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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수원] 생각의 전환
조회수 | 1,577
작성일 | 08.11.25
어제는 인천신학교에서 동창 모임이 있었습니다. 점심식사 후에 오랜만에 신학생들과 축구를 하자고 했었거든요. 조금 걱정이 되었습니다. 예전과 같은 실력이 나올까? 혹시 헛발만 차고 자빠지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망신만 당하는 것은 아닐까?

모두 몇 년 만에 축구공을 차보는 것이라서 자신은 없었지만, 옛날 기억을 살려서 재미있는 시간을 갖는다는 생각 하나만을 갖고서 열심히 공을 찼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무려 다섯 골이나 넣은 어떤 신부의 맹활약으로 저희가 8:2로 승리를 한 것입니다. 처음에 생각했었던 걱정이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이었지요. 물론 신학생들이 신부들을 많이 봐 주었겠지만, 그래도 기분은 너무나도 좋더군요.

생각해보니 우리는 먼저 늘 걱정부터 합니다. 걱정을 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닌데, 걱정부터 하면서 할 수 있는 것도 스스로 소극적으로 변할 때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따라서 마음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걱정이라는 부정적 마음이 아닌 희망이라는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야 할 수 없는 것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930년 도널드 헤브가 실시한 실험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그는 6세~15세의 학생 600명에게 더 이상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이 교실에서 행동을 잘못하면 벌로 밖에 나가서 놀도록 하고, 행동을 잘하면 상으로 교실에서 공부하도록 시킨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이렇게 나왔습니다.

“그러한 환경에서 하루 이틀이 지나지 않아 모든 학생들이 노는 것보다 공부를 택했다. 그리고 전보다 더 열심히 공부했다.”

많은 이들이 공부나 일을 하나의 의무처럼 생각합니다. 그렇다보니 지겹고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생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의무가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특권이라고 생각한다면 훨씬 더 풍족한 삶을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끔찍하게 생각할 수 있는 종말에 대한 말씀을 해주십니다. 성전의 아름다운 돌과 자연 예물이 다 허물어져 남아있지 않게 된다고 하시지요. 바로 기원후 70년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성전이 파괴된 사건에 예언인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있을 수 없는 일이 생겼다고 생각했었지요. 하느님의 집이니만큼 절대로 함락되지 않을 것이며, 파괴되는 일은 더더구나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을 때, 사람들은 이제 모든 것이 끝장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사건에 앞서 말씀해주십니다.

“너희는 전쟁과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더라도 무서워하지 마라. 그러한 일이 반드시 먼저 벌어지겠지만 그것이 바로 끝은 아니다.”

생각의 전환을 시키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걱정하면서 모든 것을 포기하는 삶은 자신이 지금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는 등 올바르지 않은 방향으로 나를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절망과 고통의 순간에도 긍정적인 마음으로 전환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께서 주신 이 세상이라는 선물 안에서 더욱 더 많은 것을 누리면서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조명연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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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세상 종말의 대한 말씀

교회는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세상의 종말에 관한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게끔 한다. 그래서 오늘 복음을 통해서 다가올 세상의 종말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유대인들은 당시에 주님의 날이 올 것이라는 생각을 다 가지고 있었다. 주님의 날이란, 그들에게는 현재의 시대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전적으로 나쁘고 사악하여 치유될 수도 없고 오직 멸망할 시대라는 것이다. 또 하나의 시대는 다가오는 시대인데, 이 시대는 하느님의 시대이며 유대인의 최상의 시대라는 것이다.

이 두 시대의 중간에 끼어있는 것이 주님의 날로서, 이 때에는 우주의 대 변동과 파멸이 따르는 무서운 때이며 새로운 시대를 낳는 필사적인 산고의 시대이며 공포의 날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이러한 생각을 일깨워 주는 성서는 이사 13,9; 아모 5,18-20; 스바 1,14-18 등이다. 그런데 그 날은 도적과 같이 온다고 1데살 5,2; 2베드 3,10에서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 날은 멸망의 날이라고 이사 13,10-13; 요엘 3,3; 2베드 3,10에서 말하고 있다.

오늘 복음에서 보면, 어떤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전의 웅장함과 화려함에 감탄 하는 것을 예수님께서 보시고 그 성전이 돌 위에 돌이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파괴될 것을 말씀하신다. 당신의 기록을 보면 예루살렘 성전 현관 기둥들은 흰 대리석 기둥들로서 아름답고 웅장한 것이었고 그 당시까지 꾸며진 것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순금으로 만든 큰 포도나무인데 그 포도송이가 사람만큼이나 큰 것으로 성전을 멀리서 보면 눈 덮인 산처럼 장식된 아름다운 성전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성전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산산이 부서져 폐허가 된다는 것은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역사에 보면 기원 후 70년에 로마 군에 의해서 예수님의 예언대로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포위 공격에 110만 명이 죽었고 9만 7천 명이 포로로 끌려가서 그곳은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는 것이다.

예루살렘하면 하느님께서 얼마나 사랑하셨고 당신 백성들과 만나신 얼마나 유서 깊은 곳인가? 그런데 그토록 파멸을 당했다는 사실은 당신의 어느 한 마디도 헛되지 않다는 교훈을 주는 것이며, 또한 예루살렘처럼 회개하지 아니하고 자기 중심적으로 하느님을 따른다고 할 때에 이러한 파멸을 우리 자신도 당하게 될 것 임을 경고하시는 것이다. 주님은 언제나 우리의 회개를 기다리시는 분이시다. 벌주기를 원하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하느님의 뜻을 역행함으로써 우리 스스로 그 길을 가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언제나 주님의 뜻에 귀 기울이고 그분 안에 기쁨의 삶을 살아가는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 주님이 오시는 날은 어느 때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마치 우리 인간이 언제든지 하느님 앞에 갈 수 있는 것과 같다. 언제나 하느님 앞에 올바로 설 수 있는 삶이 되도록 하는 삶의 자세가 주님의 날을 올바로 맞이하는 삶이다.

▮ 수원교구 조욱현 신부
  |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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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저에게는 부러운 사람이 너무 많았습니다. 노래 잘 부르는 사람, 말 잘 하는 사람, 운동 잘 하는 사람, 공부 잘 하는 사람, 친구가 많은 사람, 부유한 사람,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 등등... 세상에는 왜 이렇게 나보다 뛰어난 사람이 많은지 모르겠더군요. 그런데 어느 날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어 보이는 친구가 어두운 표정을 지으면서 이야기를 합니다. 지금 마음이 너무 힘들다는 것이었지요. 그때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외적으로 보이는 모든 것뿐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의 무게까지 헤아려야 한다는 것을 말이지요.

지금 현재 제 마음의 무게는 그 누구보다도 무겁다고 자부합니다. 비록 겉보기에는 볼품없어 보이지만, 마음의 무게만은 그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을 정도로 무겁습니다. 그래서 어떤 고통과 시련이 찾아와도 밝게 웃을 수 있습니다. 바로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굳게 믿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제외하고는 형편없는 제 모습이지만, 주님과 연결해보니 그 자체로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습니다.

하지만 항상 마음의 무게가 무거운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마음이 뻥 뚫린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바로 마음이 가벼워진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마음이 가벼워질 때를 떠올려보면 주님과 함께 하지 못했음을 깨닫습니다.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들에 더 많은 집중을 하고 있을 때인 것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세상의 것들에 집중해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는 주님의 뜻에 집중하면서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갈 때 비로소 마음의 무게가 더욱 더 무거워지게 됩니다. 그러면서 세상 안에서 어떤 시련과 고통이 찾아와도 거뜬하게 이겨낼 수 있습니다.

몇몇 사람이 지금 눈으로 보고 있는 화려한 성전을 보면서 감탄을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 화려함도 금세 사라질 수밖에 없음을 말씀하십니다. 즉, 영원할 것만 같았던 성전이 곧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지고 만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비록 그 날과 그 시간은 알 수가 없지만 주님을 충실하게 따름으로 인해 하늘에서 보여주는 큰 표징들을 알아챌 수 있게 된다고 하시지요.

주님의 이 말씀을 주의 깊게 들어야 합니다. 순간의 만족만을 가져다주는 화려함과 풍요로움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주시는 주님을 선택해야 합니다. 주님을 선택하게 될 때, 내 마지막 순간에서도 큰 두려움 없이 이겨낼 수가 있습니다. 내 마음의 무게가 그만큼 무거워지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선택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겉으로 보이는 풍요보다는 마음의 풍요를 통해서 더욱 더 기쁘게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 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 2018년 11월 27일
  |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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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성전임을 잊을 때 종말이 재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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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태국 유소년축구팀 소년들이 동굴에 들어갔다가 갑자기 물이 불어나 갇히게 되었습니다. 전 세계 사람들이 이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도하며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고립된 지 17일 만에 구조대원들의 수고로 축구팀 코치와 선수 13명이모두 무사히 구출되었습니다.

그들의 구출에 큰 공을 세웠던 이들은, 가장 먼저 그들의 생존을 확인한 영국 전문 잠수사, 그들을 구해내온 각국에서 모인 구조대원들, 소년들의 건강상태를 세밀하게 살핀 호주 의사 등입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은 그들과 함께 있었던 축구팀의 코치였습니다. 칠흑같이 캄캄한 동굴에서 두려움에 떠는 소년들을 추스르며 이들에게 끝까지 자리를 지킬 힘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이들은 움직이면 살아날 수 없는 곳에 갇혀있었습니다. 코치는 그 소년들을 다 내보낸 뒤 가장 마지막으로 동굴에서 나왔습니다.

우리가 있는 곳에 필요한 것이 다 있습니다.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분은 부모님이듯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분은 하느님입니다. 우리 안에 하느님이 계신데 어디로 가겠습니까?

구상 시인은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라고 말합니다. 파랑새를 찾아 나서봐야 다른 곳에서는 발견할 수 없습니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자신의 마음속을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내가 있어야하는 자리를 이탈하게 되는 이유는 내가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알아야 그 있어야 할 자리도 알게 됩니다. 그런데 내가 누구인지 모르니 이리저리 있지도 않은 것을 찾아 헤매 다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는 교회라는 큰 성전을 이루는 작은 돌들입니다. 하느님은 성전에 사시기 때문에 교회가 성전의 역할을 하지 못하면 이 세상은 더 이상 하느님이 살지 않아 허물어지게 됩니다. 이것이 세상의 종말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징조들이 벌써 많이 보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댐도 작은 구멍으로부터 시작해 허물어지듯 성전도 작은 벽돌들이 제 자리를 지키지 않고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될 때 허물어지기 시작합니다.

작은 벽돌들이란 우리 신앙인 각자를 의미합니다. 우리 각자도 작은 성전들입니다. 우리 각자 안에 하느님께서 사십니다.

그래서 하느님을 다른 곳에서 찾으려고 하는 이들이 늘어나면 교회는 약해집니다. 자신이 성전이고 자신 안에 하느님이 계신데 세상 적인 것들에서 진리를 발견하려고 하면그 성전은 당연히 허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께서도 속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또 ‘때가 가까웠다.’ 하고 말할 것이다.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마라.”
주님은 교회에서, 그리고 각자의 마음 안에서 만나는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는 시간을 기도라 합니다. 교회 전례 안에서 주님을 만나고 교회의 가르침 안에서 주님을 만나며 개인 기도 안에서도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것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야합니다.

마치 교회가 충분한 진리를 주지 못하는 것인 양, 세속적인 것들에서 진리를 찾게 된다면 그것이 마지막 때가 다가오는 표징이 될 것입니다.

지금도 많은 신자들이 교회에서 승인하지 않은 이상한 기도모임이나 성경공부, 혹은 세속적 학문인 심리학으로부터 온 상담이나 명상 등을 하며 교회에서 부족한 것을 채운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에 하느님이 사시는데 무엇이 부족해서 세상 것에서 주님을 찾으려고 하는 것일까요? 내 안에 주님이 계시는데 어디에서 진리를 만나려고 하는 것일까요? 주님께서 진리이시고 평화이시고 위로이시고 전부이지 않습니까?

이런 것들을 교회 외적인 것에서 찾으려하는 것이 곧 속는 일입니다. 이렇게 내 자신, 그리고 교회가 하느님을 모신 성전임을 조금씩 잊어가게 될 때 마지막 때는 앞당겨지게 될 것입니다.

“Dirty is out of the place” 라는 말이 있습니다. ‘더러움이란 자기 자리를 떠나는 것이다’ 라는 말입니다. 어항 속에서 물고기들이 헤엄칠 때에는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그 물고기가 침대에 있다면 더럽다고 말합니다. 흙이 논밭에 있다면 괜찮겠지만 방바닥에 있다면 더러운 것이 됩니다.

내가 무엇인지 안다면 어디 있어야 하는지도 압니다. 우리가 있어야 할 위치는 교회입니다. 그리고 나 또한 큰 성전인 교회를 이루는 작은 성전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내가 성전임을 잊을 때 자리를 이탈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깨끗하지 못한 사람이 되어버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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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 2018년 11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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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의 멸망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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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서 보면, 어떤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전의 웅장함과 화려함에 감탄하는 것을 예수님께서 보시고 그 성전이 돌 위에 돌이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파괴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로마가 성전을 무너뜨리고 예루살렘을 불태울 것이며 이스라엘은 주님을 살해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처형당하신 뒤 이 모든 일을 겪어야 했다.

성전이 언제 무너질 것이며 당신께서 오시기 전에 어떤 표징들이 나타날 것이냐는 질문에, 주님께서는 그 표징들에 대해 일러 주시며 그때가 언제인지는 알려주시지 않았다. 그때가 되면 많은 사람이 오류에 빠져 참된 믿음을 버리고 떠나갈 것이다. 그러면 마침내 주님의 날이 올 것이다. 주님께서 첫 번째 오심은 속죄를 위해서였고 두 번째 오심은 더 많은 이가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주님께서는 세상 종말에 일어날 일을 알려주시며 그들에게 경계하라고 하신다. 주님께서 오시기 전에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예언자들이 나타날 것이다.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마라.”(8절)고 하신다. 두 번째로 오실 때에는 비밀리에 오시지 않고 무시무시하고 화려하게 오실 것이다. 세상을 정의로 심판하기 위하여, 아버지 하느님의 영광에 싸여 천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내려오실 것이다.

하느님은 참으로 진실하신 분이시다. 그분은 이 모든 것을 미리 말씀해 주셨다. 또 모든 말씀을 읽고 들었다. 우리는 언제 종말이 오는지 우리 모두 들었다. 그때에는 전쟁과 지진과 환난과 기근이 일어날 것이다(마르 13,7-8). 그러므로 우리는 모순된 행동을 하고 있다. 이런 일에 관한 말씀을 읽을 때에는 그 말을 믿다가 막상 그 일이 일어나면 불평을 늘어놓곤 한다.

마지막 날에 민족과 민족이 맞서고 나라와 나라가 맞서 일어날 것이다. 너희가 전쟁과 지진과 기근을 보게 되거든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라고 하신다. 주님께서는 종말이 가까웠을 때, 일어날 표징들을 알려주신다. 곳곳에 기근과 전염병이 생길 것이라고 하신다. 하늘에서는 무서운 일들과 큰 표징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하신다. “별들은 하늘에서 떨어지고 하늘의 세력들은 흔들릴 것이다.”(마태 24,19)

‘예루살렘’하면 하느님께서 얼마나 사랑하셨고 당신 백성들과 만나신 얼마나 유서 깊은 곳인가? 그런데 그토록 파멸을 당했다는 사실은 당신의 어느 한 마디도 헛되지 않다는 교훈을 주는 것이며, 또한 예루살렘처럼 회개하지 아니하고 자기중심적으로 하느님을 따른다고 할 때에 이러한 파멸을 우리 자신도 당하게 될 것임을 경고하시는 것이다. 주님은 언제나 우리의 회개를 기다리시는 분이시다. 벌주기를 원하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하느님의 뜻을 역행함으로써 우리 스스로 그 길을 가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언제나 주님의 뜻에 귀 기울이고 그분 안에 기쁨의 삶을 살아가는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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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교구 조욱현 신부 : 2018년 11월 27일
  |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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