.

▦ 베네딕토회 이수철 신부 : 2018년 7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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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마태 10, 16)

먹이를 삼키는 뱀처럼 말씀을 받아 삼키는 것이 지혜입니다. 허물을 벗듯이 벗어내는 것이 지혜입니다. 바닥을 기듯이 기는 것이 지혜입니다. 허물을 벗듯 회개의 때를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구멍을 빠져 나오듯 악습에서 빠져 나오는 것이 지혜입니다. 허물을 벗듯 거듭 나는 것이 지혜입니다.

목숨 다하여 사랑하는 것이 생명의 지혜입니다. 발자국을 남기지 않듯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지혜입니다. 순박한 기도의 삶이 자연스러운 지혜입니다. 순박한 집중 사이로 기어가는 겸손한 마음이 있습니다. 기도는 슬기롭고 기도는 순박합니다.

▦ 거룩한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2018년 7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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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3   [부산/마산/수원/대구/청주] 약해질 때와 강해질 때  [7] 36
1662   (녹) 연중 제14주간 금요일 독서와 복음 [말하는 이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1]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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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강론

홀 수 해

짝 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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