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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대림 12월 23일 독서와 복음 (세례자 요한의 탄생지는 '아인카렘'(포도밭의 샘)
조회수 | 2,499
작성일 | 05.12.16
▥ 제1독서 : 주님의 날이 오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리라.
▥ 말라키 예언서 3,1-4.23-24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 “보라, 내가 나의 사자를 보내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닦으리라. 너희가 찾던 주님, 그가 홀연히 자기 성전으로 오리라. 너희가 좋아하는 계약의 사자, 보라, 그가 온다. ─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2 그가 오는 날을 누가 견디어 내며, 그가 나타날 때에 누가 버티고 서 있을 수 있겠느냐? 그는 제련사의 불 같고, 염색공의 잿물 같으리라.
3 그는 은 제련사와 정련사처럼 앉아 레위의 자손들을 깨끗하게 하고, 그들을 금과 은처럼 정련하여 주님에게 의로운 제물을 바치게 하리라.
4 그러면 유다와 예루살렘의 제물이 옛날처럼, 지난날처럼 주님 마음에 들리라.

23 보라, 주님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리라.
24 그가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자녀의 마음을 부모에게 돌리리라. 그래야 내가 와서 이 땅을 파멸로 내리치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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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  세례자 요한의 탄생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 1,57-66

57 엘리사벳은 해산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
58 이웃과 친척들은 주님께서 엘리사벳에게 큰 자비를 베푸셨다는 것을 듣고, 그와 함께 기뻐하였다.
59 여드레째 되는 날, 그들은 아기의 할례식에 갔다가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기를 즈카르야라고 부르려 하였다.
60 그러나 아기 어머니는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61 그들은 “당신의 친척 가운데에는 그런 이름을 가진 이가 없습니다.” 하며,
62 그 아버지에게 아기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겠느냐고 손짓으로 물었다.
63 즈카르야는 글 쓰는 판을 달라고 하여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다. 그러자 모두 놀라워하였다.
64 그때에 즈카르야는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65 그리하여 이웃이 모두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유다의 온 산악 지방에서 화제가 되었다.
66 소문을 들은 이들은 모두 그것을 마음에 새기며,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하고 말하였다. 정녕 주님의 손길이 그를 보살피고 계셨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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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 천사는 즈카르야에게 나타나 요한의 탄생을 알립니다. 그 순간, 즈카르야는 의심에 휩싸입니다. “제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저는 늙은이고 제 아내도 나이가 많습니다”(루카 1,18). 아이를 잉태할 수 없는 ‘생리적 상황’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의 의심은 합리적입니다. 하지만 요한의 잉태는 주님의 기적입니다. 그분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하느님의 일’을 인간의 계산으로 판단하려 했던 것이 즈카르야의 잘못이었습니다. 더구나 그는 사제였습니다. 보속으로 그는 벙어리가 되지요. 처음엔 놀랍고 부끄러웠을 겁니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피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차츰 은총을 느끼게 됩니다. 왜 이런 고통을 주셨는지 깨닫게 됩니다.

그는 아들의 탄생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아기를 가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어떠했을까요? 요한의 탄생을 기적으로 인정하지 않으려 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는 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 아들을 주셨던 것입니다. 즈카르야는 벙어리로 있으면서 이것을 깨치게 됩니다. 그러자 보속은 해제됩니다. 벙어리의 삶은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입니다. 고통이 없으면 깨달음은 오지 않습니다. 똑똑한 사람들에겐 더욱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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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2008년 12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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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자 요한이 탄생할 무렵,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 치하에 있었습니다. 가난한 이들과 억압받는 이들은 더 없이 궁핍한 삶을 살아야 했고, 부자들과 권력자들은 여전히 호화로운 생활을 영위했습니다. 빈부의 격차가 날이 갈수록 벌어져, 가난한 이들과 억압받는 이들은 불의한 현실 생활에서 구원해 주실 해방하시는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때가 되자,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구세주 메시아의 길을 닦을 일꾼을 먼저 보내십니다. 아기를 가질 수 없는 나이 많은 엘리사벳을 통하여 그 일꾼인 세례자 요한은 세상에 오게 됩니다. 그의 아버지 즈카르야처럼 사람들은 그를 주님께서 보내신 사람으로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즈카르야가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받아들임으로써, 마침내 아기는 자라나 주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수행하게 됩니다.

요한은 주님의 일꾼으로서 맡은 바 직무에 충실한 새로운 삶을 삽니다. 그의 첫 사명은 이스라엘을 하느님께 돌아오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주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세례자 요한이라고 부릅니다. 그는 주님께서 오시기에 앞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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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2010년 12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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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을 대하면 선하고 소박한 사람들이 아기를 바라보는 아름다운 모습이 절로 떠오릅니다. 제 마음도 이러한 사람들의 곱디고운 마음에 물들어 가듯 잔잔한 기쁨으로 젖어 듭니다.

아기 예수님을 향한 우리의 눈길은 이처럼 요한 아기를 바라보는 눈길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주님의 성탄을 맞이한다는 것은 아기를 바라보는 사랑과 환희와 희망의 눈길이라는 것을 성탄절을 앞두고 깨닫습니다.

아기의 모습으로 오시는 구세주를 기다리며, 태어나는 아이에게서 새로운 세상을 보는 고은 시인의 노래에 귀를 기울여 봅니다.

“쌍계사 벚꽃 지다 이렇게 세상을 시작한다
내장사 단풍 지다 이렇게 세상을 마친다

겨울이 와야겠다
그래야 긴 겨울잠 자다 어둠 속 아기 낳으리라

젖먹이 울음소리 이렇게 세상을 또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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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2014년 12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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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을 보면 엘리사벳은 아들을 낳습니다. 루카 복음 1장에 따르면 엘리사벳은 원래 아이를 못낳는 여인이었는데, 나이마저 많았지요. 그런데 엘리사벳의 남편 즈카르야가 주님의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고 있을 때, 주님의 천사가 그에게 나타나 엘리사벳이 아기를 가질 것이라고 알려 줍니다. 이 말을 들은 즈카르야가 너무도 놀란 나머지 반신반의하자, 천사는 아기가 태어날 때까지 즈카르야의 입을 닫아 버리고 맙니다(루카 1,5-20 참조).

마침내 오늘 복음에서처럼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고 아버지 즈카르야는 천사의 말대로 아기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짓지요. 그러자 그의 혀가 풀려 말하게 되지 않습니까?

오늘 복음을 대하며 인간이 생각하는 세계와 하느님의 세계는 다르다는 점을 묵상했으면 합니다. 인간의 세계는 철저하게 힘 있는 자 중심입니다. 가진 사람은 더욱더 많은 것을 가지려 합니다. 권력이나 재물이 있어야만 더 많이 가질 수 있기에 경쟁과 질시, 불화와 다툼이 심합니다. 그러다 보니 인간 세계에서는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것만 받아들이지 않습니까? 눈에 보이는 것만 믿으려 합니다.

하느님의 세계는 다릅니다. 마음으로 이해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신앙의 세계이기 때문이지요. 그러기에 하느님께서는 엘리사벳과 같이 아기를 잉태할 능력이 없는 여인을 택해 생명을 만드신 것입니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의 무한하신 능력을 생각하며, 신앙의 신비에 대해 깊게 묵상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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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매일미사 2016년 12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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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성경의 마지막 권인 말라키서는 대예언서에서 소예언서에 이르는 예언서 전체를 수렴합니다. 특히 “나의 사자”라는 뜻인 말라키 예언자와 예수님께서 활동하시기 전에 주님의 길을 준비하던 세례자 요한이 연결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교는 말라키서의 메시아 관련 내용에 감명을 받고, 말라키가 기다렸고 또 지금 우리가 기다리는 메시아가 바로 나자렛의 예수님이심을 알게 됩니다.

오늘 독서의 첫 구절을 읽어 봅니다. “보라, 내가 나의 사자를 보내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닦으리라.” 말라키의 예언은 세례자 요한에 의하여 이루어집니다. 주님 성탄이 되면 가려질 조연이지만 그는 분명 대림 시기의 주인공입니다.

“보라, 주님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리라. 그가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자녀의 마음을 부모에게 돌리리라. 그래야 내가 와서, 이 땅을 파멸로 내리치지 않으리라.”

말라키는 갑자기 도래할 주님의 날을 준비하라고 권고합니다. 아직 구원의 때는 이르지 않았으나 언젠가 주님의 날이 오면, 인간의 죄는 종식되고 의인들이 구원되는 시대가 오리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의 예언은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 전에” 깨어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경고인 셈입니다.

따라서 주님 성탄을 곧 앞두고, 오늘 복음 속 즈카르야와 엘리사벳 부부의 이웃들이 메시아의 선구자로 주님의 사자요 주님께서 앞서 보내신 엘리야인 세례자 요한에게 지녔던 두려움을 생각합니다.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지금을 사는 우리도 두려운 마음으로 이 질문을 되새겨야겠습니다. 이 아기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고자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요한 3,1-18 참조). 성인이 된 세례자 요한에게 ‘당신은 누구요?’ 하고 묻는 유다인들과 종교 지도자들처럼 무지해서는 안 됩니다(요한 1,19-28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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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박기석 사도 요한 신부
매일미사 2020년 12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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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은 세례자 요한의 탄생 예고 이야기(루카 1,5-25 참조)에 이어서 읽어 볼 수 있습니다. 특별히 루카 복음 1장 57-58절이 전하는 세례자 요한의 탄생 사건은 천사를 통한 탄생 예고와 잉태 보도를 전제하기 때문입니다. 엘리사벳이 세례자 요한을 잉태한 뒤 아홉 달이 지났음을 알 수 있는 증거들은(1,24.26.36.56 참조) 아기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의 탄생에 대한 보도는 짧습니다. 오히려 새로 태어난 아기의 이름을 둘러싼 논쟁이 이야기의 중심에 있습니다. 이웃과 친척들은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즈카르야’라고 부르려고 하였습니다. 아버지 또는 할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기의 이름을 붙이는 것은 그 시대의 사회적 관습이었습니다(1,61; 1마카 2,1-2 참조). 그러나 아기 어머니 엘리사벳과 아버지 즈카르야는 ‘요한’으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요한’은 천사가 알려 준 이름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말씀과 사회 규범 사이의 충돌은 하느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풀립니다. 즈카르야는 주님의 천사에게서 아기의 탄생에 관한 소식을 들었지만 믿지 못하였고, 이러한 의심으로 즈카르야는 말을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1,18-20 참조). 즈카르야는 의심과 불순종으로 하느님에게서 멀어졌고, 뒤늦게 하느님 말씀에 순종하면서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하고 그분을 찬양합니다(12월 24일 아침 미사 복음 참조).

이렇게 세례자 요한의 아버지 즈카르야는 하느님을 마주하는 두 가지 태도를 보여 줍니다. 이 상반된 모습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저마다 과거에서 현재로 변화하기로 결심해야 합니다. 하느님을 의심하고 믿지 못하는 모습을 버리고, 그분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면서 우리를 찾아오시는 아기 예수님을 기다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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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정진만 안젤로 신부
매일미사 2022년 12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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