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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회] 하느님만을 따를 수 있는 용기를 청하는
조회수 | 79
작성일 | 18.09.27
[수도회] 하느님만을 따를 수 있는 용기를 청하는

벌써 오래 전의 일이 되어 형량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지만-아마도 무기징역이었던 것 같다-선고를 받은 박노해 시인의 해맑은 웃음이 얼마나 충격적이던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애써 고뇌하는 듯한 심각한 얼굴의 검사나 판사들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평화로운 웃음을 간직할 수 있는 그의 모습은 한 점 두려움도 없어 보였고, 이 세상 그 누구도 그의 자유와 정의와 해방의 정신을 꺾을 수 없으리라는 확신을 주었습니다.

헤로데 영주는 물리적인 공권력을 이용하여 요한을 신체적으로 죽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한의 고귀한 영혼만은 꺾을 수 없었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그 자신이 잘 알고 있었습니다. 헤로데는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몹시 당황합니다.

예수님에 대해 “요한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났다” “엘리야가 나타났다” 또 어떤 이들에게는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났다”라는 소문이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헤로데는 강한 척했지만 탐욕과 허영과 두려움에 갇힌 허수아비에 불과했습니다.

우리는 순교자들에게서 하느님의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강인한 힘을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언젠가는 죽게 될 인간에게 굴복하기보다는 비록 고통과 어려움이 따를지라도 하느님만을 따를 수 있는 용기를 청하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한 기도가 될 것 같습니다.

▦ 사랑의 씨튼 수도회 최혜영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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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력은 민중을 두려워해야

예수님이 여러 마을을 돌아다니며 온갖 기적을 행하시자 민중은 예수님을 칭송하고 따랐다. 그러자 당시 식민통치를 하던 위정자들은 예수님의 움직임에 바짝 긴장했을 것이 분명하다. 세례자 요한에게 누명을 씌워 죽게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세례자 요한을 훨씬 뛰어넘는 존재가 나타났으니 불안하기 짝이 없었을 것이다. 예수님도 이후 ‘사람으로서 생명’을 세례자 요한과 같은 이유로 잃게 되시지만 우리는 이와 같은 모습을 우리 사회에서도 발견한다.

역사의 많은 위대한 인물들이 늘 누군가의 시기와 질투를 받아 억울하게 역사 뒤편으로 사라져 갔다. 멀지 않은 70­80년대 우리 사회에서도 권력을 가진 이들은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아무런 죄가 없는 수많은 사람들을 옥에 가두고, 고문했으며 결국에는 죽게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진실은 밝혀지고 있다, 마치 예수님의 부활로 모든 것이 투명해진 것처럼. 예수님은 엘리야이기도 하고 세례자 요한이기도 하셨다. 헤로데가 세례자 요한을 두려워해 죽였지만 민중한테는 그리스도라는 더욱 위대한 지도자가 나타난 셈이다.

우리 역사도 그랬다. 민주화를 외치고 인권과 평화를 지키려던 많은 사람들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모진 고초를 당했지만 그 다음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더 강력하게 싸워 이 땅의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를 지켜왔다. 그러나 아직도 갈 길은 멀다. 미군기지를 확장한다고 평생을 농사짓고 살아온 땅에서 쫓겨나야 하는 농민들이 있고, 경찰의 진압방패에 맞아 생명이 위태로운 비정규직 노동자도 있다. 권력은 민중을 두려워해야 하는데 예나 지금이나 권력은 민중을 힘으로 누르려고만 한다. 모두가 행복하게 사는 세상, 그것이 실현되는 것이 어렵다면 최소한 모두가 공동선을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사회, 하느님 나라는 그런 곳일 것이라 믿는다.

▦ 김덕진(천주교 인권위원회 사무국장)
  |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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