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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주님께서 주시는 행복을 얻으려고 노력?
조회수 | 10
작성일 | 18.09.27
[인천] 주님께서 주시는 행복을 얻으려고 노력?

며칠 전, 어떤 자매님의 팔꿈치를 보고서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글쎄 팔꿈치가 멍투성인 것이에요. 부부 싸움 한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멍투성이냐고 여쭈어보니 자전거 타다가 넘어져서 팔꿈치뿐만 아니라 다리에도 멍투성이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아직 자전거를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많이 넘어지시는 것이었습니다.

저 역시 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 많이 넘어졌지요. 심지어 몇 달 전에는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자전거 타다가 넘어져서 양 팔이 골절되기까지 했잖아요. 그런데 저의 경우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러한 상처 뒤에 자전거 타는 실력이 부쩍 향상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전거 잘 타야지.’라는 생각만으로는 실력이 향상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넘어지고 그래서 이곳저곳이 깨지면서 자전거를 잘 탈 수 있게 되더군요.

이렇게 자전거를 잘 타기 위해서는 시퍼런 멍이 생길 정도로 연습하고 배워야 합니다. 그런데 하물며 인간에게 있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는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냥 저절로 내게 다가오는 것이 행복일까요? 아무런 노력도 없이, 어떠한 시련 없이 내게 오는 것이 행복일까요? 결론부터 말한다면 그런 일은 전혀 있을 수 “없다.”라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헤로데가 두려워하고 당황스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자신의 큰 잘못 때문이지요. 헤로디아의 춤 값으로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내어주었거든요. 그런데 요한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났다는 소문이 들리니 그 심정이 얼마나 괴로웠을까요?

사실 그는 체면 때문에 자신이 원하지 않은 행동을 했었던 것이지요. 헤로디아의 춤추는 것을 보고서 사람들 앞에서 말합니다. 어떤 소원을 들어도 다 들어주겠다고……. 그러자 헤로디아는 요한의 머리를 요구했고, 자신의 체면 때문에 그 소원을 들어주었던 것이지요. 많은 사람들 앞에서 했던 약속을 스스로 철회할 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자신의 체면 손상을 걱정했던 그는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는 이야기에 두려움에 체력 손상까지 입게 됩니다. 만약 자신의 체면을 먼저 생각하지 않다면 어떠했을까요? 그래서 자신이 내뱉은 말이지만, 그것은 옳지 않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말을 철회했다면 어떠했을까요?

오늘 복음에 나오듯이 그렇게 힘들어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역사 속에서도 나쁜 인물로 기록되지 않았겠지요. 쉽게 행복을 얻으려는 그의 안일한 마음에 행복과는 더욱 더 멀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 각자는 과연 어떤가요? 혹시 이 헤로데처럼 쉽게 행복을 얻으려는 안일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때로는 불의도 저지르는 못된 짓도 과감해서 행하는 것은 아닐까요?

자전거를 배우는데도 멍이 들 정도로 힘듭니다. 그런데 행복을 얻는 데는 얼마나 힘들까요?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누리면서 행복을 얻기 힘들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네요.

▦ 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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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서는 헤로데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당황하며 소문에 들리는 그 사람은 도대체 누구인지 한번 만나보고 싶어했다는 말이 나옵니다. 헤로데라는 이름은 예수님과의 관계에서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이 세상의 권력자로서 대칭적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헤로데는 세상의 부귀와 권력을 쥔 지상권을 대표하는 왕이라는 인물로서, 그리고 예수님은 지상적 권력은 없지만 성령과 사랑의 능력을 통해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평화의 왕이라는 분으로서 대칭을 이루고 있습니다.

헤로데 자신이 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 때문에 크게 놀라고 당황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헤로데 대왕과 그의 아들 헤로데 안티파스 모두 예수님 때문에 당황하고 놀라고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이 탄생하셨을 때 동방박사들이 예물을 들고 찾아와 「유다인의 왕으로 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하자 자신의 왕권에 도전 할 또 다른 유다인의 왕이라는 말을 듣고 당황하고 불안하여 헤로데는 예수님 탄생전후 두 살 이하의 남자아기들을 죽여 버렸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헤로데 대왕이 죽고 또 그 자리를 계승한 헤로데 안티파스(Herode Antipas)는 갈릴레아와 페레아 지역의 영주이면서도 헤로데 대왕처럼 불안해 하고 있습니다. 헤로데 안티파스는 자기 이복형제인 헤로데 필립의 아내 헤로디아와 결혼하기 위해 자기 아내와 이혼했었습니다. 의인이었던 요한은 누차 헤로데 안티파스에게 그것은 부당한 일이라고 간하다가 헤로데 안티파스의 아내가 된 헤로디아의 미움을 사서, 어느 축제일에 그녀의 딸 살로메가 춤을 추어 왕을 기쁘게 하고 왕의 환심을 얻어 요한을 죽이게 했던 것이다. 헤로데 안티파스는 요한을 죽이고, 예수님을 모욕한 인물입니다.

헤로테는 심리적으로 의인을 죽였다는데 대해 불안해하고 있었습니다. 요한은 당시 큰 예언자로서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있었는데, 헤로데도 비록 그를 죽였지만 그의 인물에 대해 어떤 위압감마저 느끼고 있었습니다. 이럴 때 예수님이 등장하여 요한과 같은 일을 할 뿐 아니라 오히려 요한 보다 더 큰 인기를 획득하고 백성들의 마음이 그리 쏠리자 불안해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권력자가 불안을 가장 많이 느낀다고 합니다. 자기 권력에 도전하는 자들을 제거할 뿐 아니라, 그것은 가족, 형제들까지도 그 제거의 대상이 됩니다. 우리 나라의 사극 용의 눈물에서도 그러한 면이 나타났지만, 로마의 갈리굴라 황제도 자신이 황제 지위를 누리기 위해 자기 형제들을 제거하고 자기는 새로운 태양, 왕이며 신으로 떠 받들여지게 되었습니다. 그후 그는 자기 형제를 죽인 양심의 가책으로 미치게 되어 피비린내 나는 폭정 끝에 그도 역시 살해되었습니다.

헤로데는 의인 요한을 죽이고 양심의 불안을 느끼고 있던 차에, 그 요한과 같은 인물이 다시 나타났다는 말에 그의 관심이 쏠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만나보고 싶어했습니다. "소문에 들리는 그 사람은 누구냐"라고 묻는 질문처럼, 우리는 소문에 들리는 그분을 믿고 있는 것이다. 그분에 대한 증언은 바로 세례자 요한이 했던 것입니다.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 양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연 헤로데가 예수를 만나보고 싶어했다는데, 예수에게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왜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하는가? 우리는 예수님 한테서 그리스도를 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자신을 희생하여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히울 정도로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 구속공로로 사람들로 하여금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회복시켜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헤로데처럼 에수님에게서 단순히 기적적인 것을 보고 싶다거나 혹은 물질적인 유익함을 청하기 위한 목적으로 예수님을 찾는다면 예수님의 그리스도로서의 진정한 모습을 보지는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원하는 뜻, 자기자신을 그분께 신뢰를 드리고 하느님의 아들로 받아들이는 신앙의 눈이 필요합니다.

오늘날도 예수의 소문이 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소문에 진정 자신과 타인의 올바른 구원을 위해 예수를 찾아가 볼 수 있는 마음을 갖도록 합시다.

▦ 서울대교구 김웅태 신부
  |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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