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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부산] 우리는 어떻습니까?
조회수 | 96
작성일 | 18.09.24
우리 한국교회는 지금 1984년 103위 순교성인의 시성식을 치른 이후로 다시 124위의 순교자 시복시성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성인품에 올리기 위해 시복시성운동을 하고 있는 124위의 순교자들을 보면 한 분의 신부님이 계십니다. 103위 순교성인 중에는 김대건 신부님을 비롯한 3분의 주교님과 7분의 신부님이 계십니다. 이 분들은 모두 프랑스의 파리 외방 전교회 소속 주교님과 신부님들이셨는데요. 이번 124위 순교자 이름에 포함되어 있는 이 신부님은 우리나라 신부님도 아니시고 프랑스 출신의 신부님도 아니십니다. 박해시절에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오셔서 우리나라 교우들의 미사와 성사생활을 돌보셨던 중국인 주문모 야고보 신부님입니다. 주문모 신부님까지 성인품에 오르신다면 우리 교회는 모두 11분의 외국인 선교사를 성인으로 두게 됩니다.

자! 이분들의 삶을 잠깐 보겠습니다. 주문모 신부님을 제외하고 다른 외국인 분들은 처음 우리나라에 들어올 때 우리나라가 어디 있는 나라인지도 모르던 분들이었습니다. 단지 ‘중국 밑에 있는 작은 나라이다.’ 라는 것만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만 다를 뿐 주문모 신부님을 비롯한 10분의 외국인 선교사들은 똑같은 상황에 처합니다. ‘조선에 들어가면 살아 돌아올 수 없다.’ 이 사실 만은 알고 계셨습니다. ‘조선 땅으로 들어가라.’ 이 한마디 말에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들어가면 살아 돌아 올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때 그분들은 우리나라 땅에 들어오셨습니다. 아무것도 없이 단지 미사와 성사를 드릴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것들만 들고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고 신자들과 함께 전국을 다니시면서 사목활동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십니다.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쳐주라고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뜻밖의 주문을 하십니다.
“길을 떠날 때에 아무것도 가져가지 마라. 지팡이도 여행 보따리도 빵도 돈도 여벌 옷도 지니지 마라.” 뭐 먹고 살으라고 이런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예수님의 이 말씀에 제자들은 아무 말 없이 자신들의 길을 떠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명하신 대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쳐줍니다. 제자들의 이 모습이 우리나라에 들어오셨던 그 선교사들의 모습을 많이 닮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분들의 모습은 마치 천사의 방문을 받은 성모님께서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당신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말씀하시던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이분들의 모습은 인간적인 눈으로 보았을 때 대책 없는 분들로 보이는 이 모습은 전적으로 하느님께 내 맡기는 삶. 하느님께 모든 것을 의지하는 삶.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이끌어 주신다는 믿음. 이것 아닐까요? 예수님의 제자들도. 우리나라에 들어오신 주문모 신부님을 비롯한 선교사들도. 성모님께서도. 이런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겠지요.

이제 우리의 모습을 돌아볼 차례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사실 저도 반성 할 것들은 많이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해야 할 때 하느님의 은총과 기도 보다는 인간적인 계산과 잣대를 먼저 들이대는 것이 저의 모습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세상 안에서 신앙인으로 하느님의 뜻과 기준이 아니라 인간적인 뜻과 기준으로 살아가지는 않습니까? 이 시간부터 ‘나는 하느님께로부터 파견 받은 제자들이다.’라는 생각을 먼저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과 선교사들이 살았던 그 모습대로 조금이나마 닮아서 살아가려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겠지요. 하느님께 우리 자신을 맡기지 않으면 그분께서 주시는 은총도 느낄 수 없습니다. 하느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만이 그분께서 주시는 은총을 경험할 수 있을 테니까요.

▥ 대구대교구 장운철(마르첼리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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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을 읽어보면 대책없는 예수님의 성격이 또 드러납니다. 믿는 것은 오직 하느님 하나, 다른 것은 다 맨땅에 헤딩하듯 하시는 성격이 드러나십니다. 조금만 생각하면 얼마든지 다른 방법이 있었을 텐데도 그리하시지 않으십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눈에 불을 키고 예수님의 트집을 잡으려 할 때에도 할테면 함 해봐라는 식으로 뻔히 눈앞에 있는대도 안식을 규정을 어겨 안식일이 무엇인지 가르치시고 성전에 들어가서는 뒷감당 우찌 하실려고 일단 환전상과 장사꾼들을 엎어버리시고 성전이 무엇인지 가르치시고 또 죽을 줄 뻔히 알면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셔서 결국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셔서 십자가가 무엇인지 가르쳐주십니다. 그리사셨으면 그렇게 혼자서 끝낼일이시지 그 성격을 그대로 제자들에게 전수해 주시려 하십니다.

하다못해 초등학생들이 소풍을 가더라도 점심 도시락은 무얼 싸고 가서는 이렇게 저렇게 놀아야지하고 계획을 짭니다. 또 그 계획에 맞춰서 옷도 준비하고 소품들도 준비를 하는데 하느님 나라 이야기를 전하러 가는 사람들에게 당장 오늘 먹을 것, 잘 것 준비조차 없이 떠나라 하십니다. 뒷걱정은 하지 말고 우선 사람들에게 머리부터 함 디밀어 봐라는 식입니다. 먹을 것, 입을 것, 신발과 돈 아무것도 지니지 말고 떠나라 하십니다. 이렇게 대책 없는 예수님이시지만 그 스승 에 그 제자라고 이 제자들은 그 말을 듣고 또 대책없이 떠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병을 고쳐주고 마귀도 쫓아버렸다는 게 오늘 복음의 이야기 입니다.

그렇지만 이 이야기가 전해주고자 하는 것은 가진 것이나 몸차림이 예수님의 제자를 만들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 시대에 복장도 남과 달리 요란하고, 길에서 겪을 수 있는 불편에 대비하여 모든 것을 준비하고 다니는 사람은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지배자이거나, 많은 재물을 가진 이들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렇게 호사스럽게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가지지 말고, 섬기는 사람답게 가벼운 옷차림과 홀가분한 마음으로 다니라는 말입니다.

떠날 수 있을 때 쉬이 떠날 수 있게 우리의 가짐도 홀가분하였으면 합니다. 그렇게 홀가분해 질수 있는 좋은 방법은 대책없이 떠나라 하는 예수님처럼 그리고 또 그 말씀대로 대책없이 떠나버리는 제자들처럼 우리들도 앞뒤 재지말고 대책없이 털어버리면 될 것입니다만 어디 그게 쉽겠습니까... 생각따로 몸 따로 인데 우리들인데...

대책없이 털어버릴 수 없다면 조금씩이나마 털어버릴 수 있도록 작은 계획이라도 세우시면 좋겠습니다. 작은 물방울이 모여 큰 강을 이루듯이 작은 실천들이 해 나가다보면 언제가는 예수님을 말씀을 재지않고 대책없이 실행할 수있는 단계에 오르지 않을까 합니다.

▥ 부산교구 지병철 신부
  |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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