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l Home l Bestsite l Search l Freeboard l E-mail l

 
 

주일강론

평일강론

축일강론

대축일/명절강론

혼인강론

장례강론

예 화

사설/칼럼

♣ 현재위치 : 홈 > 강론자료실 > 평일강론 (짝수해)

평일강론

홀 수 해

짝 수 해

 

 

 

 


( 쪽지보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홈페이지 )
447 89.6%
[부산/인천] "늘 깨어 기도하여라"
조회수 | 1,834
작성일 | 08.12.01
오늘 예수님께서는“그 날이 언제 닥쳐올지 모르니 세상 걱정에 마음 빼앗기지 말고 늘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요즘 알람시계를 보면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보통 알람시계가 울리면 무의식 중에 그냥 누르고 잠들기 일수입니다. 그래서 누르면 몇 분 있다가 다시 울리는 알람시계가 보편화 되어 있습니다. 어떤 알람시계는 울릴 시간이 되면 따르릉 소리 대신에 말을 하는 시계도 있습니다. “주인님, 어서 일어나십시오. 주인님, 어서 일어나십시오.”바쁜 현대인들은 대개 이 알람시계를 이용해서 아침을 맞이하곤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알람시계가 있다하더라도 그 소리를 듣고 기쁘게 일어나는 사람은 드물 것입니다.

누구나 알람 소리를 듣고 “이제 일어나야지!”하고 벌떡 일어나야겠지만, 종이 울릴 때마다 “정말 일어나기 싫다. 시계를 누르고 10분만 더 자면 안 될까”하는 유혹과 사투를 벌이게 됩니다. 그러면서 비몽사몽간의 겨우 겨우 이불 속에서 기어 나오게 됩니다. 아침 마다 사투를 벌리는 이 알람시계를 보면서, 충분히 휴식을 취한 우리 몸도 따뜻한 이불 속에 있으면 끝없이 휴식을 요구한다는 단순한 진리를 새삼 느끼곤 합니다.

우리 신앙인에게도 알람시계가 있습니다. 바로 오늘 하신 주님의 말씀 즉, 신앙의 시계입니다. 사실 일년내내 신앙의 시계가 울렸고 전례력의 마지막인 오늘도 그 시계는 울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일어나서 준비하십시오. 주인이 언제 올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무리 시계가 울어도, 우리는 늘“아직은 아니야, 아직 시간이 많아.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하면서 시계를 자꾸 꺼두고 있지는 않습니까? 워낙 자주 듣다보니, “늘 깨어 기도하라” 는 오늘 주님의 말씀이 새벽을 알리는 시계 소리처럼 아련하게 들리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을 섬기는 거룩한 백성은 우선적으로 하느님 앞에서 깨어 있는 자들입니다. 깨어서 하느님의 뜻을 찾고 그 뜻대로 부지런히 움직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깨어 있어야 합니다.

시계를 끈다고 시간이 멈추지는 않습니다. 지금도 시간은 흐르고, 우리의 날은 점점 짧아지고 있습니다. 시간이 멈추는 마지막 그 날이 오면, 아침 태양처럼 주님의 나라가 시작될 것입니다. 그리곤 영원히 낮입니다. 그곳은 오늘 제 1독서의 말씀처럼 시간을 알 수 있는 밤이 없고 영원한 빛만이 존재하는 곳입니다. 우리의 모든 소망이 이루어지는 그 환희의 순간을 깨어서 맞는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므로 이 깜깜한 어둠의 세상을 우리는 늘 깨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날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아멘.

이재원 다미아노 신부
447 89.6%
알파요 오메가의 하느님

“늘 깨어 기도하라.”(36절) 이것이 한해 전례달력의 마지막 날에 선포되는 메시지이다. 우리가 늘 깨어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세상의 종말이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에 이를 늘 준비하고 있어야 하기 위함이며, 그 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재림하시는 인자(人子) 앞에 떳떳하게 설 수 있기 위함이다. 우리가 전례력의 마지막 주간을 지내면서 매일미사의 복음을 묵상한 바에 의하면 인자의 재림은 두 가지 특징을 가진다. 하나는 재림의 순간이 눈으로 알아볼 수 있는 묵시적(黙示的) 징조나 표징과 함께 장엄하게 다가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도둑(마태 24,43; 루가 12,39)이나 덫(35절)처럼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들이닥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중에 어느 하나를 선택하려거나 어느 것일까 하고 점치려 하지 말라. 잘 못 골랐다간 낭패를 본다. 그러므로 둘 다를 염두에 두는 것이 상책이다.

인자의 재림은 준비된 ‘바로 그 날’에 일어날 사건이 되겠지만, 사실상 ‘갑자기’ 들이닥친다는 데 매력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늘 깨어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하느님 나라가 이미 우리 가운데 있듯이(루가 17,21) 인자의 재림도 반드시 미래의 어떤 사건만은 아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시어 영광의 몸으로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계시다면(마태 28,20), 인자의 재림은 이미 우리 가운데 시작된 사건이다.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이 세상은 더 이상 옛적의 세상이 아니다. 이 세상은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새 하늘과 새 땅, 새 창조를 향하여 그 여정을 시작하였고, 서서히 완성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인자의 재림은 예수님 편에서 볼 때, 별다른 사건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인간 편에서 볼 때, 이 사건은 나자렛 예수와 더불어 시작된 하느님의 심오한 구원계획이 완성됨을 증명하는 사건이고, 그분이 누구인지를 드러내는 우주 계시적 사건이며, 영광의 그분 앞에 서게 될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드러내는 사건이 될 것이다.

우리는 올 한 해 동안 독서와 복음말씀을 통하여 창세기부터 요한묵시록까지의 발췌된 성서를 읽음으로써 성서 안에서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다. 성서는 누구에게나 그를 읽는 사람에게 필요한 의미를 제공한다. 그렇다고 성서가 자신이 담고 있는 모든 내용으로 세상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의 정형(定形)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의 처음이 어떤 모양이었으며, 그 마지막 또한 어떤 모양이 될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성서 또한 인간에 의해, 인간의 언어로 기록되었기에 그 모양을 알 수 없다. 그러나 성서는 우리가 서 있는 극히 제한된 그 자리와 시간을 우주적 차원으로 확대시키며, 전역사의 차원으로 극대화시킨다. 다시 말해서 성서는 세상이 하느님으로부터 왔으며, 다시 하느님께로 돌아갈 것을 밝혀주고 있다는 것이다. 하느님이 모든 것의 알파(Α)요, 오메가(Ω)이시기 때문이다.

더러는 길게 살고, 더러는 짧게 사는 것이 세상이지만, 누구에게나 탄생과 죽음은 세상의 창조와 종말의 의미를 가지며, 탄생부터 죽음에 이르는 한 개인의 역사도 마찬가지로 창조부터 종말에 이르는 세상 전역사의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나의 존재가 사람들 앞에서는 비록 하찮은 것으로 보일지라도 하느님 앞에서는 결코 그럴 수 없다. 내가 없으면 창조도 없고 종말도 없기 때문이다.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는, 그러기에 스스로 최선을 다해야 하는 나만의 삶을 소중함과 자랑스러움으로 살도록 하자. 그리고 그 삶을 사는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세상을 만들자.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시작하신 일, 그 일을 당신 뜻에 맞게 질서 지워주시고, 용기와 지혜로써 진보하도록 이끌어 주시며, 은총과 자비하심으로 그 마침을 채워주실 것이다. 아멘.

박상대 신부
  | 12.01
447 89.6%
▬ 일상의 근심 속에서도

지난 주일에 어머니 칠순 잔치가 있었다. 며칠 전부터 초대장을 만들고 케이크를 주문하느라 마음이 분주했고, 바로 전날에는 꽃바구니를 만들기 위해 꽃가게를 여러 번 다녀와야 했다. 잔칫날, 어머니와 성당 노인회를 함께하는 분들을 초대해서 점심식사를 했고 가까이 지내는 교우들도 참석해서 기쁨을 나누었다. 즐거워하시는 어머니 모습을 보니 내 마음도 무척 기뻤다.

잔치를 마치고 난 다음 수요일, 레지오 마리애 회합에 가면서 지난 주 활동을 돌아보았다. 묵주기도도 제대로 못했고, 협조 단원을 돌보지도 못했던 것이 떠올랐다. 오늘 복음 말씀처럼 일상의 근심으로 내 마음이 무뎌진 것이리라. 예수님은 “조심하여라”는 말씀을 두 번이나 하신다.

나는 가끔 우리가 처음 이민 오던 날 풍경을 떠올리곤 한다. 캘거리 공항에 발을 디딘 때는 2월 중순 한밤중이었다. 온 천지가 하얀 눈으로 덮여 설국에 온 것 같았지만 모든 것이 낯선 우리에겐 두려움뿐이었다. 남편 베드로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가장으로서 식구들을 이끌고 가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감을 느꼈을 것이다. 나 역시 아이들이 새로운 학교생활에 잘 적응할지 걱정되었다. 무사히 중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에 갈 수 있을지, 이곳 캐나다 아이들과 잘 어울려 지낼 수 있을지….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이민생활 6년이 지난 지금, 두 아이는 학교를 무사히 졸업하고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에 진학했다.

이제 나는 감히 말할 수 있다. 주님께서 우리를 이곳으로 불러주셨다고. 모든 것을 예비해 놓으신 그분은 우리를 보살펴 주시고 우리를 도구로 쓰신다고. 예수님은 당신을 죽이려는 음모를 아시면서도 낮에는 성전에서 가르치셨고 저녁이 되면 올리브산에 올라가서 기도로 밤을 지내셨다. 우리도 깨어 기도하면서 언젠가 주님 앞에 서게 될 날을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 신금재 (캐나다 캘거리 성 안나 한인 천주교회)
  | 11.23
447 89.6%
파리 여행을 다녀온 한 자매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파리는 동네 빵집 빵도 너무 맛있어요.”

그러자 이 말을 들은 어떤 자매님께서 이렇게 이야기하십니다.

“밥 지어 먹듯 매일 같이 먹는 빵인데, 맛이 없을 수가 없지.”

매일 밥을 하는데 맛없는 밥을 지을 수가 없겠지요. 물론 물 조절로 인해서 간혹 잘못된 밥이 될 수도 있겠지만, 매일 지어야 하는 밥만큼은 살림하는 사람에게 가장 자신 있어 하는 분야가 아닐까 싶습니다. 마찬가지로 파리의 사람들에게 빵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밥과 같으니 당연히 맛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매일 반복하면 당연히 성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은 제게 매일 쓰는 묵상 글에 대한 좋은 평가를 많이 해주십니다. 솔직히 저의 글재주가 좋은 것도 또한 글의 내용도 훌륭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평가를 해주시는 것은 오랫동안 새벽 글을 써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쓰다 보니 실제로 많이 성장했음을 깨닫게 됩니다.

매일 그리고 반복해서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안 되는 것, 못하는 것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러나 이 중에서 꼭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조건 매일 반복해야 합니다. 이렇게 매일 되는 반복이 이루어진다면 안 될 수도 없고, 또 못 할 것도 없게 될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이 힘들다고 잘 안 된다고 고백하시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힘들고 어렵다고 신앙생활을 포기하게 되면 주님과의 관계가 더욱 더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럴수록 더욱 더 반복해서 신앙생활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교회력으로는 한 해의 마지막 날입니다. 내일부터는 교회력으로 새해인 대림 제1주일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이 마지막 날에 많은 이들은 지난 한 해를 어떻게 살았는지를 반성해 보았으면 합니다. 특히 주님과의 관계는 어떠하셨습니까?

우리 모두를 구원으로 이끄시기 위해 주님께서는 스스로 조심할 수 있는 삶을 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늘 깨어 기도하여라.”라고 말씀해주시지요. 주님과의 연결의 끈을 놓지 않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단 한 번의 기도로 모든 기도를 다한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악을 피하고 선을 행하는 삶, 주님께서 가장 강조하신 사랑의 삶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나약함과 부족함으로 인해서 우리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습니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늘 깨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

▦ 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 2018년 12월 1일
  | 12.01
447 89.6%
어제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솔직히 받을까 말까를 궁리했습니다. 왜냐하면 발신자 표시로 080 숫자가 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바쁜 일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냥 전화를 받았습니다. 수화기 너머에서는 여성의 밝고 활기찬 목소리가 이렇게 들리더군요.

“사랑합니다. 고객님. …… 대출…….”

대출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곧바로 “죄송합니다. 지금 급한 일이 있어서 전화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라고 말하고는 끊었지요. 그런데 “사랑합니다.”라는 첫 마디가 귓가에 생생하게 울려오는 것입니다.

솔직히 ‘사랑합니다.’라는 말은 분명히 좋은 말입니다. 또한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 수 있는 말이지요. 그런데 저는 사랑한다는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빨리 전화를 끊으려고만 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 ‘사랑합니다.’라는 말에 진정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저 대출 상품을 이용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즉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사랑합니다.’라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진정성이 있는 사랑의 고백은 사람을 감동시킵니다. 또한 이 진정성 있는 사랑의 말이 환하게 웃게 만드는 힘도 있습니다. 연인들끼리 이 말을 얼마나 많이 하고, 또 이 말을 얼마나 좋아합니까? 아무리 들어도 또 듣고 싶은 말인 이유는 그 말에 진정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이익을 위한 진정성 없는 가짜 사랑의 말은 짜증만 나고 얼른 그 자리를 피하고 싶은 마음만 생기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사랑하십니다. 그런데 그 사랑은 어떤 사랑일까요? 진짜 사랑일까요? 아니면 가짜 사랑일까요? 진정성이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그냥 하는 말에 불과할까요? 그 진정성을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족보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주님께서 임금이나 군주처럼 우리 인간들을 지배하고 통치하고자 한다면 굳이 인간의 모습을 취해서 이 땅에 오실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을 진정으로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 인간과 똑같은 몸을 취해서 오십니다. 이 점을 분명히 보여주기 위해 복음의 첫 시작에 예수님의 족보를 위치했던 것입니다. 즉, 주님께서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분이 아니라는 것을 그래서 환상이 아닌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이루어진 참인간이셨음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이로써 가짜 사랑이 아니라 진짜 사랑으로 우리에게 오신 분이라는 것을, 그리고 우리 역시 진짜 사랑을 가지고 주님을 맞이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진정성 넘치는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우리는 주님께 어떤 사랑을 보내고 있었는지를 반성하게 됩니다. 혹시 나만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면서 잘 보이기 위한 가짜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

▦ 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 2016년 12월 17일
  | 12.01
파란색 글자 빨간색 글자 녹색 글자 밑줄 글자 진한 글자 빨간색 테이블 파란색 테이블 녹색 테이블
이름 :   
암호 :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1506   [수도회] 마음의 세계  [3] 1669
1505   [수원/서울] 마지막 날  [2] 1699
  [부산/인천] "늘 깨어 기도하여라"  [4] 1834
1503   (녹) 연중 제34주간 토요일 독서와 복음 [깨어 기도하라]  [1] 1473
1502   [인천/수원/서울] 주님의 작은 스파크  [2] 1712
1501   [수도회] 기다림의 행복  1781
1500   [부산/전주/마산/대전/대구] 오늘의 거울 속에 내일이 보인다.  [7] 2113
1499   (녹) 연중 제34주간 금요일 독서와 복음 [내 말은 사라지지 않는다.]  1572
1498   [인천/수원/서울] 내가 받았지만 감사하지 못하는 것이?  [6] 1845
1497   [수도회] 알아들어야 할 진실  [8] 1721
1496   [부산/마산/청주] 예루살렘의 최후와 예언의 성취  [7] 1952
1495   (녹) 연중 제34주간 목요일 독서와 복음 [예루살렘 파괴]  1685
1494   [부산/전주/마산/의정부/대구] 일상(日常) 속에서의 최후  [7] 1759
1493   [수도회] 일상 안의 박해  [3] 1590
1492   [인천/수원/서울] 미래는 절망이 아니라 희망의 시간입니다  [5] 1687
1491   (녹) 연중 제34주간 수요일 독서와 복음 [내 이름 때문에 미움을]  [1] 1558
1490   [부산/마산/의정부] 오늘 내 삶의 동기와 지향은?  [4] 1709
1489   [수도회] 파멸의 때 우리는  [3] 1707
1488   [인천/수원] 생각의 전환  [4] 1577
1487   (녹) 연중 제34주간 화요일 독서와 복음 [세상의 종말-징조]  [1] 1489
1 [2][3][4][5][6][7][8][9][10]..[76]  다음
 

 

평일강론

홀 수 해

짝 수 해

 

 

 

 관리자 Profile  l  홈페이지이용안내  l  즐겨찾기추가  l  추천사이트  l  가톨릭검색사이트  l  관리자 E-mail

Copyright ⓒ 2003 - 2019 www.ocatholic.com All rights reserved.   Ver 4.01_0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