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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나도 고백 할 수 있는가?
조회수 | 114
작성일 | 22.09.22
[수원] 나도 고백 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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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질문을 하신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18 절). 이 때는 예수님께 아주 중요한 순간이었다.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는 중이었고, 예루살렘에는 십자가의 길이 그분을 기다리고 있는 순간이었다. 그러기에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었다.

즉 예수님은 이제 머지않아 십자가를 지셔야 하며 그 십자가를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의 구원계획을 이루셔야 하는 중요한 때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때였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당신의 존재를 올바로 보고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의 제자들을 볼 때, 부족하고 약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잘 아시는 분이시다. 또 그렇기 때문에 그들을 통하여 당신의 일을 계속하게 하는 자들이 될 수 있도록 교육도 하셔야 했다. 여기서 베드로의 고백은 참으로 지금까지의 예수님의 가르침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확증하고 있다.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20절). 이제는 예수께서 돌아가신다 해도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본 제자들이 당신의 말씀을 이어서 전파할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제부터이다. 즉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발견하고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 그리스도를 발견한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알아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슨 의미인가 하면, 예수님을 그렇게 고백한 베드로도, 다른 제자들도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그리스도는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세상을 주름잡는 이스라엘 왕국의 현세적인 정복자이며, 만방의 왕이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베드로가 그렇게 고백을 한 후에 그리스도의 모습은 십자가에서 죽어야 하는 그리스도라는 것을 지적하고 일깨워주시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렇게 예수께서는 그들이 바라고 희망했던 그리스도의 모습을 뒤엎어야 했고, 그 길을 당신 자신이 가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생활 속에서 어떠한 하느님, 어떠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어떤 모습의 그리스도를 따르려 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지금 내가 고백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내 생활 속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는 것도 문제를 삼아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분은 나에게 질문을 하신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20절).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가르쳐준 그러한 내용들이 아니다. 그것으로는 충분치가 못하다.

베드로 사도가 개인적으로 신앙을 고백한 것과 같이 나도 나 자신이 느끼는 하느님 그리고 그리스도에 대한 것이 되어야 한다. 시험 답안지에 작성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이 질문에 대한 올바른 답은 나 자신의 삶을 통한 개인적인 자기 발견이고 인정이며 고백이다. 그리고 이는 생명을 건 삶이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을 통하여 올바로 그리스도를 고백할 수 있는 삶의 지혜를 청하면서 이 미사를 봉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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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조욱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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