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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먼저 나를 하느님께 봉헌하고, 만나는 가족과 이웃을
조회수 | 66
작성일 | 22.06.19
먼저 나를 하느님께 봉헌하고, 만나는 가족과 이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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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성당 안에는 ‘사랑마을’이란 곳이 있습니다.
이곳은 노인복지를 위해서 지어진 것인데, 매일 어르신들이 오셔서 점심을 함께하십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봉사를 합니다. 이곳에 가면 ‘사랑마을’이란 이름처럼 따스함을 느끼게 됩니다. 많은 봉사자들이 기쁘게 봉사하고, 어르신들이 둘러앉아 담소도 나누며 기쁜 시간을 보냅니다.

이 ‘사랑마을’에서는
비교나 질투 그리고 투정이나 판단을 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그 자리에 하기 때문입니다. ‘사랑마을’을 이루어 가는 모든 이들이 자신이 하는 일을 마음으로 행하기에 그렇습니다. 웃으며 찾아오는 어르신들, 반갑게 맞이하는 봉사자들, 기쁨으로 음식과 재료를 내어놓는 이들로 이루어졌기에 이곳엔 늘 평화가 있습니다.

이 모습대로라면
우리의 일상 안에서도 어리석음을 자처하는 판단은 불가능합니다. 판단하기 이전에 자신의 마음을 하느님께 내어드린다면 판단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하느님으로 채우지 못하고, 하느님께 봉헌하지 못할 때 우리 삶에 여러 부정적인 아픔과 상처를 만드는 판단이 자리하게 됩니다.

먼저 나를 하느님께 봉헌하고,
만나는 가족과 이웃을 하느님께 봉헌한다면 판단으로 인한 시기·질투·미움과 분노가 아니라 이해와 받아들임을 통한 사랑과 평화가 우리 삶의 자리에 가득 피어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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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기정만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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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심판하지 마라. (마태오 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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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심판하지 마라.”(1-2절)

남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 대해서 완전하게 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많은 경우에, 잘 알기 때문이 아니라, 선입견이나 보고 느끼는 대로 판단하기 때문에 인간관계 안에 장벽이 쌓이게 되고 사람까지 잃는 경우가 많다.

사도 바오로는 “그러므로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미리 심판하지 마십시오. 그분께서 어둠 속에 숨겨진 것을 밝히시고 마음속 생각을 드러내실 것입니다.”(1코린 4,5) 했다. 우리는 그 행위가 어떤 의도에서 이루어지는지 모르기 때문에 성급히 판단해서는 안 된다. 심판이라는 것은 오직 하느님의 고유권한이다. 우리가 그 판단을 하려고 한다면 하느님의 권능을 침해하는 것이다.

“형제의 눈에 있는 티, 네 눈에 있는 들보”(3-5절)의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이런 행동을 하는 이들을 못마땅하게 여기신다는 것을 보여준다.

“위선자야”(5절).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내야 한다는 판단은 관심이 아니라, 그를 깔보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사랑이라는 가면을 쓰고 실제로는 가까운 이들을 흠잡고 비난하는 악행을 저지르는 것이다. 이야말로 들보를 가진 모습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자기는 들보가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오로지 자신을 위한 수단으로써 이웃들이라고 생각하며 자기 뜻만을 고집한다.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5절)

다른 사람의 작은 잘못까지 볼만큼 자기 자신에 관해서도 그렇게 보고 있는가? 먼저 자기 눈에서 들보를 빼내라고 하신다. 다른 이들과 관련된 문제는 그다음에 바로 잡아도 된다. 인간은 자기 일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안다. 또 작은 잘못 보다는 큰 잘못을 더 쉽게 알아본다. 우리는 그 관심을 먼저 우리 자신에게 보여야 한다. 자신을 철저히 성찰하고 자신의 잘못을 고치도록 먼저 노력하여야 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잘못을 보고 꾸짖거나 판단을 할 때는, 우선 그와 같은 잘못을 나 자신은 한 번도 저지른 적이 없는지, 또 나는 그런 잘못을 이겨냈는지 먼저 생각하여야 한다. 또한, 그런 잘못이 없더라도 우리는 인간이므로 그런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도록 하여야 한다. 우리를 올바로 알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충고할 수 있다.

그렇다고 내가 잘못한 것이 많으므로 공동체에 해를 끼치는 형제를 그냥 내버려 두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나 자신도 부족하지만 나도 죄인이지만 공동체를 위하여 그를 타일러 주어야 한다. 그것이 사랑의 충고일 것이다. 우리 자신의 들보도 꺼내도록 노력하고 이웃의 티끌도 꺼내줄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다. 이러한 노력은 주님께서 기뻐하시며 우리를 도와주시리라 믿는다. 항상 주님의 자녀로서의 올바른 자세로 살아가는 우리가 되도록 노력하여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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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조욱현 신부
2022년 6월 20일
  |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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