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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원주] 늘 깨어 기도하라
조회수 | 109
작성일 | 22.11.24
늘 깨어 기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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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그리고 그날이 너희를 덫처럼 갑자기 덮치지 않게 하여라.”(34절)

영원하신 임금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는 술의 위험과 또한 ‘술 중독’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아무리 술을 많이 먹는 사람도 의사가 술을 먹으면 이제 죽는다고 하면 모두 술을 끊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제 영혼과 육신의 의사이신 주님께서 만취와 방탕과 일상의 근심에 빠지지 말라고 하신다. 그렇게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에 빠져 살면서 아무 탈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기에 만취는 모든 것을 망치는 원인이다. 육신과 함께 영혼까지 약하게 하는 유일한 병이다. 사도 바오로는 육신이 약할 때 영은 강해진다(코린토 2서 12,10)고 하였다.

“외적 인간은 쇠퇴해 가더라도 우리의 내적 인간은 나날이 새로워집니다.”(코린토 2서 4,16)고 하였다. 그러나 술에 취해 살면 육신과 영혼이 파멸한다. 육신과 영혼이 한꺼번에 타락하는 것이다. 모든 지체가 약해지면서 손과 발이 말을 안 듣고, 혀는 풀리고 눈은 어두워진다. 정신 또한 망가져서 자기가 누군지도 모르고, 심하면 자기가 인간이라는 사실조차 모른다. 술 중독이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생의 마지막 시간을 맞이할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순간이 나에게는 아직 거리가 먼 것으로 생각하고, 애써 잊으려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게 생각한다고 하여도 죽음이라는 것은 우리 앞에 당당히 버티고 있으며, 언제나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다만 그 때가 언제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하여간에 우리 인간은 언제고 어느 때고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깨어 있다는 것은 다른 의미가 아니라, 지금 당장에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 있게, 기쁘게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것을 종말론적인 삶이라고 한다. 그래서 하느님을 기쁘게 잘 만날 수 있기 위해서는 평소에 죽는 연습을 잘 해야 한다. 이것은 바로 하느님의 뜻을 올바로 실천하기 위해서 나 자신을 이기는, 나 자신을 죽이는 것이다. 즉 하느님의 뜻과 반대되는 나의 인간적인 뜻을 죽이고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다.

이렇게 내가 죽는 연습이 잘 되어있다면, 하느님 앞에 나아갈 때, 이 세상 삶도 잘 마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종말론적인 삶이며, 우리는 그 날 어떤 어려움과 고통도 이겨내고 주님을 뵈올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삶은 항상 기도하는 자세와 함께 이루어갈 수 있다. 기도하면서 내가 살아가는 매 순간들의 삶이 하느님께 바쳐지는 아름다운 기도로써 바쳐질 수 있도록 한다면 진정 신앙인으로써, 하느님의 자녀로써 기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을 잘 새기고 실천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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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조욱현 신부
2018년 12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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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의 말씀은 분명히 세상의 마지막 날이 언제 오더라도 늘 준비하고 있으라는 말씀을 우리에게 하고 계시다. 그 마지막 날은 공포와 기쁨, 영광으로 모든 것이 나뉘어지는 날이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결과로서 나타나는 것이고, 현재의 삶과 태도에 계속 연결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술에 취해 허송세월을 하고 쓸데없이 세상일에 마음을 빼앗기는 등 지금의 행동은 그 때에 가서 우리에게 부정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에 지금부터 항상 깨어있으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생의 마지막 시간을 맞이할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순간이 나에게는 아직 거리가 먼 것으로 생각하고, 애써 잊으려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게 생각한다고 하여도 죽음이라는 것은 우리 앞에 당당히 버티고 있으며, 언제나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다만 그 때가 언제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하여간에 우리 인간은 언제고 어느 때고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깨어있는다는 것은 다른 의미가 아니라, 지금 당장에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 있게, 기쁘게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것을 종말론적인 삶이라고 한다. 그래서 하느님을 기쁘게 잘 만날 수 있기 위해서는 평소에 죽는 연습을 잘 해야 한다. 이것은 무슨 의미냐 하면, 바로 하느님의 뜻을 올바로 실천하기 위해서 나 자신을 이기는, 나 자신을 죽이는 것이다. 즉 하느님의 뜻과 반대되는 나의 인간적인 뜻을 죽이고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다. 이렇게 내가 죽는 연습을 잘 할 때, 정말 나 자신이 하느님 앞에 나아갈 때, 이 세상 삶을 잘 마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삶이 바로 종말론적인 삶이 될 것이고, 우리는 그 마지막 날 어떤 어려움과 고통도 이겨내고 주님을 뵈올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삶은 항상 기도하는 자세와 함께 이루어갈 수 있을 것이다. 기도하면서 내가 살아가는 매 순간들의 삶이 하느님께 바쳐지는 아름다운 기도로써 바쳐질 수 있도록 한다면 진정 신앙인으로써, 하느님의 자녀로써 기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삶의 은총을 주님께 구하면서 이 미사를 봉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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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조욱현 신부
  | 11.24
521 76.4%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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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에제키엘이 예언했던 하느님의 성전에 대한 환시가 천상 예루살렘의 영광으로 성취됩니다. 에제키엘은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하느님의 영광이 성전을 떠나는 고통을 전합니다.(에제키엘 예언서 10,19) 수모의 바빌론 유배가 시작되고 그들에게서 하느님의 성전도 사라집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긴 유배생활을 마치며 당신 백성들을 데리고 다시 시온으로 돌아오시지요. 그래서 에제키엘은 하느님 영광이 다시 성전으로 돌아오는 환시를 전하고 있습니다.(에제키엘 예언서 43,4)

요한 묵시록 저자는 교회에 불어 닥친 박해의 시기가 끝나고 천상 예루살렘의 영광과 그 도래를 전하고 있습니다. 요한 묵시록 저자는 환시를 통해서 보는 하느님의 나라인 새 예루살렘에 대해서 전해 주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세상 창조를 말씀을 통해 혼돈에서 최초로 빛을 창조하신 사실(창세기 1,3)이 세상 종말에 도래하는 천상 예루살렘에서 그 빛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묵시록 저자는 이 사실을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다시는 밤이 없고 등불도 햇빛도 필요 없습니다. 주 하느님께서 그들의 빛이 되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영원무궁토록 다스릴 것입니다.”(묵시록 22,5)

뿐만 아니라 에제키엘이 환시를 통해 본 성전에서 흐르는 물은 이제 하느님의 어린양 어좌에서부터 흐르는 것입니다. “주님의 천사는 수정처럼 빛나는 생명수의 강을 나 요한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그 강은 하느님과 어린양의 어좌에서 나와, 도성의 거리 한가운데를 흐르고 있었습니다.”(묵시록 22,1-2)

에제키엘 예언자는 이렇게 전하고 있지요. “이 강가 이쪽저쪽에는 온갖 과일나무가 자라는데, 잎도 시들지 않으며 과일도 끊이지 않고 다달이 새 과일을 내놓는다. 이 물이 성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 과일은 양식이 되고 잎은 약이 된다.”(47,12)

이제 묵시록에서는 “강 이쪽저쪽에는 열두 번 열매를 맺는 생명나무가 있어서 다달이 열매를 내놓습니다. 그리고 그 나뭇잎은 민족들을 치료하는 데에 쓰입니다.”(묵시록 22,2ㄴ.ㄷ)

묵시록 저자는 장차 도래할 종말에 천상 예루살렘을 전하고 있습니다. 천상 예루살렘은 의인들이 하느님과 함께 지내는 영광이 넘치는 곳입니다. 박해와 이 지상에서 끝까지 믿음을 지킨 이들이 천상 예루살렘에서 받을 영광에 대해서 저자는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의 긴 겉옷을 깨끗이 빠는 이들은 행복하다. 그들은 생명 나무의 열매를 먹는 권한을 받고, 성문을 지나 그 도성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22,14)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영원히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잠시 나그네가 지나가는 여정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묵시록 저자는 자신의 글을 마무리하면서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기다리는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시리라는 뜻이 담긴 “보라, 내가 곧 간다.”(22,7.12.20)라는 말씀을 몇 차례 반복하고 저자는 재림하시는 주님을 기다리는 마음을 표현하며 자신의 글을 맺습니다.

오늘 미사 전례에서도 주님을 기다리는 대림시기를 준비하며 화답송으로“마라나 타! 오소서, 주 예수님!”의 청원을 바칩니다. ‘저희 주님, 오소서.’라는 뜻인 "마라나타 Μαραναθα"는 사도 바오로가 교우들에게 작별인사를 하며 썼던 아람어식 기도문 문구 두 단어인 ‘마란 아타 maran atha מרן אתא’ 인데 희랍어로 표기하면서 한꺼번에 이어서 발음하는 것으로 변한 것입니다.(코린토 1서 16,22). 초대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담은 ‘디다케 Didache’의 전례 예식문에서도 이 문구가 나타납니다.

요한 묵시록 저자도 “아멘. 오십시오. 주 예수님! 주 예수님의 은총이 모든 사람과 함께하기를 빕니다.”(묵시록 22,20-21)라는 문구로 끝을 맺는 것입니다.

오늘은 연중 시기를 마감하며 대림시기를 준비하는 ‘마지막이며 시작의 날’입니다. 이렇게 마감의 날이 있다는 것은 언젠가 우리에게도 마감과 시작의 때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각자의 행실대로 주님께서 갚아 주시겠다는 묵시록의 말씀을 묵상하며 재림 때와 성탄시기에 오시는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하겠습니다.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루카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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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교구 정인준 신부
2022년 11월 26일
  |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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