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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수원/서울] 주님의 작은 스파크
조회수 | 1,757
작성일 | 08.11.28
자기가 하는 일은 무엇이든 잘 안 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계속해서 실패를 하게 되니 더 이상의 희망도 생기지 않고, 이제는 모든 것이 자포자기인체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갈 뿐이었지요. 이렇게 절망에 빠져 있던 이 사람이 어느 날 자신의 낡은 차를 몰고 빗속을 달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그만 무슨 이유인지 달리던 자동차의 엔진이 멈춰버린 것이었어요. 그는 생각했지요.

‘무엇이든 잘 안 되니 이제는 이 자동차도 고장 나는구나. 비는 오는데 어떻게 하지?’

이렇게 당황해하고 있을 때 지나가던 차 한대가 멈췄습니다. 그리고 한 신사가 내리더니 무슨 일이냐고 묻습니다. 엔진이 멈춰버렸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뚜껑을 열어 무엇인가를 건드렸지요. 그러자 차의 시동이 신기하게 다시 걸리는 것이 아니겠어요?

운전자는 너무 고마워서 “감사합니다. 엔진이 끝장난 줄 알고 걱정했습니다.”고 고개 숙여 인사했습니다. 그때 그 신사가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어느 차든지 아주 작은 스파크만 있으면 적어도 한번 정도는 다시 시동을 걸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삶에도 적용되는 원리죠. 우리 삶에 작은 불씨 하나라도 남아있다면 다시 시작하기에 충분한 것입니다”

절망에 빠져 있었던 이 운전자는 그 말에 큰 용기를 얻을 수가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든 다 실패했던 내 자신. 그러나 아직도 작은 스파크는 얼마든지 다시 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지요. 그는 자신을 도와 준 그 신사의 말에 용기를 얻어 새롭게 삶을 시작하였고,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요즘 신문이나 텔레비전을 보면 하나 같이 사회 경제의 어려움을 이야기합니다. 그만큼 고통과 시련 속에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증거이겠지요. 그래서일까요? 스스로 이 세상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참으로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결코 모든 것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아직도 우리에게는 작은 스파크를 낼 수 있는 힘이 있으니까요. 그 작은 스파크는 바로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는 얼마든지 얻을 수 있습니다.

요 며칠 동안의 복음을 보면 계속해서 종말에 대한 말씀이 나왔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서 여러분들은 불안하지 않았습니까? 마찬가지로 이천년 전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들은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 예언 말씀에 몹시 불안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런 일들이 어디서 일어날 것이며, 특히 언제 일어날 것인가에 대해 늘 초조해 했지요.

그러나 예수님의 이 모든 말씀은 단순히 위협을 주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마치 산고 후의 산모의 기쁨처럼 그 고통 후에 하느님 나라가 동녘에 떠오르는 해처럼 나타나는 기쁨의 시기가 도래한다는 희망을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

이렇게 희망을 가져다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이 희망이 바로 우리의 삶 안에서 작은 스파크로 작용하게 됩니다. 그래서 어렵고 힘들 때, 또 절망 속에 빠져 있을 때에도 기쁨 속에서 힘차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자포자기 하기 전에 먼저 내 곁에 있는 주님의 작은 스파크를 찾아보세요.

조명연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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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종말론적인 삶이란?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파멸과 세상의 종말에 대한 무서운 말씀을 하시면서 그 시기가 언제인지 미리 알아서 대비하라고 비유를 들어 말씀하신다. "저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들을 보아라. 나무에 잎이 돋으면 그것을 보아 여름이 벌써 다가온 것을 알게 된다.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온 줄 알아라"(29-31절)하시고 예루살렘의 파멸과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때를 미리 알아서 대비하라 하신다. 즉 이 말씀은 우리가 많이 들어온 말씀으로 마지막 때가 언제인지 모르니 항상 깨어 있으라는 말씀이다.

예루살렘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 말씀을 들은 그 세대가 가기 전, 70년에 파괴 되었지만, 예수님의 재림은 즉 성서가 말하는 세상의 종말은 아직 오지 않고 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 시기의 징표는 알 수 있으나 그 날은 하늘의 천사들도, 사람의 아들도 모르고 하늘에 계신 성부만이 아신다고 하였다. 이 세상 종말이라고 하는 것은 하느님의 벌로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의 새로운 세계를 완성하시는 과정으로서의 죄 많은 인간들과 세상이 겪어야 하는 진통의 모습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정적인 모습은 마태 25장에서 말씀하시 듯이 당신이 구원하신 온 세상을 성부께 바치는 날이며 당신을 따른 모든 이들과 함께 새로운 축복의 영원한 나라로 들어가는 구원의 완성으로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기서 신경을 써서 걱정해야 할 것은 세상의 종말이 언제 올 것인가를 생각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다. "도적과 같이 오겠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지 않으셨는가? 오히려 우리는 나 개인의 죽음, 내 자신의 심판과 종말을 어떻게 맞이하여 끝맺어야 할 것인가, 어떻게 그 종말에 대비하여야 할 것인가를 더 걱정하고 염려해야 할 것이다. 그 날이 언제 오더라도 그 날을 맞이할 수 있도록 우리는 지금의 이 순간을 하느님의 자녀로서 신앙인으로서 충실히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종말론적인 삶이다. 이것은 주님의 말씀대로 항상 깨어 있는 삶이며, 예수님께서는 항상 깨어 기도하라고 하신다.

그 때 그 날은 공포와 기쁨, 영광이 이 세상에 함께 있던 것을 분명하게 둘로 가르시는 때인데, 그것은 그 때만의 일이 아니라 지금의 삶의 태도와 계속 연결되어 있는 결과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래서 흥청대며 허송세월을 보낸다든지, 쓸데없는 세상 일로 마음을 빼앗기는 등 지금의 행동이 초래할 불행을 면하기 위해서는 그 때가 언제인지는 분명히 모르나 분명히 번갯불처럼 닥쳐올 것이기 때문에 지금부터 항상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우리의 삶을 언제나 종말론적인 삶으로 이어가면서 항상 깨어 있는 우리 되도록 노력하자. 이 깨어 있는 삶이 우리를 항상 그분 안에 있게 하고 그분 안에서 진정한 기쁨과 평화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이것이 하느님의 나라를 이루며 사는 모습일 것이다.

▮ 수원교구 조욱현 신부
  |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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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나뭇잎이 돋으면 여름이 다가오듯이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파멸과 세상의 종말에 대한 무서운 말씀을 하시면서, 오늘 복음에서는 그 시기가 언제인지 미리 알아서 대비하라고 비유를 들어 말씀하신다. 즉, "무화과 나무와 모든 나무들이 잎이 돋아 나오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여름이 가까운줄을 아는 것처럼, 다시 말해서 여름이 올 때를 자연의 징조를 보고 알 수 있는 것처럼, 예루살렘의 파멸과 예수께서 다시 오시는 때를 미리 알아서 대비하라 하시신다. 그리고 당신이 하신 말씀은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라는 확정적이고 불변적인 말씀을 하신다.

사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그 세대 사람들의 세대가 가기 전에 예루살렘은 기원 70년에 파멸을 당했으나 예수님의 재림은 즉, 성서가 말하고 있는 세상의 종말은 아직 안오고 있다. 그러나 그 시기의 징표는 알 수 있으나 예수님 말씀대로 하늘의 천사도, 인자도 모르고, 하늘에 계신 성부만이 아시고 집행하시는 시기라고 가르쳐 주시고 계시는 것이다. 그러나 기여이 세상의 종말, 파멸의 날은 오고야 말 것이다. 그것은 세상의 파괴와 소멸을 목적으로 한 하느님의 벌이 아니라 하느님을 외면한 무질서와 부도덕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나가는 하느님의 간섭을 말하는 것이다. 즉, 세상 종말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은 세상의 파멸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방향대로 새로운 세계를 완성하시는 과정으로 들어가는 모습 속에서 죄많은 인간들과 세상이 겪어야 하는 진통의 모습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정적인 모습은 우리가 장례 미사때마다 봉독하게 되는 마태 25장에서 예수께서 이미 말씀하셨듯이 당신이 구속하신 온 세상을 성부께 바치는 날이며, 당신을 따른 모든 이들과 함께 새로운 축복의 영원한 나라로 들어가는 구원의 완성으로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기서 생각해야 할 점은 세상의 종말이 언제 올것인가를 생각하는 것보다도, "도적과 같이 오겠다!"고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이 나 개인의 죽음, 내 자신의 심판과 종말을 어떻게 맞이하며 맺어야 할 것인가? 어떻게 대비하여야 할 것인가를 우리는 더 걱정하고 염려해야 할 것이다.

▮ 서울대교구 김웅태 신부
  |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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