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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서울] 마지막 날
조회수 | 1,699
작성일 | 08.12.01
오늘 복음의 말씀은 분명히 세상의 마지막 날이 언제 오더라도 늘 준비하고 있으라는 말씀을 우리에게 하고 계시다. 그 마지막 날은 공포와 기쁨, 영광으로 모든 것이 나뉘어지는 날이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결과로서 나타나는 것이고, 현재의 삶과 태도에 계속 연결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술에 취해 허송세월을 하고 쓸데없이 세상일에 마음을 빼앗기는 등 지금의 행동은 그 때에 가서 우리에게 부정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에 지금부터 항상 깨어있으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생의 마지막 시간을 맞이할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순간이 나에게는 아직 거리가 먼 것으로 생각하고, 애써 잊으려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게 생각한다고 하여도 죽음이라는 것은 우리 앞에 당당히 버티고 있으며, 언제나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다만 그 때가 언제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하여간에 우리 인간은 언제고 어느 때고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깨어있는다는 것은 다른 의미가 아니라, 지금 당장에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 있게, 기쁘게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것을 종말론적인 삶이라고 한다. 그래서 하느님을 기쁘게 잘 만날 수 있기 위해서는 평소에 죽는 연습을 잘 해야 한다. 이것은 무슨 의미냐 하면, 바로 하느님의 뜻을 올바로 실천하기 위해서 나 자신을 이기는, 나 자신을 죽이는 것이다. 즉 하느님의 뜻과 반대되는 나의 인간적인 뜻을 죽이고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다. 이렇게 내가 죽는 연습을 잘 할 때, 정말 나 자신이 하느님 앞에 나아갈 때, 이 세상 삶을 잘 마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삶이 바로 종말론적인 삶이 될 것이고, 우리는 그 마지막 날 어떤 어려움과 고통도 이겨내고 주님을 뵈올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삶은 항상 기도하는 자세와 함께 이루어갈 수 있을 것이다. 기도하면서 내가 살아가는 매 순간들의 삶이 하느님께 바쳐지는 아름다운 기도로써 바쳐질 수 있도록 한다면 진정 신앙인으로써, 하느님의 자녀로써 기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삶의 은총을 주님께 구하면서 이 미사를 봉헌하자.

조욱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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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항상 깨어 기도하여라.

오늘 복음[루카 21:34-36] 말씀 중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구원과 직결된 아주 중요한 말씀을 주십니다. "항상 깨어 기도 하여라!" 이렇게 결론적으로 말씀하시는 데는 그 이유가 있는데 이미 앞에서 루가 12:25 이하에서의 말씀인 사람의 아들이 오셔서 구원하여 주시겠다는 말씀과 아주 밀접히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즉, 그때 그날은 다시 말해서 심판 하시는 날에는 공포와 기쁨, 영광이 이 세상에 함께 있던 것을 분명하게 둘로 가르시는 때인데, 그것은 그 때만의 일이 아니라 지금의 삶의 태도와 계속 연결되어 있는 결과라는 것을 암시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흥청대며 허송 세월을 한다든지, 쓸데없는 세상일로 마음을 빼앗기는 지금의 행동이 가지고 올 불행을 면하려거든 또 그 때가 언제인지 모르나 분명히 번개처럼 닥쳐올 것이므로, 지금 여기서부터 항상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도를 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기도를 한다는 것은 우선 듣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 것입니다. 사실 듣지 않으면 우리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또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이 우리의 주님이시라고 고백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듣는 것은 곧 하느님과 우리를 연결시키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하는 것이며 그것이 곧 기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더러 기도하라고 계속해서 가르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대로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들은 자기만을 내세워서 교만하게 되지 않고, 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동네에 사는 불쌍한 사람들을 찾아가서 따뜻한 위로의 말을 전하여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기도하는 사람은 자신이 행하고, 생각하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 하나 연결되어서 좋은 열매를 맺어 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그날 두려움 없이 그분 앞에 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예수님은 우리에게 항상 깨어 기도하라고 권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느님과 밀접히 연결될 수 있는 길이고, 그것이 최후의 심판날에 우리가 구원될 수 있는 우리의 행동이라는 것을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선 이렇게 말씀하신 예수님은 구체적으로 나 자신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고, 무슨 일을 하도록 우리 자신에게 항상 깨어서 기도하라고 하시는지 깊이 생각해 보고, 예수님이 시키시는 대로 항상 깨어서 기도하는 삶을 살아 가도록 노력합시다.

▮ 서울대교구 김웅태 신부
  |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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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깨어 기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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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그리고 그날이 너희를 덫처럼 갑자기 덮치지 않게 하여라.”(34절) 영원하신 임금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는 술의 위험과 또한 ‘술 중독’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아무리 술을 많이 먹는 사람도 의사가 술을 먹으면 이제 죽는다고 하면 모두 술을 끊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제 영혼과 육신의 의사이신 주님께서 만취와 방탕과 일상의 근심에 빠지지 말라고 하신다. 그렇게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에 빠져 살면서 아무 탈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기에 만취는 모든 것을 망치는 원인이다. 육신과 함께 영혼까지 약하게 하는 유일한 병이다. 사도 바오로는 육신이 약할 때 영은 강해진다(2코린 12,10)고 하였다.

“외적 인간은 쇠퇴해 가더라도 우리의 내적 인간은 나날이 새로워집니다.”(2코린 4,16)고 하였다. 그러나 술에 취해 살면 육신과 영혼이 파멸한다. 육신과 영혼이 한꺼번에 타락하는 것이다. 모든 지체가 약해지면서 손과 발이 말을 안 듣고, 혀는 풀리고 눈은 어두워진다. 정신 또한 망가져서 자기가 누군지도 모르고, 심하면 자기가 인간이라는 사실조차 모른다. 술 중독이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생의 마지막 시간을 맞이할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순간이 나에게는 아직 거리가 먼 것으로 생각하고, 애써 잊으려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게 생각한다고 하여도 죽음이라는 것은 우리 앞에 당당히 버티고 있으며, 언제나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다만 그 때가 언제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하여간에 우리 인간은 언제고 어느 때고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깨어있다는 것은 다른 의미가 아니라, 지금 당장에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 있게, 기쁘게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것을 종말론적인 삶이라고 한다. 그래서 하느님을 기쁘게 잘 만날 수 있기 위해서는 평소에 죽는 연습을 잘 해야 한다. 이것은 바로 하느님의 뜻을 올바로 실천하기 위해서 나 자신을 이기는, 나 자신을 죽이는 것이다. 즉 하느님의 뜻과 반대되는 나의 인간적인 뜻을 죽이고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다.

이렇게 내가 죽는 연습이 잘 되어있다면, 하느님 앞에 나아갈 때, 이 세상 삶도 잘 마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종말론적인 삶이며, 우리는 그 날 어떤 어려움과 고통도 이겨내고 주님을 뵈올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삶은 항상 기도하는 자세와 함께 이루어갈 수 있다. 기도하면서 내가 살아가는 매 순간들의 삶이 하느님께 바쳐지는 아름다운 기도로써 바쳐질 수 있도록 한다면 진정 신앙인으로써, 하느님의 자녀로써 기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을 잘 새기고 실천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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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교구 조욱현 신부 : 2018년 12월 1일
  |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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