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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사람을 심판하면 믿으나 마나다.
조회수 | 82
작성일 | 22.12.01
[수원] 사람을 심판하면 믿으나 마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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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 김창옥씨의 강의 중에 어떤 부부가 감자 때문에 이혼한 사연이 나옵니다.

어느 날, 이혼재판소에 한 부부가 찾아왔습니다. 판사가 물었어요. 왜 이혼을 하려고 하냐고. 그랬더니 ‘감자’ 때문에 이혼을 한다는 것입니다.

“먹는 감자요?”

“네!”

어리둥절한 판사가 자세한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사연은 이렇습니다. 어느 날 아내가 감자를 삶아서 내왔습니다. 그리곤 감자에 찍어 먹으라고 설탕을 줬습니다. 그랬더니 남편이 “누가 감자를 설탕에 찍어 먹냐? 소금 가져와 소금.” 했습니다.

아내가 그냥 설탕 찍어 먹으라고 했지만, 남편은 소금 가져오라고 계속 말했습니다. 아내는 짜증 난 목소리로 투덜거렸습니다.

“당신은 손이 없어, 발이 없어? 그렇게 소금 찍어 먹고 싶으면 당신이 가서 가져와! 손가락 하나를 까딱 안 해요. 이놈의 집안은.”

그러자 남편도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해버렸습니다.

“그래, 장모도 감자에 설탕 찍어 먹더라. 감자에 설탕 찍어 먹는 집안. 에휴.”

남편의 말에 아내가 화가 많이 나 소리쳤습니다.

“뭐? 집안? 당신 집안 뭐가 그렇게 잘났는데, 뭐가 그렇게 잘났기에 지랄이야!”

“뭐? 지랄? 에잇!”

남편이 아내의 뺨을 치고 말았습니다. 아내가 째려보자 남편이 소리쳤습니다.

“뭐, 어쩌라고? 어쩌고 싶은데? 어?”

아내가 차가운 말투로 또박또박 말했습니다.

“이. 혼. 해.”

“뭐, 이혼? 감자가 이혼할 이유냐? 이게?”

남편이 당황했지만, 아내는 나지막이 말했습니다.

"나, 생각한지 오래됐어.”

그렇게 두 분이 재판소에 오게 된 것입니다.

아내가 뾰로통한 표정으로 판사님께 물었습니다.

“판사님, 판사님께서는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셔서 좋은 교육 받으시고 판사 되셨잖아요? 판사님 댁에서는 감자에 설탕 찍어 먹나요, 소금 찍어 먹나요?”

당황한 판사가 몇 초 후에 대답했습니다.

"우리 집에서는 감자에 신김치를 올려 먹습니다.”

과연 이 부부는 감자 때문에 이혼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서로를 심판하는 버릇을 무시했기 때문에 이혼하게 된 것입니다. 배우자를 평가하고 그 배우자가 자란 집안까지 심판하니 그 관계가 오래 유지될 수 없는 것입니다.

모든 것엔 ‘기본’이 있습니다. 기본이 무시되면 더 이상 노력하는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집니다. 기본에 충실히 하지 않으면 다른 노력은 아예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누가 기반도 다지지 않고 건물을 짓겠습니까? 흔들리는 바탕 위에 노력하는 모든 것은 한 순간에 무너져 내립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의 기본이 있습니다. 그 기본에 충실하지 못하면 오늘 복음의 비유 말씀처럼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습니다.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면 그 집은 완전히 무너져 내립니다.

예수님은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그러므로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모두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마태 7,1) 라는 말씀의 결론 부분입니다. 그러니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은 “남을 심판하지 마라.”로 바꿀 수 있습니다. 남을 심판하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사람과 같습니다. 남을 심판하지 않는 것을 배우려는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시작하고 아무도 심판이 되지 않을 때 다른 덕도 쌓아가는 것이 좋습니다.

일본 납세자 1위인 사이토 히토리씨가 결혼에 대해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결혼이라는 것은 빨리 하고 후회하느냐, 늦게 하고 후회하느냐 둘 중의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결혼은 수행이니까요. 생판 남과 생활하는 수행입니다. 결혼하면 행복해질 것이라든지 상대방이 행복하게 해줄 거라는 망상을 하니 실패하는 거예요. 수행은 그런 것까지 다 포함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나를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면 남편의 이상한 말 한마디에 싫어지겠지만, 수행이라고 생각하면 ‘이 사람이 아니면 이런 수행을 할 수 있었겠어?’하고 생각하겠지요. 그리고 결혼하는 상대방은 이미 정해져 있어요. 그래서 만나게 되면 반드시 결혼해야 해요. 정해진 운명이니까요. 그렇게 수행이 시작되는 것이지요. 운명의 상대라고 부르지 말고, 수행의 상대라고 하세요.”

[출처: ‘돈을 부르는 말버릇; 운명의 상대? 수행의 상대’, 미야모토 마유미, 비즈니스북스]

신앙도 이웃과의 운명적인 수행의 시작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운명적으로 사람들을 만나게 해 주십니다. 그들을 자기 행복을 위해 이용하는 대상으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판단하지 않는 연습을 하는 수행대상으로 보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이 남을 심판하는 버릇을 고치려는 노력으로 시작될 때 반석 위에 집을 짓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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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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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이 쉽게 무너지는 사람의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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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은 신앙이 있다고 하면서도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모래 위의 집처럼 무너진다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이를 실감하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많은 신자가 냉담을 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를 오늘 복음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냉담한 이들은 어쩌면 예수님의 말씀처럼 하느님의 뜻, 곧 사랑의 실천에 목적을 둔 신앙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신앙의 목적은 더 사랑하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목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희 어머니 이야기를 자주 해서 죄송스럽기는 하지만, 어머니가 고생하며 자란 집들은 다 천주교 신자의 집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어머니를 형제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의 행복을 위한 도구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용했고 그래서 어머니는 한 집에서는 탈출해야 했으며, 또 한 집에서는 집사람들을 모두 죽이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만들었습니다.

도대체 그들은 왜 한 불쌍한 길 잃은 아이를 그렇게 이용하고 차별했던 것일까요? 그 이유는 어머니가 가족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길에 쓰러진 강도를 만난 사람이 형제로 보였다면 사제나 레위인이나 그냥 지나갈 수 있었을까요? 오직 사마리아인만이 그를 형제로 보아주었습니다. 형제로 보이지 않으면, 가족으로 보이지 않으면 사랑할 수 없습니다.

저는 이것을 휴가 때 놀러 가다 체험했습니다. 저도 아픈 사람을 그냥 지나쳤습니다. 사고가 났다고 신고는 해 주었지만, 그분과 함께 있어 주지는 못했습니다. 만약 그 사고를 당한 사람이 가족으로 보였다면 그렇게 했을까요? 그럴 수 없었습니다. 착한 사마리아인 강론을 수백 번 해도 실제로 그런 상황이 닥치면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지를 않습니다. 가족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JTBC ‘재벌집 막내아들’은 이상한 설정으로 시작합니다. 한 재벌가를 위해 물불 안 가리고 충성하던 주인공이 그들에게 배신당하면서 시작됩니다. 그렇게 죽게 된 주인공은 죽는 순간 다시 과거로 돌아가 그 재벌 집 셋째 아들의 손자가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과거의 기억은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미래 일을 알기에 많은 돈을 벌고 재벌에 복수하는 일은 식은 죽 먹기입니다. 그 돈으로 무엇을 할까요?

주인공은 I.M.F. 때 아버지가 정리 해고되어 어머니가 그 충격으로 사망하게 된 사실을 기억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아무 상관도 없는 옛 가족이 있는 집으로 갑니다. 가족들은 주인공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하지만 주인공은 압니다. 이전 생에서 그들이 자신들의 부모였음을. 그는 가진 재산 전부를 내어놓으며 망해가는 아버지 회사를 매입하려 합니다. 이것이 복수하는 것보다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냥 기억만으로 지금은 남의 식구가 되어있고 아무 상관도 없는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가진 모든 것을 버리는 주인공의 선택은 우리 모두의 공감을 얻습니다. 누구나 그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나의 부모였다는 기억이 이렇게 소중합니다.

그런데 우리도 모든 사람이 가족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무엇을 통해서겠습니까? 이 드라마처럼 ‘기적’을 통해서 입니다. 그 기적은 미사 때 ‘성체성사’로 일어납니다. 성체성사를 믿어버리면 어떻게 됩니까? 우리는 모두 한 아버지를 둔 한 형제들이 됩니다. 말로만 형제가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 진짜 형제로 맺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창조자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모든 피조물 또한 나의 형제들이 됩니다. 그분에게서 나오지 않은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성체성사가 아니면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이 아니면 십계명이 지켜질 수 없는 것입니다. 만약 이 세상에서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려고 했다면 성체가 아니면 이는 불가능함을 알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코로나를 이유로 냉담을 한다면 이는 그동안 신앙생활의 목적이 사랑의 실천이 있지 않았음을 증명합니다.

우리는 신앙 생활을 하다 자칫 사랑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빠질 위험을 항상 가지고 있습니다. 근래에는 정치적으로 누군가가 죽었으면 좋겠다는 발언을 해서 큰 파장을 일으킨 성직자도 있었습니다. 이해가 안 되는 일이지만, 사실 우리 신앙의 목적이 사랑의 실천에 있음을 끊임없이 생각하지 않으면 누구도 그런 신앙의 길로 빠지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우리 신앙을 사랑 실천이라는 암석 위에 세웁시다. 그러면 우리가 짓는 신앙의 집이 결코 흔들리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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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전삼용 신부
2022년 12월 1일
  |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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