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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복음말씀을 어떤 마음으로
조회수 | 11
작성일 | 18.09.27
[부산] 복음말씀을 어떤 마음으로

먼저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소문을 들은 갈릴래아의 영주 헤로데의 반응입니다.

소문이란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전하여 오는 말입니다.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린다는 것은 그 만큼 그 소문의 대상에게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복음 선포 활동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관심사가 되었고, 그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누구나 다 예수님을 한 번 만나보고 싶어했을 것입니다.

문제는 어떤 마음으로 예수님을 만나보고 싶어하는가입니다. 구세주를 기다려 왔던 일반백성들은 그분이 정말 구세주이신지 알아보고 그분에게 희망을 걸기 위해서 만나보고 싶어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헤로데는 점점 유명해 져서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며 예언자로 인식되고 있는 예수님을 통해 자신의 통치권에 위협을 느꼈던 것입니다. 헤로데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세례자 요한이라고도 한다는 소문은 믿지 않았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자신이 목 잘라 죽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예수라는 사람도 위험한 인물이라면 목 잘라 죽이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실 예수님을 눈으로 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복음서를 통해 그분의 소문을 듣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그리스도교 신자가 된 우리들이지만 예수님의 소문, 곧 복음말씀을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 부산교구 김주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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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헤로데는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합니다. 왜 만나고 싶어할까요? 그냥 예수님이니깐 죽이고 싶어서일까요?... 세례자 요한이 되살아났다는 소문때문입니다.

사실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헤로데도 세례자 요한만큼은 마음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죽이고 싶었지만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세례자요한이라 쉬이 죽이지 못하고 있었는데 딸아이의 소원 때문에 할 수 없이 세례자 요한을 죽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동안 세례자 요한을 죽임으로써 잃었던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이리저리 노력했는데 세례자 요한이 되살아났다는 소문이 떠돌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헤로데에겐 예수님이 세례자 요한이든 아니든 상관이 없습니다. 다만 세례자 요한처럼 사람들의 존경과 지지를 받는 사람이라는 것이 마음에 걸릴 뿐입니다. 자신의 정치적 영역에 또다시 누군가가 끼어들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나보려 합니다. 만나서 회유를 하든 안되면 죽이려 들것입니다.
그가 만나고자 하는 이런 이유로 그는 예수님을 실제 만나다하더라도 예수님의 알아보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 하는 또 다른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할 무렵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세례자 요한은 헤로데에게 죽음을 당하게 되고 세례자 요한을 기억하던 사람들은 예수님을 세례자 요한이라 기억하고 싶어 예수님을 만나보려 따라다닙니다. 하지만 그들은 세례자 요한이라는 안경을 쓰고 예수님을 보기에 예수님의 참 모습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과는 삶이 모습이 너무나 틀린 예수님의 모습에 그들은 떠날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의 암울한 상황을 벗어나가해 줄 예언자들의 모습에 예수님을 맞추어버립니다. 로마의 지배와 이 지긋지긋한 가난을 없애줄 위대한 예언자가 바로 저 예수님이라 하여 만나고 싶어 따라다닙니다. 그들은 예언자의 모습으로 예수님을 보기에 언젠가 초라해지는 예수님을 보면 떠날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한 무리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 다닙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할 수 있는 일이란 답답할 정도로 스승의 가르침을 이해못하는 머리를 가진 12제자들의 무리입니다. 그들에겐 이 예수님은 정치적 인물로도, 세례자 요한으로도, 예언자로도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예수님이 누구인지도조차 모릅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예수님이 좋아서, 예수님 자체가 좋아서 모든 것을 버리고 따라다닙니다. 하지만 예수님과 함께 하는 동안 그들의 이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와 같은 상태에 예수님의 모습이 하나둘씩 칠해질 것입니다. 그래서 훗날 그들은 이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로 고백할 것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이 철부지 어린이와 같은 모습이 그들에겐 좋은 복이 될 것입니다.

우리들 또한 예수님을 늘 만나고 싶어 합니다. 예수님을 어떤 사람으로 보기에 만나고 싶어 하는지 어떤 이유로 만나고 싶어 하는지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설령 우리가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로 고백한다 할지라도 예수님 자체, 하느님 자체가 좋아서가 아니라면 그래서 무언가를 바래서라면 헤로데의 모습, 요한을 기억하는 사람들, 예언자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을 것입니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지워버리는 연습을 하시고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로 만드셔서 예수님의 참 모습을 그려주십사 하느님께 기도하였으면 합니다.

▦ 부산교구 지병철 신부
  |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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