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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회] 파멸의 때 우리는
조회수 | 1,707
작성일 | 08.11.25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대 파멸의 때를 말씀하시며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말씀하십니다.

파멸의 때 우리는
첫째로 각오를 해야 합니다.
파멸이 아닌 다른 것을 기대하지 말고 파멸을 각오해야 합니다.
파멸은 오지 말아야 한다고 파멸을 연장시키려 들지 말고
오히려 파멸을 각오해야 합니다.
그래야지 파멸이 와도 당황하지 않습니다.
요즘 세계 경제가 대 파멸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경제도 예외가 아닙니다.
사람들 누구나 Panic 상황이다, 대공황이다 하고 얘기합니다.
Panic, 공황 상태는 파멸을 각오하지 않기에 오는 것입니다.
각오하지 않고 오지 말아야 한다고 버티다
파멸을 맞이할 때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파멸은 꼭 옵니다.
각오해야 합니다.
오늘 주님은 그 화려한 성전이 다 무너질 것이라고
파멸을 예언하십니다.
그 뜻은 각오하라는 것입니다.
잘 나가던 경제도 언젠가는 무너지고
건강하던 우리 몸도 언젠가는 무너지니 각오하라는 것입니다.
그때가 아니 올 거라고 안이하게 생각하거나
와서는 아니 된다고 억지 기대를 해서는 안 되고 각오해야 합니다.

파멸의 때 우리는
둘째로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파멸을 각오할 뿐 아니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파멸을 두려워하지 말고 올 것이 온 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파멸은 와야 할 것이 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파멸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고
파멸이 와야 새로운 건설이 이루어진다고
오히려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세계 경제의 파멸이 이렇게 오기를 바라지 않았지만
신자유주의적이고 금융중심적인 세계 경제 체제는 바뀌어야 한다고
저는 주장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참으로 고통스럽습니다만
이 세계 경제의 파멸은 새로운 경제 체제를 위해 온 것이라고
오히려 긍정하고 싶습니다.
내가 이룩한 모든 것도 파멸되고
나의 몸도 언젠가 파멸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파멸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파멸의 때 우리는
셋째로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이 사람을 따라가면 살 수 있을까,
저 사람을 따라가면 살 수 있을까 우왕좌왕하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우리 앞에서 벌어지는 사태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을 우리도 분주히 따라다녔는데,
이때 우리는
모든 것을 중지하고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벌어진 사태와 그일 해결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에 대한 어지러운
바라봄을 중지하고
생각을 중지하고
판단을 중지하고
행동을 중지하고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고
주님께서 일러주시는 새 길을 따라야 합니다.

작은 형제회 김찬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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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징조

그리스도 오심을 간절히 고대하고 있는 이들에게 예수님은 한마디 경고를 하신다. 예수께서는 예언자 미가가 한 위협적인 예언을 되풀이하시면서 그 예언을 성취하시려는 듯하다.

“야곱 가문의 어른들이라는 것들아, 이스라엘 가문의 지도자라는 것들아, 정의를 역겨워하고 곧은 것을 구부러뜨리는 것들아, 이 말을 들어라. 너희는 백성의 피를 빨아 시온을 세웠고, 백성의 진액을 짜서 예루살렘을 세웠다. 예루살렘의 어른이라는 것들은 돈에 팔려 재판을 하고 사제라는 것들은 삯을 받고 판결을 내리며 예언자라는 것들은 돈을 보고야 점을 친다. 그러면서도 야훼께 의지하여, ‘야훼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는데, 재앙은 무슨 재앙이냐?’ 하는구나! 시온이 갈아엎은 밭이 되고, 예루살렘이 돌무더기가 되며, 성전 언덕이 잡초로 뒤덮이게 되거든, 그것이 바로 너희 탓인 줄 알아라.”(미가 3,9-­12)

보이는 것이 전부인 줄 알고 사는 나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어떻게 믿는다고 고백을 할까? 보이지 않으니 보이는 데서는 적당히 하고 뭔가 잘못된 일이 생기면 벌을 주시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보이는 사람들 앞에서는 잘 보이기 위해 전전긍긍하는데. 마치 아버지의 유산을 가지고 집을 떠난 아들처럼 아버지 집에서 사는 것보다 뭔가 있을 것 같은 세상의 화려함과 바쁘게 돌아가고 자신을 떠받들어 주는 것이 ‘진짜 인생’이라고 여기고 살고 있는데.

보이는 세상에서 보이지 않는 분을 알아보는 기쁨을 누리는 것, 오늘 복음에서처럼 ‘징조’를 알아볼 수 있다면 그것은 은총이다. 화려하게 꾸며진 성전도 결국은 무너질 날이 올 것이라는 ‘허무함’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지혜로운 이들만이 느끼는 기쁨이다. 자신을 구원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이의 기쁨이다.

▮ 최기도 수사 : 어느 수도회 수사님이실까?
  |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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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어, 성전을 정화하신 다음, 어느 날 성전에서 하신 긴 담화의 한 부분입니다. 이는 예루살렘 성전파괴에 대한 예언과 세상종말이 오기 전의 표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성전은 주님의 현존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거룩한 것이라 하더라도 본래의 의미를 벗어나면 그 존재의미를 잃게 되고 맙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루카 21, 6)

성전 파괴에 대해서는 이미 예언자 미카, 예레미아, 에제키엘 등에 의해서 진술된 바 있었습니다. 그리고 옛 솔로몬 성전은 느부갓네살에 의해 기원전 586년에 파괴되었습니다.

사실, 예수님 당시의 성전은 유배에서 돌아온 이들에 의해 즈루빠벨의 치하에서 기원전 515년에 재건된 제 2성전이었습니다. 이 성전은 헤로데 왕에 의해 기원전 19년부터 확장되고 웅장하고 화려하게 꾸며지면서 그 본래의 의미를 잃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성전의 파괴를 예고하십니다. 그리고 그 때와 표징을 묻는 이들에게 이르십니다.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또 ‘때가 가까웠다.’하고 말할 것이다.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말라.”(루카 21, 8)

이는 거짓 예언자, 거짓 메시아에게 속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이비 메시아는 누구일까요?

대체, 우리는 누구에게 혹은 무엇에 속고 있을까요?

그것은 물질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재물이라는 우상을 사이비 구세주로 따르고, 속아 넘어가고 있지는 않는지 조심해야 할 일입니다. 사실, 세상에는 “돈을 많이 벌게 해주겠소.” 하고 외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결국에는 우상을 따르고 섬기도록 부추기는 거짓 예언자, 거짓 메시아 행세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입으로는 주님을 구원자라 고백하지만, 정작 무엇에 목매달고 쫓아가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또 재물뿐만이 아니라, 세속정신을 따르고 섬기고 있을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는 프란치스코 교종께서 현대사회의 가장 큰 병폐로 지적하신 신자유주의 정신을 조심해야 할 일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하십시오.”(로마 12, 2)

또 우리에게는 아주 특별하고 고약한 거짓 예언자, 거짓 메시아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이라는 녀석입니다. 우리는 남이 아니라 곧잘 자신을 속이고, 자신에게 속기도 합니다. 자신의 욕망과 생각, 자신의 견해와 뜻을 섬기고 추종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이라는 우상을 조심해야 할 일입니다. ‘자기 자신’ 거짓 예언자, 거짓 메시아 행세를 하지 않도록 해야 할 일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디모테오에게 말합니다.

“그대 자신을 조심하십시오. 그리고 그대의 가르침의 내용을 잘 살피시오. 이렇게 꾸준히 일을 해 나가면, 그대 자신을 구원할 뿐만 아니라,그대의 말을 듣는 사람들을 모두 구원할 수 있을 것입니다.”(1티모 4, 16)

분명, 우리는 자기 자신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과 뜻에 응답한 사람들입니다. 자기 자신이 아니라, 그분이 우리의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깨어있어야 할 일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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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주 오리베따노 이영근 신부 : 2018년 11월 27일
  |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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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싼 신앙을 거부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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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년 전 예수님께서는 기가 막히게 오늘 한국의 현실을 예견하시며, 우리에게 꼭 필요한 조언을 건네주셨습니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그분의 말씀은 생생하게 살아있고 유효하니, 정말이지 참된 예언자시며, 참된 주님이십니다.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또 ‘때가 가까웠다.’하고 말할 것이다.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마라.”(루카 복음 21장 8절)

곰곰히 생각해보니 우리 민족은 참으로 종교에 대해 관대하고 너그럽습니다.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종교가 진출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나라를 일컬어 ‘종교박람회장’이라고 칭하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발생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역사와 전통이 배경이 된 정통 신앙, 건전하고 건강한 신앙에 바탕을 둔 종교가 아닌 사이비 종교가 등장했습니다. 이상하고 어색하기가 하늘을 찌르는 사이비 교주들이 출몰했습니다. 스스로를 우상화시켰으며, 갖은 감언이설로 선량한 사람들을 현혹시켰습니다.

최근 세간에 큰 물의를 일으킨 한 사이비 대형 교회만 하더라도 보십시오. 사이비 교주는 스스로를 우상화시켰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했습니다. 과대망상에 사로잡힌 그는 적절치 않은 행동으로 법정에 서게 되었고 사악한 죄의 댓가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더 안타까운 일 한 가지가 있습니다. 사이비 교주가 행한 집단 최면이 얼마나 강했던지, 아직까지도 수많은 신도들이 법정의 판결에 대해 울부짖으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습니다.“그들 뒤를 따라가지 마라.”는 예수님의 조언에 조금만 귀를 기울였더라면, 이처럼 희극적이면서도 비극적인 일을 겪지 않았을텐데,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갖은 사이비 종교와 지도자들이 판을 치는 이 세상에서우리가 갖춰야 할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참과 거짓을 분별할 수 있는 식별력입니다.

그릇된 지도자들의 어처구니 없는 처신 앞에서, 그들이 주장하는 터무니 없는 가르침 앞에서, 맹목적으로 따라갈 것이 아니라, 복음에 비추어, 인간 이성과 상식에 비추어, 참인지 거짓인지, 참 목자인지 삯꾼인지를 정확히 식별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값싼 신앙을 거부해야겠습니다. 고통과 십자가 없는 구원은 기대조차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사이비 지도자들이 던지는 감언이설에 절대 속아 넘어가지 말아야겠습니다. 사이비 지도자들이 드러내고 있는 특징은 대체로 황당무계합니다. 비상식적이고 비이성적입니다. 뭔가 어색하고 부자연스럽습니다. 기괴하고 끔찍합니다. 만일 그런 기미가 보인다면 즉시 경계를 시작해야 마땅합니다.

우리 가톨릭 교회의 분위기나 가르침은 조금 밋밋해보입니다. 가톨릭 교리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통상적이어서 그렇습니다. 이성적이고 평범한 것이어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사실 보편적이고 인간적인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모릅니다. 우리 가톨릭 교회에서는 고통스럽고 부당한 현실, 단박에 뒤집힐 것이라고 외치지 않습니다. 우리 눈 앞에 신천지가 나타날 것이라고 사기치지 않습니다. 지금 겪고 있는 이 끔찍한 병고 즉시 치유시켜주겠노라고 과장하지 않습니다. 목돈을 갖고 오라고 협박하지 않습니다.

대신 우리 가톨릭 교회는 고통스럽고 부당한 현실 앞에서도 너그러운 마음을 지니자고 초대합니다. 기도 속에 주님의 뜻을 찾아보자고 안내합니다. 호의적이지 않은 이 현실, 넓은 마음으로 받아들이자고 가르칩니다. 천천히 가자고, 인간의 때가 아니라 하느님의 때를 기다리자고 권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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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2018년 11월 27일
  |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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