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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인천] 이제 곧 성탄입니다
조회수 | 684
작성일 | 15.12.20
자동차에는 그리 비싸지는 않지만 중요한 부품이 있습니다. 특히 비가 오는 날에는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차 앞 유리에 먼지가 있거나, 이물질이 있으면 필요한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와이퍼’입니다. 우리말로 하면 ‘창문 청소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예전에는 주로 부인들이 자동차 앞 유리를 닦았기 때문에 ‘와이퍼’라고 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컴퓨터 모니터의 글이 잘 보이지 않아서 안과의사인 친구에게 갔더니 원인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우리의 눈은 차의 앞 유리와 같다고 합니다. 우리의 눈은 끊임없이 맑은 물을 내보면서 거칠어진 눈의 표면을 깨끗하게 해 준다고 합니다. 그래야 선명하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보통사람들의 눈을 사진으로 보니 아주 깨끗하였습니다. 그 깨끗한 곳에서 샘물처럼 맑은 물이 나오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아름다운 세상을 선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저의 눈을 보여 주었는데, 약간의 염증이 있었고, 붉은 색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친구가 처방해 준대로 약을 바르고, 안구 운동을 했더니 다시금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와이퍼’를 새롭게 고쳤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제 곧 성탄입니다. 나의 믿음의 눈에 이물질이 묻어있으면 성탄의 기쁨을 느낄 수 없을 것입니다. 내 사랑의 눈에 먼지가 잔뜩 묻어 있으면 주님 성탄의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없을 것입니다. 내 희망의 눈에 고통의 비가 내리면 주님의 성탄을 제대로 볼 수 없을 것입니다.

해마다 계절이 오고 가듯이, 매일 태양이 뜨고 지듯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순환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눈을 뜨고 있어도 내 마음에 욕망의 먼지가 묻어 있다면, 내 마음에 분노의 이물질이 쌓여 있다면, 내 마음에 열등감의 비가 내린다면 우리는 늘 새롭게 다가오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볼 수 없을 것입니다. 대림시기는 바로 내 마음의 ‘와이퍼’를 손질하는 시기입니다. 그래야만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사람이 되신 예수님을 제대로 맞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는 한시 중에 ‘未得先愁失 當歡己作飛’라는 말이 있습니다. ‘근심이 오지도 않았는데 기쁨이 벌써 날아가 버린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모두는 나에게 와서 쉬어라. 나의 멍에는 편하고 가볍다. 이제 곧 성탄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오시는 아기 예수님의 크신 사랑을 믿으며 ‘공허함, 죄책감, 두려움’을 벗어버리고 희망과 평화를 담고 살아야 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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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조재형 신부
2015년 12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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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나와 하느님의 관계는 어떤 관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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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본격적인 겨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요? 겨울에만 할 수 있는 일들이 제 앞에 계속해서 놓이네요. 눈 치우기, 동파된 수도 녹이기, 난로기구 설치하기, 석유 주유하기 등등……. 하지만 잘 생각하면 날씨가 좋은 봄, 가을 보다는 확실하게 일이 줄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생긴다는 것을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갑작스런 일이 생기면 왜 이렇게 짜증을 내고 있을까요?

사실 순례객이 많은 때에는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로 시간을 보냅니다. 아침 일찍부터 성지 구석구석을 청소 및 정리를 하며, 미사 전에는 계속해서 고해성사를 주어야 합니다. 또한 미사 후에는 성지 설명을 1시간가량 하고, 식사 후에는 바깥일을 계속해서 해야 하지요. 그래서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난 후에는 피곤해서 그냥 잠 자리에 들을 때가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겨울에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우선 순례객들이 많지 않습니다. 또한 특별히 바깥일 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그냥 따뜻한 방 안에 있으면서 할 일 없이 무료하게 지낼 때가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이렇게 갑작스럽지만, 어떤 할 일이 생긴다는 것. 비록 저에게 조금의 불편을 가져다주기는 하지만 오히려 감사해야 할 일이 아닐까요?

할 일이 있다는 것은 정말로 감사할 일입니다. 할 일이 없어서 힘들어하는 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또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도 감사할 일입니다. 병으로 그리고 신체적인 장애로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분들도 얼마나 많은지요?

이러한 차원에서 모든 것이 감사할 일이고, 그래서 하느님의 손길을 우리들 삶의 한가운데에서 계속 느낄 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언제나 우리 곁에 계시며, 우리 삶 안에서 깊은 관여를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일상 삶 안에서는 하느님을 찾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어려울 때만 하느님을 찾고 있으며, 반대로 즐거움이 있을 때는 하느님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잘 안 될 때에는 ‘하느님’ 탓이고, 내가 잘 될 때에는 ‘내’ 탓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요?

오늘 복음에서 엘리사벳이 아들 요한을 낳고, 할례식에 참여합니다. 이 할례식에서는 아이의 이름을 짓는 명명식도 함께 행해집니다. 그때 이웃과 친척들은 아이의 이름은 당연히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즈카르야'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엘리사벳과 즈카르야는 거부합니다. 자신의 이름을 따는 것은 자기들로써도 기쁜 일이지만, 이것은 하느님께서 원하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로 즈카르야와 엘리사벳 부부는 기쁨 안에서도 하느님의 뜻을 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나와 하느님의 관계는 어떤 관계인가를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어려울 때만 하느님을 찾는 일방적인 관계는 아니었는지요?

이제는 어려울 때뿐만이 아니라, 기쁘고 즐거울 때에도 하느님을 찾는 주님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즈카르야처럼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진정한 감사와 찬미의 기도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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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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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몸을 일으켜 머리를 들어라, 구원받을 날이 가까이 왔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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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누가 태어났습니까? 예수님에 앞서 세례자 요한이 태어났지요. 세례자 요한의 잉태 과정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요한이 탄생하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번 ‘믿음’에 대해서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세례자 요한의 아버지 즈카르야와 어머니 엘리사벳 부부는 아마도 평생 아이 낳는 것이 소원이었을 것입니다. 엘리사벳은 원래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였는데 예수님 시대나 근래까지도 자녀 출산은 하느님의 축복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축복 받지 못한 사람으로서의 안타까움이 무척 컸으리라 짐작됩니다. 아이에 대한 염원이 참으로 간절하였을 것이고 또 하느님께 열심한 사람들이었으니 기도 또한 눈물겹도록 바쳤을 것입니다. 한평생 자녀 갖기를 고대하였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이제 인간적인 모든 염원을 다 접고 아예 포기한 채로 살아가고 있던 이들 부부에게 뜻밖의 일이 벌어집니다.

주님의 성소에 들어가 분향을 드리고 있던 즈카르야에게 하느님의 천사가 나타나 이제 곧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고 알려줍니다. 그러나 늙은 즈카르야는 믿지 못했고 그 불신의 대가로 벙어리가 되고 말지요. 달이 차서 아이가 태어나고 그 후 여드레가 되는 날 아기의 할례 받는 날이 되었습니다. 이웃과 친척들이 모여 할례를 베풀고 아기의 이름을 지어주는 자리에서 이번에는 즈카르야가 하느님께 믿음을 드러냅니다. 하느님의 뜻대로 그 집안에는 없는 ‘요한’이라는 이름을 받아들이면서 불신의 벌을 사면받게 되고 혀가 풀려서 말을 하게 되지요.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즈카르야는 아이 갖기를 일생 염원하며 기도했지만 막상 하느님의 뜻이 전달되자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대로 아이의 이름을 요한이라 짓는 상식을 벗어난 결정을 하고 나서야 혀가 풀려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즈카르야처럼 여러 가지를 간절히 기도하지만 실제로 하느님께서 우리의 상식과 이해를 넘는 요구를 하실 때는 그대로 주저앉고 맙니다. 나의 지식과 경험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 이상을 요구받을 때 더 이상 하느님께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자기 나름대로의 믿음의 범주 안에서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참으로 많습니다.

어느 날 부자들만 사는 고급 아파트에 엠브런스 한 대가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며 달려왔습니다. 혼자 살아가던 할머니 한 분이 자살을 한 것입니다. 이웃 사람들이 모두 깜짝 놀랐고 경찰에서도 조사를 나왔지요. 부유하게 잘 살았고 자녀들도 모두 사회적으로 성공했으며 건강하게 잘 살아가고 있던 할머니의 죽음을 아무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여러 가지를 조사하다가 마침내 그 이유를 할머니의 일기장에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할머니의 일기장에는 일년 365일을 한결같이 이렇게 적혀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도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젊었을 때는 자기의 힘을 믿거나 자기의 드러난 업적에 의지해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자기를 믿을 수는 없습니다. 신앙은 자기를 믿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믿는 것입니다. 나의 경험과 지식을 믿고 사는 것이 아니라 나의 경험과 지식을 떠나서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이 신앙입니다.

오늘 복음은 즈카르야의 불신과 믿음을 반복해서 전하면서 세례자 요한의 탄생 경위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세례자 요한의 탄생 경위는 예수님의 탄생을 준비하는 과정에 불과합니다. 요한의 신비한 탄생 과정을 통해 하느님으로부터 특은을 받은 이 아기가 장차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관심을 가졌지만 정작 성경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것입니다. 즉, 세례자 요한조차도 이렇게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하느님의 은총 속에 태어났는데 하물며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지요. 인간의 지식과 경험에 얽매여 어떻게 처녀가 아기를 낳을 수 있느냐고 반문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오늘 복음은 구약의 예언은 성취되었으며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안 되는 것이 없다고 대답합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은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에 사람들은 상식을 뛰어넘는 믿음을 요구하는 사건 앞에서 불신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즈카르야 또한 하느님의 뜻에 불신했고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독서와 복음에서 계속 표현되고 있는 삼손의 탄생, 세례자 요한의 탄생, 그리고 예수님의 탄생은 우리에게 한결같은 메시지를 전해줍니다. 참된 믿음은 나의 지식과 경험을 떠나서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를 때 우리는 주님의 은총에 함께 참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처한 상황 속에서 과연 그럴까, 안 그럴까, 해도 될까, 말까 하며 믿음을 저울질합니다. 그렇게 나의 경험과 지식만을 따를 때 우리는 즈카르야처럼 벙어리만 되는 것이 아니라 귀머거리까지도 되기가 쉽습니다. 하느님의 뜻이 들리지 않게 되지요. 그리고 가슴은 냉랭해집니다. 하느님께 마음을 열 때 귀가 열리고 혀가 풀리며 가슴 가득 하느님의 기운이 돌게 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성탄입니다. 주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지요. 우리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겨 드릴 수 있을 때 비로소 참다운 그리스도인으로 거듭 날 수 있음을 기억하고 깊은 믿음을 위해 더욱 노력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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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이기양 신부
  |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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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사제서품을 받으신 최양업(토마스) 신부님의 서간집(1842-1860, 스승 신부님에게 보낸 편지)을 읽고 있습니다. 순교하지는 않으셨지만,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미사와 성사를 집전하셨습니다. 12년 동안 127개나 되는 교우촌을 담당하셨습니다. 그런데 신자들이 당신을 찾아오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이 찾아가셨습니다. 매년 7,000리(약 2,749km) 이상을 걸으며 어떤 고난과 위험에도 굴하지 않고 신자들을 찾아 나셨습니다. 그 결과 탈진해서 만 40세의 한창나이에 병사하시지요.

이런 사목적 열정이 서간에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그럴 수밖에 없음을 신자들의 열성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제를 만나 고해성사를 보고, 미사에 참석하기를 바라는 신자들을 외면하실 수 없었다고 하십니다. 이렇게 훌륭한 사제는 훌륭한 신자들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닐까요?

지금은 과거와 달리 쉽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 원하면 언제든지 고해성사를 볼 수 있고, 미사 참석도 자기 편안한 시간에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계속해서 편안한 신앙생활만을 추구합니다. 단적인 예로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 때, 잠시 방송 미사를 허용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라도 계속 신앙 생활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성당에 가서 미사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당에 아예 나가지 않는 사람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신앙의 자유가 없어도 주님께 대한 열정이 가득했던 그 시대, 신앙의 자유가 있지만 주님께 대한 열정보다 세상 것에 관한 관심이 더 많은 지금 시대 중, 누구에게 구원의 문을 열어주실까요?

주님께 대한 열정을 키워야 합니다. 너무나 소중하고 감사한 주님 사랑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 관점보다 주님을 더 윗 자리에 모실 때 가능합니다.

즈카르야는 세례자 요한의 잉태 소식을 듣고 세상의 눈으로 그럴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아이를 갖기에는 자기나 엘리사벳 모두 나이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말을 할 수 없게 되었지요. 함부로 말하지 못하게 즈카르야의 입을 닫은 것입니다.

이제 세례자 요한의 명명식 자리입니다. 사람들은 관습대로 아버지 이름을 따서 ‘즈카르야’로 부르려 합니다. 그러자 엘리사벳이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즈카르야도 글 쓰는 판에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적으면서, 세상 뜻보다 하느님의 뜻을 따릅니다. 그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할 수 있게 되면서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주님께 대한 열정이 필요한 요즘이 아닐까요? 너무나 편하고 쉬운 신앙생활만 따르다가는 하느님을 찬미할 수 없게 입이 닫히고 혀가 굳어질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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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2022년 12월 23일
  |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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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대림특강이 있어서 필라델피아 한인성당에 갔었습니다. 같은 서울교구라서 하루 전에 가서 머물렀습니다. 저녁 7시 30분에 강의를 시작하는데 1시간 전에 성당에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조금 있으니 봉사자들이 왔습니다. 음향을 점검하는 분도 있었고, 제단의 꽃에 물을 주는 분도 있었습니다. 성령기도회 봉사자들이 와서 찬양으로 교우들을 맞이했습니다. 대림특강은 제가 하지만 대림특강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미리 와서 봉사하는 분들을 보았습니다. 특강이 끝난 뒤에는 여성구역에서 따뜻한 차와 간식을 준비하였습니다. 늦은 시간이지만 교우들은 차와 간식을 드시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제가 매주 미사를 가는 부르클린 한인성당에도 많은 봉사자들이 있습니다. 10시 30분에 미사를 하는데 9시면 성가대에서 와서 연습을 합니다. 비슷한 시간에 성모회는 그날의 친교 음식을 준비합니다. 형제님들은 탁자와 의자를 준비합니다. 전례 봉사자들은 미사 준비를 합니다. 복사들도 미리 와서 연습합니다. 재정 봉사자들은 미사예물을 받고, 교무금도 받습니다. 미사는 제가 주례하지만 미사가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미리 와서 봉사하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이제 곧 주님의 성탄을 맞이합니다. 성서를 보면 주님의 성탄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은 이사야 예언자입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예수님이 태어나기 500년 전에 이미 임마누엘의 탄생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리고 임마누엘 주님이 오시기 전에 길을 닦을 사람이 온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보라, 내가 나의 사자를 보내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닦으리라. 너희가 찾던 주님, 그가 홀연히 자기 성전으로 오리라. 너희가 좋아하는 계약의 사자 보라, 그가 온다. 보라, 주님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리라.”

이사야 예언자가 예언했던 사자는 세례자 요한이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보라 나의 뒤에 나보다 더 크신 분이 오신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도 없다. 그분은 점점 커지셔야 하고, 나는 점점 작아 질 것이다.”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분이 오시면 사막에 샘이 넘쳐날 것입니다. 사자와 어린양이 함께 거닐 것입니다. 참된 평화와 참된 자유의 세상이 될 것입니다.” 골짜기는 메우고, 언덕은 평평해 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평등의 세상이 올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있습니다. 가브리엘은 즈카리야의 꿈에 나타났습니다. 성령의 힘으로 즈카리야의 아내 엘리사벳이 늙은 나이에 아이를 잉태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아이가 주님의 길을 닦는 세례자 요한입니다. 마리아의 꿈에 나타났습니다. 마리아에게 아이를 가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마리아는 ‘저는 아직 남자를 모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가브리엘은 성령의 힘으로 그리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마리아는 ‘이 몸은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라고 응답하였습니다. 가브리엘은 마리아와 약혼한 요셉의 꿈에도 나타났습니다. 요셉은 결혼하기 전에 아이를 잉태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리아와 남모르게 파혼하려고 하였습니다. 가브리엘은 요셉에게 ‘마리아의 잉태는 성령으로 된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요셉은 하느님의 뜻을 따라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 들였습니다. 이사야 예언자의 예언이 있었고, 천사 가브리엘의 예고가 있었고, 마리아와 요셉의 순명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준비된 순명의 구유 위에 예수님께서 사랑으로 오십니다.

자신을 돌아보고, 깨어서 기다리는 사람은 이웃과 형제를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며, 이런 이들은 형제의 고통과 절망, 괴로움과 슬픔을 함께 나누며 그런 자신의 행동이 하느님의 자녀로서 당연히 해야 될 일임을 깨닫게 되며, 이런 사람들에게 “임마누엘”주님은 언제나 함께 하십니다. 주님의 성탄이 임박해지면서 우리는 엘리사벳의 축복과 마리아의 노래를 들었습니다. 이제 곧 성탄입니다. 엘리사벳처럼, 마리아처럼 우리도 찬미의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성탄을 맞이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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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조재형 신부
2022년 12월 23일
  |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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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0   (자) 대림 12월 23일 독서와 복음 (세례자 요한의 탄생지는 '아인카렘'(포도밭의 샘)  [6] 2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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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5   (자) 대림 12월 22일 독서와 복음 (마니피캇 ; 성모님의 노래)  [8] 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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